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아련
류아련
평균평점
본능적으로

더없이 완벽한 결혼생활이었다.  거기에 일말의 의심조차 없었다.  그의 진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감히, 나한테서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그게 아니라!” “차라리 죽어 버리지 그랬어? 그랬다면 내가 널 영원히 찾을 수 없었을 텐데.” “세…준 씨.” “이딴 걸로는 날 벗어날 수 없어.” 순식간에 눈앞에서 이혼서류가 쫙쫙 흔적도 없이 찢겨나갔다.  그 종잇조각이 바닥 위에 쌓여갈수록 마음은 더욱 부서졌다.  “널 갖기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해.” “……!” “그러니 부질없는 고집은 버려.” 실수였다. 바보같이 제게 증오를 품은 남자를 사랑하고야 말았다.

함부로, 소유

무더웠던 여름의 끝자락. 운명처럼 제게 한 남자가 얽혀 왔다.  대재벌 해신그룹의 후계자 김은찬. "당신에 대한 소문은 이미 다 들었어요. 여자 갈아 치우기로 유명하다면서요?” “그랬지. 어제까지는.” “……!” “근데 오늘부터는 안 그러려고. 너 하나만 볼 생각이야.” 기나긴 어둠에 젖어 든 나날 속 그가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사업의 실패로 부모님이 남긴 7억의 빚과 친오빠의 병원비.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시작된 그와의 3년간의 계약 결혼. 그때만 해도 몰랐다. 그와 자신의 관계는, 처음부터 계획된 파국일 뿐이라는 걸. *** “은찬 씨…… 나, 더는 못 하겠어요. 우리, 이제 그만 해요.” 철저히 기만된 사랑.  그 속에 무수히 짓밟혔다. “아니, 버텨.” “흐…….” “그게 나한테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이야.” 알고 있다.  그가 절대 자신을 놔주지 않으리란 것을.  도망치려 할수록, 더욱 족쇄로 옭아매서라도 괴롭힐 거란 걸. “나…… 너무 괴로워요.” 그러자 그의 미간이 설핏 좁혀졌다.  그는 두 손끝으로 억지로 닫힌 민하의 입술을 벌리며 속삭였다. “그게 정 힘들면, 나를 사랑해보든지.” 마치 그는 엄청난 자비라도 베풀듯 뇌까렸다. “그럼,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황홀하지 않겠어? 내가 널 사랑해 주는 유일한 시간일 텐데.” 눈앞이 더욱 뿌옇게 흐려졌다. “네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매일매일 사는 게 죽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거. 그게 너한테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거니까.” 겨울 장마처럼, 차가운 그의 분노가 마음속 깊이 내렸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에게서 도망쳐야만 했다.  이대로 더 모두가 망가지기 전에.

짐승주의

소꿉친구 곽도형을 짝사랑했던 이시하의 29년 인생. 오랜 기다림의 끝, 그 결착을 내려고 했던 날이었다.  술김에 상대를 착각해 모르는 남자에게 입술을 들이밀기 전까진. “남의 마음 잔뜩 뒤흔들어놓고. 기억 안 난다. 미안하다. 하면 다예요?”  “……네?” “그날 밤 그쪽이 나, 꼬셨잖아요.” “……!” “내가 좋다고 밤새도록 실컷 물고 빨더니. 왜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해요?” 밀당이란 전혀 없이, 오직 직진만 하는 남자 백기찬.  “어쩌죠? 난 시하 씨를 놔줄 생각이 없는데. 나, 여자랑 잔 거 당신이 처음이었거든.” “네?” “날 이렇게 만든 것도 당신이 처음이고.” “……!” “감히, 내 순결도 빼앗았으니.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어요?” 벗어나려 할수록 더욱 깊이 옭아매는 그의 덫에, 아무래도 단단히 잘못 걸린 것 같다.

복수의 굴레

“지금 오가는 집안끼리의 정략결혼. 저랑 해 줬으면 해요.” 정한주, 정·재계의 포식자로 군림하는 그를 상대로 스스로를 판돈으로 건 것은 오로지 복수를 위함이었다. “나는 상품성 떨어지는 불량 재고품은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고려해 볼 만한 그쪽의 가치를 증명하는 게 순서 아닐까요?” 무감하게 제 가치를 재는 말에도 은서는 물러날 수 없었다. 제 복수에는 반드시 그가 필요했으니까. “한주 씨도 어설픈 소꿉놀이 하고 싶은 거 아니잖아요? 그쪽이 원하는 만큼 휘두르고 버려도 좋아요.” “재밌네. 그 말, 침대에서도 지킬 수 있겠어요?” 무모하길 정답이었는지 무료했던 그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나는, 사랑 따위는 필요 없지만…….” “……!” “침대 위에서의 내 아내의 의무. 그건 제대로 충실해 줬으면 하거든.”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여기서 그녀가 할 일은 한 가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