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아이랑
평균평점 5.00
크라운 체스트(Crown Chest)
5.0 (1)

※ 작중 펜싱과 관련한 내용은 픽션이며 현실과 차이가 있음 명시합니다. 펜싱 선수 지서연의 경기복에는 오로지 단 하나의 기업 인장만이 새겨져 있다. 화려한 황금색 왕관의 양옆으로 비상한 날개가 뻗어져 있는 마크. 국내 굴지 기업인 로테이블의 마크였다. * * * “복수하고 싶지 않아?” 그가 부어오른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뜨겁게 달아오른 피부에 차가운 입술이 닿아 따끔거렸다. “네게 왕관을 씌워줄게. 누구도 탐내지 못할, 너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줄게. 나라면 가능해, 서연아.” 모든 것이 끝난 와중에 그가 달콤한 시작을 속삭였다. 동아줄이 내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지만, 욕망으로 검게 썩어버린 동아줄이 눈앞에 있었다. “…조건이 뭐예요? 선배가 나한테 그냥 해줄 리가 없잖아.” 냉소적인 물음에 재화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 재화가 서연의 손에 뺨을 얹으며 황홀하게 눈을 접었다. “지서연. 그 자체를 내게 줘.”

살구나무에 핀 꽃은 지지 않는다
5.0 (1)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여원. 그때부터였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이후 할머니와 둘이 살아가지만 순탄하지 않은 관계로 인해 여원은 성인이 되자마자 인월을 떠나게 된다. 그러다 할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가고, 약수를 떠다 달라는 그녀의 부탁에 작고한 할아버지가 절대 들어가지 말라던 인월산을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묘한 사람, 아니 존재를 만난다. *** 남자의 입술이 다시 눈에 닿았다 떨어졌다. 생전 느껴 본 적 없는 아득한 통증에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갔다. “업보란다. 매구(埋鬼)의 구슬을 훔친 네 조상의 업보.”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원에 비해 남자는 평온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자, 도와줄 테니 입을 벌려 보렴.” 뭐든 좋았다. 이 아픔을 해결해 준다면 영혼도 내어 줄 수 있었다. 남자는 숨어 있는 여원의 혀를 휘감아 올리더니 질척하게 빨아들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코드네임, 매드독
5.0 (1)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갚고자 재연은 민간군사기업 가디온의 대원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임무 파트너로서 코드네임 ‘매드독’, 미친 개 매던을 만난다. “애기야. 엄마 아빠가 밥도 안 줘?” 무시와 조롱으로 일관하는 그와의 악연은 질기게 이어지고. 서로에 대한 삐뚤어진 관심은 점차 애정으로 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임무에 나갔던 매던은 유해조차 찾을 수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살았던 5년. 돌연 그가 눈앞에 나타난다. 엄마 아빠를 죽인 군수기업 렉시온의 총수로. “오랜만이야. 내 사랑.” 잿빛의 눈과 마주한 순간, 체내에 있는 모든 피가 차갑게 식어 증발했다. 재연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매던.” 낙엽이 바스라지는 듯한 중얼거림에 그가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아, 그리운 목소리야.” *** “나를 원망해?” “아니, 사랑해.” 재연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지금조차도 사랑하고 있어.”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게도 미래가 있다면, 그 미래에는 너와 함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이었는데. 그랬는데. “하지만 너는 아니야.” 온기 없이 가라앉은 얼굴에 차가운 경멸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한 매던은 5년 전에 죽었으니까.”

후궁회귀비사

“……폐하. 참으로 불쌍하십니다.” 송희국의 개국 공신 가문, 단 일가의 여식 단아정. 총명함과 슬기로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숙비의 자리에 올랐던 그녀는 황제의 이복동생과 사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문은 멸문당하고, 아정은 목숨 하나만 가진 채 도망쳤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울음조차 어색한 갓난아이를 지키기 위해. “짐은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어 본 적 없다. 만나면 너를 어떻게 찢어 죽일지 하루도 빠짐없이 궁리하면서 말이다!” “저는 단 한 번도, 폐하를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황제의 손에 붙잡히고 그는 제 자식이 분명한 아이의 목숨마저 거둬 간다. 그날 밤, 천지를 헤집는 비명과 함께 실성한 여인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퍼졌다. “만약 내세가 존재한다면 그때는 제가 먼저 폐하를 찾아내겠습니다.” 단숨에 미소를 거둬들인 아정이 이를 악물고 짓씹었다. “반드시 찾아내어, 폐하께서 아끼시는 모든 것을 당신의 눈앞에서 하나하나 친히 찢어발겨 보이겠습니다.” 부릅뜬 눈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날이 오면, 부디 원망조차 하지 마십시오.” 눈물도, 웃음도 모두 지나간 자리에는 초연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정이 고개를 젖혔다. 입가에 잔잔한 신소를 띤 채 쥐고 있는 화살을 높게 든 그녀가 그대로 힘 있게 내려찍었다.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단 한 가지뿐이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만약,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그때는 더 이상 울며 빌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으리. 내게 씌워진 억울함보다 더 깊게, 내게 새겨진 원한보다 더 잔혹하게. 그들이 내게 가르쳐 준 절망을, 그 악의를. 기필코 되돌려 주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또 한 번의 생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