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이란 시간 동안 뱀파이어임을 숨긴 채 기사로서 살아가던 '아드리안'은 몇 달 전부터 풍겨오는 향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붉은 거리를 지나던 아드리안은 저를 괴롭혀왔던 향기를 풀풀 풍기는 남자, '카일'을 마주하게 되는데…….“처음 보는 얼굴인데.”“당신.”“왜 익숙하지?”피의 고리.뱀파이어에게는 가장 끔찍하고도 두려운 형벌.왜 만들어지는지. 누구와 이어지는지.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그 무엇도 알려진 게 없는, 두려움의 대상.피의 고리로 이어진 뱀파이어들은 서로의 향기를 갈구하고, 서로의 피를 원하고, 서로의 몸을 바라게 된다.몸에 새겨진 피의 계약서와 함께, 그들은 평생을 함께해야 할 영혼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맺어진 고리와 사라진 기억. 짝을 알 수 없는 피의 계약서와 자꾸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신비로운 남성까지.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상황과 날카로운 신전의 감시 속에서, 과연 '아드리안'은 제 짝을 찾을 수 있을까.
세상은 세 개의 세계로 구분되어 있었다. 어둠을 관장하는 아스모데우스의 땅, 마계. 빛을 관장하는 이본느의 땅, 천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는 생명 없는 공허한 땅, 중간계. 마족 리에나스는 마신의 명을 받고 200년에 한 번 태어나는 이본느의 아이, 성자를 죽이기 위해 인간계로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한 성자는 리에나스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데…. “나를, 죽여주세요.” “당신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 오직 마신만을 위해 살아온 리에나스와 신의 아이로 태어났지만 신에게 받은 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성자 노아. 서로 다른 세계의 끝자락에 서 있는 둘의 마음은 과연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을까? 성자를 죽이고자 하는 마족과 마족의 손에 죽고자 하는 성자.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기이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 “노아.” “죄송합니다, 형제님. 제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다정한 중저음의 부름이 귀를 간질였다. 노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점점이 번져오는 새하얀 환각들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를 꽉 악문 채 애써 괜찮은 척하며 바닥에 발을 디뎠다. “금방 준비….” 순간, 노아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노아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새기던 리에나스가 다급히 손을 뻗어 쓰러지는 몸을 잡아챘다. 놀란 듯, 다급한 리에나스의 부름이 방안을 고요하게 울렸다. “노아…!” 새까만 정적이 내려앉았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거센 심장 소리가 점차 그 속도를 빨리했다. 서로의 것이 뒤섞인 심장박동이 두 사람의 몸을 낮게 울렸다. 품에 안긴 노아에게선 생명력을 가득 머금은 나무의 향기가 났다. 저를 안은 리에나스에게선 포근하고 서늘한 겨울의 향기가 났다.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노아의 가슴팍이 맞닿은 팔 아래로 느껴졌다. 긴장한 듯 딱딱하게 경직된 리에나스의 몸이 맞닿은 등 너머로 느껴졌다. 숨을 멈췄다. 리에나스는 감히 숨을 내뱉을 수도, 다시 들이켤 수도 없었다. 그의 숨이 멎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심장 소리는 그 속도를 늦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노아의 손가락이 리에나스의 팔뚝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제 팔을 잡고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어쩐지 저를 간지럽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리에나스가 천천히 팔을 풀었다. 노아가 조심스럽게 리에나스의 팔뚝을 건드렸다. “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