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기 쉬워 보여서 선택했다. “정다미 씨. 결혼이 하고 싶다고 했죠?” “네.” “그럼 나랑 합시다.” 정다미는 괴물 같은 양부모에게서 벗어나려고 한재혁 성진유통 전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서로의 필요에 의한 계약결혼. 필요가 다한 뒤에 당연하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던 이혼. 다미는 상처를 딛고 일어나, 동경하던 회사에 취직해 꿈을 펼치려는데…… 전 남편 한재혁이 왜 이 회사를 통으로 인수하는 건데? 다시는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던 전 남편을 대표님으로 모셔야 한다고? ***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식을 치르기까지 단 한 번도 동침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 보지 않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눈곱만큼도. 먼지만큼도. 다미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덤벼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 평생을 한 침대에서 잔다 해도 건드릴 일 따위 없다 믿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재혁은 몸이 타오르고 있었다. 다미의 뼈가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싶었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조금도 아껴주고 싶지가 않았다. 재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는 다미. ‘미치겠다. 대체 왜 예뻐 보이는 건데?’ 재혁의 마음속 갈등도 모르고 다미가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의 매끈한 광대에 조명이 탁 켜진 것 같았다. ‘하……. 네가 뭔데 예쁘냐고…….’
“그런 기분 알아?” “……?” “한순간도 잊어 본 적 없는 첫사랑을 다시 만났는데, 그 사랑이 웃으며 다가와 내 복부에 칼을 쑤셔 박는 기분.” 외헌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피가 돌고 살맛이 나는 느낌이랄까.” 외도하던 남편의 계략에 목숨을 잃었던 해안.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남편을 만나기 전인 스물일곱으로 돌아와 있었다. 복수를 위해 YH엔터에 입사한 그녀. 그곳에서 한때 뜨겁게 사랑했지만 이별을 고해야 했던 남자, 강외헌을 만난다. 서늘한 눈빛에 근육질의 단단한 몸. 남성미 넘치는 외모. 풋내를 벗어던지고 남자가 된 외헌에게 설레기도 잠시. 그의 비소에 상처받은 해안은 마음을 다잡으려 하는데……. * * * “아무 때나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와서 칼 꽂고 싶으면 칼 꽂고. 좋겠다, 꼴리는 대로 살아서.” “비아냥대지 말아요. 나도 쉽지 않았으니까.” 지난 생에서 겪었던 죽음을, 이번 생에서는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그렇게 말해 줘도 그는 믿지 못하겠지. “나도 이참에 너처럼 살아 볼까 봐.” 외헌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해안에게로 다가왔다. “……네?” 해안이 고개를 들자, 그의 비릿한 미소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그의 입술이 해안의 귓가로 내려왔다. 귓바퀴에 그의 입김이 스치자 그녀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버틸 수 있겠어? 내가 꼴리는 대로 하면, 너 많이 힘들 텐데.”
“어디서 겁도 없이 덤벼. 내가 어떤 놈인 줄 알고.” 주형그룹의 유력한 후계자, 방태선. 하지만 비서인 채연수에게 그는 원수의 오빠일 뿐. 학창 시절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방하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태선과의 결혼이 반드시 필요했다. 연수는 이를 악물고, 태선 앞에 무릎 꿇고 청혼했건만. “내가 왜 너랑 결혼을 해?”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무것도 하지 마. 어차피 뭘 해도 넌 아니야.” 연수의 검은 의도를 눈치챈 태선은 오만하게 거절한다. 어설픈 유혹 탓에 급기야 해고 위기에 처한 연수는 몸으로 부딪치기로 하는데. “숨 쉬어. 키스하게.” “전무님, 잠깐만요.” 철벽을 치던 태선이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호시탐탐 나를 노린 거 알아.” “……생각이 짧았어요.” 그제야 연수는 깨달았다. 자신이 뭣도 모르고 겁도 없이 덤볐다는 사실을. “힘 빼. 이제 더 부끄러운 짓을 할 거니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