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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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평점
내 밑에서 울어봐

“당신이어서 밤을 보내고 싶은 거예요.” 처음 본 남자에게 끌려 충동적으로 밤을 보낸 이서. 시종일관 여유롭고 미련도 없어 보이는 그는 자신과 너무 달랐기에, 다신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가끔 만나는 건 어떻습니까.” 편하게 욕망을 해결하는 사이가 되자는 남자의 말에, 이서는 홀린 듯이 긍정을 표했고, 점점 혼자 마음을 키워갔다. 그의 아이를 품은 채 그의 곁을 떠나기 전까지. *** <본문 중> [날 찾지 말아요.] 메시지를 본 청우의 손끝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 자신을 향해 수줍게 웃던 그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다. 잠들 때 자연스럽게 품 안에 안기던 그녀의 작은 몸도 떠올랐다. “내 아이를 품은 채로…….” 청우는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다. 곁에만 있어준다면. 그녀 없이 살 생각 따위 없었다. “어디 한 번 마음껏 도망쳐 봐.”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널 되찾을 테니까. 같이 밑바닥까지 추락해 보자고.

불순한 집착

“이건 내 낙인이야, 네가 내 거라는.” 13년 전 사고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 인연을 이어주는 붉은 실을 보게 된 수연. 우연히 참석한 결혼식에서 거친 매력을 지닌 이현과 얽히게 된다. 수연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비틀었다. 그가 한 말을 따라 내뱉었다. “놀잇감?” 그가 성의없이 고갯짓을 했다. 긍정의 의미였다. “…사람에게 놀잇감이라는 말 쓰는 거 아닙니다.” “뭐?” “그런 식으로 말하니 신부가 결혼식날 도망을 가죠.” 그 얼굴을 보고도.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하는 남자를 향해 수연이 피식 웃었다.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잠시 침묵하던 남자가 작게 웃었다. 언제 사람을 압도했냐는 듯, 순식간에 풀린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리고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니. 맞아.” 아까 같은 그런 비틀린 미소다. 휘어진 눈매는 상냥했지만, 그의 미소는 뱀처럼 간악했다. 이현의 네 번째 손가락에 매어진 실을 보며 수연은 저런 인간도 짝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자신의 뺨에 닿았던 그 손의 네 번째 손가락의 붉은 실은. “…이런 새끼랑 내가 인연이라고?” 애석하게도 수연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과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