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30인론> 신의 신 전개만이 문학적 진보의 척도다.여기에 비하면 한설야 씨의 문학은 완고하고, 낡은 듯하고, 노둔(魯鈍) 하면서도 제목을 추종하는 문학이 근본적으로 자기를 재건하려면 일차는 반드시 회귀할 기본 지점에 확고히 서 있다. 「이령(泥濘)」의 주인공의 연명이 개변되지 아니하는 한 어떠한 새로운 문학도 근본적으로 새로워 질 수는 없다. 이것이 씨의 입각점을 우리가 현대 문학의 재출발 기점이라고 평가하는 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무영 씨의 「도전」은 현대에 대해 낡으면서도 새로운 해석의 좋은 자료다. 인목(人目)을 휘황케 하는 변화의 근원에서 불변의 것을 발견하는 것, 이것은 분명히 현대에 살아있는 고귀한 정신의 한 능력이다.<본문 중에서>
<작가의 눈과 문학세계> 작가는 자기의 ‘피’가 될 영양물을 전혀 현실 생활이란 토양에서 섭취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 작가적 혈액의 원소란 신상 작가가 생활하고 있는 사회의 원소임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사회적 본질이란 곧 작가적 ‘피’의 이화학적 내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눈’이 위대한 예술적 세계상을 창조하지 못함은 자명한 노릇이다. 그러나 같은 문학작품 가운데서도 비교적 작가의 ‘피’가 열도(熱度)를 높여 흐르고 있는 작품 가운데에서 보다 강한 감흥을 느낀다는 현상은 예술적 세계상의 우열과는 별개의 것이다.<본문 중에서>
<방황하는 문학정신> 문학 내지 작품 경향이 혼란이란 사상 그것의 결과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다시 말하면 문학이란 것을 시대정신의 중요한 전성 기관이란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문학이 좌우간 통일된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인들이 거위 대부분 한 가진 것을 생각하고 한길을 걸어가며 공통된 신념을 가졌었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방향이 분열되었다든가 경향이 착잡하다는 유의 환상은 동시대인이 제각기 다른 생각에 사로잡히고 별다른 길 위에 섰으며 공통의 신념이란 것을 갖지 않었든 증좌(證左)(증거)라 할 수가 있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