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그의 스위트룸 안이었다.> 유난히 어두운 밤. 봄은 5번째 죽음을 결심했다. 이번에도 ST호텔 옥상의 끝자락에 선 봄은 끝내 발끝을 떼어내려 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나타나 봄의 목숨을 구한 건 미지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정신을 잃은 봄이 기억하는 건 농도 짙은 그의 체취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봄은 다시 그를 마주치게 되었다. 그것도, 그의 스위트룸 안에서. “눈 감아봐요.” 그가 말하자 봄은 눈을 감았다. 그의 침대 위에 몸을 누운 채로, 봄은 그의 손길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감은 눈 너머의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선명하게 느껴지는 숨결로 보아 그는 가까이에 있었다. 침묵 속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 봄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맞네. 그날 밤 옥상.” 묵직하게 내려앉는 목소리에 봄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확신에 찬 남자의 눈빛에 봄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설마, 목숨을 구해준 대가를 바라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남자의 손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그의 스위트룸 안이었다.
“태선호, 죽이고 싶어요?” 가슴 속에 칼날을 품은 채 눈앞에 나타난 서연희에게 태무영이 물었다. “……네.” 어금니를 꽉 물어 가며 기어이 대답하는 서연희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된 채였다. 순진한 건지, 미련한 건지. 도대체 무슨 배짱인 건지.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 복수하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태선호의 마음을 얻은 건 대단하다만, 태선호의 뒤엔 태성 그룹이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한들 승산 없는 싸움이 될 텐데. 하지만. “내가 도와줄까요.” 무영은 연희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애원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드는 감정은 연민일까. 욕망일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이 여자를 이대로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을 뿐이었으니. “안아요, 그럼.” 간절한 마음으로 무영의 목덜미를 감싸는 연희의 손길이 달아오른다. 고작 이 정도 스킨쉽만으로 벌벌 떠는 여자를 어떻게 길들여야 할까. 무영은 능숙한 손길로 연희의 허리를 휘감으며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먹잇감을 유인하는 달콤한 덫이 되어. 아프게 베인 입술을 머금으며.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