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하자.” “미쳤니?” 차분하게 뱉어진 승하의 말에 예진의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어이없는 제안이라는 거 알아. 하지만,” “이혼 서류에 사인하자는 말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예진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아메리카노의 향이 지독하게 느껴졌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내가 집을 나오면서 끝난 결혼 생활이라지만 2년 만에 만나서 하는 말이 ‘결혼하자.’ 라니. “필요해.” * * * “더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었네.” 예진은 승하를 노려보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승하의 표정이 어떠한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예진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곪아 터져 흉 졌다고 생각했던 상처에 진물이 흘러나와 아팠다.
“폭군 남주가 뭐가 멋있지?” [폭군의 여왕님] 속 주인공을 짝사랑하던 애런과 같이 지고지순한 저런 남자가 남주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시한부 인생을 살던 리에르 제국의 엘리아 리샤르 황녀. 폭군 남주의 이복 누나에게 이입하며 보았는데……. “이곳이 어디라구요?” 믿고 싶지 않지만 2회차 인생 또한 시한부 인생이었다. 엘리아에게 빙의한 후 황궁을 떠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대신 한 가지 소원을 말한다. “그럼, 대신 베로니카 왕국의 기사단장, 애런 알베르트 경을 만나게 해 주세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 최애는 보고 죽고 싶었다. “그럼 애런 경과 혼인하는 건 어떻느냐.” “네?” 원작과 다르게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