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잊으셨나 본데…….”굵고 낮은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내리깔렸다. 방 안이 적막에 휩싸였다. 숨소리 하나마저 허투루 뱉지 못할 정도로 서늘했다.이윽고 그녀의 턱을 살짝 잡아 올린 채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제 유일한 증거가 당신이라서 말이죠.”금안과 마주했을 뿐인데 숨이 막혔다. 엘레네는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 *“제가 갈 방이 없다는 말이죠, 영애. 그렇다고 제가 내일이면 부인 될 분을 쫓아내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자비로운 영애께서 내일이면 남편 될 사람을 매몰차게 밀어내진 않으시겠지요?”그의 말에 엘레네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눈만 동그랗게 굴렸다. 라헨은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의 금안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그러니……. 저를 좀 재워 주셔야겠습니다.”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엿들은 것은 실수였다. 날 것의 눈빛이 맹수처럼 그녀를 향하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엘레네는 그를 대신해 눈이 멀었다.아버지인 레오폴드 공작은 엘레네를 버렸고 갈 곳 없는 그녀는 제국에 하나뿐인 대공의 눈을 멀게 하려던 가해자에서 은인이 되었다. 맹수의 눈빛이 짙은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잡아먹을 듯 번뜩였다.#로맨스판타지 #쌍방구원 #직진남 #금사빠 #정치물 #성장물 #복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