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로군. 이렇게 제대로 보는 것은.” 지독한 시간이었다. 감옥에 갇혀 고문당했고, 은인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도망쳤고, 복수를 위해 7년 만에 다시 제도에 돌아갔을 때 셀레스티나 또한 죽임당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시간을 되돌아온 지금, 그녀는 결심했다. 이번에는 이 남자를 꼭 지키고 말겠다고. 그래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길 바랐다. 어떤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길 바랐다. 그녀를 위해 그 무엇도 희생하지 않길 바랐다. 그런데 어째서……. “가끔 그대가 꿈에 나온다. 이상한 일이지. 그대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꿈에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지키기 위해 숨기는 셀레스티나와, 꿈을 통해 다가가는 카를로스. 겨울의 끝자락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전쟁 영웅에게 큰 포상을 내리지 않을 수 없지.” 레티움 원정에서 빛나는 공을 세우고 돌아온 티베리온. 완벽한 승자의 위치에 선 그의 뒤를 따라오는 건 명실상부 아르논 최고의 군 사령관이라는 칭호와 가문의 이름을 드높인 명예,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과 환호였다. 모든 것을 해결한 그는 이제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만끽할 예정이었는데……. “티베리온 피델리 키넬리우스. 내 그대에게 혼사를 맺어 주고 싶은데.” 이미 결혼한 사람에게 이 무슨 말일까. “내 딸 율리아와 말일세.” 바짝 얼어붙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파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티베리온의 미간에 작게 금이 갔다. 그건 율리아도 마찬가지였다. *** 사랑 없는 결혼이란 건 알고 있었다. 시작부터 글러 먹은 관계였으니. “공주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꺼이 이혼해 드린다는 조건, 어떻습니까?”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짓밟는 그를 사랑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낭만은 짓밟힌 채로 시작됐으니.” 일러스트 © 감귤
“요하네스 라인하르트. 그자의 아이를 낳아 동맹을 공고히 해라.” 포악하다고 소문난 북부의 지배자에게 볼모처럼 팔려 가게 생겼다. 제발, 신이시여……. 그자가 소문만큼 무서운 사람이 아니게 해 주세요. 두려운 마음을 안고 유니스는 낯선 겨울의 땅으로 향하는데……. “미안, 미안. 내가 그대를 놀라게 했군.” “화장 같은 거 안 해도 예쁘다고. 뭐가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군.” “둘만 있을 땐 이름으로 불러.” 이유를 알 수 없는 국왕의 총애는 변덕일까, 진심일까. 햇살 같던 소녀를 기억하는 요하네스와 까칠했던 소년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니스. 그들의 겨울 힐링 로맨스. 일러스트 © 우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