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적당히 참아가면서 좋아해야 하는 게, 그게 너무 힘이 들어.” 사고가 있은 후, 태상은 줄곧 다정을 생각했다. 미안했고, 그리웠다. 그럴 자격 따위 없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생에 처음으로 느낀 온기는 그만큼 따스했다. “한다정…….” 기어코 다시 만난 다정은 익숙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한다정 승무원.” “아…… 네. 맞습니다.” 다정은 집요할 정도로 눈을 맞춰오는 이 남자가 의문스러웠다. 선뜻 잘 곳을 내어주는 것도, 선뜻 보육원을 도와주는 것도, 선뜻, 자꾸만 제 곁을 파고들더니 어느새 결혼을 제안하는 것도. “나는 처음부터 네게 진심이었어.” “이 결혼에 진심이었다는 말씀이세요?” 서로 다른 생각으로 임한 결혼이 그의 한 마디로 흔들렸다. 비틀거리던 다정이 떨어진 곳은 넓고, 단단한 그의 품속이었다. “계약 같은 거 없이, 날 진심으로 봐 줘.” 이 결혼을 참을 수 없는 태상의 애틋한 고백이 시작된다.
“식구들한테 뺨 맞고 화는 나한테 풀어. 물고, 할퀴고, 때리고, 다 하라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의선재의 개, 이은서. 할아버지의 죗값을 물려받은 은서에게 의선재는 참회의 공간이었다. 세상을 호령하는 대양그룹의 선대를 돌아가시게 만든 죄는 결코 가볍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단 한 사람. 그들의 가장 귀한 도련님, 차태윤은 은서의 죄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은밀한 개가 되기를 자처해,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파국. 그리고 상처. 정해진 끝을 내다보면서도 은서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를 버리는 일쯤, 이미 전에도 해 본 적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