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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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평점
여주 말고 엑스트라

역시 도망이 답이야! “기필코 이 짓 때려치운다! 퇴사하고 도망갈 거라고!” 특별한 정화 능력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돌림막이로 착취당하다가 비명횡사하는, 남주들의 회상용 엑스트라 세라피나에 빙의했다. 전쟁터만 전전하다가 죽는 것도 억울한데 여주가 나타나자마자 빠르게 잊히는 운명이라니. “내 말이 우스운가. 부른 지가 언젠데 이제야 나타나다니.” 이봐, 북부의 수호자. 나 지금 다른 전쟁터에서 하루도 못 쉬고 달려왔거든? “불충하군. 황실을 지키는 것이 그대의 의무이거늘.” 내가 널 어떻게 지켜! 네가 나보다 더 세잖아, 이 망할 황제 놈아!  “신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답군요. 자, 그럼 더 해 볼까요?” 네가 이러고도 성기사단장이냐! 노동력 착취나 하는 나쁜 XX. 엉엉. 기회를 엿보며 차곡차곡 도망갈 준비를 한 나는, 결국 성공했다. 이야이호롤레이! 자유의 몸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황자의 첫사랑인 걸 난 몰랐지

“다시 부를 때까지 이블레인 영지에 내려가 있거라.” 차가운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카르시온은 쥐 죽은 듯이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그의 앞에 누군가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안녕, 카르시온. 나는 르네 이블레인. 블루베리 먹을래?” “나 블루베리 싫어해.” 여자애의 커다란 눈망울에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눈물이 고였다. 카르시온은 당황했다. “그래도 하나만 줘 봐. 맛이…… 없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맛없는 블루베리를 오물오물 씹으며 카르시온은 생각했다. 내가 왜 얘한테 말린 거지? *** 그렇게 르네 이블레인에게 홀딱 빠진 나날이었다. 언제 고백하지? 고백했다가 친구도 못 되면 어떡하지? 괴롭고도 달콤한 고민을 이어가면서도 카르시온은 한 가지만은 확신했다. 제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르네가 함께할 것임을. 고작 2년 뒤, 그녀를 영영 잃게 될 줄도 모르고. “전하! 전하! 드니브르크 산맥에서 천년 만에 블랙 드래곤이 깨어났습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블레인 영지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르네를 앗아간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고 카르시온은 제국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면 뭐하나. 바보같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 한번 못 해 봤는데. 평생 홀로 살아가리라 결심하는 그의 앞에 첫사랑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나타난다. “르네? 르네! 나야, 나…….” “……저기, 누구세요?” “……나 못 알아보겠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여자가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한데 제가 기억상실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