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림(바람의벗)
신승림(바람의벗)
평균평점
수하

주군을 위해 묵묵히 전념하는 충직한 호위대장 반후.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주군 따위 개나 줘 버리라는 불량한 수하. 몰락한 주군을 도피시키는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나면…. 반후는 완벽히 자유로워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군이란 놈은 복수를 외치며 원수의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반후는 지긋지긋해하면서도 그 뒤를 쫓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마주한 남자 비영. 반후가 몸담았던 곳을 짓밟던 침입자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피해야 하는데 자꾸만 시선이 가던 기이한 남자. ‘철저히 주인을 위해 키워진, 바로 나와 같은 존재.’ 적인 게 분명한 그를 볼 때마다 반후는 아득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리고 누구에게건 무심한 비영이 자신의 말에만 다르게 반응할 때. 반후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수하로서가 아닌 본연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 “그때….” 비영과는 달리 평범한 머리 색을 가진 날 알아볼 리 없는데, 비영은 날 보았다. 달리 목적을 가지고 본 것도 아니다. 차운단과 연결해서 탐색하는 눈도 아니었고, 도련님의 행방과 연관시켜 계산하는 눈도 아니었다. 사룡의 개를 본 것도, 도련님의 수하를 본 것도 아닌, 그저…. “나를 봤지?” 생각하고 뱉은 말이 아닌지라, 말을 한 나 자신도 뭘 묻는 건지 모를 그 질문에 비영은 사나운 기세로 고개를 바로 하여 나를 노려보았다. “네가 먼저였다.” “……?” 항상 무심하고 서늘하던 비영의 음성이 사납게, 낮게 으르렁거렸다. “네가 날 봤다.” 완전히 어두워진 사위 속에서도 비영의 검은 눈은 선명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도…. 그다음에도…. 그 이후에도….”

역린

태어나자마자 마계에 버려진 인간의 아이, 카이시론. 그는 암빙의 마왕 타안루하에게 주워져 그의 제자로 자란다. “소문의 그 ‘재미있는 것’이 이건가?” “그런 모양입니다.” 남자는 손을 뻗어 카이시론의 눈가를 문지르다 다시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인데? 뽑아 갈까?” 시작은 분명 ‘재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넌 내 하나뿐인 제자다. 감히 시종 따위가 하극상을 벌여도 좋은 상대가 아니야.” “예, 스승님.” 마침내 카이시론은 타안루하를 믿게 되었다.  설령 거짓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승 곁에 언제까지고 머무르고 싶었던 카이시론은 어느 순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를 버린 곳으로.  그가 그리워하지 않았던 곳으로.

나비의 자살

◆ 나비의 자살 「내 거미줄에서 평온을 찾는 거다.」 아버지가 떠나 버린 뒤, 어머니로부터 학대당하는 수한. 여진은 그러한 수한을 친구로서 옆에서 보살펴 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데…. 이제 알았다. 수한의 어머니. 그녀는 미친 게 아니었다. 단지 독점하고 싶었던 거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혼자만 차지하려고 했던 거다.  수한의 미소를. 저 예쁜 미소를.  그 여자는 나와 동류였다. 주체 못 하고 흘러나오던 웃음이 일순 가라앉았다. 복도에 나열되어 있는 숱한 교실 문 중 하나를 지나치는 순간 얼핏 내 얼굴을 봤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차갑고 매서웠다. XX년 10월 23일 오후 4시. 그렇게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을 자각했다. ◆ 행복한 거북이 「‘나’라는 ‘세계’에서 행복하라.」 형제인 유로와 유소. 그들의 시점에서 본 수한과 여진의 이야기. ◆ 돌멩이의 여행 「강하다! 살아가는 동안, 살아 있는 이상.」 열여섯 여름, 뺑소니 사고로 양친을 잃은 서지무. 힘겨운 삶에서 일탈하고자 찾아간 클럽에서 그와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으로 착각당하는데…. “너 학교에 다니고 싶지?” “…….” “다니게 해 주지.” 강진의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 “단, 형님을 대신해서다.” “……?” “형님의 대리인 거다. 형님이 돌아올 때까지. 혹은….” 강진의 커다란 손아귀가 지무의 목을 움켜쥐었다. 가해지는 힘에 숨이 콱 막혔다. “너에게 거부권은 없다.” “아… 알았… 컥!” 필사적으로 답하는 지무를 무심한 눈으로, 그래서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손을 놓았다. 지무는 목을 어루만졌다. 아직도 붙잡혀 있는 것만 같았다. 커다랗고 단단하고, 의외로 따뜻한 맹수의 손에. ◆ 수어지교 수한과 여진, 지무와 강진의 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