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오
들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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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뒷모습

넓은 보폭으로 서둘러 사라졌던, 새벽녘 거리에서 울리던 남자, 혁주. 그를 런던행 비행기에서 다시 만났다. 재빠르게 기억은 그녀를 그 날로 데려가지만… “나를 버리고 한 순간에 사라진 사람일 뿐이에요.” 놓치고 싶지 않았으나 놓아야 했던 은완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욕심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긴 세월 그리워했으니 어쩌면 하늘이 주신 기회 아닐까. 그는 오랜만에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그녀를 엄마라 부르기 전까지.

그대로 가득해

소단고에 첫 출근하는 날.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신입 영양사 효서는 조리실을 울리는 야릇한 소리에 놀라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다.“천천히 들어가요. 그분들 놀라시지 않도록.”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던 효서는 정신을 차리고서 떠올랐다.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복도 위로 서류들이 흩어지는데 불쾌한 표정을 짓고 고집스럽게 보고 있던 남자였다.크고 다부진 체격으로 슈트가 모델처럼 잘 어울리던, 짙고 곧은 눈썹과 반듯한 콧대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나올까 궁금하게 만드는 입술까지 가끔 궁금해지던 그 남자였다.한밤에 물소리가 들렸다. 방음이 되지 않는 욕실에서 지극히 사적인 취향을 들어버렸다. <[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