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름(죠니)
차오름(죠니)
평균평점
너를 탐할 시간

“선택해.” 도망갈 틈도 없이 다가와 너른 품에 자신을 가둬놓고 인제와 선심 쓰듯 의견을 묻고 있었다. “이대로 나갈 건지.” “…….” “이대로 안길 건지.” 속살거리며 다가오는 입술을 피하지 못했다.  “어떡할래, 이다정.” 잘근 아랫입술을 깨무는 야릇한 통증에 벌어진 틈으로 뜨거운 숨이 차올랐다.

탐할 수 없던 너를

‘꼭, 가야 해요?’ 제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던 강도영이 제 앞에 서 있었다. “강, 도영입니다.” “…….”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인사를 건네 왔다. “이다름이라고 합니다.” 맞잡은 그의 손은 여전히 컸고 여전히 따뜻했다. 데인 듯 놀라 떼어 내던 손가락 끝이 스쳤다. *** “다름아.” 어깨를 감싼 후 슬쩍 고개 숙이며 부르는 이름에 시선이 마주친다. 왜 그러냐고 묻는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면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랑해.”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히면서도 끝끝내 답을 주지 않는 이다름이 조금은 야속했지만, 그 이유를 알기에 마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사랑해, 이다름.” 그저 제 고백에 설레하는 너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매번 같은 고백을 반복한다. 사랑해, 다름아.

연애의 완성

그를 따라 들어간 상영관은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 영화가 아니었다. “기억 안 나.” 놀릴 목적으로 추궁하는 것조차 민망할 만큼 이시호는 당당했다.  “영화 관심 없어. 영화관도 너랑 첫 데이트때 처음 간 거라고 말했잖아.” “그럼 도대체 왜 재미있겠다고 했어요?” “네가 좋아하니까.” 달콤한 카라멜 팝콘 한 알을 집어 든 손이 제 입술로 다가왔다. 자연스레 벌어진 틈을 벌리고 들어온 달콤한 향에도 이시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도 좋아해 보려고 노력 중이야.” “…….” “그러니까 선의의 거짓말 정도는 눈치껏 넘어가 줍시다, 백은설 씨.”

너 아니면 안되는 나는

“나는 그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팩트로 만들고 싶은데.” 언젠간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홀로 숨어 설레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엔 너를 대하는 내 마음이 사랑이라는데, 네가 보기엔 어때?” “…….” “네가 보기에도 너를 대하는 내 마음이 사랑 같아?” 애써 외면하고 제 마음마저 밟고 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고백인지 우리의 서사인지 모를 질문에 숨이 막혀왔다. “네가 남자랑 있단 말에 미친놈처럼 달려온 거 보면 답은 이미 나온 거 같지만.”

무한 애정

고개 숙인 하루의 숨이 나봄의 얼굴 위로 뜨겁게 쏟아져 내렸다.“선을 긋겠다는 건지 단순한 걱정인지 말이야.”전자라면 다가가는 방법을 바꿔야 하고 후자라면 조금 더 속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겠다.길진 않아도 숱 많은 속눈썹은 그의 눈매를 진하게 만들었다. 감히 피할 수 없게 그윽한 눈길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심장박동이 점점 더 빨라졌다. 두근두근. 이러다 심장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응? 나봄아. 말해봐.”이렇게 가까이에서 무슨 말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겨우 시선을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로 인해 다시 부딪히길 여러 번.“꼬리 쳐줄까?”“……뭘 쳐?”“살랑살랑 흔들리다가 훅 넘어올 수 있게 꼬리 쳐줄게. 안쓰러운 남자 불쌍히 생각해서 넘어와 주면 좋겠는데.” (15금 개정판)

우리의 결혼은 완벽했다

“난 아이 낳을 생각 없습니다.”“…….”“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할 테지만, 이은우 씨와 내 사이에 아이는 없어야 한단 뜻입니다.”정태건은 돈 많고, 외형도 훌륭하고, 머리숱도 많은 훌륭한 남편감이었다.“아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낳은 아이는 예쁠지도 모르죠. 내 아이 예뻐하고 싶다고 아이 낳을 생각은 없지만요.”이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까지 늘어지고 싶진 않았지만,아이 정도야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그 마음 변치 않아야 할 겁니다.”“변하면요?”애초에 완벽한 결혼 생활을 바라지 않았다. 적당히.뭐든 적당한 게 가장 좋은 거니까.“여자 마음은 갈대라잖아요. 정태건 씨가 너무 좋아져서 우리 둘 닮은 아이라도 낳고 싶어지면 어떡하실 거냐고요.”하지만 답을 듣지 못하고 끝맺어야 했던 질문이 저에게 돌아온 건,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왜 두 줄이야……?”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들어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그럼에도 두 줄이다. 흐릿하긴 하지만 분명 두 줄이 나타나 있었다.어떡해. 나 어떡해야 해……? (15금 개정판)

닿지 못한 사이

“인사도 없이 튀었었잖아, 너.”부지불식간이었다.시작조차 못 해 보고 끝나 버렸던오래된 추억이 불어닥친 것은.“나름 썸 타던 사이에 말이야. 서운하게.”그것도 임차인과 임대인이라는,지극히 현실적인 관계로 조우하게 될 줄은 더욱더 몰랐고.“소리 소문도 없이 튄 여자를 겨우 다시 잡았는데 또 언제 도망갈 줄 알고 멀리 두겠어.가까운 곳에 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봐야 속이 편하지. 안 그래?”정말이지 부지불식간이었다.빛 바랜 추억이 껍질을 벗고,설렘의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우리 연애하자, 이여은.”닿지 못했던 인연의 시간이이윽고 한곳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