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온몸으로 존재감을 내뿜는 그 반지가 뭔지.“다른 여자가 있는 남자와는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요.”“아. 이거?”규리의 시선을 읽은 우경이 왼손을 들어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잠깐 말고는 빼본 적 없는데.”그 순간, 그의 눈이 슬퍼 보였던 건 내 착각일까.“왜, 거슬려?”“그런 게 아닙니다.”“싫다고 하면 뺄 의향은 있는데.”피식, 웃음을 흘리던 우경은 망설임 없이 빼낸 반지를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놓았다.그의 시선이 그 반지 위로 오래 머물렀다.“도망갔어.”“…….”“신부가 도망갔다고.”예상치 못한 대답에 정적이 흘렀다. 규리는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커다란 눈을 깜박였다.팬츠 주머니에 반지를 넣으며 우경이 물었다. 특유의 소년 같은 미소도 함께였다.“궁금증이 풀렸나?”특별히 그를 마음에 담을 만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오히려 신경을 거스르고 미운 짓만 골라서 한 것 같은데, 자꾸 눈길이 그에게로 향한다. 아닌 척 부정했지만, 끌리고 있는 건 분명했다.그 순간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한 치기였다고 장담한다.“저, 뭐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뭐든.”뙤약볕 아래 서 있는 것처럼 꽉 쥔 주먹 사이로 땀이 흥건히 배어났다.“대표님, 저 좋아하세요?”“어.”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좋아해.”
스물일곱 한겨울.이사 첫날부터 옆집 남자에게 택배 도둑이라는 오해를 받게 된다.온화한 얼굴과는 달리 싸가지는 밥 말아 먹어버린 듯한 남자와 옆집이라는 이유로 자꾸만 마주치게 되고,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하는데.전생에 부부였나.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스물아홉 선은우.모종의 이유로 촬영지를 무단으로 이탈한 후, 도망쳐 온 곳에서 이상한 이웃을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간헐적으로 사라지던 택배와 사생팬에게 시달렸던 그는 택배를 들고 있던 여자를 택배 도둑으로 오해하게 되고, 그 후로 만나면 앙숙처럼 으르렁거렸다. 사실 그것보다 기분이 더 나빴던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어떻게 나를 몰라, 대한민국 톱배우 선은우를.너 대한민국 사람 맞아?***“나 몰라요?”나를 모르냐고?겨울은 남자의 질문을 곱씹으며 그를 아래서부터 쭉 훑어 올렸다.남자는 180 후반의 키와 적당한 체격,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구든 한 번은 뒤돌아볼 법한 얼굴을 가지고 있긴 했다.겨울은 눈을 굴리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옆집, 사시잖아요?”진짜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구시렁거리던 남자는 거친 손길로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조금 전과 같은 질문을 했다.“나 진짜 누군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