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겨 붙은 두 남녀의 입에선 연신 달뜬 숨이 흘러나왔다. 우위를 선점한 남자의 눈에 서린 만족감이 가시기도 전에, 남자의 시야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허점을 파고들어 그의 위에 올라탄 여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저를 아주 잡아먹지 그러세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전국대회를 휩쓸던 유도 선수 이원, 그리고 그의 열혈팬 은수. 갑작스러운 은퇴로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 같던 둘은 7년 뒤 땀 내음 가득한 유도경기장이 아닌 삭막한 사무실에서 상무와 비서로 재회한다. 7년 만에 운명처럼 다시 만난 은수의 영웅 한이원은 순식간에 최애에서 비호감 상사로 전락하고, 은수의 매일은 죽을 맛이다.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우연한 사건으로 한 집에 머물게 되고. 원수는 외나무다리, 아니 한 침대에서 마주친다. 은수를 보며 이원이 성마른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나는 낮에도 이기고 밤에도 이겨.”
“네가 애 가졌다고 하면 내가 축하라도 할 줄 알았어?” 축복과 지지가 필요했던 임신 사실을 고백한 순간. 돌아온 대답은 아이의 아빠라면 해선 안 될 말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이 시간까지 남자가 여자 집에서 기다리는 이유, 뻔하잖아?” 어린시절부터 매일 같이 붙어살았고, 6년을 넘게 기다려온 승후인데. 누구보다 마지막까지 내 편일 줄 알았던 그가 변했다. 그를 망친 건 어쩌면 나였을까? “나쁜 놈…… 넌 나쁜 새끼야.” “그러니까 은효야, 그런 새끼한테 물리기 전에 도망갔어야지. 경고했잖아.” 지독하게 얽힌 하룻밤. 그날 이후 그녀에게 남은 건 절망뿐이었다.
“저는 자유를 원치 않아요, 주인님.” 휴식기를 앞둔 섬 투어 마지막 날, 연슬은 의심 많고 까탈스러운 남자 장태주와 단둘이 조난을 당한다. "너. 누가 보냈어? 솔직히 말 안 해?“ 성격 더럽고 집요한 남자에게 첩자로 오해받고 섬 노예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구조 가망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 두 사람은 감정에 휘말려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결혼이 하고 싶어? 못 할 거 있나? 베풀어주지.” 얼결에 생긴 남편이지만 근사하고 짜릿해. 인품과 달리 몸은 아주 훌륭한 분이군요. 헐벗은 남편과의 짐승 같은 신혼에 빠져드는 그녀. 하지만, 포기했던 구조대가 도착하자마자 집 나간 이성이 돌아오며 연슬은 도망치듯 현실로 돌아오고 마는데.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볼 만큼 봤잖아? 면접은 생략하고, 도장이나 찍어.” 악덕 고용주로 다시 만난 장태주가 진득한 눈빛으로 연슬을 훑어보며 두툼한 서류를 내민다. “죄송하지만, 저는.” “내가 누군지 잊은 건가? 여기 들어온 이상 네 발로는 못 나가.” 그 남자와의 인연이 이토록 끈질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숨겨진 엄청난 비밀 또한. 무인도의 조난에서 시작한 일탈이 불러온 구사일생 로맨스.
“신고해. 실수로 넘어져서 고태준을 덮쳤는데 고태준도 나를 덮치더라고.” 이미지 세탁을 위해 박물관에 인턴으로 들어온 톱배우 고태준. “비켜! 이 매국노 양아치 새끼야!” 그리고 역사 알못으로 커리어가 나락 간 태준을 떠안은 학예사 장희수. 두 사람은 천년 원수를 만난 듯 사사건건 부딪치며 으르렁대는데. 먼지 쌓인 박물관 자료실에서 남들 눈을 피해 싸우던 태준과 희수는 본의 아니게 야릇하고 은밀한 자극에 눈을 뜨고 만다. * * * “드디어 잡았네. 이렇게 야한 꼴로 그동안 얼마나 물을 흐리고 다닌 거야?” 자신의 양팔 사이에 여자를 가둔 남자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네?” 영문을 몰라 하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계속해서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버릇 나쁜 토끼 하나 잡는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지금 기분 같아선 몇 날 며칠을 울려도 분이 안 풀릴 것 같은데.” “제가……뭘 하면 되죠?” 연기인 듯, 아닌 듯 주변을 맴도는 태준에게 희수는 말려들고 마는데. “뭘 물어. 네가 잘하는 거 있잖아.” 희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준에게 다가갔다. “하…….” 태준이 낮게 웃으며 희수를 바라보았다. 유능하고 지적인 사수와 그와 밤놀이를 즐기는 여자. 그 간극이 그를 미치게 했다. “벌을 받는 거야, 상을 받는 거야. 조신하게 살아. 조신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