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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밤

“네가…… 아주 거슬려.” 고등학교 시절 별것 없는 빚이었다. 새어머니가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가로채고 그녀를 사지로 몰기 전까진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모든 것을 잃은 시윤은 살기 위해 묵은 인연을 끄집어냈다. 민강우. 현산그룹의 외아들이자 차기 후계자.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는 원하는 것 하나 정도는 들어주겠노라 약속했던 시윤의 마지막 동아줄. 「나는 사람한텐 투자 안 해. 머리 검은 짐승을 괜히 짐승이라 할까.」 단순히 돈을 빌리는 것만으로 살아날 인생이 아니었던 시윤에게 민강우는 기업가답게 조건부를 걸었다. 그렇게 7년 후, 시윤은 유학을 마치고 강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갤러리의 직원으로 돌아왔다. 강우를 향한 동경에 짝사랑이 더해진 순간부터 시윤은 강우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왕자님과 시녀. 두 사람은 함께할 수 있던 선이 아니었으니 시윤은 제 분수를 챙기고자 했다. 그러나 이가 못마땅하기라도 한 듯 강우는 시윤이 돌아온 순간부터 처음부터 아무 선이 없었던 양 시윤의 인생을 손에 쥐고 흔들고, 시윤은 마침내 강우로 인해 벼랑 끝에 서게 된다. 그리고 오만하기 그지없던 왕자님, 민강우는 시윤이 사라진 걸 안 순간, 자신했던 것과 달리 견딜 수 없는 상실감에 소위 말하는 꼭지가 돌아버리는데…….

훔친 밤

“너와 그렇게 끝을 내고 가장 후회가 된 게 뭔지 알아?” ​ 한때 사명감으로 누구보다 자긍심 있었던 검사 서송현. 음지의 일을 발판 삼아 큰 건설회사 대표의 아들이었지만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아 의대를 택한 의사 한무혁. ​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럼에도 송현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정도로 무혁이 좋았다. 적어도 무혁이 소리 없이 사라지기 전까진. ​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변호사가 되어 입사 면접을 본 날, 그녀의 눈앞엔 놀랍게도 2년 전 사라졌던 무혁이 있었다. ​ 그토록 염원했던 의사가 아닌 이름만 대도 다 아는 유명 대기업 자회사의 대표로. ​ “여기서 먹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네가 탐나.” ​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당당하게 그녀를 요구하는데……. ​

못된 밤

“너 같으면 제정신으로 살았겠어?” 그의 삐딱한 말 한마디에 영원은 먹먹함을 삼켜야만 했다. 줄 듯 줄 듯 주어지지 않는. 올 듯 올 듯 하다 오지 않는. 짙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 수 없어서 감정을 느끼는 가슴을 도려내고, 그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지웠다.  “그러니 너도 이제 대가를 치러야지. 우리가 당했던 것처럼 똑같이…… 아니 시간이 지났으니 더 가혹해야 하나?” 그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대가는 언제가 됐든 치러야 하는 게 순리라면 제 마음을 짓밟히는 것으로 속죄하고자 했다. 언제든 이 세상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잠깐이나마 곁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겼다.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영원에게 생긴 것이다. 그렇게 영원은 주원을 아니, 세상에서 자신을 지웠다.

열과

“헷갈리게 하지 마요, 선배.” 차정후는 친절하거나 자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눈에 띄게 거리를 두고 다가오지 못하게 특유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런 정후의 옆까지 그녀는 어떻게 가까이 가게 된 건지. 그러나 강산 그룹 후계자와 천애 고아나 다름 없는 유영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다. 1년 동안 연인처럼 만났지만 사귀는 건 아닌 사이. 그래서 헤어지자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사이. 정후의 유학 앞에서 두 사람의 사이는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5년 후. 유영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이제 네 살이 된 너무 귀여운 딸, 리아. 리아를 위해서 유영은 강해졌고, 이대로 행복할 줄 알았다. 차정후와, 그러니까 리아의 아빠와 조우하기 전까진. 유영은 몰랐다. 4년 전 정후의 진심을. 그저 지나가는 여자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 여겼는데, “네가 걸려.” 새벽에 버리고 온 여자가 그의 발길을 무겁게 만들었다. 사랑한 것도 아닌데, 사랑인 것 같아서.

느린 봄

“다시 잡혀 온 기분이 어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보육원에 버려진 이서. 그 결핍은 이서로 하여금 후원의 기회조차 친구에게 양보하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그녀의 인생은 더욱 처참하게 벼랑 끝으로 몰렸다. 그때 날아갔던 후원의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기껏 선의로 결정한 후원의 기회를 친구에게 줘버린 호구. 그리고 또 다시 버린 가족을 믿어 모든 걸 잃은 멍청이. 킬리언, 아니 송원우에게 이서의 이미지였다. 원장의 부탁으로 다시 이서를 후원하게 되지만 기대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한이서는 달랐다. 결국 후원을 받지만 그것을 당연히 제것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존감이 바닥인 것은 아니다. 송원우는 그런 이서에게서 어린 날의 자신을 봤다. 그때부터였다 이서가 그에게 특별해진 것은. 이서에게 멀기만 하던 따스한 봄이 송원우라는 이름으로 더디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너를 놓는 순간은 절대로 없을 거야.” 약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