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범희
한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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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와 백두 선생님

<만두와 백두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에게 꾸중하지 않고 대신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 시간 이후로 살아가며 친구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문화임을 알았으면 한다. 우리의 성씨가 다른 걸 보면 각 성씨의 조상들이 다양한 곳에서 오래전 이 땅에 들어왔다는 증거다. 대표적 예로 베트남 왕자 이용상이라는 분은 화산이씨의 시조가 되셨고, 여진족 출신 쿠란 투란 티무르(이지란) 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분으로 후에 청해이씨 시조가 되셨고, 시야가(김충선) 이라는 분은 일본 장군 출신으로 조선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 후에 사성 김해김씨 시조가 되셨다. 현재도 대한민국에 많은 외국 분이 들어와 우리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며 성실히 살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그들 중에 우리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우리가 될 수도 있는 그들을 존중하며 함께 이 공동체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선생님은 우리를 죽 둘러보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좋은 세상은 좋은 축구팀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 축구팀은 얼굴 생김새, 피부색, 집안, 출신, 배경 등등 이런 것이 우선 되는 게 아니라 자기 포지션에서 열심히 뛰고 동료를 위해 한 발짝씩 더 뛰어주는 것이다. 좋은 축구팀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본문 중 일부)

혼자일 때 우린 꿈을 꾼다

<혼자일 때 우린 꿈을 꾼다> 새벽 4시 3분 알람이 울고 눈을 뜬다. 옅은 어둠이 발길에 차이는 5월 하순 목검으로 하늘을 몇 번 가른다. 그리고 나는 영춘강변의 산책로를 걷는다. 아무도 없다. 물소리 새소리가 들린다. 강 건너 느티마을에서 닭울음이 들린다.(본문 중 일부)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남한강을 거슬러 신선이 살만하다는 단양에서 영월 방면으로 삼십여 분 달려가면 태화산자락이 병풍처럼 감싼 영춘면이 있다. 태화산 맞은편엔 소백산이 꿈틀거리며 내려오다가 남한강에 잘려서 절벽을 이룬 성산이 마주한다. 성산엔 장부의 기개로 우뚝 버티고 천여 년을 넘게 서 있는 온달산성이 있다. 영춘에는 달이 뜨는 날이면 달이 둘 떴다. 하나는 산성에 고즈넉이 뜬 달이요. 또 하나는 강 가운데 이지러진 달이라. 하지만 영춘 사람들 가슴에는 낮이나 밤이나 온전한 달은 이곳에서 사랑도 피 끓는 구국의 혼도 꽃잎처럼 떨군 평강공주 신랑 온달뿐이다. 지금 영춘은 한적하지만 좋던 시절도 있었다. 강원도 영월과 정선 고을 이웃한 충청도 두메산골 영춘 고을에 뗏목 흘러가던 시절이었다. 삼일 팔일 장날이면 장터엔 장돌뱅이 몰려들고 늘어선 주막엔 한양으로 뗏목 몰고 떼돈 벌러 가다가 노독 푸는 떼꾼들과 빼앗기고 산으로 숨어든 가난한 화전민들이 산골에서 내려와 뒤엉켜 시끌벅적했었다.(본문 중 일부)

할아버지와 아빠

<할아버지와 아빠>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몸이 쇠약해지신다. 오죽했으면 생명처럼 붙들고 있던 농사를 놓으셨을까? 집으로 돌아와 내 방 베란다 옆에 아빠는 고이 쌀 두 자루를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시며 눈시울을 붉히신다. 나도 아빠 따라 눈물이 났다. 아빠는 늘 할아버지와 이별을 준비하시는 듯하다. (본문 중 일부)

두 가지 이야기

<두 가지 이야기> 두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1. 연어 돌아오다 회귀 본능을 가진 연어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 북태평양을 뒤로하고 자신의 고향인 강으로 돌아온다. 우리 아빠에게 봉화는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오듯 회귀 본능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본문 중 일부) 2. 인디언 텐트 가족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엔 매년 반복되는 겨울 풍경 하나가 있습니다. 화단에 놓인 화분을 한곳으로 옹기종기 모으는 것이 제일 먼저이지요. (본문 중 일부)

멸종 위기 동물에 관한 보고서

<멸종 위기 동물에 관한 보고서> 나는 녀석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그 녀석도 한때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 누군가를 배제하며 추동력을 얻어 전진한다. 언젠가 그 추동력이 소진되면 우리는 또 누군가를 배제할 것이다. 그래서 그 녀석을 기억해야 한다. 소심한 사람이 살아보려 발버둥 치다 사라져간 것을 혹자는 패배자라고들 말하지만 말이다. 신록이 아름답다. 강은 말없이 오늘도 흐른다, 모든 게 다 제자리에 있는 듯한데 녀석만 증발하듯 사라졌다. 누구도 그가 사라졌는지 모른다. (본문 중 일부)

비박 도사

<비박 도사> 오늘도 비박을 검색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비박’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Biwak(비박)(독일어)” “우리말로는 한뎃잠 또는 한둔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라고. 비박은 내 버킷리스트 중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올해도 석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통 기회가 오지 않는다. 엄마 아빠는 산악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마땅히 주변에 이런 활동에 도움을 줄 사람도 없다. 간절히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본문 중 일부)

혼자 밥 먹는 아빠

<혼자 밥 먹는 아빠>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혼자 밥 먹게 되었다. 내가 크면서 학원에서 늦게 오고, 엄마는 야근하시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제일 먼저 돌아온 아빠는 혼자 밥을 먹게 되었다. 아빠는 요즘 남자로 살려면 징징대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일터에서도 아빠는 또래가 없어 혼자 밥 먹는 데 익숙하답니다. 오히려 그 시간만큼은 참 조용한 아빠의 시간이랍니다. (본문 중 일부)

늙은 남자 이야기

<늙은 남자 이야기>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만 바라보고 있어. 강 건넛산들이 출렁거리며 겹겹이 에워싸고 몰려오고 있어. 갑갑해. 온몸이 나른해. 내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야. 참 힘든 한 주였어. 직장에서 존경까진 바라지도 않아. 내가 알면 직장 내 다 아는 얘기지. 한마디로 정보의 끝판이야. 늙는다는 것은 밀려나는 거야. 용기는 줄고 지갑은 얇아지는 거지. 하지만 비극은 그래도 계속 직장에 나가야 한다는 거야. 왜냐면 늙은 남자들은 한 가정의 용병이니까 말이야. 계약해지 없는 거의 노예 수준의 용병이랄까? 순간 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심연처럼 고요해진다. (본문 중 일부)

달을 베었다

<달을 베었다>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실제 회사 내 이동 결정 과정에 합법적 방법을 가장한 야만적 행태를 보고서 의인화하여 쓴 글입니다. 그들은 무리 중에 누군갈 배제하며 성장의 추동력을 얻는 것이다. 그것이 심판을 자처한 사쿠라 돼지가 성장해 온 배경이며 그들 리그의 원칙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굴 선택하고 누굴 배제하여 미래에 투자해야 하는가는 본능적 판단일 뿐이다. 미래의 자기 세력을 확보하는 하나의 수단이 작동되고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 자기 편을 만들어 밀어주고 당겨주며 먹이를 많이 먹고 돼지 사회의 미덕인 뚱뚱해지자는 얘기다. 「글 중에서 일부」

돌아갑니다

<돌아갑니다> 젊은 시절 오지의 산을 좋아했었다. 오지를 헤매다 찾은 곳이 여기였다. 산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산의 정상에서 북사면으로 오로지 한 길만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돌연 길이 없는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무엇에 홀리듯이 말이다.

사라진 하얀 멧돼지

<사라진 하얀 멧돼지> 남한강은 영월의 동강과 서강을 아우르며 굽이쳐 흐른다. 평화롭게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크게 휘돈다. 휘돌던 강물은 소백산의 한줄기를 뚝 끊어버렸다. 이렇게 산줄기와 강물이 만난 곳에 까마득한 절벽이 만들어졌다. 이 절벽의 산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성산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