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완결]바르가스 대륙에 몇 안 되는 그랜드 마스터이자, 폭군으로 삶을 살아온 게이드 아바레스트. 어느 날 정체 불명의 집단에게 죽임을 당하고 지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평범한 삶을 살게 된 게이드가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소설!<게이드 아바레스트의 비망록>-이 글은 게이드 아바레스트를 위한 비망록이다. 이 비망록을 그가 읽기를 바라며.소설 속에는 전생에 저질렀던 죄들과 자신이 죽고 난 후의 세계에 대해 적혀 있었다.심연의 지배자가 부활하고 사람들이 고통받는 세상의 이야기를 읽고 게이드는 크게 후회한다.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신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길 원하며 삶을 마감하는데… 그가 다시 눈을 뜬 곳은 바르가스 대륙, 과거 게이드가 소드마스터로 각성한 날이었다.과연 게이드는 전생의 과오를 되돌리고 심연의 지배자의 부활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추천평> 세상 모든 책이 불탈 때 단 몇 권의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성경과,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들, 그리고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구하겠다. - 앙드레 지드 볼테르만이 모든 사회 불안 요소들이 서로 맞물린 이 거대하고 무서운 세상과의 투쟁에 응했다. 바람처럼 가볍고 천둥처럼 강력한 그의 무기는 펜이었다. 그는 이 무기를 가지고 싸웠고 승리했다. - 빅토르 위고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의 끝부분에 나오는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훈이다. - 귀스타프 플로베르 볼테르는 일평생 인간의 오류를 고발하기에 전념했다. - 귀스타브 랑송(문학비평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처럼 유쾌하게 비관주의를 논한 책은 없을 것이다. 일찍이 이 세상이 슬프다는 것을 배우면서 이토록 사람들이 마음껏 웃은 적은 없었다. - 윌 듀런트(철학자) 나는『미크로메가스』를 읽고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반어적인 어조에 힘입어 천문학과 철학, 일반 과학에 대해 깨우칠 수 있었다. - 조엘 드 로시니(미래학자) ‘빛의 세기’를 밝힌 위대한 사상가 볼테르 기지와 재치가 넘치는 그의 대표작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고, 독일에 종교개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 _빅토르 위고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대표작 두 편을 담았다. 시리우스 별에서 온 외계인 미크로메가스의 지구탐방기 『미크로메가스』(1752)는 오늘날 공상과학 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볼테르의 기막힌 문학적 상상력과 간결하고 빠른 리듬의 문체가 돋보인다. 볼테르의 철학사상을 명쾌하고 기지 넘치게 풀어낸 풍자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1759)는 모순된 사회와 정치, 부패한 성직자, 종교의 불관용을 신랄히 비판하며 인간의 운명은 오직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그의 계몽사상을 잘 보여준다. 누구보다 사상의 자유를 중시하고 실용적인 태도를 간과하지 않으며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사회 비판의 선봉에 섰던 볼테르의 지혜와 통찰은 두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성의 빛으로 무장한 불온한 정신, 볼테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했던 미셸 푸코는 볼테르를 보편적 지식인의 대표로 칭한 바 있다. 지식이 고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오늘날에는 지식인의 역할도 과거와는 다르겠지만, 어느 시대에서나 공통되는 지식인의 요건이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 한다면 볼테르야말로 삶 속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볼테르에게는 시인, 극작가, 역사가, 철학자라는 다양한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실제로 그는 많은 극작품과 서사시를 썼다. 그의 비극은 라신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서사시는 호메로스와 비교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역사서 분야에서도 『칼 12세의 역사』 『루이 14세의 세기』 등의 저서로 고대의 역사가 아닌 가까운 과거의 역사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사료 편찬관으로서 많은 자료를 남겼다. 하지만 볼테르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현대성과 생명력을 갖는 것은 극작품이나 역사서가 아니라 시인이자 극작가인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160여 개의 필명으로 발표했던 수많은 철학 콩트들과 매일 아침마다 써서 유럽 각국의 지인들에게 보냈던 4만 통에 이르는 편지들, 간편한 형식으로 편리하게 휴대하고 보급하도록 하여 지적 투쟁의 무기로 삼았던 소책자들이다. 볼테르는 여타의 철학자들처럼 인간의 본성이나 세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나 체계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이성의 고귀한 힘을 옹호하며 모든 권위와 신념, 지식을 시험대에 올려놓았으며 광신과 불의를 고발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을 위해 펜으로써 공론을 제기하고 이끌어갔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에 값하는 것이리라. 볼테르가 태어난 시기는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시절이었고,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던 낭트칙령이 폐지되어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허용되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볼테르는 뛰어난 지성과 특유의 독설로 모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권력을 비웃으며 기존의 관념들을 풍자하고 조롱했다. 그때까지 절대적인 종교와 권력을 그처럼 노골적으로 비아냥댄 사람은 없었다. 또한 볼테르는 평생 교회와 성직자들의 그릇된 권위와 광신을 공격했다. 언제나 불경함은 그의 죄목이었고 권위를 겁내지 않는 불온하고 신랄한 태도는 그만의 개성이었고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재치와 빈정거림은 그의 문체의 뼈대를 이루었다. 『미크로메가스』와『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웃음을 통해서 지성에 호소하는, 명쾌하고 신랄하며 빠른 리듬의 문체가 매력인 볼테르의 대표작들이다. 우주의 미물인 인간의 오류와 지혜에 관한 성찰, 『미크로메가스』 ‘철학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미크로메가스』는 1752년에 출판된 작품으로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외계인의 우주 여행이라는 기발한 소재를 통해 다양성과 상대성의 가치를 역설하고 인간의 오류와 인간 행동의 부조리를 경쾌한 어조로 풍자한다. 미크로메가스는 그리스어로 ‘작다’라는 뜻의 미크로와 ‘크다’라는 뜻의 메가스가 합쳐진 말로 이 이름 속에 이미 상대성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시리우스 별의 궁정에서 추방을 당한 뒤 우주를 여행하며 다양성에 눈을 뜬 미크로메가스는 실제로 궁정에서 쫓겨나 여러 곳을 떠돌아다녔던 볼테르의 분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영국을 여행하고 나서 경험과 관찰에 근거하여 진구를 추구하는 방법의 중요성을 깨달은 볼테르의 면모가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최선이 아닌 세상의 악과 부조리,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캉디드』는 가장 유명한 볼테르의 철학소설로 작가의 명성이 정점에 달한 64세에 집필하여 175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재기발랄한 문체로 실제 사건과 허구를 교묘히 결합하고 당시의 시대상을 재치 있게 풍자해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순진하게 낙관론을 믿던 캉디드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낙관론을 풍자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열거하며 보편적인 인간 조건을 성찰하게 한다. “모든 것은 최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라이프니츠의 낙관론과 모든 일은 반드시 그에 대한 ‘충족 이유’가 있고 신의 예정된 조화에 의해 ‘원인과 결과’를 따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예정조화설을 풍자하려는 의도가 작품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이 세상의 우연한 사건과 우연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따져보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 정신적인 악과 육체적인 악에 대해, 자유와 필요에 대해” 토론하고 “가능한 최선의 세상에 대해, 악의 근원에 대해, 영혼의 본성과 예정 조화에 대해” 추론하길 제안하며 독자들에게 논쟁과 성찰을 유도한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의 철학적 사유가 녹아 있는 풍자 소설 볼테르의 정치, 사회, 철학사상을 명쾌하고 기지에 찬 풍자소설이다. 웃음을 통해서 지성에 호소하는 철학적 콩트의 대표작으로써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또한 당시의 모순된 사회와 정치, 부패한 성직자들, 그리고 대중의 어리석음, 특히 전쟁과 종교적 불관용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여 화제가 되었된 18세기 프랑스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캉디드는 스승 낙천주의 철학자 팡글로스의 가르침대로 세상은 ‘최선最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고 있었으나, 남작의 딸 퀴네공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름다운 성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후 순박한 청년 캉디드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참혹한 전쟁과 굶주림, 광신, 지진, 난파, 질병, 온갖 만행과 약탈 등 인간의 모든 불행들을 경험하고 염세주의 철학자 마르탱을 만나 논쟁과 갈등을 겪는다. 결국 비참한 체험과 온갖 사회적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낙천주의와 염세주의를 벗어나 인간의 운명은 오직 밭을 경작해 나가듯이 스스로 개척하고 발전해 가는 것이라는 볼테르의 계몽사상을 담고 있다.
<쟈디그 깡디드> “낙천주의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은 악한데 모든 것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광증이라네.” ‘계몽의 세기’를 밝힌 위대한 사상가 볼떼르 기지와 재치가 넘치는 그의 대표작들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고, 독일에 종교개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떼르가 있다.” _빅또르 위고 계몽사상가 볼떼르의 대표작 두 편을 담았다.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늘 박해 받았던 볼떼르의 비유적 자서전이라 평가되는 『쟈디그 또는 운명』은 그의 기막힌 문학적 상상력과 간결하고도 빠른 리듬의 문체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명쾌하고 기지가 넘치는 풍자소설 『깡디드 또는 낙천주의』는 순진한 깡디드가 겪는 온갖 불운들을 통해 모순된 사회, 부패한 종교의 불관용을 신랄히 비판하며 인간의 운명은 오직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볼떼르의 철학 사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 작품 소개 이성의 빛으로 무장한 불온한 정신, 볼떼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했던 미셸 푸코는 볼떼르를 보편적 지식인의 대표로 칭한 바 있다. 지식이 고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오늘날에는 지식인의 역할도 과거와는 다르겠지만, 어느 시대에서나 공통되는 지식인의 요건이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 한다면 볼떼르야말로 삶 속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볼떼르에게는 시인, 극작가, 역사가, 철학자라는 다양한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실제로 그는 많은 극작품과 서사시를 썼다. 그의 비극은 라신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서사시는 호메로스와 비교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역사서 분야에서도 『칼 12세의 역사』 『루이 14세의 세기』 등의 저서로 고대의 역사가 아닌 가까운 과거의 역사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사료 편찬관으로서 많은 자료를 남겼다. 하지만 볼떼르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현대성과 생명력을 갖는 것은 극작품이나 역사서가 아니라 시인이자 극작가인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160여 개의 필명으로 발표했던 수많은 철학 콩트들과 매일 아침마다 써서 유럽 각국의 지인들에게 보냈던 4만 통에 이르는 편지들, 간편한 형식으로 편리하게 휴대하고 보급하도록 하여 지적 투쟁의 무기로 삼았던 소책자들이다. 볼떼르는 여타의 철학자들처럼 인간의 본성이나 세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나 체계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이성의 고귀한 힘을 옹호하며 모든 권위와 신념, 지식을 시험대에 올려놓았으며 광신과 불의를 고발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을 위해 펜으로써 공론을 제기하고 이끌어갔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에 값하는 것이리라. 볼떼르가 태어난 시기는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시절이었고,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던 낭트칙령이 폐지되어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허용되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볼떼르는 뛰어난 지성과 특유의 독설로 모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권력을 비웃으며 기존의 관념들을 풍자하고 조롱했다. 그때까지 절대적인 종교와 권력을 그처럼 노골적으로 비아냥댄 사람은 없었다. 또한 볼떼르는 평생 교회와 성직자들의 그릇된 권위와 광신을 공격했다. 언제나 불경함은 그의 죄목이었고 권위를 겁내지 않는 불온하고 신랄한 태도는 그만의 개성이었고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재치와 빈정거림은 그의 문체의 뼈대를 이루었다. 일생동안 박해받았던 볼떼르의 비유적 자서전, 『쟈디그 또는 운명』 『쟈디그 또는 운명』은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인해 늘 박해받았던 볼떼르의 비유적 자서전이라 평가되는 작품이다. 어느 날 바빌론의 현인 쟈디그는 왕비의 개를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계속해서 엉뚱한 사건들에 휘말리기만 하는데…… 그럼에도 쟈디그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끊임없이 삶을 회의하면서도 신은 절대적으로 지혜롭고 선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하나의 선이나마 태어나게 하지 않는 악은 없다’는 신념으로 삶을 지탱해 나간다. 이러한 모습은 볼떼르가 『깡디드 또는 낙천주의』를 통해 표출하고 있는 운명의 주재자에 대한 처절한 환멸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볼떼르의 기막힌 문학적 상상력과 간결하고도 빠른 리듬의 문체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최선이 아닌 세상의 악과 부조리, 『깡디드 또는 낙천주의』 독일의 한 아름다운 성에서 자란 깡디드는 남작의 딸인 뀌네공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성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는 철학 스승 판글로스의 가르침을 따라 순진하게 낙관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후 그는 독일에서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을 거쳐 남아메리카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파라과이까지 항해하고 이상향 엘도라도에 도달한 후 다시 수리남을 거쳐 프랑스, 영국, 베네치아로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불가리아 군대에 붙잡혀 죽도록 곤장을 맞고 간신히 빠져나오는가 하면 추위와 굶주림에서 지진과 폭풍, 전쟁과 온갖 질병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을 체험하고, 종교 재판, 노예 제도, 갖가지 위선과 편견, 인간이 만든 악습 등 이 세상에 편재해 있는 악과 부조리를 대면하면서도 깡디드는 낙천주의에 대한 신념을 놓지 않는데…… 명쾌하고 기지가 넘치는 풍자소설 『깡디드 또는 낙천주의』는 볼떼르의 대표작이다. 볼떼르는 순진한 깡디드가 겪는 온갖 불운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과 종교의 부패를 신랄히 비판하며 진정한 행복의 비결은 극단적인 낙천주의와 막연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실제적인 철학에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최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라이프니쯔의 낙관론과 모든 일은 신의 예정된 조화에 의해 ‘원인과 결과’로써 연결된다는 예정조화설을 곳곳에서 풍자하고 있는 이 작품은 사상의 자유를 중시하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사회 비판의 선봉에 섰던 볼떼르의 지혜와 통찰을 보여 준다. ▣ 해외 서평 세상 모든 책이 불탈 때 단 몇 권의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성경과,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들, 그리고 볼떼르의 『깡디드 또는 낙천주의』를 구하겠다. _앙드레 지드 오직 볼떼르만이 모든 사회 불안 요소들이 서로 맞물린 이 거대하고 무서운 세상과의 투쟁에 응했다. 바람처럼 가볍고 천둥처럼 강력한 그의 무기는 펜이었다. 그는 이 무기를 가지고 싸웠고 승리했다. _빅토르 위고 『깡디드 또는 낙천주의』의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훈이다. _귀스타프 플로베르 볼떼르는 일평생 인간의 오류를 고발하기에 전념했다. _귀스타브 랑송 이토록 유쾌하게 비관주의를 논한 책은 없을 것이다. 일찍이 이 세상이 슬프다는 것을 배우면서 이토록 사람들이 마음껏 웃은 적은 없었다. _윌 듀런트
<오이디푸스> 극작가로서의 삶을 볼테르에게 열어 준 『오이디푸스』는 원전 작가인 소포클레스와 프랑스 고전 비극의 거장인 코르네유, 두 대가에게 내민 도전장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또한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성을 버리고, ‘볼테르’라는 필명을 쓰면서 태어난 첫 작품이기도 하다. 18세기 극작계를 풍미한 볼테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전통과 이를 계승한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비극은 저주받은 왕의 파멸을 통해, 인간의 판단과 행위를 초월하는 운명의 무서운 힘을 보여 준다. 볼테르는 새로운 인물과 성격을 창조하거나 또는 다른 극적인 요소를 추가하여, 그리스의 비극을 근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시대에 맞는 극작품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부친 살해와 근친상간을 저지르게 된다는 끔찍한 예언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잔혹한 운명을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운명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헛된 것이다. 비극이 설정하는 인간은 의식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범하도록 예정된 운명에 매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극은 인간의 이와 같은 왜소함을 드러내어 관객의 공포와 연민을 자극하는 한편,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이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가?’라는 의문점을 제시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랭제뉘> 당대 프랑스의 사회 상황을 풍자한 콩트 볼테르가 ≪랭제뉘≫를 쓴 시기는 1760년대이지만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1689년이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서는 두 시기의 다양한 사건들이 서로 뒤섞여 있다. 때문에 당대의 프랑스 독자들은 ≪랭제뉘≫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로부터 당시의 현실들과 관련된 은유적인 부분들을 찾으려 했고, 그러는 가운데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 이 작품이 그만큼 시사적인 문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얘기다. 볼테르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케넬 신부의 원고들에서 발췌한 실화(Histoire véritable tirée des manuscrits du Père Quesnel)’라는 부제를 붙인 것도 그러한 민감한 사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랭제뉘≫는 1767년 봄에 집필되고 7월에 인쇄되어 8월에 제네바에서 익명으로 먼저 출간되고 이어서 파리에서도 출간되었으나, 파리에서는 경찰에 의해 즉각 회수되었다. ≪랭제뉘≫가 이렇게 프랑스 정부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된 바처럼 당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다양한 풍자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종교 갈등 상황을 묘사하면서 반목하고 있던 장세니스트들과 예수회 양쪽 모두를 포함해서 가톨릭교회 전체를 비난하고 있다. 이 책에 나타난 종교적 비판의 내용은 광신주의에서 비롯된 폭력, 예수회 신부들의 위선과 부패, 성경을 신이 구술한 책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은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순, 장세니스트들의 형이상학적 논쟁 취향, 사랑이라는 자연적 감정에 반대하는 가톨릭교회의 반자연적 성향 등에 관한 것들이다. 또한 그는 왕의 봉인장 제도 및 궁정인들의 도덕적 타락, 군대 계급이나 행정직들을 사고파는 제도 등 정치적인 비판에도 힘을 쏟는다. 특히 왕이 마음대로 시민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봉인장 제도의 폐해는 이 작품의 플롯에서 핵심적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볼테르 자신도 이 제도의 희생자가 되어 두 차례나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을 만큼, 봉인장 제도는 18세기의 근본적인 문제이자 주된 관심사로 떠오른 사안이었다. 볼테르 식 ‘선한 원시인’ 신화 주인공 랭제뉘는 이야기 초반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휴런족 청년으로 소개된다. 신대륙의 발견 이후 유럽에서는 문명의 발전이 빚어낸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형을 원시 상태에서 찾고자 하는 흐름이 존재했다. 이로써 볼테르는 당시 유행하던 ‘선한 원시인(bon sauvage)’이라는 문학적·철학적 전통의 흐름을 타는 셈이다. 랭제뉘는 이 작품에서 유럽의 문명에 대한 비판을 감행하는 볼테르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는 문명을 희생시키고 원시적인 삶을 찬양하는 ‘선한 원시인’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때문에 그는 작품에서 자신의 ‘선한 원시인’ 랭제뉘에게 문명을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이 휴런족 청년은 지식의 습득과 함께 정신적 성장도 하게 된다. 자연 상태에서 오염되지 않았던 그의 자유롭고 순수한 정신이 교육으로 인해서 비로서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선한 원시인’ 담론에 대한 볼테르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볼테르는 일찍이 <사교계인(Le Mondain)>(1736)이라는 시를 통해 문명의 이점들을 찬미한 바 있다. 즉, 그는 문명의 폐해를 벗어나 자연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과 회복해야할 인간적 덕성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