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판 조웅전> ≪조웅전(됴웅젼)≫은 군담소설 즉 ‘전쟁 이야기’다. 이본 역시 많다. ≪조웅전≫이 완판·경판·안성판에 모두 들어 있고, 또 많은 이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적으로 이 작품이 그만큼 인기가 있었고, 많이 읽혀졌다는 근거가 된다. 현재까지 조사된 이본은 판각본 경판 3종, 완판 약 15종, 안성판 1종, 필사본 약 50여 종, 활판본 약 10여 종으로, 도합 80여 종을 헤아린다. ≪조웅전≫의 작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난삽한 고사성어·한문구·삽입 가요들의 빈번한 사용은 이 작품의 작자의 계층에 대하여 어느 정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웅전≫의 작자는 한문 식자층으로 가상된다. 여기서 좀 더 추측을 진전시켜, 자유연애·육정적(肉情的)인 표현 등 전통적인 유교 이념에 배치되는 내용들이나, 전편에 걸쳐 독자의 흥미를 돋우려 했던 작가의 의식적인 배려 등으로 미루어 본다면, ≪조웅전≫은 소설 작법의 기교가 어느 정도 발달한 시기에 상당히 전문적인 작가에 의해서 창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조웅전≫은 작자뿐만 아니라 창작 연대도 불확실하다. ≪조웅전≫은 이태조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증오한 어떤 사람이 이를 풍자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즉 이태조를 이두병에, 이방원을 이관에 비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설사 이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조웅전≫의 창작 연대를 추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일찍이 조윤제는 ≪조웅전≫을 비롯한 군담소설들이 임·병 양란 후에 창작되었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추정 역시 너무나 막연하다. 그래도 여러 가지 상황을 판단한 결과, ≪조웅전≫의 창작 연대가 기껏해야 지금으로부터 2세기 이상을 더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근거는 고전소설 제명의 구체적 언급으로 자주 거론되는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추재집≫이나 소전기오랑(小田幾五郞)의 ≪상서기문≫(1794)에 ≪조웅전≫의 이름이 실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두 저작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시에 없었다는 단정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저작들에 ≪소대성전≫·≪설인귀전≫·≪장풍운전≫·≪장박전≫(≪장백전≫?) 등이 인용되고 있는 터에, ≪조웅전≫과 같은 인기 소설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 ≪조웅전≫의 내용상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의 탄생에서 기자(祈子) 정성이나 태몽이라든가 천상인의 하강과 같은 모티브가 전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대부분의 군담소설들이 발단부에서 하나의 투식으로 기자·태몽이 제시되고, 주인공의 신분이 고귀하고 그 능력이 초월적임을 예시하기 위하여, 천상 선관 또는 ‘아무 별[某星]’의 적강(謫降)을 보이는 데 대해, ≪조웅전≫에서는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배려로 보인다. 즉 작가는 조웅의 비범한 능력이 선천적인 것이 아닌 후천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군담의 묘사에 있어서도 다른 군담소설에서와 같은 바람과 비를 부르거나[呼風喚雨] 범과 표범으로 변하는[作虎作豹] 것과 같은 도술전이 거의 거세되어 있어 덜 환상적이다.
<명사십리> ≪명사십리(明沙十里)≫는 개화기 때 간행된 구활자본 고전소설이다. 1918년 간행된 이래 수차례 재간행되었고, 작품 주인공의 이름으로 제목을 삼은 필사본 ≪장유성전(張遺星傳)≫도 전해진다. 필사본 ≪장유성전≫은 필사기로 보아 ≪명사십리≫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명사십리≫는 후반부에 군담이 비중 있게 다루어져서 군담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 전체에 걸쳐 시은(施恩)과 보은(報恩)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윤리 소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찍이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에서 ≪명사십리≫를 언급하면서 영·정조 때 작품으로까지 추정한 바 있다. 하지만 현전하는 ≪명사십리≫ 중에서 구활자본으로 간행된 1918년 이전의 것으로 볼 수 있는 이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작품 속에 ‘전기 광선’이란 단어를 발견할 수 있는데, 전기는 고종 때 경복궁에 최초로 사용되었으므로 영·정조 때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신소설과 고전소설이 함께 간행되던 20세기 초에 지어진 작품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명사십리≫와 관련해 주목할 작품들이 있다. 바로 ≪보심록(報心錄)≫과 ≪금낭이산(錦囊二山)≫이다. 이 두 작품의 내용은 ≪명사십리≫와 흡사하다. ≪보심록≫과 ≪금낭이산≫ 두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간행되었다고 알려졌으며, 등장인물의 이름도 거의 같다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은 영향 관계에 있었으리라 보인다. 이에 비한다면 ≪명사십리≫는 이 두 작품보다 몇 년 후에 간행되었으며 등장인물의 이름도 두 작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체적인 내용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몇 군데 확연한 차이가 있기도 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세 작품을 대상으로 영향 관계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논의에서 다루어진 중요 내용을 정리하면, ≪명사십리≫가 가장 고전소설답지만 가장 늦게 간행되었고, ≪금낭이산≫은 가장 먼저 간행되었지만 축약이나 생략처럼 보이는 서술상의 문제와 신소설의 기법을 받아들인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보심록≫은 ≪금낭이산≫보다 몇 개월 후에 간행되었고 분량은 늘어났지만 ≪금낭이산≫을 저본으로 내용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과 현전하는 이본만으로는 세 작품의 영향 관계를 명백히 밝히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세 작품의 내용이 유사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 관계가 있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20세기 들어 등장한 ≪명사십리≫와 ≪보심록≫, ≪금낭이산≫은 비슷한 내용이면서도 여러 차례 다시 인쇄되었던 작품이었다. 어려운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받은 은혜를 갚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은혜를 베푸는 것도 어렵고, 받은 은혜를 갚는 것도 쉽지가 않다. 시은과 보은을 내용으로 한 세 작품이 여러 차례 인쇄되었던 것은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를 잘 보여 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러면서도 작품의 후반부에 군담을 등장시킴으로써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들이 널리 읽혀진 것을 통해 고전소설이, 혹은 고전소설의 틀을 갖춘 작품들이 20세기 초반까지도 널리 유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만득 박금단전> ≪박만득 박금단전≫은 홍윤표 선생(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 개인 소장본으로, 현재까지 다른 이본을 찾아볼 수 없는 유일본 고전소설이다. 작품 분량은 1책, 매 쪽 12줄, 총 60쪽(30장)으로 작품 말미에 무술년(戊戌年) 2월 21일에 필사를 마쳤다는 기록이 있으나, 필사자나 창작자를 추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단서는 찾아볼 수 없다. 실제 작품의 상태를 보면 얇은 붓으로 흘려 쓴 한글로 필사되어 있으며, 종이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글자를 알아보기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 작품은 박만득ㆍ박금단 두 남매가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 노비들의 모반으로 집을 도망 나와 서로 헤어졌으나,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하여 남매가 상봉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서사적 골격은 ‘노비들이 반란을 일으켜 위기에 처한 주인(양반 계층)이 집을 떠나 갖은 고초를 겪다가 마침내 고난을 극복하고 노비들을 처벌’하는 추노담(推奴談, 도망간 노비를 찾는 이야기)이다. 이와 비슷한 서사적 구성을 기반으로 창작된 고전소설을 일컬어 ‘추노계 소설’이라 하는데, 즉 ‘도망한 노비의 행적을 둘러싸고 주인과 노비 사이의 갈등, 대립, 해결 양상이 서사 전개의 중심축을 이루는 소설’을 의미한다. 추노계 소설은 조선 중기 이후 신분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계층 간 갈등을 문학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연구된 추노계 소설 주인공은 남성 주인공 한 명만 등장한다. 그러나 ≪박만득 박금단전≫은 박만득이란 남주인공뿐 아니라, 박금단이라는 여주인공의 삶 역시 동등하게 조명한다. 작품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듯, 서사의 골격은 추노담이지만,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두 남매의 눈물겨운 우애임을 깨달을 수 있다. 노비들을 피해 집을 나와 산속으로 달아나는 장면을 보면, 겨우 부모 품을 벗어난 남자아이가 어린 여동생을 업고 추운 겨울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깊은 산을 방황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더욱이 금단이가 혼자 남아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오빠에게, ‘자신을 두고 도망가라’며 흐느끼는 대목에서는 울컥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 남매는 열 살 남짓한 나이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천지 사방으로 방황한다. 남주인공 박만득의 인생 노정을 살펴보면 ‘경주-김해 거제-평양 연광정-충주 탄금대-한양-거제-경주-과천-경주’로 나타나며, 박금단 또한 오빠와 경주에서 헤어진 후 몇 년 동안 방황하며 갖은 고초를 겪다 경기도 과천까지 가게 되는 기나긴 여정을 보여 준다. 이처럼 먼 길을 돌아 몇 번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오빠와 여동생이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결같이 절절하다. ≪박만득 박금단전≫에는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애틋한 가족 서사가 존재한다. 이는 이 작품이 백여 년의 시간을 건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지친 마음에 특별한 울림을 전해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박만득 박금단전≫은 낭독의 참맛을 알려 주는 고전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창작자는 낭독의 리듬감을 염두에 두고 문장을 집필하였다. 따라서 소리 내어 읽어 본다면, 마치 판소리 사설이나 잡가의 한 대목을 읽는 느낌이 들 것이다. 등장인물이 신세를 한탄하거나 박만득이 죽은 아내를 위해 제문을 읊는 부분에서는 그 운율감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특징은 독자로 하여금 읽는 맛과 함께 작품의 내용을 기억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계우사/이춘풍전>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인 <무숙이타령>의 사설 <계우사>와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함께 묶은 책이다. <계우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기방 문화의 일면을 적확하게 구현한다. <이춘풍전>은 어리석은 남편의 모습과 현명한 처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우부현녀담을 변형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두 작품을 통해 판소리 문학만이 가지는 독특한 문체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계우사>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한 레퍼토리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사설의 내용이 전하지는 않았는데, 1992년 김종철 교수에 의해 <계우사>가 그 사설 정착본인 것이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여기 소개하는 작품은 김종철 교수가 발굴한 <계우사>를 현대어로 옮긴 것이다. <계우사>는 필사 연대를 1890년으로 보고 있고, 이 판소리를 불렀다는 명창도 19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판소리 중 가장 늦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계우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기방 문화의 일면을 적확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따라서 여느 판소리처럼 근원 설화를 중심으로 적층적 형성을 이룩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비교적 후대에 서울의 향락 문화나 소비문화를 반영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춘풍전> 판소리로 불렸다는 기록은 없으나, 문체나 사설 면에서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판소리계 소설이다. 여러 종의 이본이 있으나, 시기가 앞서면서도 내용이 풍부한 서울대 가람문고본을 원본으로 했다. <이춘풍전>은 조선 시대 말기에 이루어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구성 방식, 서술 시점, 공식적 표현구, 문체 및 서사 진행 투어 등에서 판소리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상품경제의 발달과 자본의 발달 등 근대화 이행기에 놓인 당대의 세태를 재물을 탕진하는 한량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계우사>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춘풍전>은 문제적 인간의 길들이기 방식이라는 공통된 작품 내적 구조를 견지하면서도 <계우사>와 달리 작품 전면에 춘풍의 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이춘풍전>은 탕아, 기생, 처의 삼각 구도 속에서 처를 주동자로 내세우고 기생 추월을 대결적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진병육국평화 상권 중권 하권> 전상평화 : (1)중국 원나라 초기에 건안의 우 씨(虞氏)가 펴낸 통속 사서. ≪무왕벌주서(武王伐紂書)≫, ≪악의도제칠국춘추후집(樂毅圖齊七國春秋後集)≫, ≪진병육국평화(秦倂六國平話)≫, ≪전한서속집(前漢書續集)≫, ≪평화삼국지(平話三國志)≫를 모아 엮었다. 3권. 예시문 話說始皇登殿, 集文武大臣。 각설하고 시황제가 대전에 올라 문무대신을 모았다. 班部中撞出王翦, 蒙恬, 蒙毅, 階前奏道:「臣翦等, 攻滅荊楚, 取得楚王首級, 十車金寶, 獻上我王。」 반열에 왕전, 몽염, 몽의가 나와 섬돌앞에 상주했다. “신 왕전등은 초나라를 없애고 초나라 왕 수급을 취하고 10수레 금은보화를 우리 왕에게 바쳤습니다.” 始皇大喜道:「卿用兵如神, 朕知卿此行果能滅楚, 雪李信之恥。」 진시황이 매우 기뻐서 말했다. “경은 신처럼 용병하며 짐은 경이 이번 행차에 과연 초나라를 없애고 이신의 수치를 씻어냄을 안다. 帝設宴待王翦, 蒙恬, 蒙毅等, 各賞千金。 진시황제는 잔치를 열어서 왕전, 몽염, 몽의등을 우대하며 각자 천금을 상으로 내렸다. 遂改楚邦爲荊州。 곧 초나라를 형주로 바꾸었다. 話說秦十五年八月初四日, 始皇問諸大臣曰:「燕雖進貢, 終未歸一, 朕欲滅之如何?」 각설하고 진나라 15년 8월 초사흘에 진시황은 여러 대신에게 물었다. “연나라가 비록 공물을 마치나 종내 한결같지 않으니 짐이 연나라를 없애려는데 어떠하는가?” 李斯奏曰:「夫以秦國兵强將勇, 滅燕如反掌耳。臣擧王賁爲將伐燕。」 이사가 상주하였다. “진나라 병사가 강하고 장수가 용맹하니 연나라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없앨수 있습니다. 신은 왕분을 연나라 정벌 대장으로 천거합니다.” 帝問王賁曰:「卿意下若何?」 진시황이 왕분에게 물었다. “경의 뜻은 어떠한가?” 王賁奏帝:「乞李信爲先鋒, 蒙毅爲副將, 乞兵二十萬。」 왕분이 시황제에게 상주했다. “이신을 선봉으로 하고 몽의를 부장으로 하니 병사 20만을 애걸합니다.” 帝依奏。 시황제는 상주대로 하게 했다.
<옥단춘전> 옥단춘전(玉丹春傳),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작자 ·연대 미상의 애정소설 조선 숙종 때를 배경으로 주인공 이혈룡과 기녀 옥단춘이 고난을 극복하고 서로 가연을 맺는다는 내용이다. 이혈룡과 김진희는 죽마고우 사이로 누구든 출세하면 서로 돕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과거를 못 본 이혈룡이 거지꼴로 평안감사가 된 김진희를 찾아가자 김진희는 이혈룡을 홀대하고 사람을 시켜 대동강에서 목숨을 빼앗으려 한다. 이 때, 평양 기녀 옥단춘이 그를 구출하고 서로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가연을 맺는다. 옥단춘의 권고로 다시 과거에 응시한 이혈룡은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된다. 이혈룡은 신분을 숨기고 비루한 모습으로 옥단춘을 찾지만 옥단춘은 실망하지 않고 그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이혈룡과 옥단춘은 평안감사 김진희의 연회에 참석 김진희의 악행을 알리고 파직시킨다. 줄거리가 춘향전과 내용이 유사하다.
<숙영전> 숙영전(淑英傳), 조선 후기 작자, 연대 미상의 고대소설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이라고도 한다. 한문소설 《재생연(再生緣)》을 번역했다. 도선(道仙) 사상에 입각한 설화적 형식을 취한 낭만적인 소설이다. 이본(異本)으로 《옥련동기(玉蓮洞記)》가 있다. 세종 때 안동에 사는 백선군(白仙君)이 꿈에 본 선녀 숙영을 잊지 못해 병이 난다. 그러나 결국 옥련동에서 두 사람은 만나게 되고 부부의 가연을 맺는다. 이것을 시기한 시녀 매월(梅月)은 백선군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간 사이에 숙영을 모함하여 자살하게 만든다. 그러나 장원급제한 백선군이 돌아와 선약으로 숙영을 소생시키고 행복하게 살다가 승천하여 선인이 된다.
<숙향전> 숙향전은 17세기 말엽에 창작된 한국 고전소설입니다. 남주인공 ‘이선’과 여주인공 ‘김숙향’을 통해, 가족 이산, 남녀 간의 사랑과 그 존립 기반으로서의 상호 존중, 인물의 삶에 관여하는 운명론과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 이계(異界) 체험을 통한 자기정체성의 확인 등 삶의 도정에서 누구나 마주하는 여러 문제의식을, 때로는 흥미 있게 때로는 아프고 진지하게 묘파해 낸 작품입니다. 춘향전 심청전 등에 자주 등장하는 이 소설은 남녀간의 사랑을 판타지스럽게 풀어낸 한국형 러브 판타지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딱딱한 문체를 최대한 부르럽게 풀어내어 현재에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이 소설은 기존 고전소설의 다양한 점을 하나로 묶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와 같습니다.
<박흥보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로 작자미상의 소설입니다. 신재효가 내용을 수정하였고 다른 판소리보다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입니다. 욕심 많고 심술궂은 형 놀보(놀부)와 마음씨 착하고 우애 있는 아우 흥보(흥부) 사이의 갈등이 주된 내용인데, 놀보는 부자로 살면서 아우를 내쫓아 모든 재산을 독차지 합니다. 그리고 형님에게 쫓겨난 흥보는 갖은 고생을 하지요. 어느날 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자 이듬해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었고 그 박씨를 심었더니, 열린 박 속에서 온갖 보물이 나와 흥보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놀보는 더 큰 부자가 되어 보겠다고 억지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후 고쳐줍니다. 그러자 제비는 놀보에게도 박씨를 물어다 주는데 이 박씨는 대박일까요? 쪽박일까요?
<배비장전> 절대 여색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부모님과 부인에게 큰소리 치던 배 비장은 제주도로 부임가서 애랑이라는 기생에게 홀려서 앞니까지 다 빼 주는 관리를 보고 비웃습니다. 그리고 허세로 가득 찬 배 비장은 자신이 여색에 빠지나 안 빠지나 방자와 내기를 하게됩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성인군자형 허세로 가득찬 배 비장 입장에서는 이기기 힘든 내기였고 거기에 더해 내기의 당사자인 방자가 처음부터 애랑과 짜고는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주도하면서 방자가 상관인 배비장을 골탕먹인다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은 배 비장이 위선을 떠는 모습과 그러한 위선을 떨다가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처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시대 관료들의 비리와 위선을 풍자했습니다.
<왕경룡전>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거상에게 맡겨둔 큰돈을 받아오던 경룡은 서주(徐州)에서 기생 옥단(玉檀)을 사귀게 되면서 수만금을 탕진합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옥단을 데리고 있던 기모는 경룡을 쫓아내지요. 그리고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광대가 된 경룡은 갖은 고생을 합니다. 그러다 우연이 만난 주모의 도움으로 옥단을 다시 만나게 된 경룡은 옥단의 지혜로 기모를 속이고 잃었던 재산을 다시 되찾게 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상인 조모(趙某)에게 옥단을 빼앗겨 버린 경룡... 이렇게 옥단을 잃은 경룡은 그 길로 본가에 돌아갑니다. 본가에서 부친으로부터 엄한 훈계를 받은 다음, 다시 학업에 열중해 장원급제를 하고 암행어사가 된 경룡에게 들려온 옥단의 하옥 소식... 과연 옥단과 경룡은 어떻게 될까요?
<장끼전>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추운 겨울날, 장끼와 까투리가 아홉 아들, 열두 딸과 같이 길을 가다가 콩을 발견합니다. 까투리는 불안하다며 남편을 말렸지만, 장끼는 자기가 좋은 꿈을 꿨다고 말하며 콩을 먹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당연히 그 콩은 사냥꾼이 뿌려둔 미끼였고, 결국 장끼는 보기 좋게 덫에 걸려서 사냥꾼의 반찬이 되었습니다. 장끼는 죽으면서 정절을 지켜서 수절하라"는 말을 남겼지만, 까투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아내의 헌신적인 충고를 궤변과 자기합리화로 무시하다가 결국에는 권위를 내세우는 장끼의 비참한 최후, 그리고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재가하는 까투리의 모습으로 박씨전과 더불어 한국 페미니즘 소설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콩쥐팥쥐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신데렐라형의 설화입니다. 이러한 소재를 소설화하였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사또나 세자를 등장시키고 신발을 잃어 주인을 찾고 흉계에 연못에 빠졌으나 소(구슬)가 나타나서 사건전개의 단서가 되는 점, 결말에 가서 팥쥐와 계모에 대하여 철저한 응징을 가하는 점이 비슷한 유형입니다. 특히 설화를 소재로 하면서도 설화와 구별된 이 소설은 신데렐라계 설화의 대부분이 주인공의 혼인으로 끝나는 데 비하여, 소설에서는 혼인 이후의 사건을 더 흥미롭게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가치는 악한 인간에 대한 응징과 선한 사람에게 보상을 주는 권선징악의 참다운 모습에 최대한 효과를 높여 단순한 설화를 윤리적인 주제로 재창조하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5차원 전쟁(THE 5th DIMENSION WAR)> 환상과 신비, 네 명의 어린이가 5차원기차를 타고 우주와 차원을 넘나들며 상상을 초월하는 신비의 세상에서 악신과 전쟁을 치루며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 광대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생생한 사실적 묘사와 빠른 이야기 전개로 책을 읽는 내내 독자 또한 주인공이 되어 상상 속에 빠져들어 신비의 차원을 누비며 모험을 즐기게 한다. 각각 다른 배경과 사건의 20장 에피소드로 나누어진 563쪽의 풍부한 읽을거리는 아슬아슬 긴박감과 짜릿한 통쾌함, 오싹하는 공포, 비통과 분노, 그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신비로운 환상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상에 소개되었거나 비슷하게 언급된 적도 없는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판타지 이야기이다.
<인연> 고운 분홍빛 아침노을이 열어 놓은 파란 하늘 눈부신 태양. 싱그러운 초록 들녘의 반짝이는 아침이슬, 미풍에 실려 흩어지는 월계꽃 향기. 이렇게 시작된 화사한 5월의 인연… 늦가을 비에 젖어 뚝!뚝! 눈물을 흘리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찬바람이 쓸고 우중충 개어 저무는 하늘 가득 붉게 타는 저녁노을이 서글프게 울던 날, 절절한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 11월의 인연… 주인 잃은 일기장에 메말라 붙어 있는 가슴 시린 어느 이야기. * 글로 쓰지 않고,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맺어지는 약속이 인연이지요. -본문 중에서- * 산하에 버려진 사랑의 전설들을, 골골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아릿아릿 가슴속에 모아 두었다가 남풍 불어 너의 향기 실려 오면 찰랑찰랑 하얀 봉투에 가득 담아 시 없이 때 없이 보내 줄게. ― 본문 중에서 * 동하는 오빠의 그림자예요. 언제든지 오빠의 손이 닿을 수 있도록 한 걸음 뒤에서 사박사박 따를게요. ― 본문 중에서 * 저 노을은 하늘나라에서 보내온 당신의 편지입니다. 사나운 이 세상을 떠나 당신의 세상에 편안하게 이르셨다고 그리고 그 세상이 아름답다고 보내 주신 편지입니다. ― 본문 중에서
<토별산수록 천줄읽기>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이 책은 김동욱 편, ≪나손본 필사본 고소설 자료 총서≫ 75권(보경문화사, 1994)에 영인된 김동욱 소장의 국문필사본 <토별산슈록>을 원전으로 하였다. 이 작품은 ≪토끼전≫ 이본의 하나로 현대역으로는 처음 출간되는 것이다. 이 책은 <토별산수록> 전체를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장황하게 부연된 몇몇 부분은 구절을 약간 생략하였다. ≪토끼전≫은 <구토지설>이라는 짧은 이야기에 근원을 두고 판소리 혹은 소설로 확장된, 조선 후기 판소리계 소설이면서 우화소설이다. 백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구려에 청병을 하러 갔던 김춘추는 보장왕으로부터 마목령과 죽령을 돌려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받게 된다. 이에 김춘추는 신하가 국가의 토지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답하였다가 옥에 갇혀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 이때 선도해라는 고구려의 대신이 김춘추를 찾아와 해준 이야기가 바로 <구토지설>이다. 이 <구토지설>은 석가의 전생 수행담인 인도의 본생설화나 중국의 불전설화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구토지설>은 이들 설화들과 동궤의 것이면서도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는데, 우선 석가모니 본생설화는 현재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이야기의 인물과 과거 이야기의 주인공을 연결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한역 경전 또한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종교설화로서의 형식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민간설화화하면서 완전히 탈색되어 과거의 이야기만 남아 있다. 이처럼 종교성이 탈각되고, 토끼와 별주부의 지략 대결이 중심이 된 한국화한 설화로 자리 잡으면서 <구토지설>은 수궁가의 시초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나이 다툼 설화, 토끼의 위기 극복 설화 등 다양한 설화를 수용하면서 부연, 변용, 창작 과정을 거쳐 ≪수궁가≫ 혹은 ≪토끼전≫이라는 판소리, 소설 작품으로 발전하였다.
<완판 조웅전> ‘완판 완판 조웅전’(완전한 판본 완주간행판 조웅전) 오랜 기간 ≪조웅전≫을 연구한 필자가 자신 있게 내놓는 역작이다. 예전에 한번 출간한 적이 있으나, 이번에 새 판을 간행하며 여러 이본들을 철저히 대조하여 옛 판에서 누락되었거나 오기되었던 부분을 바로잡았고, 각주도 대폭 추가하였다. 무엇보다 구판에서 미상 처리됐던 것들을 대부분 밝혔다. 장르적 성격, 이본 연구, 이제까지의 연구사 개요, 작자와 창작연대 추정, 구성적 특징, 작가 의식, 내용적 특성 등 전문 연구자다운 필자의 상세한 해설이 붙어 있다. 수많은 이본이 전해 내려오는 고전소설의 베스트셀러 ≪조웅전≫은 소설 작법의 기교가 어느 정도 발달한 시기에 상당히 전문적인 작가에 의해서 창작된 군담소설로 ‘영웅의 일대기’ 형식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전쟁 이야기, 영웅의 일대기 등 군담소설이 가지는 특징에 더불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웅의 애정담이 곁들여져 남녀노소 모두에게 널리 읽혔던 작품이다. 민간에 ‘일조웅(一趙雄) 이대봉(二大鳳)’이란 말조차 유전되었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인기 소설이었다. ≪조웅전≫의 또 하나 가치는 삽입된 7언 가요가 모두 10여 개나 된다는 것이다. 6구로 된 짧은 것으로부터 심지어는 88구나 되는 장편도 있다. 판소리계 소설이 아닌 국문 소설에 있어 이처럼 많은 삽입 가요를 포함하고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검협전> 당송(唐宋) 시기 전기(傳奇)소설의 정수(精髓)만을 모아 엮은 소설집이다. ≪검협전≫은 ≪전기(傳奇)≫를 비롯한 ≪태평광기(太平廣記)≫, ≪강호이인록(江湖異人錄)≫, ≪원화기(原化記)≫ 등에 전하는 총 33편의 당송 시기 검협(劍俠) 소설을 수록하고 있다. 이 소설집의 저자에 대해서는 줄곧 여러 주장들이 있어 왔다. 일찍이 당(唐)나라 사람 단성식(段成式)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루쉰(魯迅)은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에서 ≪검협전≫은 명(明)나라 사람들이 단성식의 이름을 빌려 출판한 위작이라 했다. 여가석(余嘉錫)은 ≪사고제요변증(四庫提要辨證)≫에서 작품에 묘사된 시대 배경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검협전≫은 당(唐) 대에 편찬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明) 대 왕세정(王世貞)이 당송(唐宋) 시기 검협 관련 소설을 모아 편찬했을 것이라고 했다. ≪검협전≫을 왕세정이 편찬했을 것이라는 여가석의 주장은 오늘날 상당 부분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반론 또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검협전≫의 저자와 편찬 시기는 명확히 고증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분명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전하는 ≪검협전≫의 판본은 각기 한 권짜리와 네 권짜리가 있다. 그 가운데 명(明) 대 오관(吳琯)이 편찬해서 전한 ≪고금일사(古今逸史)≫ 네 권짜리가 가장 널리 유행했다. 청(淸) 대 화가인 임위장(任渭長)은 이 책에 근거해 <삼십삼검객도(三十三劍客圖)>를 만들어 전하기도 했다. 또 현대 무협 소설 작가인 진융(金庸)은 <삼십삼검객도>에 해설을 달기도 했다. 이처럼 ≪검협전≫은 중국 무협 소설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중요한 저술이다. 묘사된 각종 서사와 인물 형상, 그리고 주제 의식 등은 이후 무협 소설 창작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당송 시기의 각종 민간의 풍속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검협전≫ 전체 작품의 성격, 당송 시대 서민 사회의 생활상, 근현대 무협 소설에 끼친 영향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후속 논의 또한 기대할 수 있다. 무협 소설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물론 육조(六朝) 지괴소설(志怪小說)에서도 간보(干寶)의 ≪수신기(搜神記)≫의 <이기(李寄)>와 도잠(陶潛)의 ≪수신후기(搜神後記)≫의 <비구니(比丘尼)> 등과 같이 협객의 형상을 묘사한 작품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지괴소설(志怪小說)은 엄밀히 말해 서사 구조와 묘사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단계다. 그래서 대체로 당(唐) 전기(傳奇)를 시작으로 이야기의 구성과 체제 면에서 비교적 완전한 무협 소설의 형식을 지녔다고 본다. 바로 ≪검협전≫에 수록된 소설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심청전> ≪심청전≫은 ≪춘향전≫과 함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읽혔던 고소설 작품이다. 아버지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심청의 효성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하느님과 부처님·용왕을 감동하게 했다. 그래서 이적(異蹟)이 일어나 죽었던 심청이 다시 살아나고, 왕비가 되어 눈을 뜬 아버지와 행복을 누린다. 이 이야기에서 효는 사람이 지켜야 할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여겨지고, 이를 실천하면 사람과 신은 물론 동식물까지도 감동하게 된다. 그래서 이적을 일으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한국인의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심청전≫은 필사본(筆寫本), 판각본(板刻本), 활자본(活字本)으로 전해오는데, 모두 80여 종이 된다. 판각본은 ‘한남본 계열’, ‘송동본 계열’, ‘완판본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한남본 계열’은 간소한 내용을 단순하고 차분하게 구성하였다. 문체는 간결하고 소박한 산문체로 되어 있다. 배경은 명나라 시대의 남군 땅으로 되어 있다. 등장인물 중 심 봉사의 이름은 ‘심현’, 그의 처는 ‘정씨’라고 하였다. 한남본 계열의 이본에는 장 승상 부인, 뺑덕 어미, 안씨 맹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송동본 계열’은 문장이 율문체로 되어 있다. 배경은 송나라 시대의 황주 도화동으로 되어 있다. 심 봉사의 이름은 ‘심학규’, 그의 처는 ‘곽씨’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곽씨 부인이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비는 이야기, 심 봉사가 순산과 아기의 장래를 축원하는 이야기, 뺑덕 어미 이야기, 안씨 맹인 이야기 등 한남본 계열에 없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뒤에 나온 완판본과 활자본에 그대로 들어 있다. ‘완판본 계열’은 내용이나 문체 면에서 송동본과 대체적으로 같으나 몇 가지 차이점도 있다. 첫째, 완판본 계열에는 송동본에 없는 삽입 가요(揷入歌謠), 잔사설, 고사성어(故事成語), 한시(漢詩) 등이 많이 나온다. 둘째, 송동본에 없는 장 승상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셋째, 심청이 배를 타고 인당수에 가기까지의 항해 경로와 오래전에 죽은 유명한 사람의 영혼을 만나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넷째, 맹인 잔치에 가는 심 봉사가 목동과 방아 찧는 여인을 만나고, <목동가>와 <방아타령>을 부르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다섯째, 심 봉사가 눈을 뜰 때 모든 맹인이 함께 눈을 뜨는 이야기, 심청이 아버지를 만난 후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필사본 중에는 위에 적은 세 계열 중 어느 하나와 관련이 있는 이본도 있고, 두 계열의 내용이 함께 들어 있는 이본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한 계열과도 깊은 관련을 맺지 않은 이본도 있다. 이 책은 1905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도서관 소장 완판 <심쳥젼> 71장본을 원전으로 하여 현대문으로 고쳐 썼다. 장황한 설명이나 삽입 가요의 일부를 축약하거나 생략한 것 외에는 되도록 원문을 그대로 살려 적었다.
<도술이 유명한 서화담> 이 책의 주인공인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성종(成宗) 20(1489)~명종(明宗) 1(1546)]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다. 그는 개성(開城) 출신으로, 본관은 당성(唐城)이며, 화담은 그의 호다. 그는 이(理)보다 기(氣)를 중시하는 주기론자로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수립해 주창했다. 전승된 서화담 이야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편차가 있게 제시된다. 대략 17세기 중반 이전의 이야기에는 그리 심각한 대결이 드러나지 않고, 서화담의 능력과 재주가 뛰어나다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같은 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줄거리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강화된다. 이는 당대인들이 현실적 좌절을 서화담을 통해 극복하며 세상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도록 상징화하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대체로 서화담은 시대적 상황을 회피하거나 될 수 있는 한 숨는 태도를 지향하면서 내면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우회적으로 저항하며 대처한다. 서화담은 전승에서 초기에는 유학자로 기술되고 있으나, 후기에 올수록 도가적 인물로 묘사된다.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 활동적인 도가적 인물로 제시되는데 일부에서는 절제와 탐구의 유학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그는 ≪전우치전≫과 대비되어 일반적으로 지배층을 희화화하고 약하고 착한 백성들을 돕는 행동하는 영웅인 전우치와 달리 학구적이고 사유적이며 덕을 닦는 데 열정과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고 언급된다. 이 책은 실기나 설화가 수용된 소설을 원문으로 해서 풀어 썼다. 이 소설은 실기와 설화와는 달리 일대기적 구성의 완성도가 높고, 설화의 각 편이 삽화적으로 편집화해 일정 부분 유기적 연관성을 가지고 제시된다. 이에 대해 좀 더 기술하면 소재는 초반에는 유학적인 성향을 띠다가 점차적으로 도가적 요소가 가미되어 제시된다. 여기에는 대립과 갈등이 심각하게 드러나지 않고 전개되는데, 서화담은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그 스스로 세상을 멀리하고 피하면서 가르치고 타이르는 방식으로 기술된다. 이에 따라 전승된 서화담 이야기의 소재나 성격, 인물이나 사건 등을 유형화해서 보통 도술소설, 사회소설, 역사소설, 이인(異人)소설, 일사(逸士)소설이라고 규정한다.
<남알타이인 이야기> "알타이인은 거주 공간에 따라 알타이 키지인과 텔렌기트인은 남알타이인으로, 투발라르인, 쿠만딘인, 첼칸인은 북알타이인으로 분류된다. 이 민족들은 1990년대 초까지는 튀르크계의 알타이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민족인 알타이인으로 알려졌으나, 2000년대에 텔렌기트인, 첼칸인, 쿠만딘인, 투발라르인은 고유 언어와 문화를 지닌 독립된 민족으로 인정되어, 러시아 정부에서 지정한 ‘시베리아 소수원주민 목록’에 포함되어 전통 문화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01년에 ‘알타이공화국 제민족 총회’가 창설되었고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알타이인의 수는 7만9천여 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 중 알타이 키지인은 6만 7천여 명, 텔렌기트인은 3700명을 차지한다. 알타이에는 수많은 전설과 신화, 민담이 전승되고 있다. 특히 용맹스러운 인간의 영웅적인 행적과 정령과의 조우를 주제로 한 영웅서사시가 노래의 형식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이를 ‘카이’라고 한다. ‘카이’를 실연하는 사람인 ‘카이치’는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로 알타이인의 존경을 받는다. 알타이인은 정령이 ‘카이’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사냥꾼이 ‘카이’를 부를 줄 알면 많은 수확물을 얻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알타이 설화에는 사냥꾼 주인공이 ‘카이’를 부르고 노인의 형상을 한 정령이 사냥꾼의 노래를 경청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이 책에서는 용사 알립 마나시가 사악한 칸을 죽이러 떠났다가 곤경에 빠지고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지만, 애마의 도움으로 곤경에서 벗어나 사악한 칸을 물리치고 자신을 배신한 친구를 응징한다는 이야기 영웅담 <알립 마나시>, 누이동생이 오빠가 사냥을 간 사이 불을 꺼뜨려 노파로 변신한 괴물에게 불씨를 구해 오다가 잡혀 먹힐 위험에 처하자, 오빠가 괴물로부터 누이동생을 구한다는 내용의 <오누이>, 늑대의 보살핌을 받아 칸의 딸과 결혼하는 아루 만다이의 모험을 그린 <황금 새 알틴 쿠츠카시>, 붉은 여우가 기지를 발휘해 가난한 청년을 칸의 딸과 결혼시킨다는 이야기 <중매쟁이 여우> 등 총 42편의 남알타이인 설화를 소개한다."
<한티인 이야기> "한티인은 서시베리아의 토착 소수민족 중 하나로, 옛 명칭으로는 ‘오스탸크’라 불렸다. 한티인 스스로는 자신들을 ‘한티’, ‘한데’, ‘한테’ 또는 ‘칸테크’라고 칭하는데, 이 명칭은 모두 ‘사람’을 뜻한다. 한티인은 전통적으로 어로와 사냥을 주업으로 했다. 동물을 사냥하여 얻은 모피나 가죽 등으로 다른 민족들과 무역을 했으며, 이 외에도 북쪽에서는 순록 사육을 했고 남쪽 지역에서는 가축 사육을 했다. 17∼18세기에 정교 신앙이 전파되었지만 한티인의 문화나 정신세계에는 전통 신앙과 전통 예식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영혼의 존재를 믿었으며, 세계가 세 개 차원(천상, 지상, 지하의 세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영혼이 여러 개라고 생각했으며 동물을 숭배했다. 동물들 중에서도 특히 곰을 숭배했는데, 이런 곰 숭배 사상은 곰 축제에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천신 토룸이 흙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말해 주었지만 인간들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금지된 음식을 먹은 벌로 땅 위에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 <세계 창조>, 서로 모르게 세 아내를 얻었다가 아내들에게 몸이 찢겨 두 동강이 난 농부의 반쪽 몸이 달이 된 이야기 <달의 기원>, 누이가 오빠의 심장을 붙잡아 빼 버렸는데 태양의 딸이 그를 구해 주면서 그가 살아났다 죽었다 하는 달이 되었다고 하는 <태양의 딸과 달> 등 총 31편의 한티인 설화를 소개한다."
<하카스인 이야기> "남시베리아에 사는 하카스인은 유전학적 분석에 따르면 북미 인디언과 몽골인과 같은 유전자를 가졌으며 생활 유형도 상당히 유사하다. 이들 사회의 특징은 성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것인데, 가부장 사회를 통한 유목 생활에서 결정적 역할은 남성이, 가사는 여성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하카스인의 종교는 본래 샤머니즘과 불교였으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이 러시아 정교회로 강제 개종했다. 그럼에도 하늘, 물, 산, 자작나무 등에 기도를 올리는 등 하카스인들의 샤머니즘적 잔재는 생활 문화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자작나무는 신성한 나무로 여긴 반면 회오리바람은 생명을 앗아 가는 악령으로 여겼다. 번개로 죽은 양, 말이나 소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기시했다. 오랫동안 동물 숭배가 이어져 왔는데 그중 곰과 관련된 토테미즘은 하카스인의 의식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고아 소년이 길에서 만난 ‘죽음’ 할아버지인 저승사자를 속여 자신을 내쫓은 부자와 못된 칸들을 혼내 준 뒤 부자들의 일꾼을 풀어 주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돈을 나눠 주면서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내용의 <저승사자를 부려먹은 소년>, 한국의 ‘흥부 놀부’ 이야기와 비슷한, 가난하지만 착한 동생과 욕심 많은 부자 형의 이야기 <형제>와 <마법의 책>, 마법의 악기를 만들어 못된 칸 밑에서 일하는 목동들이 행복을 느끼도록 도와준 차트한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악기 이름을 차트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마법사 차트한> 등 총 23편의 하카스인 설화를 소개한다. "
<투바인 이야기> "투바인은 기원전 훈족의 후손에 기원하며 오랜 기간 고대 튀르크 칸, 위구르 칸, 칭기즈 칸의 몽골 등의 침입과 지배로 생겨난 튀르크계와 몽골계의 혼합 종족이다. 2018년 인구조사 기준에 따르면 투바인의 수는 32만여 명에 달하며 대부분은 동시베리아 남부의 러시아 투바공화국에 거주하고, 일부는 몽골과 중국에도 살고 있다. 1207년 투바는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4세기 몽골 붕괴 이후에는 북원, 중가르 한국에 편입되었다가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보호 아래 있다가 1944년 러시아공화국 내 자치주로 편입되었고 1961년 투바자치공화국, 1992년 러시아 연방 투바공화국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투바의 공식 종교는 17세기에 들어온 라마교이지만,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 러시아 정교 등도 믿고 있다. 처음 라마교가 보급될 당시 ‘황색신앙’이라며 천대했지만 1992년 달라이 라마 14세가 투바를 방문한 이후 투바인의 토착 종교로 자리매김했다. 전통 신앙인 샤머니즘은 소비에트 시기 정치적 탄압을 받았고 1950년 이후 유목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전환되면서 샤먼의 수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샤머니즘과 더불어 ‘오보오(овоо, 돌무더기)’ 숭배, 태양 숭배와 같은 다양한 민간 신앙도 존재하는데 투바인은 어떠한 종교적 갈등과 대립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 책에서는 아버지의 유산인 말, 소와 염소를 주고 장기, 마술과 숫자 세기를 익힌 오스큐스 올이 잔꾀를 부리는 카라티 칸과의 내기에서 이겨 그 마을의 칸이 된다는 이야기 <세 가지 재주를 익힌 오스큐스 올>, 착한 형 악 사기슈와 동생 카라 사기슈가 동물의 대화를 듣고 카라티 칸 마을에 닥친 불행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악 사기슈와 카라 사기슈>, 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게 되는 유래에 관한 이야기 <고양이 선생>, 고아 안치 카라가 백조들의 이야기를 엿들어 알게 된 치료법으로 칸의 딸을 고쳐 주고 슐부스를 죽인 후 칸의 사위가 되는 <안치 카라> 등 총 28편의 투바인 설화를 소개한다."
<칼미크인 이야기> "칼미크 인구는 201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18만 명가량이다. 칼미크라는 명칭은 터키어로 ‘뒤처진’이라는 의미다. 이는 오이라트족이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자 터키인들이 비하하는 말로 부르던 것이었다. 러시아 공식 문서에는 칼미크인들이 16세기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16세기 말부터 칼미크인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35년에 칼미크 소비에트 사회주의자치공화국이 형성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도왔다는 이유로 1943년에 칼미크인들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알타이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때 칼미크인 1/3 이상이 죽었으며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1957년∼1958년에 자치주가 부활되었고 칼미크인 대부분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1990년에 칼미크 공화국은 자주권을 선언했으며 1994년부터 칼미크 공화국이 되었다. 칼미크 민담은 몽골과 연관이 있으며 주위에 그리스정교,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국가들이 있음에도 불교를 믿는 민족으로 한민족과 유사한 세계관을 드러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우선 칼미크 설화에서는 다른 민족의 설화에서도 나타나듯이 성직자에 대한 희화화가 드러나며 승려인 겔륭이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인물로 등장한다. 또한 왕을 가리키는 칸의 명칭이 사용되는 등 자신들의 문화에 등장하는 명칭들을 사용한다. 티베트 불교를 믿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라든지 불교의 정신적 스승인 인물들이 주인공을 돕는 현자나 조력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 칼미크는 ‘잔가르’라는 유명한 구비전승 영웅서사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세상을 구원해 줄 영웅을 기다리며 구전해 온 노래가 있듯이 이 민담에서도 다양한 영웅들의 활약을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총 36편의 칼미크 설화를 소개한다."
<쇼르인 이야기> "쇼르인은 2010년 기준으로 13,000명이 생존해 있으며 ‘대장장이 타타르’, ‘검은 타타르’, ‘쇼르’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민족 이름은 쇼르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강 이름 ‘쇼르’에서 기원한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과거 쇼르인은 공식으로 러시아정교를 믿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상 숭배, 사냥 숭배 등 텡그리 사상을 가지고 있다. 쇼르인은 힘이 없고 가난했으며 우울했는데 이는 설화에 잘 반영되어 있다. 또 쇼르인의 설화에는 이들의 세계관과 정서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가옥과 내부 인테리어, 결혼식, 손님맞이, 장례식 등 전통 풍습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책에는 첼레이가 지혜를 내어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죽음’을 철로 만든 관에 가두었고 이후 사람들이 더 이상 죽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우스 첼레이의 꾀에 넘어간 죽음>, 까마귀와 한 내기에서 져서 창피함을 못 이겨 습지에 혼자 살게 된 학의 이야기 <학이 습지에 살게 된 이유>, 뜻하지 않게 곰의 형상을 하게 된 주인공이 사람 부부의 집에 살면서 지혜로운 아내를 맞이하고 멋진 무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안치 아비시카와 카라 몰라트>, 산신에게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라고 모피와 금은보석을 선물 받은 농부가 욕심에 눈이 멀어 보물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어느 날 보물이 낙엽과 마른풀로 변한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 <탐욕스러운 농부> 등 총 16편의 쇼르인 설화를 소개한다."
<북알타이인 이야기> "북알타이인은 알타이공화국 북쪽에 거주하는 첼칸인, 쿠만딘인, 투발라르인을 말한다. 튀르크어계 북알타이 분파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이 민족들은 1990년대 초까지는 알타이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민족인 알타이인으로 알려졌으나, 2000년대에 비로소 고유 언어와 문화를 지닌 독립된 민족으로 인정되어, 러시아 정부가 지정한 ‘시베리아 소수원주민 목록’에 포함되어 전통 문화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북알타이인은 천상과 지상, 지하세계가 있고 각각의 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있어, 천상에는 세상을 창조한 선한 신 울겐, 지하에는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악한 신 에를리크가 있고 지상세계에 여러 착한 정령들과 악한 정령들이 있다고 믿었다. 특히 물, 불, 산, 태양, 숲 등의 자연을 신성시했다. 특히 물의 정령을 중요시했고 산속에 있는 샘물을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효험을 지닌 생명수로 여겼다. 이 책에서는 금도끼와 은도끼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정직하게 말한 동생이 복을 받고, 거짓말을 한 형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 <황금 도끼>, 날다람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나쁘게 만들어 주었다고 신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신의 딸을 병에 걸리게 하자, 신이 목소리를 없애서 날다람쥐가 울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날다람쥐>, 두 형 대신 아버지의 병상을 지킨 막내가 아버지에게 받은 훌륭한 말의 도움으로 공주와 결혼한다는 내용의 <바보 이반>, 꾀 많은 여우가 노인을 도와 늑대를 잡을 수 있게 해 주자 노인이 그 보답으로 자신의 딸을 여우와 혼인시켰다는 내용의 <꾀 많은 여우> 등 총 38편의 북알타이인 설화를 소개한다. "
<부랴트인 이야기> "부랴트인은 ‘늑대의 민족’이라 불렸으며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민족 중 하나이고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러시아, 몽골, 중국이 접하는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부랴트’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설이 있다. 그중에서 터키어의 ‘부리’(늑대) 또는 ‘부리ᐨ아타’(늑대ᐨ아버지)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부랴트인을 말할 때 ‘바이칼 호수’를 빼놓을 수 없는데,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고, 가장 깊고 차가운 담수호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세계 희귀 동·식물들이 전체 동식물의 80%다. 부랴트인에게는 바이칼에서 안가라강이 흘러나가는 지점에 있는 ‘샤먼의 돌’을 둘러싸고 바이칼 호수와 안가라강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아버지 바이칼은 335개의 아들 강과 외동딸 안가라를 두었는데 그들은 모두 아버지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래서 아버지 바이칼은 물이 풍부하다. 그런데 외동딸 안가라가 예니세이강을 사랑하여 아버지의 물을 연인에게 퍼다 주기 시작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 바이칼은 외동딸 안가라에게 커다란 바윗돌을 던져 저주했다. 그것이 바로 ‘샤먼의 돌’이라 불리는 두 개의 커다란 돌이다. 안가라의 수원(水原)에 위치하여 그 시작으로 간주되는 곳이다. 부랴트인은 신화, 대서사시, 전설, 민담 등 여러 장르를 빌려 폭넓은 구비전승을 이어 오고 있다. 특히 대서사시가 눈에 띈다. 영웅 서사시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서사시 등장인물의 이름인 ‘게세르’ 영웅 서사시는 우리의 ‘단군 신화’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육당 최남선은 ‘불함문화론’에서 단군 신화의 해명을 위해 동아시아 고대 신화와 서사시를 비교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책은 가난뱅이 청년이 호수에서 일곱 마리 백조를 발견하는데, 깃털 옷 하나를 숨겨서 그 옷의 주인 처녀와 결혼하게 된다는 <용사와 백조 아내>,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도르지가 새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웃 마을의 가뭄을 해결하고 처녀의 병을 고쳐 주고 숨겨진 보석을 찾는다는 이야기 <가난뱅이 도르지>, 불행을 떨쳐 버리고 부자가 된 가난뱅이를 시기한 옛날 부자가 그 불행을 도로 파내 가난뱅이에게 주려다 그 불행이 오히려 자신에게 붙어 버려 불행해졌다는 이야기 <행운과 불행> 등 총 58편의 부랴트인 설화를 소개한다."
<벱시인 이야기> "벱시족은 현 러시아 영토의 북서쪽에 살던 토착민이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여러 면에서 카렐인과 러시아인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또는 지정학적으로 핀위구르 계열의 민족과 동슬라브민족의 민속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이 여러 문헌은 물론이고 설화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설화의 특징이 구전이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변이형이 나오고 그 지역에 다른 지배적인 문화가 유입되면 강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원형을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벱시족 설화에는 특히 러시아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 유럽 지역의 설화와 유사한 설화들이 나타나며 러시아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곰과 마샤>는 한국어로도 더빙되어 방영되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마샤와 곰>의 근간이 되는 러시아 설화이며 <재투성이 아가씨>는 전 세계 광포설화인 <신데렐라>와 같은 이야기 구조를 지녔다. <황금 소년>은 러시아 민담을 근간으로 푸시킨이 각색한 작품으로도 유명하고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오페라로 만들어서 더욱 유명한 <살탄왕>과 유사하다. 그뿐만 아니라 벱시인의 설화에는 마귀할멈인 바바 야가, 이반 왕자, 물의 정령 보댜노이 등과 같은 러시아 설화 등장인물들이 나타난다. 벱시족의 설화는 다른 북아시아 설화가 그 민족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 설화와 유사해 보이지만 러시아의 설화와 유사한 설화를 비교해서 보면 벱시족만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총 30편의 벱시인 설화를 소개한다."
<바시키르인 이야기> "바시키르인은 현재 전 세계에 약 200만 명이 생존해 있는데, 2010년 러시아 연방공화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150만 명가량이 러시아에 거주한다. 러시아 연방공화국 내에서 러시아인, 타타르인, 우크라이나인에 이어 네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인구만으로는 러시아 공화국에서 소수민족은 아니지만, 문화의 흐름이 고압지대에서 저압지대로 향하듯 주변 강대국의 영향으로 전통 문화는 퇴색하고 민족 정체성은 소멸하고 있다. 바시키르인의 전통 신앙은 이슬람이다. 이들은 922년 이슬람을 수용했고, 1320∼1330년에는 이슬람 전파가 거의 완료되었다. 19세기까지 반유목 생활을 했지만 이후 대거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의 영향으로 농경과 정착 생활로 전환했다. 농경을 겸한 반(半)유목 가축 사육, 사냥, 양봉, 야생 벌꿀 채취, 새 사냥, 어로, 채집 등으로 전통적인 생산 활동을 이어 나갔다. 직물, 펠트 및 양탄자 제작, 자수, 가죽 가공, 목재와 철 가공 등의 수공업도 발달했다. 바시키르 문화에는 동양과 서양의 요소가 미묘하게 융합되어 있다. 따라서 바시키르 문화에서는 때로는 동양의 가부장적 엄격함이, 때로는 서양의 자유분방함이, 때로는 페르시아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이 책에은 못된 마녀의 계략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한 사냥꾼이 예전에 놓아준 동물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는 이야기 <늑대, 독수리, 황금 물고기와 사냥꾼>, 숫염소 마흔 마리를 가지고 가서 새끼 염소 여든 마리를 만들어 오라는 왕의 황당한 명령을 지혜로 이겨 왕을 굴복시킨 뒤 마침내 왕비가 된 소녀의 이야기 <왕비가 된 영리한 파우키누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청년에게 시집보내기로 마음먹은 아버지가 얼음, 태양, 구름, 비, 땅, 풀, 소, 칼을 찾아갔다 결국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일까?> 등 총 40편의 바시키르인 설화를 소개한다."
<만시인 이야기> "만시인은 2010년 러시아 인구조사에 따르면 12,269명이 생존해 있다. 이들은 포르족과 모시족이란 두 씨족이 만나 족외혼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포르족의 조상은 곰이라고 여겼고 모시족의 조상은 거위, 암토끼, 나비로 형상화되는 칼타시 여신이라고 생각해서 만시인은 이 동물들을 숭배하고 신성시했다. 전통 신앙에는 범신론, 수호신과 조상 숭배, 곰 숭배 사상 등이 남아 있다. 18세기에 러시아정교를 수용하기 시작해서 현재 형식적으로는 정교를 믿지만 이런 민간 신앙 전통은 여러 풍습 속에 남아 있다. 만시인의 신체적 특징은 보통 작은 키(남성의 평균 키가 160센티미터 이하다), 균형 잡힌 몸, 검은색이나 갈색의 부드러운 직모, 검은 눈, 평균적인 높이와 넓이의 코, 상대적으로 큰 입과 굵지 않은 입술 등이다. 이 책에서는 큰곰자리와 은하수가 생긴 기원에 대한 전설 <다리 여섯 달린 사슴 사냥>, 토룸 신의 아들 ‘타리크 페슈 니말랴 소프’가 결혼하기 위해 땅에 내려와 ‘키르트 뇰프 엑바’ 노파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 마법을 써서 악마를 물리치고 미녀 아내를 얻어 땅 위에 남게 된 이야기 <땅의 기원에 대한 성스러운 이야기>, 두꺼운 가죽 같은 땅이 계속 흔들거리자 땅의 여신이 ‘토룸’ 신에게 땅에 띠를 둘러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생겨난 것이 우랄산맥이라는 전설 <땅에 띠 두르기>, 할머니와 살던 엑바 피리스가 못된 황제를 혼내 주고 황후와 결혼해 산다거나, 못된 사제나 욕심 많은 노인과 황제 등을 혼내 주고 성공해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는 ‘엑바 피리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련의 이야기 등 총 14편의 만시인 설화를 소개한다."
<코랴크인 이야기> 코랴크인은 캄차카반도의 토착 민족이다. 오래전부터 축치족, 유카기르족, 예벤키족, 예벤족, 러시아인 등과 인접해서 생활했다. 코랴크인과 축치족 및 러시아인의 경계는 아나디르강이다. 코랴크인은 아나디르강 북쪽, 축치족은 아나디르강 남쪽에는 거주하지 않는다. 축치인은 주로 추콧카만에 거주하는데 과거에는 종종 이 경계를 넘어 코랴크인을 공격해 코랴크인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갔다. 1930년에 코랴크 민족 자치 지구가 제정되었고 현재 코랴크 자치구로 재조성되었다. 코랴크 자치구에는 티길(Тигиль), 펜진(Пенжин), 올류토르(Олютор), 카라긴(Карагин) 네 개 지역이 포함된다. 코랴크인의 주된 경제 활동은 순록 사육이다. 러시아인의 끊임없는 문명화 정책에도 코랴크인의 순록 사육 방식은 과거의 생태적, 자연 친화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어로나 사냥에도 종사하지만 보조적인 생산 활동이다. 모피 동물의 경우 개체 수가 급속하게 감소하면서 코랴크인의 경제 활동에서 비중이 아주 미미해졌다. 어로와 바다 동물 사냥은 여름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긴 겨울을 위해 여름에 사냥해 비축해 둔다. 그들의 전통 신앙은 애미니즘이다. 동물뿐 아니라 하늘, 바다, 산 등 주변의 모든 사물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다. 모든 마을에는 아파펠(аппапель)이라는 성소(聖所)가 있는데 그곳에 제물로 순록, 드물게는 개와 바다 동물을 바치며 축원을 한다. 이 책은 코랴크인 설화 42편이 수록되어 있다. 악행을 경계하고, 풍족한 삶을 추구하며, 지혜와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들은 당시 코랴크인이 어떠한 가치를 중요시했는지 잘 보여 준다.
<케레크인 이야기> 케레크인은 2010년 인구조사 기준 네 명만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진 절멸 위기의 소수민족이다. 그들의 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은 18세기 말부터다. 한때 케레크인은 다른 민족들의 침범과 전염병 창궐로 마을을 버리고 투만강과 그 남쪽으로 옮겨 갔다. 18세기 중반쯤 축치인이 대규모로 아나디르강 우안으로 이동해 케레크인이 거주하는 투만강, 벨리카야강, 하티르카강 계곡을 차지했고, 그 탓에 두 민족 간의 대규모 혈전이 벌어졌다. 또 축치인과 코랴크인 사이에서 혈전이 벌어졌을 때, 케레크인은 양측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케레크인 성인 남성들은 죽임을 당했고 아이와 여성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당시 이들에 맞서 적극적으로 대항할 능력이 없었던 케레크인은 절벽의 동굴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잠적했고 이에 더해 유행병이 창궐하면서 그 수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케레크인의 전통 신앙은 샤머니즘과 조상 숭배 사상이다. 모든 케레크인 마을에는 제물을 바치는 ‘카마크’라는 성소가 있는데 일차적으로 이곳에 고래 턱뼈를 꽂은 해마의 두개골을 쌓아 둔다. ‘아파팔리(할아버지)’ 혹은 ‘일라필리(할머니)’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조상 숭배 사상과 관련이 있다. 성소에는 여전히 순록의 두개골과 뿔, 사냥한 동물의 두개골, 이 동물들을 사냥할 때 사용한 사냥 도구 등이 쌓여 있다. 케레크인 설화는 거의 알려지지 않아 소개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다. 이 책에는 모두 13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까마귀 이야기 여섯 편, 동물 이야기 세 편, 지혜로운 케레크인 이야기 네 편이다. 특히 이들의 신화적 영웅인 까마귀 ‘쿠키’의 이야기에서는 이들의 세계관과 종교관, 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울치인 이야기> 울치인은 러시아 극동의 아무르강 유역의 소수민족으로 3000명 정도가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 중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석기 시대에 아무르강 유역에 거주했던 토착민은 기원전 3000년경 북쪽과 서쪽으로부터 온 퉁구스, 튀르크, 몽골계 민족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오랫동안 나나이, 네기달, 예벤키, 아이누 등, 여러 민족과 섞이면서 현재 울치인의 민족적 정체성이 형성됐다. 다양한 민족 간 교류와 접촉의 역사는 울치인의 생활 양식, 문화, 언어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19세기 중반 아무르 지역이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울치인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아직까지 결혼이나 가족 제도, 종교 의식에는 옛 전통이 남아 있다. 울치인은 자연물의 정령과 하늘의 신이 사는 천상 세계의 존재를 믿고 숭배했다. 사냥할 때는 반드시 땅의 주인 정령에게 사냥을 잘하게 해 달라고 빌었고, 물의 주인 정령, 불의 주인 정령에게 다양한 음식과 풀 등의 제물을 바쳐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또한 하늘의 신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었고, 닭이나 돼지를 제물로 바쳐 풍요를 빌었다. 이 책은 울치인 설화 13편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혹독한 환경과 생존을 위협하는 수많은 존재와 투쟁하며 살아온 울치인의 치열한 삶과, 부정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던 낙관적 미래관을 엿볼 수 있다.
<우데게인 이야기> 우데게인은 기원후 2세기 무렵 바이칼 동부에서 아무르강 상류로, 그 후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한 고대 퉁구스족인 ‘읍루’족의 후손이다. 어근 ‘숲(уд)’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숲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19세기 말까지는 우데게인과 오로치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겼으나 1930년부터 독립 민족으로 분류되었고 ‘우데게인’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다. 이들의 조상은 발해 건국에 참여했고 멸망 후에도 주변 소수민족과 교류하면서 지금까지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다. 19세기 후반 아무르강과 연해주가 러시아 영토가 된 후 우데게인의 거주지가 축소되었고 우데게인 공동체는 사실상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형사취수제나 숙권제, 피의 복수, 불 숭배와 같은 원시적 관습은 유지된 채 남아 있다. 마을 공동체는 러시아 지방 행정 기관의 승인을 받은 원로 회의가 다스렸으며 원로 회의의 우두머리는 러시아 마을의 촌장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 우데게인은 사냥과 어로가 주요 생계 수단이다. 전통적 사냥 방법은 스키를 타고 동물을 쫓아가 창, 활과 석궁을 사용하는 것이고 사슴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나팔로 유인해 사냥했다. 모피 동물 사냥은 상인들이 극동으로 유입된 19세기 후반에 성행했으며 너구리, 족제비, 수달, 담비 등은 덫을 이용해 사냥했다. 그러나 곰과 호랑이는 조상의 영혼이며 사람으로 변신이 가능한 동물로 신성하게 여겼다. 일부 부족은 곰을 숭배하고, 다른 부족은 호랑이를 숭배해 곰 사냥과 호랑이 사냥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이 동물들에게 성공과 질병의 치유를 빌기도 했다. 이 책은 우데게인 설화 열여섯 편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우리에게 생경한 시베리아 소수민족인 우데게인의 세계관과 전통 문화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네기달인 이야기> 네기달인은 아무르 연안의 퉁구스계 토착 소수민족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아무르 연안의 암군강에 정착했고, 상류에 거주하는 네기달인과 하류에 거주하는 네기달인의 문화, 생활 방식, 생업 등이 서로 다르다. 하류에 거주하는 네기달인은 어획을, 상류에 거주하는 네기달인은 주로 사냥을 해 왔다. 이동 수단도 하류 네기달인은 개를 이용한 데 반해, 상류 네기달인의 이동 수단은 사슴이다. 이들은 주변의 예벤키인, 나나이인, 니브흐인과 활발한 교류를 했고 특히 예벤키인과 주거, 문화, 생활 양식 등에 있어서 유사성을 보인다.대부분의 시베리아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네기달인의 토착 신앙 또한 지하, 지상, 천상의 세 세계의 존재를 근간으로 하는 정령 숭배와 샤머니즘이다. 고대 네기달인은 만물의 정령인 스벤(свен)과 사악한 정령인 암반(Амбан)이 있고, 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 샤먼이라 믿었다. 하늘, 타이가, 물, 불의 주인신이 인간의 생명과 운명을 관장하며, 하늘의 주인신은 사냥을, 물의 신은 어획을 책임진다고 믿었다. 네기달인은 사냥과 어획을 떠나기 전 이들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른다. 화살로 곰을 죽인 후 고기를 정해진 규칙에 따라 분해하고 뼈를 버리지 않고 모아서 특정한 곳에 묻는 의식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네기달인의 곰 숭배 전통을 알 수 있다. 네기달인의 이야기들은 성씨의 유래와 과거 조상들의 삶을 구술하는 역사 전설, 민담, 구비 민요, 수수께끼, 어획할 때 부르던 노래 등을 전한다. 이 책에 실린 설화 32편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네기달인의 뿌리와 삶의 흔적, 신앙, 풍속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