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의 정부가 제 위장 신분이자 임무란 말씀이신가요?” 오늘 ‘죽음의 사신’이라 불리는 리페르가 나선 곳은 크라센 황궁. 최상위 암살자 리페르가 목표물 ‘피의 황제’와 마주했다. 그녀가 죽음의 낫으로 황제의 목을 베려는 순간, 리페르의 손목이 붙잡혔다. 리페르의 코앞까지 다가온 황제. “이런 식의 만남은 상상도 못 했는데….” 리페르는 곧 닥쳐올 공격을 생각하며 몸을 긴장시켰다. 쪽. 예상과 달리 둔탁한 타격음이 아닌 말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를 바라본 황제는 다시 입을 맞췄다. “읍…!”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황제,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 다음날, 리페르는 한 장의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폐하의 정부가 제 위장 신분이자 임무란 말씀이신가요?” “계약서에 적힌 사항은 반드시 준수하도록.” 황제의 말에 리페르는 계약 조항을 꼼꼼히 읽어나갔다. “폐하, 계약서 내용 수정이 필요….” “형식에 불과하다.” “꼭 지키라면서요.” 황제가 이상하다. 최상위 암살자인 나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헤나, 나 더는 못 버텨. 더 이상 얌전히 널 기다릴 자신이 없어." 친구와 낯선 모임에 갔다가 빙의가 됐다. 가이드인 척 황제에게 주술을 걸다가 잔인하게 죽는 회색 마녀로. 난 죽음을 피하고자 황제와 멀어지려고 했지만, 결국 통제실에 그와 단둘이 남았다. 폭주 직전의 에스퍼와 나를 한 공간에 남겨두고 간 그들의 뜻은 명백했다. 내가 손을 얹어 마녀의 자연 에너지를 주입하는 순간, 그는 더 풍성한 가이딩을 받길 원하며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에스퍼가 가이딩을 감지하는 순간 제어할 수 없는 충동을 느끼는 건 본능이다. 하지만……. 난 가이드가 아닌걸. 그가 나와 붙어있는다고 해서 가이딩이 더 잘 되는 게 아니란 소리다. 이건 그를 처음 만난 날부터 계속해 왔던 말이다. 난 가이드가 아니라고. 난 마녀라고.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