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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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산 (상)

<마의산 (상)>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정치 및 사회의식이 대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에 토마스 만이 자신의 정신적 삶의 궤적을 기록한 소설. '마의 산'은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폐결핵 요양원 베르크호프를 일컫는다. 주인공은 하부르크 조선소에 취직이 확정된 23세의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 그는 사촌을 문병하기 위해 3주 예정으로 마의 산을 찾았다. 그러나 그에게서도 폐결핵 징후를 발견되고. 결국 한스는 요양 생활에 들어가 이후 7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을유세계문학전집 1권과 2권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유럽 문명 세계의 정신적 총체’라고 평가받고 있다. 쇼펜하우어, 니체, 바그너의 영향이 곳곳에 발견되며 이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이어진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독일 문학의 거장이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인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두 편을 묶었다. 베네치아 여행과 작가로서의 고뇌와 사색을 담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작가 스스로 ‘일종의 자화상’이라 표현한 〈토니오 크뢰거〉는 모두 가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한 갈망과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특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콜레라가 창궐하는 베네치아에서 궁극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체험하는 노작가의 갈등과 황홀이 섬세하게 드러난 걸작이다. 토마스 만의 대표작 두 편을 모은 이 책은, 예술성과 시민성, 그 좁힐 수 없는 괴리에서 탄생한 감각적 미학을 자신만의 세밀하고 사색적인 문장들로 정립해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필독서다.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베니스에서의 죽음> 20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의 단편선 이 단편선에 실린 토마스 만의 단편 소설들은 경건한 시민적 세계와 관능적, 예술적 세계 사이의 긴장의 자장에서 나온 산물이다. 토마스 만은 이 두 세계 사이에서 항상 갈등을 느끼며 어느 하나도 온전한 자기 고유의 세계로서 사랑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약간 견디기가 어렵지요. 당신들 예술가들은 나를 시민이라 부르고, 또 시민들은 나를 체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토니오 크뢰거의 이 말에서 초기 토마스 만의 이상적 예술가상이 분명히 드러나는데, 그것은 “미의 오솔길 위에서 모험을 일삼으면서 '인간'을 경멸하는 오만하고 냉철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 생동하는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시민적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예술가의 모습이다.

파우스트 박사 1

<파우스트 박사 1> 광기와 혼돈 속 비운의 천재 음악가로 재탄생한 20세기 파우스트 독일의 불행한 시대를 문학으로 밝힌 작가 토마스 만 최후의 걸작 토마스 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을 뿐만 아니라, 집필 과정에 관한 300쪽가량의 책을 따로 출간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소설. 고독하고 오만한 천재 작곡가가 창작의 위기에서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악마와 거래를 하고, 결국 정신적 파멸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중세 파우스트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에 양차 대전 당시 파시즘에 열광하고 유대인 학살을 묵과한 독일의 실상을 투영하여 날카롭고 진중한 자기성찰을 보여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가장 독일적인 면모를 보이는 전위적인 음악가의 생애를 통해 독일 정신의 본질과 독일의 역사, 사상, 문화와 예술을 총망라한 철학적인 작품이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 20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 북독일에 위치한 뤼벡의 상인 가문 부덴브로크 가의 번영과 몰락의 과정을 묘사한 작품. 출간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 가족의 일대기를 통해 19세기 독일 시민 사회의 전형적인 연대기를 그려 냈기 때문이다. 만은 제1대에 속하는 증조할아버지 요한 부덴브로크, 할아버지 요한(장) 부덴브로크, 아버지 토마스 부덴브로크와 그의 아들 하노 부덴브로크로 이어지는 시민적 계보를 그려낸다. 19세기 독일을 뒤덮은 혁명과 반혁명의 조류, 산업 자본주의의 등장, 성찰적 경향의 점증 및 병적인 예술가적 성향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는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이 작품은 “한 시대에 대한 연대기이자 결산”이라는 평가도 아울러 받았다.

세계문학 단편선 03 토마스 만

<세계문학 단편선 03 토마스 만> 독일 문화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 준 세계문학의 대표자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작가, 토마스 만의 걸작 단편들 토마스 만은 독일 문학사상 전환점에 위치한 20세기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다. 그가 작품 활동에 나선 1890년대는 독일에서 낭만주의와 피히테의 철학, 프랑스 혁명의 열정이 그 위력을 상실하고 과학 문명이 급속도록 발전하면서 소위 현대가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만은 독일 문화 전통의 막바지에 선 인물로서, 시와 희곡 중심의 독일 문학적 풍토에서 빈약한 독일 산문문학의 유산을 이어받았지만, 그것을 가꾸고 다듬어 독일 소설을 일약 세계적인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작가이며, 그를 통해 독일 문학은 집대성되고 반성된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를 거치는 독일 문화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진정한 독일적인 가치와 문학이 세계인의 가슴에 남을 수 있도록 기여했다. 1929년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카프카, 헤세와 더불어 독일 현대문학의 3대 거장으로 여겨지는데, 평론가 헬무트 코프만은 “세계문학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토마스 만의 작품들이다”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사상적인 깊이, 높은 식견, 연마된 언어 표현, 짜임새 있는 구성 등을 보여 주는 만의 단편들은 서구 부르주아지 문화의 본질을 향해 시종 의문의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이 서유럽 문화의 불안정성과 붕괴의 위협에 대한 끊임없는 의식은 그 문화의 정신적 업적에 대한 인정과 세심한 관심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중심 주제는 현실과 사고와의 관계, 사회와 예술가와의 관계, 현실과 시대의 복잡성, 정신성의 유혹, 에로스, 죽음 등 그와 관련되는 일련의 문제들을 둘러싸고 계속 다른 형식으로 반복된다. 이 단편선에 수록된 토마스 만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열두 편의 작품은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 작곡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깊이 있는 것들로, 역시 가장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는 예술성과 시민성의 대립이다. 이 대립은 토마스 만의 태생적 뿌리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뤼베크 시 재무 담당 장관이었던 아버지는 독일 시민계급의 전통적 도덕률을 엄격히 따르는 전형적인 북부 독일인이었지만, 라틴계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는 도덕이나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고 음악을 좋아하는 예술가적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사람이었다. 만의 가장 훌륭한 단편으로 평가받는 「토니오 크뢰거」의 토니오 또한 그러한 인물이다. 시민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내포한 토니오 크뢰거는 끊임없이 보통 사람들의 건강한 세계를 동경한다. 그들은 단정하고 성실하고 명랑하고 도덕적이며, 주어진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하찮은 것에도 즐거워하고 남들과 어울리는 법을 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게 살 수 없는 토니오로서는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일반인들은 그를 이질적인 존재로 본다. 그가 자기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면서 자신들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자신들을 경멸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선뜻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토니오는 늘 일반인들의 세계를 동경해 왔으면서도 정작 그들과 함께 있으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불편해한다. 일반인들의 편협함과 고루함, 속물근성이 속속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토니오가 예술 세계로 쉽게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다. 오직 미美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하는 예술가들은 시민적 양심을 가진 그를 감동도 도취도 없는 인간이라 여긴다. 미의 숭배자들은 현실적 인간들을 경멸하고 깔본다. 그러나 토니오는 ‘예술적인 것, 비범한 것, 천재적인 것 속에도 모호하고 수상쩍고 의심스러운 것이 담겨’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날카로운 지성의 눈을 가진 사람을 미적 허영에 빠진 이들이 고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어느 세계도 토니오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시민 세계는 그를 ‘체포하려’ 들고, 예술가들은 그를 ‘길을 잘못 든 시민’이라 부르며 경원시한다. 그가 안주할 곳은 없다. 그러나 이내 예술 세계가 반드시 일상과 동떨어진 천재적이고 비범한 것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른 길로도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작가를 정말 작가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인간적인 것, 살아 있는 것, 평범한 것에 대한 시민적 사랑”이고, “일상의 환희에 대한 동경보다 더 감미롭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다”고 토니오는 말한다. 이처럼 삶에서 배제된 채 평범한 삶을 동경하고 꿈꾸는 이는 비단 예술가만이 아니다. 「키 작은 프리데만 씨」의 난쟁이 프리데만, 「굶주리는 자들」의 구걸하는 거지, 「루이센」에서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 만큼 뚱뚱한 야코비 변호사도 마찬가지이다. 그 밖에 현실의 삶 앞에 허무하게 무너진 예술가의 허영심을 다룬 「어릿광대」, 디오니소스적 예술에 힘없이 무릎 꿇고 만 아폴론적 예술을 다룬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현실과 언어의 채울 수 없는 간극을 그린 「환멸」, 의지와 삶의 문제를 다룬 「행복에의 의지」 등의 단편은 그 각각이 걸작이란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본문에서- 왜 나는 이런 별종으로 생겨 먹어서 늘 모든 것과 부딪치고, 선생님들과 사이가 안 좋고, 다른 친구들과 있으면 어색한 것일까? 친구들을 봐! 얼마나 선하고 평범해? 걔들은 선생님을 우습게 여기지도 않고, 시를 쓰지도 않고, 누구나 똑같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고, 누구나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해! 모두들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고, 세상 모든 것들과 일치한다고 느껴! 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앞으로 어떻게 되려고 이럴까? - 「토니오 크뢰거」중 내가 너희를 잊었을까? 토니오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한스 너도, 금발의 잉게 너도! 내가 글을 쓴 것도 너희 때문이야. 나는 박수갈채를 받을 때면 혹시 너희가 그 자리에 없는지 몰래 주위를 살피곤 했어. 한스, 예전에 너희 집 정원 문에서 약속했던 것처럼 『돈 카를로스』를 읽었어? 읽지 마! 너한테 더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겠어. 외로워 눈물을 흘리는 왕이 너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어? 너는 시와 멜랑콜리 같은 것으로 눈을 흐리고, 바보 같은 꿈에 젖을 필요가 없어…… 아, 너처럼 되고 싶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너처럼 자라고 싶어. 너처럼 성실하고 쾌활하고 소박하고 올바르고, 질서에 잘 따르고, 신이나 세상과도 아무 갈등이 없고, 천진하고 행복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잉게 너를 아내로 맞아 한스 너 같은 아들을 낳고 싶어.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양하고 싶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어차피 똑같이 될 테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대로 똑같이 반복될 뿐이야! 세상에는 올바른 하나의 길을 아예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 - 「토니오 크뢰거」중 “명심하라, 파이드로스여. 아름다움만이 사랑스러운 동시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는 감각적인 것의 길이고, 예술가를 정신으로 이끄는 길이다. 얘야, 너는 감각을 통해 정신의 길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언젠가 진정한 남자의 품위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판단은 너에게 맡기겠다만, 그게 오히려 정말 위험하고 불쾌한 길이자,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릇된 죄악의 길이라 생각하느냐? 너도 이제 알아야 한다. 에로스가 길동무가 되고 길을 인도해 주지 않으면 우리 작가들은 결코 미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 우리도 나름의 방식으로 건실한 전사와 영웅이 될 수 있지만, 우린 본질적으로 여자와 같다. 우리에게는 정염이 영혼의 행복이고, 사랑이 영혼의 그리움이기 때문이지. 이게 바로 우리의 기쁨이고 수치다. 이제 알겠느냐? 우리 작가들은 지혜로울 수도, 품위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 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사도에 빠지고, 방탕과 감정의 일탈로 흘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들이 쓰는 대가다운 문체는 모두 거짓이고 허튼짓이고, 우리가 누리는 명성과 존경은 한마디로 소극이고, 우리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지극히 같잖은 짓이고, 예술로 대중과 아이들을 교육하겠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무모한 시도다. 태어날 때부터 개선될 수 없는 타락의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어떻게 교육자로 적합하겠느냐? 물론 우리도 그런 타락의 나락을 거부하고 품위를 지키고 싶지만, 아무리 방향을 돌리려 해도 그 나락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우리는 분석적인 인식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파이드로스여, 인식에는 품위도 엄정함도 없기 때문이다. 인식은 신조도 형식도 없이 그저 알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고, 타락의 나락에 호의적이다. 아니, 나락 그 자체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하게 인식을 배격한다. 대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미뿐이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단순함과 위대함, 새로운 엄격함, 또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파이드로스여, 형식과 자유로움은 도취와 탐욕으로 이끌고, 타락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고결한 자까지 끔찍한 감정의 죄악으로 이끈다. 엄정한 아름다움이 극악한 것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그런 감정의 죄악으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작가들이다. 우리는 고상하게 위로 올라갈 능력이 없고, 단지 일탈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간다, 파이드로스여. 너는 여기 남아라. 내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거들랑 그때 너도 떠나거라.”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중 내가 남들처럼 사회적으로 보탬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남들과 연을 맺지 않는 삶을 설계한 것은 어쩌면 그런 외적 행복을 현실적으로 포기했음을 의미할지 모른다. 물론 어떤 순간에도 내 삶에 불만을 토로한 적은 없다.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은 흔들려서는 안 되고 의심받아서도 안 된다. 반복건대, 아니 필사적인 심정으로 강조컨대, 나는 행복해지고자 하고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업적과 천재성, 고귀함, 사랑스러움으로 여기고, 불행을 추악한 것, 빛을 두려워하는 것, 경멸적인 것, 한마디로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관념은 내 속에 너무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만약 내가 불행하다면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없을 것이다. - 「어릿광대」중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기에 남에 대해서는 진지한 의견을 갖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크게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너 스스로 존중하는 만큼 너를 존중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뻔뻔할 정도로 확신을 보여 주고,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버려라. 너를 경멸할 만큼 도덕적인 사람은 없다. 네가 너 자신과 하나 되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만족감을 잃으면 그리고 스스로를 경멸하는 모습을 보이면 남들도 당연히 너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나는 그 점에서 실패했다. 나는 이제 펜을 던지고 글쓰기를 끝낸다. 역겹고 구역질 난다.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은 어릿광대에겐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두렵다. 내가 이대로 살아가고, 먹고, 자고, 아무 일이나 조금 하고, 그러면서 내가 불행하고 한심한 인간이라는 것에 시나브로 둔감하게 익숙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빌어먹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어릿광대로 태어난다는 것이 이런 액운과 불행일지 말이다. - 「어릿광대」중 -시리즈 소개-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세계문학 단편선> 문학 출판의 명가 현대문학이 새로운 시리즈 <세계문학 단편선>을 펴낸다. 이번에 시리즈의 첫 번째 분으로 나온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토마스 만, 데이먼 러니언, 대실 해밋의 단편선집이다.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장편소설 위주의 관습에서 벗어나 단편소설에 포커스를 맞춘 이 시리즈는 그동안 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거장들의 주옥같은 작품들과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의 형성과 발전에 불가결한 대표 단편 작가들을 소개할 것이다. 아울러 지구촌 시대에 걸맞게 여태까지 우리에게는 문학의 변방으로 여겨져 왔던 나라들의 대표적 단편 작가들도 활발히 소개해 단편소설의 발전이 문화의 중심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처에서 이루어져 왔음을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현대 대중문화의 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미스터리, 호러, SF 등 문학 장르의 분화를 촉진했는데 이러한 장르문학의 형성에도 단편소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한 장르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가들의 단편 역시 새롭게 조명할 것이다. 21세기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편소설은 그리스 신화가 그러했듯이 삶의 불변하는 단면을 촌철살인의 관찰력과 응축된 예술적 형식으로 꾸준히 생산해 왔다.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린 칼로 베어낸 듯 날카로운 인생의 다양한 단면들은 시공을 초월해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새로운 문학적 기법과 실험의 도입을 통해 단편소설은 현재도 계속 진화, 확장되고 있다. 작가의 예술적 열정이 가장 뜨겁게 투영된 다양한 개성의 다채로운 단편들을 통해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통찰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문학작품은 독자가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쁜 일상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세계문학 단편선>은 중심을 잃지 않고 삶과 사회, 나아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현대 독일 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의 중·단편집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마스 만의 대표작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 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내에서 자주 소개되지 않았던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들 「글라디우스 다이」,「트리스탄」, 「굶주리는 사람들」, 「신동」, 「힘든 시간」, 「벨중족의 혈통」까지 한데 묶어 토마스 만의 작품 세계를 좀 더 촘촘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한 책이다.

토니오 크뢰거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의 주요 단편을 엮은 책. 작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토니오 크뢰거』외에 토마스 만의 소설 기법이 뚜렷하게 나타난 초기 작품으로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정신적 영향이 짙게 드리워진 『환멸』,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으며 예술 정신과 시민정신의 극단적 대립이라는 작가의 초기 명제가 제시되어 있는 『트리스탄』, ‘파시즘의 심리학’이 드러나 있는 『마리오와 마술사』등을 소개하고 있다.

묘지로 가는 길

<묘지로 가는 길>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명작을 발굴하여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숨어있는 명작 시리즈! 세계 유명작가들의 숨어있던 다양한 작품들을 숨어있는 명작시리즈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묘지(墓地)로 향한 길

<묘지(墓地)로 향한 길> 〈묘지로 향한 길〉은 그 묘지에 연고가 있는 사람에게는 신성한 길이다. 그러나 그 밖의 사람에게는 다른 평범한 길이나 전혀 다름이 없다. 초기 소설에서 흔히 다루던 예술성과 시민성의 문제, 예술의 길과 소시민의 길의 갈등이 변형되어 주제로 되고 있다.

토마스 만 작품집

<토마스 만 작품집> 이 책을 읽는 분에게 토마스 만은 1875년 6월 6일 자유시 뤼벡Lübeck의 유복한 상가의 차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소설가 하인리히 만의 동생이기도 하다. 조부는 네덜란드 영사領事, 아버지는 시市 참사회원이며 부시장이었다. 어머니는 남미南美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독일인과 포르투갈 계 브라질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나 라틴 민족적 기질이어서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견실한 시민성을, 어머니에게서 예술성을 이어받은 토마스 만은 선천적으로 시민성과 예술가 기질, 생生, 자연과 정신의 대립을 자기 자신에게서 절실히 느끼게 되고, 그것을 당면한 자기의 문학적 과제로 삼게 된 것이다. 토마스 만의 어린 시절은 고생을 모르는 행복한 것이었고, 특히 여름 방학에 발트 해 연안 해변에서 지내는 습관은 몽상적인 소년의 마음에 태만의 희열과 자연 속으로 자기 자신을 융합시키는 감미한 도취를 맛보게 하여 후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친근하게 될 소지素地를 마련했다. 학교의 규율은 이러한 소년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어서 그는 학과를 게을리하고 문학 서적을 탐독하는 일이 많았으며 성격에 맞지 않는 실업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890년에 부친이 사망하여 상회商會는 해산되고, 가족은 뮌헨으로 이사하여 토마스 만도 그곳으로 가서 일년 가량 보험회사 견습사원으로 근무했다. 이 시절에 처녀작 《전락Gefallen》을 자연주의 기관지 《사회》에 발표하여 청년층의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시인 데멜과 친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자연주의적인 것이라고 하나 토마스 만 자신이 전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회사를 사직하고 저널리스트가 되려고 뮌헨 대학의 청강생이 되었다. 그 후 로마에 체류 중이던 형 하인리히의 유인誘引으로 이탈리아에 가서 부친의 유산으로 형은 회화 공부를 하고, 동생은 북유럽 문학, 러시아 문학을 탐독하며 소설의 시작試作을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과 과정을 거쳐 토마스 만은 작가로 데뷔한 이래 수많은 작품을 썼고, 192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나치스 집권으로 1935년에는 또다시 도미하여 정주定住하게 되었고, 1936년 독일 시민권과 본 대학 명예 박사 학위의 칭호를 박탈당했다. 종전終戰후, 1952년 스위스로 돌아와 취리히 호반에서 살다가 1955년 8월 12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80세였다. 취리히 근교 키르히베르크 묘지에 안장安葬됐다. 하버드 대학이 토마스 만에게 명예 철학 박사 학위을 수여했을 때 그 이유서에는 ‘작가 토마스 만이 우리 시민 동포를 위해서 인생의 의미를 해명해 주었다’고 씌어 있었다. 1929년 노벨 문학상이 그에게 수여된 것도 실로 그의 인생 행적이 세상에 희열喜悅과 위안을 나누어 주고 인생을 유지하는 동시에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새로운 견해와 감정을 초래한 데 기인한다고 본다. 토마스 만은 독일 문화의 품 안에서 호흡하고 성장한 가장 독일적인 작가이며, 자연주의가 독일 문단의 주류를 형성하는 한편 신낭만주의를 표방하여 반자연주의적 경향이 진출하기 시작한 19세기 말에 창작 활동을 개시하여 독일 낭만주의의 극복과 괴테로 대표되는 독일 휴머니즘의 부활을 지향하여 20세기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이룩한 것이다. 그의 창작 활동은 질과 양에 있어서 근대 작가 중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고, 특히 무궁무진한 언어의 구사驅使는 실로 언어의 거장巨匠이라는 찬사가 타당하리라고 본다. 토마스 만 자신도 언어에 대한 국민적 책임을 절감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지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이 점이 바로 독일 문학도가 그로 인해서 겪어야만 할 노고의 하나이기도 하다고 고충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그의 문장이 고차원적 중량을 느끼게 하고 어휘는 정신되어 있음을 절감하는 것은 새로운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새로워지는 감이 든다. 61세에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을 때 그는 언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어의 신비는 위대하다. 언어와 그 순수 정확성에 대한 책임은 상징적인 정신적 성질의 것이며, 결코 예술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요, 큰 도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언어에 대한 책임은 책임 그 자체, 인간적인 책임 그 자체이며 자국민自國民을 위해서 책임을 담당하는 것, 인류 앞에서 자국민의 형자形姿를 순수하게 보전하는 것이다. 언어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인간적인 것의 통일성이 체험되고 인간 문제의 전체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나, 이 전체성은 오늘날 특히 정신적, 예술적,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분리하여 후자와 결연하고, 고귀한 ‘문학적인 것’ 속에 고립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참된 전체성이야말로 휴머니티 그 자체이며, 인간적인 것의 부분적인 영역에 불과한 정치라든지 국가라든지 하는 것을 전체화하려고 기도하는 것은 이 참된 전체성에 위배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따라서 문체도 평이주의로 변했지만 고전적 시대 작가로서 토마스 만의 작품, 특히 그 언어와 표현의 정교함은 영원히 보존될 불후의 세계 문학적 업적이라 하겠다. 여기서 토마스 만의 문학적 발전을 개관槪觀하면 19세 때1894년에 처녀작 단편 소설 《전락》을 발표하였다. 30세1905년까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 작품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각이 나타나 있다. 바로 인간이 정신적으로 세련되면 반면에 육체가 허약해지고 명랑한 삶의 환희가 사라지며 그 대신에 죽음에 대한 암담한 동경이 생긴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왕성한 생활력이란 정신적 영점을 의미하는 것이며 생명력의 상실, 생으로부터의 탈락 과정이 바로 인간의 정신적 과정과 병행하게 된다는 생生과 정신, 일반 시민과 예술가를 대립 관계에 두는 인생관이 표현된 것이다. 정신과 미의 관계도 대립면에서 관찰되고 정신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대개가 못생기고 꾀죄죄한 외모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평범하고 별로 정신적 구애가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활발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작품 《토니오 크뢰거1903년》의 주인공 토니오의 구겨진 스타일과, 금발머리에 파란 눈의 한스 한센의 건강한 자태에서 대조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것은 삶보다는 오히려 죽음에 공감하는 낭만주의 생활 감정의 영향이며 시민 사회에 있어서 예술과 예술가의 고립적인 존재에서 생기는 양심의 반영이다. 결혼 생활의 수확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작품 《대공전하大公殿下》에서 제1차 대전을 겪고 쓴 《마의 산》의 완성까지를 중기로 볼 수 있다. 중기에서는 초기의 대립적 인생관의 극복이 시도되고 성취하기에 이르렀다. 건강하고 무난하며 행복하고 명랑한 시민생활 세계에 대립하여 정신과 인식의 세계에 산다고 생각했으며 “예술가는 인간이 되어서 느끼기 시작하면 파멸이다”, “문학은 천직이 아니라 저주이다《토니오 크뢰거》에서”라고 말했던 고독한 예술가 토마스 만은 《대공전하》에서 사랑과 결혼에 의해서 고립, 고독의 탈을 벗어나 자타自他를 결합하고 삶의 세계와 타협하고자 힘쓰게 된다. 《마의 산》에서는 이러한 대립적 인생관이 더욱 극복되었고 대립을 지배하고 전진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태도라는 사상이 발전되었다. 이것은 토마스 만의 사상이 일대 전환기에 처한 것을 의미한다. 즉 독일 낭만주의의 보수주의保守主義에서 이탈한 것을 뜻한다. 죽음에 대한 공감을 민주주의적인 생에 대한 호의로 변화시키는 정신의 변형變形을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봉사를 임무로 하고 있다. 생과 정신, 문명과 문화 등 대립하는 수많은 것의 중간, 조화된 중도中道에서 비로소 참된 인간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리하여 토마스 만은 유럽 시민 문화의 전통에서 매몰되어 가고 있던 인간성의 이념을 구출하고, 이것을 정화淨化하여 전 세계에 다시 제시한 것이며, 삶에 대한 결의를 정신적 지주支柱로 삼고 발전하는 중도로서의 인간성에 토마스 만 문학의 핵심 휴머니즘이 확립된 것이다. 독일 소설 문학을 세계적 수준에 높이는 임무를 다하고 고귀한 인간관을 수립하는 데 노력한 공으로 1929년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50세를 전기轉期로 하여 토마스 만의 후기가 시작된다. 초기의 낭만주의적 페시미즘은 이제 완전히 억압되고 중기를 거쳐 성숙한 휴머니즘이 전개된다. 여기서 토마스 만은 생과 정신, 다시 말하면 자연과 영혼의 조화를 이룩한 사람을 찾아서 인생의 모든 대립을 실지로 극복하고 지배하며 살아온 사람을 축복하며 묘사한다. 《요셉 형제》, 《선택된 인간》, 《바이마르의 로테》 등 주요 작품의 각 주인공 요셉은 정치가로서, 그레고리우스는 종교가로서, 괴테는 예술가로서 각기 자기 인생에 대립되는 여러 문제를 융합하고 극복해 나간다. 그들은 자연과 정신, 본능과 지성, 현실과 인식을 대립 항쟁對立抗爭시키거나 일방一方을 부정하고 타방他方만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하는 힘을 조화 협조시켜서 인간성 전체를 옹호하면서 전진하는 인간, 실로 인간다운 인간인 것이다.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각기 개인적 자아, 즉 주관성과 사회적 자아, 즉 객관성이 조화하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 대립하거나 일방이 타방을 억압하는 한 인간성의 전면적 해방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즉 개인은 사회적 자각을 높이면서 개체와 집단과의 대립을 지양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적 발전이 이상적으로 실현된 경우를 토마스 만은 상기한 후기 대표작에서 묘사한 것이다. 인간 사회 문제에 책임을 느끼는 이상 정치적 태도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후, 토마스 만이 히틀러의 전체주의 발전을 위한 독재 정치에 반기를 든 것도 당연한 일이다. 토마스 만은 인간성의 존엄을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이라는 점을 간파看破하고 민주주의는 휴머니즘의 별명에 불과하다고 보았기에 일반적 존재 의식과 가치만을 부여하는 히틀러 나치즘에 굴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 고찰에서 작품 《파우스트 박사》는 인간성의 민주적 발전에 절망적 반동이었던 나치즘이라는 악마적 비합리주의가 독일에 발생한 원인과 과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정신과 문화 속에서 발전한 가장 독일적인 작가였던 토마스 만이 미국으로 망명을 하고 미국 시민으로서, 유럽의 중립국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육성하는 신생 독일 공화국을 주시하며 생애를 마친 것은 소극적이라기보다는 가장 활동적이며, 인내라기보다는 영웅적 권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편협한 대중大衆이 그를 도피적이라고 빈축하고 있으나 실은 토마스 만이야말로 독일적 작품을 씀으로써 독일의 민주화에 적극 참여했던 것이며, 세계를 정복하여 독일화하려던 히틀러의 무모한 정책에 반해서 휴머니즘 옹호의 전사로서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했고 독일이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대립자, 파괴자가 아니라 동조자, 공헌자로서 인류의 자유와 번영에 기여할 길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 소개한 《토니오 크뢰거》와 《트리스탄》은 대표적인 초기 작품으로 특히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의 전 작품을 세계 독자와 역사라는 여과기에 걸친다면 마지막까지 남을 작품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일 만큼 유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예술성과 시민성의 대립은 결코 토마스 만의 전 작품을 통해서 일관된 테마는 아니다. 이것은 다만 초기 작품 — 《트리스탄》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작가 자신도 가장 애착심이 가는 작품이라고 했듯이 독자 여러분도, 특히 문학을 전공하겠다고 나선 젊은 학도는 자기를 ‘한스 한센’ 또는 그 반대로 ‘토니오’ 중 어느 타이프의 성격 소유자인가를 내심으로 비교하면서 문학에 대한 적성 여부를 다시 한 번 검토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 출발하는 거울로 삼아 본다면 작품의 가치나 흥미의 도가 한층 높아지리라고 본다. 《트리스탄》에서는 더욱 양극의 대립 대조가 뚜렷하여 흥미가 있으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를 미리 읽어 두기 바란다. 예비 지식 없이는 문맥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노파심에서 특히 바그너 작의 2막을 정독해 두기 바란다. 여러 구절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는 까닭에서이다. 《마리오와 마술사》는 작품 발표 직후, 당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해서 판매 금지가 되었을 만큼 파시즘을 폭로한 것이다. 토마스 만 자신이 후에 이 작품을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말했다. 그런 시점에서 본다면 작품도 이해가 되고 심리 묘사가 끝까지 독자의 긴장감을 이끌어감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토니오 크뢰거-세계단편소설걸작선10

<토니오 크뢰거-세계단편소설걸작선10> 사람이 모인 데서 물러갈 때는 허리를 굽히고 발걸음질 해서 문밖으로 나갔다. 또 의자는 다리를 쥐거나 마루바닥으로 끌어당겨 오지 않고 뒤에 기대는 데를 가볍게 들고 와서는 소리없이 내려놓는 것이다. 두 손을 배위에 포개놓고 혀로 입언저리를 핥으며 뻗치고 서 있지는 않았다. 만일에 누가 그렇게 한다면 ‘크나아크’씨는 꼭 같이 흉내를 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후 일생 동안 이러한 몸가짐에 대해 진절머리가 나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예절이었다. 헌데 ‘크나아크’씨의 무용에 이르러서는 아마 최고도로 무르익은 모양이었다. 깨끗이 치워놓은 살롱에서는 샨델리이의 가스불과 벽에 달린 난로 위의 촛불이 타고 있었다. 마루에는 활석(滑石)가루가 뿌려져 있고 제자들은 말없이 반원으로 둘러 서있었다. 한편 휘장 저쪽 옆방에서는 어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굵은 빌로오도를 씌운 의자에 앉아서, ‘크나아크’씨가 허리를 굽히고 프록코트 자락을 손가락 둘씩으로 꼬집어 쥐고선 통통 튀는 다리로 마주르카 일부 일부를 실제로 해보이는 것을, 자루 달린 안경을 눈에 대고 바라보고 있었다.

토마스 만 단편선

<토마스 만 단편선> 독일 휴머니즘의 부활을 지향하여 20세기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이룩한 토마스 만의 단편 세 편을 모았다.『토니오 크뢰거』와『트리스탄』은 대표적인 초기 작품으로 예술성과 시민성의 대립을 주제로 하고 있다. 만 자신이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부른 단편소설『마리오와 마술사』는 작품 발표 직수, 당시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해서 판매금지가 되었을 만큼 파시즘을 폭로한 작품이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의 대표작 초역 불멸의 천재 괴테에 관한 가장 완벽한 문학적 기록 독일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이 망명 시절에 펴낸 대표작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가 창비세계문학 55번으로 국내 초역되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바로 그 여성이자 이제는 60대 노부인이 된 로테가 1816년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를 방문해 재회한 실화를 바탕으로, 괴테의 인간상과 문학세계를 깊이 파고든다. 20세기 초, 독일 문학의 전통을 잇고 되짚으며 다시금 세계문학의 지평으로 끌어올린 토마스 만은 자신과 독일 문학사에 연원과도 같은 불멸의 기념비 괴테를 통해 예술과 예술가, 인간의 정신과 삶 같은 묵직한 주제들을 대가의 솜씨로 풀어낸다. 토마스 만은 괴테의 작품과 관련 사료 들을 촘촘하게 엮어넣으며 괴테를 탐구하는 동시에 자신의 문학적 주제들을 성찰하고 전진시키는 대담하고 야심찬 시도를 달성해낸다. 괴테와 토마스 만이라는 두 거대한 작가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한 까닭에 그동안 쉽사리 번역되지 못하던 작품을 독문학자이자 괴테 연구자인 임홍배 서울대 교수가 면밀한 독해와 수준 높은 번역으로 소개하고 있다.

뒤바뀐 몸과 머리

<뒤바뀐 몸과 머리 >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인 독일의 토마스 만의 작품 중에서 숨어 있는 보석인 《뒤바뀐 몸과 머리》가 번역되어 나왔다. 이번 번역본은 재미작가인 이태상 선생이 맡아 해박하고 구수한 문장으로 토마스 만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번역해 주었다. 《뒤바뀐 몸과 머리》는 인도설화를 토대로 쓴 소설로 사상의 그린벨트인 인도를 이해하는데 좋은 책이 될 것이다. 훌륭한 ‘머리’를 지닌 한 남자와 훌륭한 ‘몸’을 지닌 다른 남자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인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선택을 통해 인간의 완전함과 불완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완전함에 대한 욕망은 결국 비극을 불러내고 그 비극으로 표현되는 불완전함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인간의 수수께끼를 낳는다. 《뒤바뀐 몸과 머리》는 결국 우리 삶이란 완전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인데 완전함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이야말로 가혹한 운명이 아닐까하는 존재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Bashan and I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979)

『바산과 나』 영문판. 1918년에 출간된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 작자와 그의 활기차고 충성스러운 애견(愛犬)과의 관계를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The Magic Mountain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325)

<마의 산> 영문판. 1924년에 출간된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1907년 여름,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하고 이제 막 조선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함부르크의 조선소(造船所)에 취직할 예정인23세의 ‘한스 카스토르프’는 알프스 산중 다보스에 있는 베르크호프 요양원에서 결핵 치료를 받고 있는 사촌 ‘요아힘’을 만나러 간다. 3주일 예정으로 온 그는 오래 전에 앓았던 폐병이 재발하여 7년간이나 그곳에 머물게 되는데…

Death in Venice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322)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영문판. 1912년에 출간된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뮌헨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는 노(老)작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는 어느 날 갑자기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난다. 호텔에 머물던 중 그는 금발의 고수머리와 그리스풍의 미모(美貌)를 지닌 소년 ‘타지오’에게 매혹되어 깊이 빠져들게 되는데…

Royal Highness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221)

<대공 전하> 영문판. 1909년에 출간된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파산한 독일 공국의 왕자와 미국 백만장자의 딸과의 사랑과 결혼을 그린 작품이다.

토마스만 단편집 -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만 단편집 - 베니스에서의 죽음>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토마스만의 대표적 단편 <베니스에서의 죽음>·<행복으로의 의지> ·<트리스탄>·<루이스헨> 등을 수록한 단편집! 심리분석과 문화 비판의 기초 위에 예술가와 시민성, 삶과 죽음의 대립을 테마로 새로운 휴머니즘의 확립을 추구한 그의 정신적 의지가 적나라하게 나타난 기념비적 명작들!

원서발췌 마의 산

<원서발췌 마의 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그는 폐렴으로 요양원에서 치료 중이던 아내를 문병하러 간 3주간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 이 소설에서는 생과 예술, 삶과 정신 등과 같이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 본질인 이원성을 탐구하고 있다. 또 그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리얼리즘 이상의 리얼리즘’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원서의 약 10%를 발췌해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