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 옆에 쪼그려 담배를 피우는 게 유일한 낙인 하연에게 다리 한쪽이 구부러진, 한 떨기 백합 같은 남자가 다가왔다. “혹시 좋아하는 꽃 있으세요? 하나 선물로 드릴게요." “아, 괜찮아요. 쓰레기만 추가되는 거라.” 새하얀 지우개 같은 꽃집 총각, 서은우를 보며 어쩐지 하연은 그때가 떠오른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악몽 같은 기억이. 참 이상한 일이다. * * * “앞으로는 이렇게 친한 척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 “저 꽃에 관심도 없고…… 솔직히 그쪽한테도 관심이 없거든요.” 은우는 기나긴 시간을 돌아 자신을 지옥에서 꺼내 준 하연을 찾지만 태양처럼 밝았던 하연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둡기만 한데. “변했네. 최하연.” 같은 사건, 다른 기억 속에서 둘은 서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허리를 다친 이모를 대신해 가사도우미 아르바이트를 간 수영은 방에서 생전 나오지 않는다는 집주인을 만났다. 마치 3D 만화 캐릭터처럼 잘생긴 집주인은 생긴 것과는 달리 까칠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에 낯선 사람 들어오는 거 싫어. 경비 부르기 전에 나가!” 하지만 지금 나가버리면 이모는 직장을 잃게 되는 건데? 어떻게든 이모의 직장을 지켜야 한다. 사정을 해서 겨우 3주 동안 이모 대신 일하기로 하는데……. 그런데 이 사람, 어딘가 좀 이상하다. 혼혈임이 분명한 호박색 눈동자를 지닌 집주인은 그녀를 보고 있으면서도 엉뚱한 소리를 한다. “너, 언제까지 와?” “내가 키스해서 그래요? 신경 쓰지 말라면서요?" “네가…… 계속 왔으면 좋겠어.” * 사고 이후 10년 가까이 집 밖을 나오지 못하던 우진이 그녀를 위해 조금씩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처음이야. 그래서 너처럼 노련하지 못해. 그러니까 노련한 네가 나한테 맞춰.” 노련하지 못하다면서 이 자세는 뭔데? 하지만 싫지 않다.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사랑만 하면 되는데……. “김수영, 미안해. 너를 사랑하게 돼서 미안해. 너를 아프게 해서 미안해.” 우진이 흐느끼자 수영도 같이 흐느꼈다. 우리 잘못도 아닌데, 대체 왜 이래야 하는데?
황제의 명령으로 남부의 레너드 공작 가문으로 시집 오게 된 북부 백작의 외동딸 에보니 힐리워드. 남편이 될 쥴리엔 레너드는 마물과의 전투로 인해 큰 부상을 입고 성에서만 지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상 만난 그는 기이할 정도로 잘 생긴 데다가, 매우 건강해보였다. "입을…… 맞춰도 되겠습니까? 에본?" 에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럼요. 나는 당신 아내인걸요?" *** 캄캄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그의 몸에 손을 닿을 때마다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고 거친 것이 만져저 에본은 그의 몸에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알았다. 게다가 그의 머리카락은 어둠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은발이었다. 그 은발 아래서 나오는 입김 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같이 새어나왔다. "저를 안으세요. 저를 안으시면 따뜻해지실 겁니다." 에본이 한 손으로 갑자기 그의 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블라우스의 리본도 풀어내렸다. 저주에 걸린 공작님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치는 공작의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