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
평균평점
프라하의 묘지 (총2권)

<[세트] 프라하의 묘지 (총2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거짓의 메커니즘, 뻔한 거짓말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하며 권력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 온 움베르토 에코가 그러한 자신의 연구와 실천을 집약한 소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모함하는 것도, 문서를 날조하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시모니니라는 인물을 내세워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음모론이 어떻게 생산되고 퍼져 나가는지 그렸다. 이탈리아에서 출간 직후 65만 부가 팔렸고, 스페인어판은 초판만 200만 부를 인쇄하는 등 작품이 불러온 파장만큼이나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 그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편견으로 채우며 자라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증오하는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을, 예수회를, 프리메이슨을, 여자를 증오한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맛있는 음식들뿐. 어느 날 깨어난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과거를 떠올리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지나감에 따라 할아버지의 유산을 가로챘다고 의심되는 공증인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망설이지 않고 실행해 온 추악한 삶이 하나씩 재구성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을 기억상실에 빠뜨린 충격적인 사건에 다가가는데…

장미의 이름 (총2권)

<[세트] 장미의 이름 (총2권)> 모종의 임무를 띄고 14세기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잠입한 영국의 수도사 윌리엄을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 봉건제의 어둠 속에서 근대정신이 희미하게 비춰지던 14세기의 철학, 풍습, 문화, 건축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배경으로 근대의 산물인 합리적 추리를 전개해 나간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로도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그것이 누린 유례 없는 상업적 성공은 별도로 하고라도 프랑스의 메디치 상, 이탈리아의 스토레가 상 같은 권위 있는 문학상의 수상작이기도 하다. 에코의 이 책은 수많은 책들이 집약된 결정체라고 볼 수 있으며, 주변 지식이 많은 독자일수록 이 책이 암시하고 있는 책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가 있다. 영국의 수도사 바스커빌의 윌리엄이,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도착과 더불어 수도원에서는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수도원장으로부터 사건 해결을 의뢰받은 윌리엄은 그의 시자 아드소와 함께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 살인은 <요한의 묵시록>의 예언에 따라 진행되고, 윌리엄은 마지막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살인을 막을 수 없다. 사건은, 수도사들의 출입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미궁의 장서관>의 숨은 지배자인 맹인 호르헤 수도사의 흉계가 밝혀지면서 끝맺음된다.

바우돌리노 세트(전2권)

<바우돌리노 세트(전2권)> 12세기 중세 기독교 문명을 지배한 세계관을 뒤집어 보면서, 역사의 허구의 경계를 넘나든다. 주인공 바우돌리노가 구술하는 모험담을 따라 전개되는 이 소설의 묘미는 독자들에게 그 모험담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 창작인지 헷갈리게 하면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한다. 이미 소개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중 처음으로 이탈리아 어판을 번역 대본으로 삼은 작품이다. 역자 이현경 씨는 주 텍스트로 이탈리아 어판, 부 텍스트로 독일어판과 일일이 비교하며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저에 없는 각주를 100 여 개 달았으며, 유럽사에 낯선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소설과 관계된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여 부록으로 첨부했다. 바우돌리노는 에코의 고향 알레산드리아의 수호 성인이다. 이 성인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열린책들, 1999) 4부의 고향 회상에 실려 있다. 내용 이탈리아 농부의 아들이자,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의 양아들인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 출신 바우돌리노는 자신이 목숨을 구해 준 비잔틴 역사가 니케타스에게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명석한 머리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거짓말을 참말로 둘러대는 재주를 가진 바우돌리노는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프리드리히 황제에게 말해 그의 양자로 입양된다. 어떤 언어든지 듣기만 하면 금방 배우는 바우돌리노는 프리드리히 황제의 양아들로서 파리 대학에서 다방면에 걸친 교육을 받는다. 그곳에서 잃어버린 성배(聖杯)의 전설, 성의(聖衣) 이야기,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 요한 사제의 왕국 이야기를 접한다. 또 양아버지의 나라인 독일과 친아버지의 나라이자 자신의 고향인 알레산드리아가 영토 확장으로 대립하자 바우돌리노는 현명한 기지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친아버지의 임종을 맞을 당시 성배를 자신의 친아버지 갈리아우도의 나무 그릇으로 삼은 바우돌리노는 이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다. 아울러 요한 사제의 가짜 머리도 전문가의 도움으로 입수한다. 한편 한창 영토 넓히기에 정신없는 양아버지 프리드리히를 돕고 요한 사제의 땅을 찾자는 목표 아래 아버지와 친구들과 제3차 십자군 전쟁에 함께 출전하고 양아버지의 죽음을 맞는다. 양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심한 바우돌리노는 요한 사제의 땅을 찾으러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떠난다. 어둠만 있는 곳, 돌과 자갈이 흐르는 강 등 여러 어려움을 뚫고 요한 사제의 부제가 사는 곳에 도착하나 백인 훈 족과의 싸움에서 인질로 잡히고 커다란 새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요한 사제의 머리를 둘러싼 진실이 밝혀졌을 때 바우돌리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죽은 양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듣고 크게 놀란 바우돌리노는 기둥 위에서 현자처럼 살다가 잃어버린 자식과 친구의 소원을 풀어 주기 위해 다시 길 없는 길을 떠난다. 바우돌리노의 지나간 과거를 모두 들은 니케타스는 그의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생각에 잠긴다……. <바우돌리노>는 일종의 <포리스트 검프>와 같은 이야기다. 포리스트 검프의 아무 생각 없는 행동이 현대 미국사와 중첩되고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처럼, 천성적인 거짓말쟁이이자 <상상력의 인간>인 바우돌리노의 일거수 일투족은 유럽 중세사에 커다란 전기가 되곤 한다. 다만 바우돌리노는 자기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가 현실이 되고 역사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책 첫 장에서 바우돌리노가 꾸며 낸 성인의 예언(황제가 승리하리라는)은, 상대방의 전의를 상실케 함으로써 사실이 된다. 그는 시를 쓸 줄 모르는 친구가 시인 행세를 할 수 있게 시를 써주고, 이상한 책제목을 꾸며내서는 결국 그 책이 씌어지게 만들고, 자기 아버지의 유물에서 성배를 만들어 낸다. <장미의 이름>이 웃음에 대한 찬양이었다면, <바우돌리노>는 거짓말(허구)이 주는 풍요로움에 대한 찬양이다. {푸코의 진자}가 현실 감각의 상실에 대한 경고였다면, {바우돌리노}는 사실 못지 않게 허구에 의지하는 현실의 참모습을 밝혀 낸다. 물론 허구가 모든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바우돌리노는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민중의 아들이고, 상상력 못지 않게 건전한 상식(민중의 지혜)을 가진 인물이니까.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뷰에서 이 책을 쓸 때 '유식하기보다는 코믹하려 했고', <장미의 이름>이 지식인을 위한 책이었다면 <바우돌리노>는 대중을 위한 책이며, <장미의 이름>이 고상한 문체를 사용한다면 <바우돌리노>는 저급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이 책은 그의 어느 장편소설보다 접근하기가 쉽다. 그리고 주로 바우돌리노의 입을 통해 전개되는 서술은 꾸밈없고 명료하다. 물론 역자는 후기에서 그렇게 쉽지는 않고 , 저급하지도 않다고 하고 있지만. 소설 속의 지명과 등장 인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물은 실제 존재했거나 지금도 여전히 문화 유산으로 남아 있는 사실들을 기초로 한 것이 많다. 프리드리히 1세는 이름을 날린 황제이며, 바우돌리노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갈리아우도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로 동상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괴물 스키아푸스, 블레미에스, 키노케팔로스, 귀큰이들은 중세 우화집에 전해 내려 오는 주인공이며, 지명 <픈다페침>은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으로 괴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암석군을 모델로 삼았다. 이곳은 세계 자연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전날의 섬

<전날의 섬> 17세기 미지의 대륙을 찾는 향해가 한창이던 무렵을 배경으로 한 젊은 귀족이 경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떠났다가 난파하여 빈 배에 올라 벌이는 모험을 다룬 소설. 종교 시대를 마감하고 이성 시대를 맞이하는 유럽의 정신적 혼란과 대탐험 시기가 가져온 세계관의 변혁 속에서 새롭게 눈뜬 인간들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푸코의 진자 (상)

<푸코의 진자 (상)> “백과사전적 지식인의 블랙 코미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푸코의 진자』는 서구 정신사에 대한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이다.” (시카고 트리뷴) 에코의 가장 <백과사전적인> 소설! 광신과 음모론의 극한을 보여준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가 새 장정으로 재출간되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267~269권. 『푸코의 진자』는 에코의 두 번째 소설이자 <제2의 대표작>으로, 때로는 『장미의 이름』을 능가하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준비하기 위해 오컬트 관련서 천 여 권을 읽었다고 에코가 호언했듯이, 인간의 <의심을 멈추는 능력(credulity)>의 극한을 보여주는 오컬트의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장미의 이름』이 중세를 무대로 수도원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단 1주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푸코의 진자????는 현대를 무대로 십여 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1970년대 초부터 이 작품의 집필 시간인 1980년대 중반까지의 시대는 서구 좌파의 급격한 쇠락의 시기와 일치한다. ????푸코의 진자????에는 에코의 분신으로 보이는 주인공이 둘 등장하는데, 젊은 쪽인 카소봉은 대학 시절 캠퍼스를 지배했던 마르크스주의가 순식간에 사라진 데 대해 허망함을 느끼는 지식인으로, 나이 많은 쪽인 벨보는 어릴 적 겪은 2차 대전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다고 느끼는 실패한 작가 지망생으로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을 <에코의 숨은 자서전>으로 보기도 한다.) 이 둘은 황당무계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거의 천년 동안 광적인 추종자들을 낳은 <성전 기사단 음모론>에 흥미를 느끼고, 심심풀이 삼아 이를 좀 더 세련되게 재구성해 볼 생각을 한다. 나중에 그들은 이런 일에 장난이란 것은 없으며, 지식인이 광신을 가지고 벌이는 불장난은 자신의 파괴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푸코의 진자』는 『푸코의 추』라는 제목으로 1990년 처음 국내 출간되었다. A5 연장정(페이퍼백)으로, 두 권으로 분권되어 있었다. <에코 푸코 사이코>라는 카피(본래 이윤기 선생이 번역의 괴로움을 한탄하며 편집부 직원에게 한 말이라고 함)를 독서계에 유행시키며, 놀랍게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5년, 전면적인 번역 개정 작업 끝에 세 권짜리 개역판이 나왔다. 『장미의 이름』 개역판(1992)에 이은, 역자와 출판사의 거듭된 노력이었다. 각국의 번역판과 해석서들을 참조하며 오역을 바로잡고 4백여 개의 각주가 추가되었다. 2000년에 견장정(하드커버) 3권으로 3판이 출간되었고, 그 밖의 사소한 오류나 의문점이 지적되었을 경우 판을 거듭할 때마다 빠짐없이 수정되었다. 『푸코의 진자』는 『장미의 이름』 못지않은 열린책들의 대표 도서로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제0호

<제0호> 우리가 사랑한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미디어, 정치, 음모, 살인의 탁하고 음산한 세계를 그린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으로, 누가 거짓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거짓에 현혹되는지 그리고 그런 거짓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어떻게 몰락하는지 묻고 답하는 소설. “거짓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가짜 뉴스의 가면 벗기는 이번 소설은 한국사회에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위기의 저널리즘,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 파헤친 언론의 천태만상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권위 있는 기호학자이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 소설가 -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이탈리아에서만 25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미국, 프랑스, 스페인, 일본, 폴란드, 러시아 등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출간 또는 출간을 앞두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부터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존경받은 에코의 작품들은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로 오랜 시간 독자들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장미의 이름』은 4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3천만 부 이상이 팔렸고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또, 같은 작품으로 1981년 이탈리아 스트레가상을, 1982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을 받았다. 에코는 2016년 2월 19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2015년 출간된 그의 마지막 소설 『제0호』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저널리즘〉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공정성을 잃은 보도와 음모론적 역설(力說)의 난장, 뚜렷한 방향 없는 단말마의 포르노적 정보 공세. 일찍이『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 등에서 다뤘듯 음모론을 둘러싼 대중의 망상에 오랜 시간 흥미를 가져온 에코는 저널리즘의 편집증을 목록화해 펼쳐 보인다. 『프라하의 묘지』,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등을 번역한 바 있는 이세욱 역자는 작가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계산된 움베르토 에코의 문체를 한국어로 세심하게 옮겼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최신작,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이 이세욱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2004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이후, 주요 언어권별로 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문학적 인용들에 관한 주석 작업을 위한 사이트가 개설되고, 번역자를 선정하기 위한 오디션(전통적으로 미국, 프랑스, 독일의 에코 소설 번역은 한 사람이 고정적으로 맡아 왔다. 그러던 것이 영어판 번역자 윌리엄 위버가 고령으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차세대 영어권 에코 번역자를 선정하기 위한 오디션이 개최되었고 시인 출신의 제프리 브룩이 그 영예를 안았다. 제프리 브룩은 이 첫 번째 작업을 위해 번역문 한 장 한 장을 에코에게 보내 직접 자문을 얻었다고 한다)이 개최되는 등 숱한 화제를 낳았던 이 소설은 올해로 76세를 맞이하는 에코가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모두 쏟아 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에코는 <살아 있는 백과사전>이라는 자신의 별칭에 걸맞게 고전 문학에서부터 현대 대중소설까지 방대한 문학적 텍스트를 정교히 엮은 후 그 위에 살아 있는 이미지들을 섞고 자신의 추억들까지 불어넣고 있다. <삽화 소설>이라는 이색적인 장르 명을 달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히 글로 쓰인 것들을 그림으로 따라가는 <삽화가 들어 있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삽화와 소설이 결합된 형태라 볼 수 있는데, 작가가 직접 제작한 몽타주를 비롯하여 1940~1950년대 이탈리아를 생생하게 되살리게 해주는 다양한 이미지 자료들이 텍스트들과 병치되어 독특한 효과를 빚어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이미지들의 상당수가 에코 개인의 추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자료들이 작가의 개인 소장품이라는 점이다. 에코는 「라 레푸블리카」에 실린 기사(2004년 6월 10일자, 44면)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 아니고 그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여러 에세이를 통해 밝힌 전기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주인공 얌보의 모델은 작가 자신인 것이 분명하다. 밀라노의 셈피오네 공원이 건너다보이는 아파트, 어마어마한 장서(밀라노 아파트에 5천 권, 시골 별장에 3만 권), <히프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라는 책에 대한 애정, 헌책방에서 구했다는 파피니의 『고그』 초판본, 파쇼 시대의 작문, 곰돌이 안젤로의 추억, 아이스크림에 얽힌 추억, 1943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피난 시절 이야기, 알레산드리아의 안개(얌보는 그냥 <도시>라고만 하면서 도시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책에 실린 보르살리오 모자의 광고 포스터에 알레산드리아가 나와 있다), 알레산드리아의 기차역 신문 판매대에서 구한 소설 등 많은 요소가 에코의 전기적 사실과 일치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무대인 솔라라는 에코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니차 몬페라토와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네르발에게 발루아가 있고 프루스트에게 콩브레가 있다면, 에코에게는 솔라라가 있다. 일리에가 콩브레의 모델이었듯이, 니차 몬페라토는 솔라라의 모델이고, 얌보와 벨보(『푸코의 진자』의 주인공 벨보와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의 얌보는 어린 시절을 공유한다. 얌보가 솔라라 피난 시절에 겪은 이야기는 『푸코의 진자』에 나오는 벨보의 추억 -- 15장, 16장, 49장, 54장, 55장, 56장, 64장, 96장, 118장, 119장 -- 을 연상시킨다)가 그렇듯이 에코의 모든 추억은 이 솔라라에서 시작된다. 이처럼 에코의 다섯 번째 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은 <시대의 멘토>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일견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타이틀을 모두 획득한 전대미문의 작가 에코에게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세상에 대한 모든 백과사전적 기록들을 다 기억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그 상실된 기억의 조각들을 복원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 역시 에코 특유의 가공할 지적?문학적 파노라마를 특징으로 하지만, 그 공적인 기억에 스며든 개인의 역사, 인류가 만들어 낸 모든 아름다운 텍스트들 너머에서 빛을 내는 가슴속 깊은 사랑은 독자들로 하여금 에코라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과 대면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대면의 순간 독자들은 이전의 소설들에서 느꼈던 재미와 감동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의 영어판 번역자 제프리 브룩이 말했듯 이 소설은 무엇보다 시대의 지성 에코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 작품 줄거리 밀라노의 손꼽히는 고서적 전문가 잠바티스타 보도니(일명 얌보)는 1991년 4월 심장혈관 계통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역행성 기억 상실증이라는 후유증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증상은 아주 특별하다. 공적인 기억, 백과사전적인 기억은 온전한데,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억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의사가 이름을 물으면, 그는 자기 이름을 말하는 대신 이름과 관련된 세계 문학의 유명한 문장들을 떠올린다. 입을 열었다 하면 어디선가 읽은 문장들이 튀어나오고, 글을 쓸라치면 인용문들의 모자이크를 만들기가 십상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정보는 훤히 꿰고 있으면서도 외손자 알레산드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30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해온 아내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내 온 친구도 완전한 타인이다. 그는 심리학자인 아내의 도움을 받아 가며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기억의 동굴에는 안개만이 자욱하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족사를 재구성해 보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는 없다. 자기가 안개를 좋아하고 안개에 관한 글들을 많이 모아 놓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지만, 그 이유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본다거나 벼룩시장에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만화책과 맞닥뜨린다거나 하는 경우에 가슴속에서 <신비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뿐이다. 주인공 얌보는 이런 불꽃들이 기억의 안개 속을 비춰 주리라고 기대하면서, 아내의 권유에 따라 자기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솔라라의 시골집으로 간다. 솔라라는 얌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도시의 공습을 피해 이 시골 마을에서 2년 동안 살기도 했다. 이곳에는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아주 커다란 시골집이 있다. 헌책방을 운영하셨던 할아버지의 온갖 수집품들과 얌보의 소년 시절 물건들이 고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이 시골집에서, 특히 옛날의 책들이 잔뜩 쌓여 있는 다락방에서 사적인 기억을 복원하기 위한 얌보의 경이로운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장난감, 판화, 만화, 동화, 통속 모험소설, 고전소설, 대중가요, 교과서, 파시스트들의 정치 선전 등 온갖 것들을 망라하여 현대 이탈리아의 가장 파란만장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다시 그려 나가는 흥미진진한 여행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복원된 과거는 <종이로 된 기억>일 뿐 가슴으로 느끼는 생생한 추억이 아니다. 신비한 불꽃들이 가슴속에서 숱하게 일렁거리고, <곰돌이 안젤로>, <벼랑골>, <피페토> 같은 말들이 수수께끼처럼 뇌리를 스쳐 가지만, 얌보의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자기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어떤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 한 여학생을 열렬하게 짝사랑했다는 사실이 간접적으로 확인되기는 했지만,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들은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다. 솔라라에서는 더 찾아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곳을 떠나던 날, 얌보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물건들이 감춰져 있던 <지성소>를 마지막으로 둘러보다가 놀라운 보물을 발견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이로써 코마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이한 상태에서, 진정한 <노스토이(귀향)>, 진정한 오디세이아가 시작된다. 앞에서 제시되었던 모든 수수께끼가 하나씩 풀려 나가고, 작가가 꼭꼭 감춰 두었던 빨치산 이야기와 첫사랑 이야기가 진한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기며 펼쳐진다. ■ 언론 서평 컴퓨터 시대의 총체적인 소설. 한 권의 책에 한 시대의 목소리와 꿈, 색깔, 음악, 기호를 모두 담으려 한 에코의 가장 야심만만하고 가장 교육적인 도전. 천재적인 기호학자, 탐욕스런 애서가, 그악스런 독서광, 『장미의 이름』을 비롯한 네 권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인터넷 시대에 피해 갈 수 없는 새로운 길을 작가들에게 제시하는 정교한 소설. --- 「코리에레 델라 세라」 학문적인 요소들과 유머, 역사적인 사실과 수수께끼를 혼융하는 에코의 절묘한 솜씨가 매력적이다. 특히 소설 전체를 암암리에 관통하는 이미지에 관한 성찰은 이 소설의 가장 특별한 측면이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페이지 곳곳에 재현되어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박학다식함은 선택된 이미지들의 역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과 시각적인 효용성을 보장한다. 정치 선전에서 식민지 시대의 인종 차별주의적인 그림, 만화, 스타들의 사진, 대중가요 악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료가 이미지와 그것이 주체성의 형성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르 몽드」 한 세대의 자서전. 에코는 자기와 자기 세대가 현대사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 「ZDF」 에코가 소설가로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은 복잡한 관념들을 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 그런 관념들과 자기가 연구한 문헌들을 가지고 플롯을 무겁게 만들기보다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능력에서 연유한다. 에코는 교양의 수준이 낮은 문화 현상을 다룰 때도 수준 높은 문화적 성취를 다룰 때만큼이나 진지하다. --- 「타임」 ■ 관련 기사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가 호메로스, 인터넷, 만화책, 그리고 여성 구두를 말하다 - 『빌리지 보이스』 2005년 6월 28일자 움베르토 에코는 열정적인 인터넷 유저이긴 하지만 인터넷광은 아니다. <나는 한 번도 MP3 파일을 다운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이 이탈리아 기호학자는 말한다. 「나는 밤새도록 무엇에 취한 듯 멍하게 인터넷을 하지는 않아요.」 에코는 인터넷 이용 시간의 대부분을 e-mail과 날씨를 확인하는 데 사용한다. 저녁에는 배경 음악을 깔아 놓기 위해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에 접속을 하고, 가끔은 인터넷을 통해 유년 시절에 유행했던 만화책이나 1970년대의 비디오 게임 같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에코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인터넷을 도서관처럼 활용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인터넷은 도서관처럼 들락날락하는 곳이죠.」 비록 많은 사람들이 움베르토 에코를 중세를 무대로 한 소설 『장미의 이름』과 『바우돌리노』의 저자로만 알고 있긴 하지만, 에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이 일흔셋의 에코가 온라인 매체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도로 복잡한 뇌 속에 엉켜 있는 수많은 기억들을 풀어내는 과정을 보여 주는 그의 최신작,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은 하이퍼텍스트적인 소설임에 틀림없다. 고서적상 얌보는 잠에서 깨어나 그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는 자신의 아내도 기억할 수 없고 고향 밀라노로 가는 길도 잊어 버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렇듯이 그가 읽었던 책들과 문학적인 문구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친구와 함께 간식을 먹다가 이런 말을 내뱉는다. 「쌉쌉한 아몬드의 독특한 냄새(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 주겠어요?」 에코의 세계에서 책들은 한 방향으로 시대를 가로질러 가는 외딴 섬이 아니다. 책들은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체계)을 설명해 주고 외부 세계로 시스템을 확장해 나가는 인터넷 같은 존재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때때로 셀 수 없는 참고 자료들을 거치게 될 때도 있다. <호메로스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하이퍼텍스트적으로 책을 읽어 왔습니다>라고 에코는 말한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때때로 내용을 건너뛰기도 합니다. 특히 재독을 할 때 말이죠. 성서를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그 책을 전부 읽지 않고 이곳저곳 퍼져 있는 다양한 인용구들을 띄엄띄엄 참고하며 인용구들을 연결하곤 합니다.」 에코의 소설은 가위로 오려 낸 듯한 텍스트 조각들(혹은 덩어리)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또 하나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그의 저서 『푸코의 진자』에서는 문학적인 요소들과 학문적인 요소들이 다양한 역사적 음모론과 연결되어 거대한 음모론으로 변형되고 있다. 수많은 텍스트들이 슈퍼컴퓨터에 누적되고 연결되어 인간의 이성의 힘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이론들이 탄생하게 된다(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푸코의 진자』의 난해함에 혼란을 겪었다).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신비한 불꽃>은 수많은 난제들을 드러낸다. 소설은 얌보의 엉망이 된 시스템(기억)의 잔해를 찾아 헤매는 것에서 시작된다.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들로 인해 정신적 아노미를 겪은 그는 자신이 유년기를 보냈던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그곳에서 유년 시절 읽었던 소설과 만화책을 비롯한 수많은 자료를 접하게 된다. 두 번째 부분은 주인공이 다소 유치하기도 한 슈퍼히어로들과 고통받는 여자들, 그리고 무솔리니 시대의 서적들과 만화(이 중 하나가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들에 대해 천착하는 부분이다. 마지막 3부는 얌보가 다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속에서 유년 시절 기억을 되살려 현재와 연결시키는 과정을 다룬다. 「당연한 일이지만, 만약 당신이 기억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다면 당신은 당신을 협박하는 프루스트의 악령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신비한 불꽃>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프루스트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자기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내 소설의 주인공은 개인적인 기억이나 마들렌 같은 기억의 촉발제가 없어요. 그는 공적이고 무기질의 기억들을 활용합니다.」 에코는 이 <무기질의 기억mineral memory>들을 작품 속에서 책 표지, 영화 포스터와 정치 선전물 등의 삽화들을 직접 삽입해 보여 준다. 「그 이미지 자료들은 내가 이미 글로 표현한 내용을 그림으로 다시 옮겨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에는 어떤 추가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다락방에서 찾은 수만 가지 자료들이 주는 느낌을 그것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죠.」 에코는 <신비한 불꽃>을 통해 모든 텍스트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인터넷(혹은 전자 매체)의 특성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다(실제로 그의 최근작 『미의 역사』는 미국에서 책이 아닌 CD-ROM으로 먼저 출시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책들이 전자 매체로 전환되는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는 즉답을 피했다.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회의적입니다. 소설의 진정한 목적은 독자들에게 운명은 바뀔 수 없다는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자 매체에서는 그것을 독자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요. 그러나 소설은 독자들에게 삶은 바뀔 수 없다는 언질을 하죠. 그것이 소설이 가진 힘입니다.」 게다가 실용주의적 관점의 소유자인 이 소설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책은 우리가 전기가 없어도 즐길 수 있어요.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거나 심지어 사랑을 나눌 때도 즐길 수 있는 매체입니다.」 <신비한 불꽃>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매체를 향한 에코의 두 가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얌보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변칙적인 지식 파편들이 그의 공허한 아이덴티티를 채워 가는 위키피디아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하지만 기억들은 또한 두꺼운 고치처럼 얌보를 에워싸고, 이로 인해 얌보는 외부와의 인간적 접촉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에코는 인터넷을 양날의 검으로 간주한다. 「만약 우리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존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상호작용을 위한 보편적 기반을 마련하게 해줄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서만 정보를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남들과는 전혀 다른, 고립된 나만의 백과사전을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에코는 그가 쓴 소설 중 가장 내면 탐구적 성격을 지닌 <신비한 불꽃>에 대해 독특한 평을 했다. 사실 <신비한 불꽃>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소설, 혹은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해 에코는 <신비한 불꽃>은 철저하게 자신의 세대의 시각을 녹여낸 소설이라고 털어놓는다. 「이 책은 내 또래의 이탈리아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30년 전 뉴욕을 방문했을 때, 나는 <스페인어를 쓰는 뚱뚱한 여성들을 위한 신발>이라는 간판을 붙인 가게를 본 적이 있어요. 스페인어를 쓰는 뚱뚱한 여성들만을 위한 특화된 시장이 있다는 얘기죠! 제 소설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코는 이 소설이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며 의기양양한 어투로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트로이를 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호메로스를 통해 우리는 마치 그곳에 가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메로스도 가능한데 나라고 안 될까요?」 에코의 주옥 같은 저서들이 온라인 매체보다 생명력이 길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썼다. <책은 발명된 도구로서 너무나 완벽하게 때문에 더 이상 개선될 여지가 없다. 망치, 칼, 숟가락, 그리고 가위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코는 이따금 신기술을 즐긴다. 20년 전, 그는 애플사의 매킨토시 운영 체제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DOS 체제를 가톨릭과 개신교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인터넷은 어떻게 정의할까? 「우리는 인터넷을 신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곡』에서 단테는 신을 우주의 모든 지혜를 담고 있는 하나의 덩어리로 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혜와 지식들을 담고 있는 존재였던 것이죠. 그에 비해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담고 있되 일종의 지식 과다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은 신이다, 하지만 아주 멍청한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