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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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칠하고 그려봐도

부부란 이름으로, 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사랑해……. 리아야.” 군림하듯 사랑을 속삭이는 이 남자가 싫다. 하지만 죽음을 겪고 돌아와 새 삶을 살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에 다시 만난 남편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걷게 했나 봐요.” 항상 위에서 군림하던 그가 이제는 리아를 한참이나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언제나 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서.’ 그때와 너무나 다른 남자. 그의 깊은 늪 같은 눈은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역사 문화 문학

<역사 문화 문학> 역사, 문화, 문학 혹은 시대성이란 것의 일각서. 역사의 바람소리와 속도를 느낄 수 있는 임화 문학의 진수. 그는 문학의 육체에 혁명을 부여했다.

임화 현해탄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559)

<임화 현해탄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559)> 이번 작품은 임화의 [현해탄]입니다. 사람은 시간이 흘러도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예전이나 현재나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을 읽으면, 그 시대의 삶과 경험을 느끼고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문학 작품을 읽으며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교훈을 얻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랍니다.

신문학사의 방법

<신문학사의 방법> 시대정신이란 것은 시대 시대의 고유(固有)한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즉 사회사나 문학사에서 장(章)이나 절로 세분할 수 있는 시대의 고유한 체험과 분위기와 목표 등을 종합한 지적(知的), 혹은 정신적 상태라 할 수 있으나, 근대정신은 이런 각 시대의 개성적 차이를 초월하여 그러면서도 각 시대의 공유한 근원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하면 근대정신이란 조선의 근대사회가 형성된 이래 오늘날까지의 정신 내용을 의미한다.<중략, 본문 중에서>

일본 농민문학 동향

<일본 농민문학 동향> 농민이란 첫째 다른 어떠한 직업의 국민보다도 우리 동양 여러 지방과 같은 농업국에서 둔 인구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만큼, 그들의 존재를 떠나 나라 전체의 정신상에나 현실상의 문제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대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본문 중에서>

대지의 세계성

<대지의 세계성> 내 자신이 「대지」란 소설 이외에 펄벅이란 작가에 대하여 백지란 이유도 있을지 모르나, 다른 세계적 작가와 달라 펄벅이란 작가는 「대지」란 소설은 떼어놓으면 그다지 세계적으로 문제될만한 사상이라든가, 혹은 문학적 문화적 업적을 쌓은 사람이라곤 말하기 어렵지 아니한가 한다.<중략, 본문 중에서>

19세기의 청산

<19세기의 청산> 정치를 예술과 가장 대립되는 물건이라고 한다면 정치의 한 연장이던지, 동시의 가장 고도화된 정치인 전쟁은 인간의 사회생활 가운데서 예술과 가장 대척(對蹠)(정반대) 되는 물건일 것이다. 예술은 정치를 좌우할 수 없을망정 정치는 예술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하면, 가장 고도의 정치인 전쟁은 예술사의 과정 가운에 결정적인 쐐기를 내려 박을 수가 있을 것이다.<중략, 본문 중에서>

전체주의 문학론

<전체주의 문학론> 르네상스 이래 서구의 문화 (혹은 세계의 문화)는 주지와 같이 ‘전체(全體)’라는 것과는 인연이 먼 ‘개체(個體)’란 개념 위에서 성육(成育)되어 왔다. 더구나 이 개체란 개체의 자유란 것을 그 정신적 내용으로 삼아온 만큼 개체 대신 전체를 거기에 따라 개체의 자유 대신 전체 개성의 종속을 정신 내용으로 한 ‘이즘(ism)’의 출현은 전체주의자의 언설을 빌지 않더라도 하나의 혁명적 의의를 갖기에 충분하였다.<중략, 본문 중에서>

가톨리시즘과 현대정신

<가톨리시즘과 현대정신> 딜타이는 서구 정신문화의 삼대 계기로서 기독교와 희랍적 형이상학과 로마의 법률 정신을 들었거니와 이것은 근대에 들어와서도 의연히 변치 않은 것 같다. 중세 문화가 기독교와 희랍적 형이상학의 통합이었다면 근대 문화는 기독교와 로마적 법률정신이 통합된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가 있다. 신교(新敎)란 정히 이런 것이 아닐까?<중략, 본문 중에서>

의도와 작품의 낙차와 비평

<의도와 작품의 낙차와 비평> 잉여물이란 글자대로 작가의 의도가 작품 형성 가운데 미치지 못한 틈을 타서 침입한 여분의 요소이니까. 의도란 창작하는 주체가 작품을 통하여 표현하려는 특종(特種)의 관념으로 어느 작품에든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최대의 힘이다. 인물을 선정하고 시추에이션(situation)을 배치하고 플롯(plot)을 만들어 작품의 구성을 디자인하는 것이 모두 이 의도의 작용으로 우리는 이 기능을 작가의 지성이라 생각할 수 있다.<중략, 본문 중에서>

비평의 고도

<비평의 고도> 비평적 판단(비평이란 본디 단정과 판단을 의미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이란 작품과 현실과를 관계시켜서 해답을 끌어낼 줄 알아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예술작품이 모두 다 사상적이었다는 이상으로 어떤 문예 비평이든 그것이 단순히 비평이란 한 조건만으로도 능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중략, 본문 중에서>

조선적 비평의 정신

<조선적 비평의 정신> 신경향파 이전에 비평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허나 일언으로 하면 비평이라고 말할만한 비평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유로 그렇게 말함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미학적으로도, 사회학적 내지는 정론적으로도, 다 충분히 교섭하고 있지 못하였었던 때문입니다.<중략, 본문 중에서>

수필론

<수필론> 항용 일기체의 문장이나 혹은 서한체(書翰體)의 글이나 또는 기행, 하다못해 무(無)제목의 그야말로 ‘쇼킹’한 단편까지도 모두 수필류라 부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그런데 이런 문장 가운데 통틀어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은~<중략, 본문 중에서>

기교파(技巧派)와 조선시단

<기교파(技巧派)와 조선시단> 19세기 말의 데카당스가 현실은 추악하기 때문에 그곳으로부터 유리(遊離)하고 도망한다는 태도를 본받음인 듯싶은데, 물론 이러한 일반적 공통성은 인정하는 것이나, 첫째 이러한 현실도피, 절망 자체가 우리들의 생존을 위하여 유해무익한 것이고, 다음으로 이런 동일한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갖는바 역사적 차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중략, 본문 중에서>

담천하(曇天下)의 시단(詩壇) 1년

<담천하(曇天下)의 시단(詩壇) 1년> 시인이란 어떤 의미에서 다른 사람보다 가장 잘 모든 것을 알 수가 있고, 또 가장 잘 이야기할 줄 아는 그것으로 범속한 인간으로부터 구별되는 하나의 ‘이상적 인간’에 가까울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보다도 잘 알지 못하고 잘 이야기하지 못하든지 혹은 알기만 하고 이야기할 줄을 모른다든가, 또는 알지는 못하고 이야기할 줄만 안다면 한의 평범한 인간이나, 혹은<중략, 본문 중에서>

예술적 인식표현의 언어

<예술적 인식표현의 언어> 인간이 필요한 모든 것에 이름 없는 것이 없고, 인간이 체험한 사건, 사태 중에 명명(命名) 안 된 것이 없고, 인간이 느끼고 생각한 것 가운데 언어적 형식이 부여 안 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적 생활의 발전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활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혹 그만큼 언어의 종별과 수는 증가되고 다양화되어 온 것이다. <중략, 본문 중에서>

언어의 현실성

<언어의 현실성> 우리는 어느 작가의 형식상 개인적인 특징이라 볼 수 있는 것도 그의 작품의 내용상의 것과 일정한 관련 하에서 관찰하는 것이며, 실제로 문학사상의 특정한 형식상 유파(流派)라는 것이 외견상의 형식적 유사뿐만이 아니라, 내용에 이르러서도 일정한 근사된 관련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사실은 곧 문학의 형식, 또 그 가장 외견적 부분인 언어의 특색이 반드시 내용이라고 불리는 소재와 사상이 갖는 제약성의 한 개 연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며, <중략, 본문 중에서>

시단과 신세대

<시단과 신세대> 소설의 신세대가 아직 한 선상에 두각을 내밀지 못하고 있음은 결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신경향파초기의 소설의 급속한 전진을 보라! 구시대의 여운이 아직도 소설 문단엔 지배적인 때문이다. 그러나 시단 위에 울리던 구시대의 여운은 벌써 현대로부터 떠나가려는 지향 가운데 이미 다 울려버린 감이 없지 않다.<중략, 본문 중에서>

소설과 신세대의 성격

<소설과 신세대의 성격> 각 시대에는 정신의 고유한 주도니 사조와 사고의 독특한 방법이 있는 법이다. 그것은 물론 전대에서 전승되고 후대에로 유전되는 것이나 그 시대 시대마다가 정신사상에다 자기의 고유하고 독특한 낙인을 찍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선대인에게나 후대인에게나 다 같이 기이한 것으로서 느껴지는 것이나, 당대인에게는 당연한 것으로서 체험되는 것이다.<중략, 본문 중에서>

신인론

<신인론> 신인(新人)이란 누구를 가리켜서 하는 말인가? 우리는 좀 더 겸손히 이 그 제목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줄 안다. 연년(年年)이 신문이나 잡지의 신년 현상문예의 관문을 통해서 나오는 이들을 가리킴일까? 그렇지 않으면 조그만 동인잡지를 만들어 가지고 고고(孤孤)(의로운)히 문학을 수도(修道)하는 이들을 가리킴일까? 혹은 날마다 각사 편집실에 모여드는 투자의 작자를 가리킴일까?<중략, 본문 중에서>

현대소설의 귀추

<현대소설의 귀추> 채만식 씨의 「반점」이 씨의 작품으로선 희귀하게 순수하고 깨끗하고, 구조가 짜인 작품이다. 어떤 과거를 가진 젊은 여자의 복잡한 심리와 성격을 그려 모든 점에서 독자를 납득시키는 좋은 단편이다. 더욱이 기교에 있어 이 소설은 씨의 어느 단편보다도 한층 단편적인 가작(佳作)이다. 그러나 계용묵 씨의 「부부」는 부부간에 오고가는 이러한 유의 델리게이트(delicate)(미묘함)한 심리~<중략, 본문 중에서>

현대소설의 주인공

<현대소설의 주인공> 채만식 씨의 「반점」이 씨의 작품으로선 희귀하게 순수하고 깨끗하고, 구조가 짜인 작품이다. 어떤 과거를 가진 젊은 여자의 복잡한 심리와 성격을 그려 모든 점에서 독자를 납득시키는 좋은 단편이다. 더욱이 기교에 있어 이 소설은 씨의 어느 단편보다도 한층 단편적인 가작(佳作)이다. 그러나 계용묵 씨의 「부부」는 부부간에 오고가는 이러한 유의 델리게이트(delicate)(미묘함)한 심리~<중략, 본문 중에서>

통속소설론

<통속소설론> 속가(俗歌)란 말은 민요란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또는 민요, 잡가(雜歌)란 것을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속가(俗歌)란 말은 결코 통속소설이란 말과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곧 부합되지 않는다. 통속소설란 예를 들면 시가에서 속가에 해당하는 민요, 잡가, 속가와 같이 재래의 지반에서 우러난 한 개의 정통을 가진 물건도 아니요, 오로지 현대 문학의 발전해온 도중에서 발생한 어디까지든지 현대적인 소설의 일종이다.<본문 중에서>

본격소설론

<본격소설론> 즉 소설이란 ‘장르’의 양식상 견지에서 볼 때 그것들은 모두 고전적이고 본격적인 의미 의 소설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데서 말을 만들자면 형태상의 공통성이다. 그러면 이 형태상의 공통성을 가능케 한 기반, 바꿔 말하면 그들의 문학정신 가운데 무슨 근접할 요소가 있었든가를 생각지 아니할 수가 없다.<본문 중에서>

세태소설론

<세태소설론> 「구보씨의 일일」에는 지저분한 현실 가운데서 사체가 되어가는 자기의 하루 생활이 내성적으로 술회(述懷)되었다면 「천변풍경」 가운데는 자기를 산송장을 만든 지저분한 현실의 여러 단면이 정밀스럽게 묘사되어있다. 그러므로 이 두 소설이 훌륭한 의미에서 조화 통합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본격적인 예술소설을 연상할 수가 있다.<본문 중에서>

생활의 발견

<생활의 발견> 예술적 태도라는 것은 작가에 있어선 이미 하나의 사상이다. 사상의 구체적 표현이 곧 예술적 태도라고 말할 수가 있으니까. 현실을 중시한다든가 현실의 표현에다 자기의 예술적 생명을 도(睹)(분별)한다는 것은 고쳐 말하면 현실의 표현이 완결된 작품가운데서 작가가 자기의 정신적 욕구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술적 태도는 물론 현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신뢰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본문 중에서>

중견작가 30인론

<중견작가 30인론> 신의 신 전개만이 문학적 진보의 척도다.여기에 비하면 한설야 씨의 문학은 완고하고, 낡은 듯하고, 노둔(魯鈍) 하면서도 제목을 추종하는 문학이 근본적으로 자기를 재건하려면 일차는 반드시 회귀할 기본 지점에 확고히 서 있다. 「이령(泥濘)」의 주인공의 연명이 개변되지 아니하는 한 어떠한 새로운 문학도 근본적으로 새로워 질 수는 없다. 이것이 씨의 입각점을 우리가 현대 문학의 재출발 기점이라고 평가하는 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무영 씨의 「도전」은 현대에 대해 낡으면서도 새로운 해석의 좋은 자료다. 인목(人目)을 휘황케 하는 변화의 근원에서 불변의 것을 발견하는 것, 이것은 분명히 현대에 살아있는 고귀한 정신의 한 능력이다.<본문 중에서>

30년도의 창작계 개관

<30년도의 창작계 개관>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은 구세계의 개조라느니 보다 그것의 발전, 연장이라 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장래의 성과를 보아야 알 일이며, 또한 이 분들의 제작 노선이 모두가 먼저 가지고 있든 자기 세계를 한 번 자기로부터 떼여놓고 시작되고 있는 데 의의가 있다. 나는 이것을 창작하는 주관의 현실 가운데 해방이라고 본다. 즉 재래의 제작 태도라든가 정신을 일상성의 세계 가운데 편력(遍歷)시켜 보는 시험! 어떤 의미에선 일상성의 세계를 통하여 재래의 제작 태도를 반성하는 행위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작가의 눈과 문학세계

<작가의 눈과 문학세계> 작가는 자기의 ‘피’가 될 영양물을 전혀 현실 생활이란 토양에서 섭취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 작가적 혈액의 원소란 신상 작가가 생활하고 있는 사회의 원소임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사회적 본질이란 곧 작가적 ‘피’의 이화학적 내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눈’이 위대한 예술적 세계상을 창조하지 못함은 자명한 노릇이다. 그러나 같은 문학작품 가운데서도 비교적 작가의 ‘피’가 열도(熱度)를 높여 흐르고 있는 작품 가운데에서 보다 강한 감흥을 느낀다는 현상은 예술적 세계상의 우열과는 별개의 것이다.<본문 중에서>

문단적인 문학의 시대

<문단적인 문학의 시대> 우선 우리는 문학 가운데 사상의 요소를 중시하는 것이나, 예술의 요소에 치중하는 것이나 어느 자(者)를 물론 평범히 말하여 한 시대사조란 것을 생각해야 한다. 경향파의 전성시대에 예술은 사상이 아니라 예술 그 자신이라고 고집하든 사람이 더 예술가이어서 그랬다거나 경향파의 조락(凋落)과 예술주의의 득세가 그들이 오늘날과 같은 예술주의의 시세를 예측한 선견의 명(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두 가지가 다 어리석기 비할 이 없는 일이다.<본문 중에서>

방황하는 문학정신

<방황하는 문학정신> 문학 내지 작품 경향이 혼란이란 사상 그것의 결과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다시 말하면 문학이란 것을 시대정신의 중요한 전성 기관이란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문학이 좌우간 통일된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인들이 거위 대부분 한 가진 것을 생각하고 한길을 걸어가며 공통된 신념을 가졌었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방향이 분열되었다든가 경향이 착잡하다는 유의 환상은 동시대인이 제각기 다른 생각에 사로잡히고 별다른 길 위에 섰으며 공통의 신념이란 것을 갖지 않었든 증좌(證左)(증거)라 할 수가 있다.<본문 중에서>

한설야론

<한설야론> 29년대의 조선은 신흥운동의 약진기(期)었고 민중이나 인텔리 가운데 비관주의가 만연되지는 않았었다. 설야가 과도기의 주인공을 후자의 길로 인도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었다. 그리하여 새 세계에 적응하려면 새 세계를 알아야 하고, 그 속에 몸을 던짐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이 십자로에서 설야도 확고한 경향 작가로서의 제 운명을 받았다.<본문 중에서>

유치진론

<유치진론> 반성(反省)이 함부로 모든 가치를 믿지 않는 부질없는 회의에 떨어짐을 우리는 극도기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반성이란 명목으로 흔히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믿지 않는 대신 제 자신을 맹신하는 어리석은 상태에 빠짐으로이다.<본문 중에서>

송영론(宋影論)

<송영론(宋影論)> 우선 무엇보다도 ‘염군사(焰群社)’의 역사상 위치는 회월(懷月)(박영희), 팔봉(八峯)(김기진) 등의 ‘파스큘라’*의 앞에 정해져야 할 것이며, 어떠한 의미에서 보면 파스큘라 그것을 능케 한 문화적 사상적인 요인으로서의 역할을 연(演)한 것이라 보아져야 할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교양과 조선문단

<교양과 조선문단> 문학은 역시 작가가 알아서 독자에게 알려주는 과정의 하나이다. 알아서 알리는 과정은 아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란 알아서 알리는 사람인 동시에 아는 사람이다.<본문 중에서>

시와 시인과 그 명예

<시와 시인과 그 명예> 훌륭한 시를 쓰려면 우선 훌륭한 사람(시인)이 될 것이 그 우선적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검을 들고 병사가 전선에 선 것과 마찬가지로 시인은 시를 가지고 전선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창조적 비평

<창조적 비평> 우리들은 비평이 엄밀한 철학적인 것과 문예 과학적인 범주와 개념을 거의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주로 설화(說話)와 은유(隱喩) 등의 문학적 언어를 비평적이고 평론적 문장 가운데에서 구사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의심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설화에 의한 논리란 것은 논리학을 갖지 않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본문 중에서>

생산소설론

<생산소설론> 현실이란 생산과 소비의 통일 물건이다. 사람들 항상 무엇을 쓰고 있을 뿐 아니라 만들고 있다. 바꿔 말하면 사람은 쓰고 만드는 것의 통일이다. 쓰는 측면에서만 인간을 그린다는 것은 마치 시정의 측면에서만 세계를 보는 것처럼, 인간을 전체에서 보지 못한다.<본문 중에서>

기독교와 신문화

<기독교와 신문화> 언어, 교육, 언론, 과학 등의 보급을 통하여 신교는 반세기간 신문화 육성에 유력한 협조자이었다. 그러나 신교 자신도 조선의 신문화 건설의 원조가 직접적 목적은 물론 아니었다. 외교기관과 같이 들어오고 상인과 같이 들어와서 정치와 상업의 날카로운 기세를 어느 정도까지 유연하게 만드는 데 그 주요 목적이었을 지도 모른다.<본문 중에서>

소설의 주인공

<소설의 주인공> 소설은 어느 때나 인물의 예술이다. 자연과 장면이 ‘스토리’와 그 기타 모든 소설의 필수적 요소가 인물 중심으로 배치된다. 인물이 없는 소설이란 배우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 한 무대처럼 공허하고 의미 없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작가 기질론

<작가 기질론> 수필을 쓰면 찬찬히 맛을 내야 하고 작품을 쓰는 수필식으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잠언(箴言)을 외는 식의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본문 중에서>

학생론

<학생론> 자유는 청년의 주체적인 내부의 요구요, 의무라는 것은 객관적인 외부의 요구라면 의무의 수행을 통해서 청년은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자유로움으로써 비로소 의무는 수행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고전의 세계

<고전의 세계> 고전(古典)이란 것은 단순히 과거의 세계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과거 가운데 속할 따름이다. 그러면 과거에 속하면서도 고전은 어떻게 단순한 과거의 세계와 다른가? 고전이란 이미 지나간 문화라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히 과거의 것이다.<본문 중에서>

신극론

<신극론> 신파극은 상업극과 동의어로 되어온 것인데, 우리 흥행극이 외국의 상업극과 다른 점은 우리 관객의 취미가 외국 관객의 취미와 다른 만큼 결국 다른 데 불과하였다.

문예이론

<문예이론> 의식이란 것은 항상 개인의 두뇌 구조 가운데의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것을 낳는다. 개인에게 의식이란 로빈슨으로 탄생한 인간의 의식이 아닌 한 사회적으로 생활하는 인간의 의식이며, 그 가운데에는 개인까지를 포함한 사회적 존재에 투영되어 있다.

현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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