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탈룰라 했다...’ 스물네 살 건축학과 학부생 김정식은 영웅세계 책 마을에 소환되어 최고 레벨인 120 레벨 책을 받고 영웅……이 아니라 교수로 임명된다. 함께 소환된 세 명의 인간과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 마을을 지키는 게 임무다. 정식은 교수 대접을 받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건축 실습을 해볼 생각에 들뜨지만… 다른 교수들이 전공 스킬(전투, 의료, 암호)로 적을 물리치고 업적을 세우는 사이, 건축학과인 자신은 그들의 뒤치다꺼리와 노가다만 한다. 심지어 그마저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자꾸만 아군에게 미안하다. “교수님, 과자로 바닥을 건설하신 건가요?” “어… 콘크리트 아끼려고 그랬는데, 안 되나요?” 그런 순간마다 하찮은 핑계를 대는 정식… 처음에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정도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점점 수습이 안 되기 시작한다. “왜 또 과자로 건설하셨습니까?” “이번에는 안 걸릴 줄 알았….” 갈수록 건축 능력이 아니라 찌질한 처세술만 늘어가는 정식인데… 이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이니까 괜찮은 걸까? 교수는 참으로 외로운 직업이었구나!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 류연웅 작가의 블랙코미디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는 전직 축구 선수 김덕배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 하는 대학생 채연의 한 학기를 따라간다. 어렸을 때부터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근본이 없다’는 말을 들었던 선수의 행적과 심리를 쫓는 일은 근본론에 대한 의문을 풀어 가는 일이기도 하다. 근본 없이 성공 없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은 진실일까? 근본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대중은 진정 타인의 성공을 원할까? 세상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작품은 엉뚱한 상황을 재치 있는 표현으로 풀어내는 코미디지만, 그 속에 담긴 질문은 결코 우습지 않다. 세상이 씌운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다룬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는 책에 실린 글이 으레 갖춰야 할 것 같은 엄숙한 형식에 얽매이는 대신 인터넷 게시물이나 방송 영상을 기꺼이 닮는다. 이모티콘과 취소 선이 인물의 표정과 생각을 드러내며, ‘다시 15쪽으로 돌아가십시오.’나 ‘복선입니다. 기억하세요.’ 등의 안내는 일종의 하이퍼링크 역할을 담당한다. 종종 등장하는 가운데 정렬형 안내는 영상 자막과 흡사하고, 한 면의 가운데에 단독으로 자리 잡은 한두 줄은 주인공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현재의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알맞은 ‘현대어’를 구사하는 작품은 보기 드물 것이다.
<담배만이 우리 세상> 류연웅 《못 배운 세계》 출시 기념 2018 가을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남.정.일 부문 대상 《담배만이 우리 세상》 무료 공개 “학교 근처에는 커다란 언덕이 있는데, 모두들 그곳을 ‘빵산’ 이라고 부른다. 방과후에 그곳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타고난 절대노안으로 학교의 담배공급책이 된 규선. 모범생 규선이 담배공급책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생활부장은 문화상품권 5,000원을 미끼로 규선에게 암행형사 역할을 제안하고, 그에게 성과를 내라고 다그친다. 설상가상으로 담배를 부당 구입한 학생을 잡기 위해 경찰까지 들이닥치는데… 과연 규선은,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빵산은. 이 모든 사태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에서 태어나서> 블랙코미디 소설의 최전선에서 각종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한 작가 류연웅. 문학장, 스포츠, 학교 등 사회적 문제가 산재한 모든 곳을 가리지 않고 무대로 삼았던 그가 이번에는 힙합 음악과 그 주변 세계를 무대로 한 소설을 써내려갔다. 『한국에서 태어나서(부제:자칭 리얼 엠씨 부캐 죽이기)』는 모종의 실수로 ‘힙합의 신’에 의해 24시간 안에 죽을 운명에 처한 ‘릴뚝배기’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대스타가 되었지만 SNS에서의 말실수로 24시간 안에 뮤직비디오를 완성해야하는 ‘조헤드’, 두 래퍼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아티스트가 놓인 위치에 따른 시선 변화와 아티스트가 발 딛고 있는 세계에 대해 입체적으로 숙고하게끔 만든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 같다.” vs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 내 아마추어 시절 팬들아. 정말 미안. 얼마 없는 너희 챙기려고 노력 많이 했다. 너네들이 내 앨범은 안 구매해도, 뮤직비디오에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전세기 끌고 다녔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안타깝다…’ 같은 댓글을 달아주면 나도 일일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됩니다. 하지만 솔직히 큰 힘 안됐다. 어쩌란 건가 싶었다. 다시 태어날 수도, 굶어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나도 먹고는 살아야 했다. -41쪽에서 ‘조헤드’는 언더그라운드 래퍼 시절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을 디스하면서 꿋꿋이 자기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러나 생활비가 부족했던 조헤드는 힙합 오디션 프로에 지원하고 심지어 우승까지 해버린다. 문제는 언더 시절 팬들이 그가 메이저와 타협다했고 욕하고 동료마저 돌아섰다는 것이다. 조헤드 자신도 은연중 언더그라운드 시절 자신의 모습이 진짜 힙합다웠다고 생각하는데…. 이 모든 게 한국 특유 음악 시장 탓이라고 생각하며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 같다.”는 문장을 비밀 SNS 계정에 게시한다. 한 시간 뒤, 그는 비밀 계정이 아니라 공식 계정에 올렸다는 걸 깨닫는다. 연예 기자들은 조헤드를 매국노인양 취급한다. 방송국의 쇼케이스마저 취소될 운명이다. 그때 소속사 아트디렉터가 방송국 PD 앞에서 이게 모두 ‘노이즈 마케팅’이었다며 묘수를 꺼낸다. ‘한국의 팬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는 반전’을 주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벌이는 중이라고.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조헤드는 팬들에게 보여줄 특별한 뮤직비디오 ‘한국에서 태어나서’를 단 하루 만에 완성시켜야한다. “릴뚝배기야. 넌 이제 뒤졌다.” “누구신데요?” “나는 너의 신이다.” “신이요?” “네가 기도했던 내용을 잊었느냐.”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 ―11쪽에서 ` 한편 랩스타 조헤드 대신 언더그라운드 래퍼 ‘릴뚝배기’가 존재하는 평행우주. 열심히 작업해 1집 ‘나는 벌레’를 발표했지만 올라오는 댓글이라곤 “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댓글이 하나도 없네.” 같은 소리뿐이다. 미국 래퍼들처럼 ‘진짜 힙합’을 해서 한국 사람들이 못 알아준다는 소리겠지만, 릴뚝배기는 마음이 좋지 않다. 지금 죽어버리고 다시 미국에서 태어날 수도 없는데 어쩌란 건지 싶다. 그렇게 힙합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신이 그의 앞에 나타나 이제 죽을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열일곱 살, 자신이 힙합을 버리려 한다면 가차 없이 죽여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신은 마지막 하루를 살아갈 시간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릴뚝배기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장식해야할지,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게 되는데…. 한 아티스트의 성장과 엔터테먼트 산업에서 행해지는 아이러니, 다종다양한 아티스트와 예술계에 발을 걸친 이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군상극. 소설은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같지만 다른 두 래퍼, 조헤드와 릴뚝배기가 말 한마디 때문에 처한 부조리한 상황으로 시작된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전에 생각해보지 못한 세상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조헤드의 경우 말 한마디에 의해 그와 얽혀 있는 회사 전체 인구가 움직인다. 이사, 아트 디렉터, 회사 연습생, 연기자 지망생, 음악감독 등이 조헤드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동원된다. 릴뚝배기는 말 한마디 실수에 죽을 운영에 처하지만, 지난 인생을 되새기며 어머니, 동료 래퍼 무알콜과 버터맨, 자신이 줄곧 랩 하던 낡은 공연장 사장, 힙합 꿈나무 청소년 등과 만난다. 조헤드와 릴뚝배기는 자신이 단순히 ‘개인’으로 존재하는 아티스트로서가 아닌.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산업 등에 의해 위치 지어진 구조적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예술 세계와 발을 걸친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된다. 이 소설은 예술세계에 존재하는 인간 군상의 보고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헤드가 찍는 뮤직비디오가 사실은 릴뚝배기가 평행우주에서 힙합의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라는 게 밝혀지면서, 릴뚝배기가 처해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실은 조헤드가 과거 언더그라운드 래퍼였던 시절을 깨끗하게 청산하는 작업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이 소설의 부제 ‘자칭 리얼 엠씨의 부캐 죽이기’는 조헤드가 릴뚝배기의 정체성을 상실해야하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에 의해 과거의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지시한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개인 아티스트의 대결구도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언더그라운드 시절 분노의 가득 차 있던 랩퍼 릴뚝배기의 모습을 마냥 긍정적으로, 그렇다고 마냥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조헤드는 릴뚝배기 시절 자신이 어떤 면에서 리얼 힙합스러웠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아마추어 같았다고 생각하며, 힙합 오디션에서 승리를 거두고 생긴 새로운 자아가 어떤 걸 얻었고 어떤 걸 놓쳤는지 고심해보게 된다. 이 세계와 단절하려는 게 아닌 이 세계에 이미 ‘속해’ 있는 아티스트의 입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금수저 출신이면서 예술을 하려 했던 무알콜이나, 예전에는 알아주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였으나 이제는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자신의 앨범을 겨우 홍보하는 버터맨 등을 묘사하며 ‘노력’이나 ‘천재성’으로 쉽게 포장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는, 하나의 정의로만 봉합되지 않는 예술 세계의 복잡성에 대해 토로한다. 나아가 소설은 기회와 성장, 상실과 우울이라는, 삶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로 나아간다.
<못 배운 세계> Gen Z 작가 류연웅이 상상하는 웃픈 대한민국 공교육의 미래 "2호선 서울대입구역의 새로운 역명을 공모받습니다. 상금 222만 원." 선택받은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교장실의 따뜻한 팝콘. 희소한 팝콘의 수를 늘려, 공평히 나눠 먹고 싶다는 분노에 찬 열망을 품고 10대 레지스탕스들은 팝콘 기계를 빌려 서울을 휘젓는다. 그들이 튀겨 낸 팝콘은 일용할 양식이 되기도 하고, 가공할 무기가 되기도 한다. 급기야 서울대학교가 팝콘 세례에 무너지며, 이른바 '팝콘 전쟁' 이후 서울대입구 역은 역명을 잃고 만다. '팝콘 전쟁' 이후의 교육과 미래에 관해 Gen Z 작가 류연웅은 진지하게 질문하고 장난스레 대답하며, '괴랄한' 연작을 선보인다. 소설집 전체를 꿰뚫는 끔찍하고도 통쾌한 혼종의 분위기는 치킨 뼈와 스프링, 자욱한 연기가 만화처럼 그려진 전희수 작가의 표지 그림과 더없이 어우러진다.
<펄프픽션> 펄프픽션Pulp Fiction은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싸구려 잡지인 펄프매거진Pulp Magazine에 실리는 소설을 뜻했던 용어로, ‘싸구려 소설’ 혹은 ‘삼류소설’을 의미한다. 소설의 질적 수준을 뜻하기도 했으나, 시대가 지나며 주류문학의 협소한 기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양태의 소설(특히 장르소설)을 조롱하는데 오용되기도 했다. ‘B급 영화’가 이제는 삼류 영화나 싸구려 영화 아니라 ‘주류 소제가 아닌’ 영화의 의미이자 하나의 장르적 형태로 확장되었듯, ‘펄프픽션’ 또한 재발굴될 필요가 있다. 『펄프픽션』은 21세기 대한민국식 펄프픽션을 정립해보고자 기획된 앤솔로지다. 우리시대 젊은 문학을 이끌어가는 작가 조예은, 한국 블랙코미디의 최전선에서 각종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류연웅, 명실공히 SF계의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 홍지운, 다양한 장르를 변주하며 장르문학을 선도하는 이경희, 청소년 소설과 동화에서 SF의 족적을 남긴 최영희. 햄버거와 얽힌 학원괴담, 한국에서 노동을 하는 뱀파이어, 느닷없는 외계인 출현, 조직폭력배, 알고보니 오컬트적인 기이한 능력을 쓰는 지하철 노인들, 살인청소로봇 등, 흔히 B급 영화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소재가 이 앤솔로지에서는 각 작가들의 손에서 한국적 상황과 걸맞게 자유자재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