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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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평점 3.50
빙의했는데 고대 언어가 한국어였습니다
3.5 (1)

“「자만추」라, 얼마나 더 자연스러워야 하는 겁니까?” 빙의한 내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마도구를 찾으러 머리 밀고 산에 들어갔다가 죽거나, 황제에게 마도구를 바치지 못해 혀가 잘리거나!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순 없지! 까칠한 서브남주 이아페의 역할을 스틸해 목숨을 건지기로 했다. 그런데 잠깐만. 내가 원한 건 이아페가 찾아야 할 전설 속 마법 고서들을 대신 찾는 것뿐이었는데…. 「열려라, 참깨!」 고대 언어가 왜 한국어로 되어 있지? “코레아리아의 고서 해독 작업은 시샤 아르비나가 총괄한다.” 원작 여주는 어째서 이아페의 역할을 나에게 주는 거고? 「당신과의 비밀암호가 생긴 것 같아 좋군요.」 “이제는 떨어지라고 해도 계속 옆에 있을 겁니다.” “내겐 당신이 전부예요, 시샤.” 대체 왜 이아페까지 내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거야? 목숨을 건지면 유유자적 평화로운 삶을 살아보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원작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 결혼은 비극으로 끝나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동생이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을 고백했다. 안시는 그 남자, 다미온 드 오르페와 결혼하며 다짐했다. 그의 반려가 되어 아버지를 죽인 이에게 복수하고 오르페 공작가를 철저히 몰락시키겠다고. 그런데 결혼과 함께, 그 남자의 죽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가면 안 돼요……! 가지 마요.” 처음에는 복수를 위해 필요하기에 다미온을 구하는 안시. 하지만 점점 그에게 이끌리며 진심이 되는데……. 그러나 안시는 몰랐다. 다미온 역시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 결혼했다는 사실을. 오르페를 무너뜨리고자 결혼한 안시와 반대로, 그는 오르페를 갖기 위해 결혼했다는 것을. *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 죽음을 볼 수 있다는 걸.” 안시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말 날 좋아해서 결혼한 건 맞나요?” 사실은 처음부터 의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믿게 되었다. 적어도 다미온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미온이 이 능력을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뇨.” 잔인한 말을 하는 사람치고 그는 퍽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대답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처음부터 온통 거짓된 낭만이었다. “……이제부터라도 행복해져요, 우리.” 안시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맑게 웃었다. 뿌리 깊은 불신을 숨기고 그에게 안겼다. 역시 이 결혼은 비극으로 끝날 것이 분명했다, 기쁘게도.

나를 경멸하는 당신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해. 당신의 그 고고한 낯짝을 어떻게 하면 짓이길 수 있을지 말야.” 8년 전 성당 방화 사건의 범인, 재닛 윌튼이 돌아왔다.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와 결혼해야 하는 재닛과 그녀의 약혼자, 리하넬. 하지만 리하넬은 8년 전 자신의 일상을 부숴 버린 재닛을, 그 오만하고 꼿꼿한 여자를 누구보다 증오하는데.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당신의 몸에 상처를 낼 거야. 열 번. 그 조건으로 당신과 결혼해 주지.” 레이너스 공작가에 이어져 오는 힘으로 피를 만지면 상대의 기억을 무작위로 볼 수 있는 리하넬. 그는 8년 전 그날의 일을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조건을 내건다. 깨져 버린 신뢰 위, 줄을 타듯 위태롭게 이어지는 결혼 생활. 그러던 중 리하넬은 자신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진실을 마주하는데……. * * * 리하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이 본 장면이 사실인지 그녀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몇 번이나 덜덜 떨리는 입술을 뗐다 붙였다 하던 그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설명해.” 지혈하느라 꾹 누르던 손수건 사이로 그녀의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그것을 바라보는데 속이 메스꺼웠다. 이렇게 진실을 확인할 생각은 없었다. 리하넬의 푸른 눈동자가 검푸른 파도처럼 요동쳤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재닛이 옅게 미소 짓더니 입을 열었다. “끝났어요, 열 번.” “뭐……?" 재닛은 징그러운 제 상처를 한 번 바라본 후, 리하넬에게로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듯한 말투로 한 가지 제안을 내뱉었다. “이혼해 줄게요. 더는 마주치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