“네 약혼자는 지금 어디 있어.”네가 아픈데 왜 안 오냐고 묻잖아.약혼자의 저택에서 도망쳐 투명 인간으로 살아온 여자.벽장 안에 갇힌 아이처럼 숨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삶은 생기 없는 무채색이었다.“…그 사람이 요즘 바빠서요.”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 태이현.그가 속아줄까.눈앞의 목표물을 한입에 삼켜버릴 음험한 맹수가 탁하게 물든 시선을 죽였다.“거짓말도 못 하는 게.”마음에 들지 않는 거짓말만 하는 예쁜 목덜미를 집요하게 물어뜯어 결국 항복을 받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상대가 서연우가 아니었다면.누군가를 배려해본 적 없는 철저한 이기주의는 겁먹고 경계하는 얼굴 앞에서 정체를 숨겼다.“넌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어.”전부 내가 해, 그러니까 너는.“지금처럼 기다리고 있으면 돼.”버려진 삶에도, 온통 흐린 날뿐인 인생에도 비가 그칠 날이 올까.세상이 나를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태연히 내 손을 잡아 세상으로 이끌어 줄 남자가 나타났다.
“네 약혼자는 지금 어디 있어.”네가 아픈데 왜 안 오냐고 묻잖아.약혼자의 저택에서 도망쳐 투명 인간으로 살아온 여자.벽장 안에 갇힌 아이처럼 숨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삶은 생기 없는 무채색이었다.“…그 사람이 요즘 바빠서요.”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 태이현.그가 속아줄까.눈앞의 목표물을 한입에 삼켜버릴 음험한 맹수가 탁하게 물든 시선을 죽였다.“거짓말도 못 하는 게.”마음에 들지 않는 거짓말만 하는 예쁜 목덜미를 집요하게 물어뜯어 결국 항복을 받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상대가 서연우가 아니었다면.누군가를 배려해본 적 없는 철저한 이기주의는 겁먹고 경계하는 얼굴 앞에서 정체를 숨겼다.“넌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어.”전부 내가 해, 그러니까 너는.“지금처럼 기다리고 있으면 돼.”버려진 삶에도, 온통 흐린 날뿐인 인생에도 비가 그칠 날이 올까.세상이 나를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태연히 내 손을 잡아 세상으로 이끌어 줄 남자가 나타났다.
J그룹 외손녀 고유은. 걸음마하던 시절부터 도도했을 것 같은 그녀에게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약혼자가 있다. 곤란할 때면 앞머리를 쓸어 올리던 애. 표정 없는 무심한 얼굴로 나를 보곤 했지만, 드물게 웃을 때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부르던 애. 윤원 그룹 손주이자 고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던 권제하. 그러니까, 내 첫사랑. 허울 뿐인 정략 약혼이 끝나는 날, 그가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 “우리 언제 파혼할까.” “만나는 사람 있어?” “처음부터 3년만 약속된 관계였잖아.” “만나는 사람 있냐고.” “…아니.” 일순 서늘했던 그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없으면서 왜 이렇게 보채.” 유은의 파혼 요구를 다정히 거절하고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나드는 제하. 쳇바퀴 돌듯 정체된 삶을 살아가는 여자에게 직진밖에 모르는 남자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널 더 기다리면 나만 손해야, 권제하.” “네 손해, 내가 채워줄게.”
“좋아하나 봐요, 콜라.” 커다란 체격에 맞아떨어지는 묵직한 코트와 검정 목폴라. 원수 같은 연애에 사형선고를 내린 날, 운명처럼 만나 밤까지 보낸 남자. 서이재. 그가 관계의 ‘갑’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 “내 아래에서 예쁘게 무너질 생각은.” “그럴 일 없어요.” “거짓말.” “없습니다, 확실히.” 태연하게 웃는 남자와, 누구에게도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겨 본 적 없는 여자. 공과 사를 넘나드는 관계의 변화, 영역의 반전, 낯선 감정의 파도. 과연 그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런데 그쪽 머릿속에서 나, 옷은 입고 있는 거죠?” “…가끔은.” 채원이 기막힌 얼굴로 웃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