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막내딸 에일라 아나이츠. 한번 잠에 빠지면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그녀는 20년 만에 자신이 19금 로판 소설에 빙의했음을 깨닫는다. 그것도 짧은 대화 속, 한 줄로만 언급되는 엑스트라로……. 하지만 원작 내용을 떠올린 순간 다행히 자신의 병을 원작 남주의 힘으로 치료할 수 있음을 깨닫고 희망을 느낀다. 하지만 원작 남주는……. ‘12살이네?’ 어려도 너무 어리다! 그에 에일라는 그 형인 로이든 블라이튼에게 계약 결혼을 제안하기로 했다. “저의 남편이 되어 주세요, 로이든 블라이튼 공작님.”
“행복해야 해. 알았지?” 자작 가문의 하나뿐인 딸 헤레나 로센티아. 18살이 되기 전까지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그녀는 어느 날 꿈을 통해 자신이 로판 소설 속에서 환생했다는 걸 깨닫는다. 이 세계의 진실을 안 그녀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로 원작 속 악녀인 자신의 친구와 남주를 이어 주는 일이었다. ‘정말 성공할 줄이야.’ 원작의 결말을 성공적으로 바꾼 헤레나는 수도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그런 그녀의 앞을 한 남자가 다가선다. “……왜 우는 거지?” 원작 속 악녀의 오빠이자 그녀의 오랜 첫사랑. 라베리온 공작가의 가주 카에른 라베리온. 그간 단 한 번도 따스한 곁을 내어주지 않았던 그가 오늘은 어딘가 달라 보인다. “내 약혼자가 지금 왜 울고 있는 건지 물었어.” 과연 그녀는 사랑도, 약혼자도 버리고 원작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흑막을 짝사랑하는 약혼자 ‘아나이스 헤일런’에 빙의했다. 위험해진 흑막을 구하려다 허무하게 죽는 것이 나의 정해진 운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아나이스에게 마음도 없으면서 매 순간 착각하고 기대하게 만든,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절망만을 선사한 흑막, 테오도르 리시우스가 괘씸했다. 그래서 파혼 전 그를 살짝, 아주 살짝만―사실은 많이― 괴롭히기로 결심했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 속삭이고 잠시만 떨어져도 죽을 것처럼 구는 등 테오도르를 숨 쉬듯 귀찮게 하여 그의 거짓된 가면을 벗기기 위해 노력했다. 저 잘생긴 미간이 단 한 번만이라도 일그러졌으면……. 하지만 흑막은 그런 내 모든 기행을 얼굴 한 번 구기지 않고 온화한 웃음으로 받아 쳐내는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였다. 결국 나는 실패했고 원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에게 파혼을 요구했다. “파혼해 주세요.” “……설마 내게서 정말로 벗어나려고 했던 겁니까?” 그 순간 그에게서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격한 감정이 나타났고 그 눈빛에는 나를 향한 집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눈을 뜨니 제국의 황후가 되어 있었다. 후사를 잇지 못해 냉대받다가 결국 모함을 당해 죽게 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안 돼.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죽을 순 없지. 무엇보다 내 최애인 노아를 살려야만 한다. “내 남편을 가져요. 대신 나도 원하는 게 있어요.” 훗날 미래 악역의 어머니가 될 황비에게 내 남편을 가지라 제안하고. “그때, 제가 후작께 첫눈에 반했어요.” 최애인 노아에게 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고백했다. *** “우리의 결혼은 순전히 나의 욕심으로만 성사된 거였잖아요.” 더 이상 죽음의 그림자는 그를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를 놓아주기로 했다. “그러니 지금부터 당신은 자유예요.” “자유라고 했습니까?” “네. 더 이상 어디에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요. 이제.” 3년 동안 나에게 무작정 잘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앞으로는 그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 “제가 자유로워지면 부인도 내게서 자유로워지는 겁니까?” “그거야 당연…….” “그럼 이혼 얘기는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내가 대답을 다 내뱉기도 전에 그가 이혼장을 찢으며 비뚜름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