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 고아야. 당연히 흙수저고.” 재신가(家)의 후원을 받으며 자란 지연우. “송이준 도련님. 맞잖아요.” 재신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송이준. 태생부터 다른 사회적 신분과 악연으로 얽힌 남자와 여자. 어린 시절,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헤어진 두 사람. 12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이준은 스물둘의 연우와 재회한다. 순수한 호의, 동정심, 그도 아니면 쓸데없는 호기심. “우리 연애하자.” “어차피 헤어질 걸 왜 만나요?” “널 만나면서 확인해 보고 싶어. 이 감정이 뭔지.” 서로의 조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끌리는 대로 만나다가 미련 없이 헤어질 거라고 자신했으니까. *** 입술이 잠시 떨어진 틈에 연우가 그의 아랫입술에 먼저 다가갔다.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마지막이야. 지금이라도 싫으면 말해.” 연우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망설임을 지워주듯 두 팔을 뻗어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침실로 걸어가는 이준의 발걸음이 성급했다. “씻고 싶어요.” 한여름 더위에 끈적해진 몸이 신경 쓰였다. 이준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빈틈없이 맞닿자 적나라한 욕망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럼 먼저 같이 씻어요.” 타협하듯 수줍게 속삭이자, 이준이 붉게 타들어 가는 눈으로 가늘게 웃었다. “널 다시는, 놔주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