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씨, 지금 당장 서울호텔로 가서 부사장님 좀 막아 줘.”불금, 야근 직후, 집에 오자마자 걸려온 사수의 다급한 목소리…회사 최고의 또라이, 회장 아드님이신 권무열 부사장의 스캔들을 막으라고?!“추가 근무 수당 3배 줄게.”갑니다! 서울호텔이 아니고 부산호텔이어도 가겠습니다!그렇게 달려가 어찌어찌 스캔들의 마수에서 부사장님을 구해 놨더니만…“이봐, 신입. 내가 조언 하나 하겠는데 앞으로 또 이런 일 지시 받으면 그냥 잠수를 타.”…개싸가지! 재수없어!복지 5점, 급여 5점, 승진 기회 4.8점, 사내문화 2.5점, 경영진 1.8점.대한민국 5대 기업 리뷰가 왜 이 모양으로 극단적인지 입사하기 전에 생각해 봤어야 했는데!!그런데…“어…? 부사장님… 스캔들… 터졌는데요…?”막은 줄 알았던 스캔들이 터졌다!그것도 여름 자신과!이제 잘리나…? 경영진 1.8점의 악몽을 내가 체험하는 거야?“이여름 씨가 책임지죠. 이여름 씨랑 나, 사귀는 걸로.”
“아니면, 사랑 같은 거라도 바라?” 차가운 말과 함께 커다란 손이 이나의 연한 입술을 힘주어 눌렀다. 한때는 사랑했으나, 저를 배신한 남자.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네가 아무리 도망쳐도……. 나는 X새끼처럼 잡으러 올 거란 뜻이야, 윤이나.” 그리고 이젠,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강주혁의 아내. 여린 숨통을 틀어쥔 저 남자의 비틀린 감정을 모르지 않았다. 저를 옭아매는 그릇된 욕망까지도. 다만 이나는 기꺼이 그에게 제 목을 내주었다. 지독한 집착에도 기꺼이, 그에게 미소를 흘렸다. 그 대단한 자존심이 구겨지는 꼴을 볼 수만 있다면. 한껏 희롱하는 저 오만한 입술이 치욕스럽게 일그러질 수만 있다면. “당신이 말했었죠. 원하는 게 생기면 이렇게 매달려 보라고.” 이나의 손끝이 불순하게 그의 목을 타고 올랐다. 아마 주혁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말해. 이렇게까지 해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뭔지.” “……당신 몸. 그걸 원해요.” 그녀의 뱃속에 그들의 아이가 자리 잡는 날이 오면. “사모님, 임신입니다.” 그의 곁을 떠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원수는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회사에서 만난다, 그치?” 개새끼 같은 소꿉친구가 미친 상사 놈으로 돌아왔다. 사내 정치에 휘말린 비운의 비서, 한채을에게. “네 말 듣고 나니까 내 밑에서 개 같이 구를 비서는 네가 딱인 거 같은데.” 생긋 웃는 미소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는 지암물산의 신상 또라이. 달리 말하면, 채을의 망한 첫사랑이자 살아 있는 흑역사, 백승조.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는 건데.” “날 한시도 잊은 적 없다는 한 마디. 네 인생에 지금까지도 내가 박혀 있다는 사실.” “미안한데, 난 너 잊고 살았어.” 못 본 척 지나치면 끝날 줄 알았다. 아직도 그날의 밤이 선명하지만, 백승조라면 잊고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놈은 드디어 반응을 얻어낸 사람처럼 웃었다. “떨고 있네.” “…….” “먼저 도발한 것치곤 간이 작다, 채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