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의 사내> “만일 그의 작품이 순수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싸구려 표지 대신 거창한 표지를 내세웠더라면 그렇게 비평가들에게 잊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_ 어슐러 르귄 1963년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 대체 역사소설의 걸작! 소설가를 꿈꾼 철학자 필립 K. 딕. 지금 그가 가상의 역사를 그려 보인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콘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의 네 번째 주자로 1963년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내』가 출간되었다. 『높은 성의 사내』는 ‘2차 세계대전에서 만일 연합군이 패했다면?’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양분하여 지배하는 음울한 가상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마치 거울에 비춰본 세상처럼 지금 우리의 현실과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판이한 세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높은 성의 사내’가 쓴 책을 정신적 위안으로 삼는다. 갖가지 망상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평생 순탄치 못하게 살면서도 늘 그를 둘러싼 세상에 의문을 던지고 구원을 꿈꾸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보지 못했을 우리의 모습을 절묘하게 비춰 보여준다. 대체역사 소설의 효시, 『높은 성의 사내』 필립 K. 딕은 이 작품으로 대체역사 소설이라는 장르를 처음 개척함과 동시에, 1963년에는 최고의 SF작품에게 주어지는 휴고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으며, 사후에야 재조명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어슐러 르귄이 “만일 그의 작품이 순수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싸구려 표지 대신 거창한 표지를 내세웠더라면 그렇게 비평가들에게 잊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과 찬사를 한데 모아 표현했듯, 필립 K. 딕은 과학소설의 보편적 소재를 이용해 진지한 메시지를 담는 작가로서 20세기 SF문학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높은 성의 사내』는 딕이 작품 활동 최전성기에 접어드는 1962년에 발표되었다. 이후 『화성의 타임슬립』,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유빅』 등 최고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정체성의 혼란과 다중 현실, 그리고 불안감과 편집증 등 작가 특유의 코드는 이 작품에서 이미 발현되고 있다.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세상’, 그 안에 깃든 존재론적 의문 암울하고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그린 딕의 작품에서는 ‘당신은 누구인가’를 비롯해 ‘당신이 보고 있는 현실은 진실인가’ 같은 존재론적인 질문이 거듭 등장한다. 이 작품도 다르지 않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양분해 통치하고, 미국 역시 동부는 독일이, 서부는 일본이 지배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진짜 현실(연합군이 승리하고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주도해가던 1962년)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책 속의 책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 속에만 존재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동양문화를 숭배하며 일본인들의 우월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백인들과 인종 청소라는 끔찍한 짓을 자행하는 나치의 만행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는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만연한 백인 우월주의와 팔레스타인의 혼란을 야기한 유태인들을 모습과 다름 아니다. 그래서인지 『높은 성의 사내』에서 그려진 현실 혹은 그 세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혼란 속에서 21세기의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필립 K. 딕 소설 속이 주는 철학적인 메시지들은 단순히 텍스트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현실적인 맥락과도 맞닿아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한 작가의 상상력은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의 현실을 뒤집어 다시 한 번 조망하게 해준다. ■ 줄거리 1962년,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독일과 일본은 세계를 양분해 지배하고 있다. 노예제가 버젓이 자행되며, 인종 말살 정책이 법제화된 세상. 그런 세상에서 유태인은 살아남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한 미국인들은 딱지와 코믹스 같은 자신들의 문화상품을 일본인에게 팔면서 굴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들에게 남은 하나의 희망은 ‘높은 성의 사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 작가의 소설이다. 그는 연합군이 승리한 세상을 그려내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위로한다. 한편, 지배자들은 반체제적인 소설을 쓰는 그의 정체를 찾느라 혈안이 되고, 피지배계층인 주인공들은 그를 보호하려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모두 ‘높은 성의 사내’가 그린 소설 속 세상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 본문 중에서 나도 유태인을 좋아하지는 않아. 하지만 1949년에 너희들이 살던 미국에서 도망친 유태인들은 좀 봤지. 너희들이 그들을 쫓아내고 미국을 차지했잖아. 미국에 다시 건물이 잔뜩 들어서고 굴러다니는 돈이 많은 건 뉴욕에서 유태인을 몰아낼 때 뺏은 돈이 많아서야. 그 빌어먹을 나치의 뉘른베르크법* 덕분이지. 나는 어렸을 때 보스턴에서 살았어. 유태인과 관련해 특별한 경험은 없지만 아무리 전쟁에서 졌다고 해도 미국에서 나치의 인종차별법이 통과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늙은 히틀러는 매독으로 온 몸이 마비되고 노망까지 든 채 여생을 보내고 있다. 뇌까지 번진 매독은 그가 비엔나에서 길고 검은 코트에 더러운 속옷을 입고 싸구려 간이숙소를 전전하며 부랑자로 살던 시절에 얻은 것이다. 무성영화에나 나올 법한 하느님의 복수가 분명했다. 그 지독한 자는 몸속 더러움, 남자의 추악함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역병에 쓰러졌다. 끔찍한 건 지금 독일제국이 바로 그자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두뇌는 처음에는 정당을, 이어서 나라를, 다음에는 세계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지도자’ 히틀러의 헛소리는 여전히 성스럽게 여겨졌으며 아직도 성서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사상은 이제 사악한 씨앗처럼 온 문명세계를 감염시켰고, 나치의 맹목적인 금발 동성애자들은 이제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으로 내달리며 더러움을 퍼뜨리고 있다. 내가 이 친구와 가까운 인종이라고? 바이네스는 의아했다. 사실상 같은 민족이나 다름이 없어? 그럼 내게도 정신병자 같은 구석이 있겠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신병 환자로 가득해. 미친놈들이 권력을 잡았어. 우리는 언제부터 그걸 알았을까? 언제부터 직시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까? 로체는 모른다. 스스로 미친 걸 안다면 미친 게 아니지. 아니면 마침내 제정신을 차리는 중이거나. 깨어나고 있는 거지. 내 생각에 이 모든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나마 여기저기 따로 떨어져 있지. 하지만 일반 대중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제정신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들도 슬쩍슬쩍 진실을 의심할까? 라이스는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일본 놈들을 더 세게 압박해서 이 책을 금지시켰어야 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라이스가 화나는 건 이 부분이었다. 아벤젠이 쓴 책에 묘사된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 히틀러와 나치당, 독일의 패배와 파멸. 그 모든 것이 왠지 더 웅장한데다 현존하는 실제 세계, 그러니까 독일이 패권을 차지한 지금 상황보다 옛 정신과 더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나는 살아 있지 않아요. 우리는 기계죠. 병뚜껑처럼 찍어낸 존재예요. 내가 실제로, 개별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던 거죠. ‘인간’과 ‘현실’에 관한 근원적인 의문을 탐색하는 필립 K. 딕 소설의 총화! 20세기 최고의 SF 영화로 추앙받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콘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라고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엄선한 ‘필립 K. 딕 걸작선’이 12번째 작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이하 『안드로이드』)로 완간되었다. 『안드로이드』는 필립 K. 딕의 작품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SF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전설적인 SF영화로 추앙받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도 이미 2번 이상 출간된바 있다. 기존의 번역본들은 일어판 중역본이거나, 완역본인 경우에도 문장의 가독성을 추구한 나머지 지나치게 윤문을 가해 틀리거나 누락된 부분이 있어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폴라북스에서는 본 작품을 출간하면서 문장 및 문단 배열을 최대한 원작과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필립 K. 딕 특유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기존의 판본을 읽은 독자들이라 해도 폴라북스의 판본을 읽는다면 아마 전혀 다른 작품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핵전쟁 이후 지구가 황폐해지자 식민 행성이 개척되고, 인간과 유사한 로봇(안드로이드)을 제작하는 수준으로 발전된 과학 문명을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성으로 이주하여 안드로이드를 노예로 부리며 살아가며, 지구에는 소수자들만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들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혹은 ‘꿈’을 찾아 지구로 탈주하는 일이 벌어지자, 지구에서는 경찰서에 현상금 사냥꾼을 배치하여 도주한 안드로이드들을 잡아 파괴시킨다. 이 작품은 현상금 사냥꾼인 릭 데카드가 한 가지 측면-즉, 인간이 지닌 감정이입 능력만 제외하고는 인간과 똑같은, 아니 인간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춘 데다 더 강렬한 생의 의지를 지닌 안드로이드들을 사냥하게 되는 하루 동안의 일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데카드와 안드로이드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안드로이드라는 소재 자체는 독자들에게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한편 두 관계는 인간과 기계 및 나와 타자의 대립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또한 릭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스스로가 안드로이드인지 진짜 인간인지를 의문시하는데, 이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의문인 동시에, 또 다른 소재인 ‘머서교’라는 집단정신과 ‘기억 위조’라는 소재와 함께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의문으로도 발전한다. 필립 K. 딕이 창조한 소재인 ‘머서교’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다. 머서교는 ‘감정이입’을 근본으로 하는 집단정신의 일종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신학이자 가르침으로 통용된다. 머서교는 안드로이드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데, 즉 안드로이드를 차별(감정이입 능력이 결여된 안드로이드는 머서교의 집단 경험에 참여할 수 없다)하는 한편, ‘모든 생명은 공평하다’라는 교리로 ‘안드로이드에 대한 차별이 정당한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릭 데카드는 안드로이드 사냥 과정에서 (자신의 아내보다 더욱) 생의 의지가 강렬한 안드로이드를 잡아 죽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에 괴로워하고, 안드로이드는 “동물조차도, 심지어 뱀장어나 뒤쥐나 뱀이나 거미조차도 성스러운 존재이며, 동물조차 법으로 보호를 받는데” 자신들만은 인간의 손에 파괴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현실에 분노한다. 이렇듯 『안드로이드』는 배경에서부터 본문에 등장하는 각종 소재들에 있어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필립 K. 딕 특유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소재들은 필립 K. 딕이 일평생 천착했던 주제로 귀결된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느끼는 현실을 과연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가? 자유의지와 생명을 지녔으나 인간이 아니라는, 혹은 인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다른 존재의 생명을 앗아도 되는가? 『안드로이드』에는 ‘인공두뇌학’이라는 독특한 과학 이론을 중심으로, 인간과 기계, 대안 종교, 생명윤리, 매스미디어와 자본주의 등 복합적이고 다양한 주제를 형상화시킨 수작이다. 필립 K. 딕은 SF소설이 단순히 과학 기술과 미래상을 그리는 오락소설이 아니라 인간과 삶에 관한 문학적 사유라고 밝힌바 있다. 『안드로이드』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상징과 비유들이 논리적으로 얽혀 다양한 해석과 사유를 낳음으로써 필립 K. 딕 소설의 총화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이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대중적 읽을거리로 인식되던 SF소설을 문학과 문화 연구의 대상으로 편입시켰고, 이후 SF소설의 정전(正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 줄거리 최종세계대전 이후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여 불모지가 된 지구.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성으로 이주하여 일종의 로봇 노예인 안드로이드를 부리며 살아간다. 지구에 남은 소수민들은 살아 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인간적인 가치를 입증하는 행위로 여긴다. 릭 데카드는 지구로 도주해온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현상금 사냥꾼.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전기양 대신 살아 있는 동물을 한 마리 키우는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온다. 그의 구역으로 안드로이드 여섯 대가 도주해온 것이다. 1993년 1월 3일, 사냥에 나선 데카드는 인간과 다를 바 없이 개별자로서 행위하고, 강렬한 생의 의지를 지닌 안드로이드들을 만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 본문 중에서 그에게 정말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말을 한 마리 갖는 것이었다. 사실은 말이 아니라 다른 어떤 동물이라도 좋았다. 가짜 동물을 소유하고 기르는 일은 사람의 사기를 점차 저하시키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 진짜 동물이 없을 경우에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이런 상황을 계속해나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자신이 동물이 있느냐 없느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해도,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게다가 아이랜은 분명히 이 일에 신경을 썼다. 그것도 아주 많이. _1장 릭이 말했다. “저는 안드로이드가 아니에요.” “당신이 저한테 하고 싶다는 검사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전의 상태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당신도 받아본 적이 있나요?” “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요. 제가 경찰서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요.” “어쩌면 그것도 가짜 기억일 수 있어요. 가짜 기억을 갖고 돌아다니는 안드로이드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릭이 말했다. “제 상관들이 그 검사에 관해 알고 있어요. 그건 의무 사항이니까요.” “어쩌면 한때 당신처럼 생긴 사람이 실제로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당신이 그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거죠. 당신의 상관들도 그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는 거예요.” _9장 “나는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을 만났어.” 릭이 말했다.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어. 상당히 난폭한 사람이었는데, 앤디들을 파괴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와 함께 있었던 다음부터, 나는 난생 처음으로 그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어. 무슨 말인가 하면, 내 나름대로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나는 그 사람이 하는 것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이 이야기, 나중에 하면 안 돼?” 아이랜이 말했다. 릭이 말했다. “나는 검사를 받았어. 질문을 한 가지 했지. 그리고 확인했어. 내가 안드로이드와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했다는 걸.” _15장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나? 릭은 속으로 물었다. 그건 분명해. 그들이 때때로 주인을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치는 이유도 그것이니까. 더 나은 삶, 노예 신세가 아니라. 루바 루프트처럼 말이야. 〈돈 조반니〉와 〈피가로의 결혼〉을 노래하는 거지. 황량하고 바위투성이인 지표면을 힘들게 오가는 것 대신에 말이야. 근본적으로 거주가 불가능한 식민 세계에 사는 것 대신에 말이야. _16장 “사실 모르겠어요. 그걸 내가 알 도리는 전혀 없죠.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건 그렇고 태어난다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까요. 우리는 태어나지 않아요. 자라지도 않죠. 병에 걸리거나 나이가 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개미처럼 닳아서 망가지죠. 실제로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닌 키틴질반사 기계장치죠.” 그녀가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살아 있지 않아요!” _16장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시간과 공간, 현실과 꿈, 신과 인간, 인간과 기계…… 모든 것이 무너진다! 현실을 뛰어넘은 상상력, 철저히 인간적인 감수성 창조력의 정점에서 쓴 필립 K. 딕 단편의 정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의 모티브가 된 <작고 검은 상자> 1990년 폴 버호벤 감독과 2012년 렌 와이즈먼 감독에 의해 두 번이나 영화화된 <토탈 리콜>의 원작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발리스 3부작’의 바탕 아이디어가 담긴 「시빌라의 눈」 『성스러운 침입』의 기본 틀을 마련한 「대기의 사슬, 에테르의 그물」 『닥터 블러드머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전 이야기를 볼 수 있는 「테란 오디세이」등 총 25편, 국내 최초 공개 신작 23편 수록!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 필립 K. 딕의 장편 12편을 추려 걸작선을 내고 있는 폴라북스에서 필립 K. 딕의 단편집 『도매가로 기억을 판매합니다』가 출간되었다. 1990년에 컬쳐쇼크를 주며 명작으로 등극한 폴 버호벤의 영화와 2012년 새로이 만들어진 렌 와이즈먼 감독의 영화 <토탈 리콜>의 원작 「도매가로 기억을 판매합니다」가 표제작이며, 이 외에 필립 K. 딕이 가장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하던 시기의 단편들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도매가로 기억을 판매합니다』에 수록된 단편은 모두 스물다섯 편으로, 1963년에서 1981년, 필립 K. 딕이 죽기 겨우 몇 달 전에 쓴 작품까지 모은 것이다. 이 시기에 필립 K. 딕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유빅』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발리스 3부작’ 등 대표적인 장편들을 써냈다. 장편에 주력했던 시기이니만큼 상대적으로 단편의 수 자체는 60년대 이전에 썼던 단편의 수에 비해 적지만, 필립 K. 딕이 계속해서 탐구했던 주제인 “현실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이 작품집에 살아남아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 연민이 깊게 배어난다. 한 인간으로서 역동적인 삶을 살았고, 작가로서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때의 작품답게 그 울림이 크다. 『도매가로 기억을 판매합니다』에 수록된 작품들은 “나는 내가 아는 나인가?” “여기는 현실인가?”라고 물으며 공고한 현실로만 생각했던 모든 것에 의심을 던진다. 필립 K. 딕 특유의 주제로 보여주는 그 의심의 대상에는 신, 인간, 죽음 등에 대해 보편적으로 믿는 관념도 들어가있다. 하지만 필립 K. 딕은 이러한 관념을 전복시키는 신선한 자극과 충격을 선사함과 동시에 여기에 등장하는 기반 없이 무너지는 세계 또는 적대적인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군상이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 현대인의 초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현해냄으로써, 필립 K. 딕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간 작가인지를 탄복하게 한다. 『도매가로 기억을 판매합니다』는 필립 K. 딕이 어째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SF 작가, SF 작가 중의 SF 작가라고 불리는지, 또한 왜 문학사적으로 재평가받으며 비평계와 일반문학계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지, 어째서 시대를 뛰어넘으며 끊임없이 회자되며 다른 매체로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아울러 이 단편집은 그의 작품세계의 진면목을 확인시켜줄 가장 풍성한 선물상자일 것이다.
<세계의 수호자> 진열 분야 소설 > SF/환타지 소설 > 영미소설 책 소개 8년에 걸친 대규모 핵전쟁으로 지구의 표면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되었다. 지하로 대피한 인간들은 자신을 대신해서 전쟁을 수행할 로봇을 대규모로 개발하고, 지표면에서 로봇 간의 전쟁이 계속된다. 전쟁의 핵심 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엔지니어인 테일러에게 방사능으로 가득 찬 지표를 탐험하고 오라는 지시가 내려 오고, 지표면에서 뭔가가 벌어지는 중이라는 의심을 가진 프랭크 등과 지표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필립 K. 딕의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명쾌한 결말이 더 큰 여운을 남겨 주는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SF 작가 필립 K. 딕 강렬하고 독창적인 착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초기 단편들 작가 필립 K. 딕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초창기 걸작을 만난다! 후대의 SF 영상 매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스크리머스>의 원작 「두 번째 변종」 개리 플레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임포스터>의 원작 「사칭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영화화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오우삼 감독의 손에서 세련된 액션 영화로 재탄생한 「페이첵」 리 타마호리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넥스트>의 원작 「황금 사나이」 조지 놀피 감독, 맷 데이먼 주연 <스크롤러>의 원작 「조정 팀」 작가가 직접 쓴 창작에 얽힌 뒷이야기 등 영화화된 단편 6편 및 국내 최초 공개작 11편 포함, 총 20편 수록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SF 작가로 평가받으며 문학계와 비평계에서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필립 K. 딕. 그의 장편 12권을 ‘필립 K. 딕 걸작선’으로 완간한 폴라북스에서 단편집『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출간했다. 필립 K. 딕이 전업 작가 생활을 막 시작한 1952년부터 중・장편과 순수문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1954년까지, 신인 작가이던 3년 사이에 집필한 120여 편의 단편들 중에서 영화화되거나 문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 20편을 엄선해 실었다. 필립 K. 딕은 작가 생활 초기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작을 택했고, 작품 판매를 위해 스페이스 오페라나 호러,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당대 독자에게 익숙한 장르를 차용하곤 했다. 그 때문에 초기 단편들은 생의 중후반에 쓴 장편들보다 대중성 면에서는 오히려 뛰어나다. 짧은 길이와 단순한 구조 안에 강렬한 서사를 담아 딕만의 독창적 아이디어와 개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 이해하기도 훨씬 쉽다. 독자는『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딕이 왜 현실을 거부하고 이에 대해 반역을 꾀했는지, 그를 점점 극한으로 몰고 간 광기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딕이 쓴 유일한 호러 단편「음울한 대지에 고하노니」, 순수 판타지 단편 「요정의 왕」, 지구를 떠나는 인류의 비애를 그린「단기 체류자의 행성」 등 딕의 중・장편과는 사뭇 다른 소재와 분위기, 문체를 지닌 작품들도 실려 있어 딕의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존재론적 고뇌와 흔들리는 현실 딕의 초기작들을 발표 순서대로 실은『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 독자는 작가가 천착한 주제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장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워브는 그 너머에 머문다」에서는 화성의 생물 워브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성에 대한 탐구라는 화두를 던지고, 「두 번째 변종」에서는 인간과 구분하기 힘든 로봇을 등장시켜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간인 척하는 것뿐인가?’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파고든다. 허구의 세계가 현실을 침식해 들어가는 이야기인 「통근자」에서는 이 사실을 눈치채고 허구 세계의 기원을 찾던 주인공마저 결국에는 침식된 현실을 진짜 현실이라 믿게 된다. 「조정 팀」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가 절대자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개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마저 그리될 수는 없다고 저항하지만, 마지막에는 저항을 포기하고 개변된 세계를 받아들이고 만다. 이렇게 필립 K. 딕은 진실과 거짓,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함을 다루며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 혼란의 심층을 파헤친다. 전쟁의 위협과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 인종차별…… 시대의 초상 딕은 또한 핵전쟁의 위협과 매카시즘 광풍에 시달리며 불안해하던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수호자」에서는 핵전쟁으로 파괴된 지상에서 떠나 지하로 숨어 들어간 사람들과 파괴된 지구를 재생시키는 선량한 로봇 문명을 대비시키고, 「변수 인간」에서는 전쟁 수행을 다른 모든 일에 우선시하며 이를 빌미로 권력을 독점하려는 인물 군상을 그려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을 비판한다. 「사칭자」에서는 외계의 존재에 대한 공포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란 설정으로 당시 미국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매카시즘의 횡포를 암시한다. 「포스터, 넌 죽었어!」에서는 정부가 방공호 마련과 공중 방어 시스템 구축 등 국방의 의무를 개인에게 지우면서 군산복합체와 결탁해 사람들을 공포로 조종한다. 당시 교외를 뒤덮기 시작하던 광고에 대한 혐오감을 극한까지 표출한 「자가 광고」, 미래를 예지하고 선택하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자신의 사소한 이득만을 위해 행동하는 「독점 시장」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섬뜩하게 드러낸다. 로봇과 인간을 차별하는 사회를 통해 당시의 인종차별을 비꼬는 「제임스 P. 크로우」, 대중매체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는 사회를 묘사한 「얀시의 허울」, 정부와 기업 사이에 끼여 힘없이 휘둘리는 처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페이첵」 등 대부분의 단편이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필립 K.딕이 예견한 미래는‘현재진행형’ 책에 실린 작품들이 발표된 지 6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적대적이고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발버둥 치며 무너져 내리는 인간 군상의 모습은 21세기 현대인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극에 달한 자본주의의 섬뜩한 단면을 그린 「자가 광고」나 대중매체의 무한한 영향력을 경고하는 「얀시의 허울」 등 몇몇 작품은 오히려 작품이 쓰인 때보다 현재에 더욱 설득력을 발휘한다. 이는 딕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문제의식이 시대를 관통해 유효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원작에서 10년 후를 다룬 드라마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2016년 1월 폭스 채널에서 방영 예정이고, <요정의 왕>은 2016년 개봉을 목표로 해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다. 이렇게 딕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작 되고 있다.
<발리스> 진정한 시간은 C.E. 1974년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이의 기간은 큰정신의 창조를 흉내 낸 완벽한 위조 개작품이었다.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선악의 대립과 경계가 해체된 시대의 절망과 구원을 말하다 필립 K. 딕이 실제 신비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세기의 문제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컨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의 여섯 번째 주자로 『발리스』가 폴라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필립 K. 딕이 실제로 한 신비 체험을 토대로 말기에 집필한 ‘발리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체험담이 녹아들어간 자전적 내용, 영지주의를 근간으로 신화학, 신학, 철학, 정신분석학, 음모 이론이 복잡하게 뒤얽힌 이론적 바탕, 가짜 기억과 현실 붕괴 속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탐구한 필립 K. 딕 특유의 주제의식이 어우러진 세기의 문제작이다. 『발리스』는 1974년 2월에 분홍색 광선을 맞고 막대한 양의 정보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한 호스러버 팻(작가이자 화자인 필립 K. 딕의 분신)의 이야기이다. 팻은 인간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 체험을 설명하기 위해서 『주해서』라는 방대한 저술을 집필하고, 친구의 자살, 자신의 이혼, 자살 시도, 정신병원 감금, 연인의 암 재발과 사망 등 차마 한 인간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연이어 겪으면서 더욱 『주해서』의 집필과, 분홍색 광선을 쏘아 보낸 신적인 존재의 진실에 집착한다. 급기야 그는 비합리적인 세계에 다시 태어나있을 구세주를 찾아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발리스』는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간 필립 K. 딕과, 그가 평생에 걸쳐 소설을 통해 절실하게 탐구한, 타락하고 거짓된 현대사회와 불안한 인간이라는 테마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감동적인 걸작으로, 시간은 흘렀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독과 고뇌를 그려낸 작품이다. 고독하고 절실한 인간의 이야기 - 현대의 성배를 찾아 나선 필립 K. 딕 『발리스』는 선악의 대립, 이념 사이의 경계가 해체되고 힘을 잃은 현대 자본사회의 새로운 성배 신화라고 할 만한 세기의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필립 K. 딕의 자전적인 소설에 가깝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필립 K. 딕이 화자로 직접 등장하고 있으며, 그가 서술하는 주인공 호스러버 팻은 사실 딕의 분신이다. 1974년 2월부터 3월에 걸쳐 분홍색 광선을 맞고서 병원에서 진단도 받지 못한 아들의 병을 자세하게 안다거나, 방사능 수치가 높아졌다거나,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거나, 소련의 과학자들을 꿈에서 보았다거나, 갑자기 그리스어로만 말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거나 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고, 이를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주해서』를 집필한 것 또한 필립 K. 딕의 실제 인생 이야기이다. 팻과 토론을 벌이는 친구들, 아들과 부인, 팻이 사는 곳도 모두 실제의 인물과 장소를 그대로 쓰거나 이름만 바꾼 것이다. 『발리스』는 실제로 벌어진 일만큼이나 팻(그리고 딕)이 『주해서』를 집필하면서 드는 학문적이고 예술적인 의문과 가설과 그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이 비중 있게 들어간 작품이기 때문에, 일견 매우 난해하고 사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난해하고 불친절한 서술 속에서도 이 작품에 강력한 힘과 인간적인 감동을 부여하는 것은 작가 자신이다. 절망과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 마약을 가까이 하고, 도저히 한 사람이 겪고서 견뎌낼 것 같지 않은 사고와 자살 시도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필립 K. 딕이라는 인간, 그리고 그를 광기로 내몰고 외롭게 만들었던 서구 현대 사회의 병폐들이 『발리스』라는 작품을 낳은 것이다. 『발리스』에서 필립 K. 딕은 자본이 대신 자리를 채웠을 뿐 사실상 전제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가 계속되어 온 2000년의 역사를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한다. 절대로 낫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 성배 신화의 파르지팔처럼, 필립 K. 딕은 자신의 상처를 통하여 인간의 병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치유하고자 하는 작품을 썼다. 그것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이 바로 이 『발리스』인 것이다. 거짓 세상과 가짜 기억을 통해 이야기한 필립 K. 딕 평생의 주제 - 현실이란 무엇인가? 배경이 현대이며 심지어 자전적 소설이라는 크나큰 차별점이 있지만 『발리스』는 필립 K. 딕이 초기부터 소설을 통해 천착해왔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어찌 보면 그 주제들을 심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적 배경이 미래가 아니고, 공간적 배경이 멀리 떨어진 행성이 아닐 뿐이다. 『발리스』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높은 성의 사내』를 잇는 대체역사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아예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달라져 현재 우리가 아는 역사와 상황이 많이 다른 『높은 성의 사내』와 달리 『발리스』는 필립 K. 딕이 등장하고, 많은 역사적 사실이 현실 역사와 부합하지만, 실제 역사의 이면에 다른 힘이 존재한다는 음모론적 설정이 들어가있다. 본래 필립 K. 딕은 『높은 성의 사내』 후속작을 쓰려고 했으나,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으나 마음이 인간이 아닌 나치의 입장에 이입해서 쓰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포기했다고 한다. 이러한 시뮬라크르, 즉 외형을 모방하였으나 실재가 아닌 것에 대한 경계와 인식은 필립 K. 딕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성이란 것에 의문을 던지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마약을 통해 무한히 증식하는 환각 세계를 체험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현실의 기반에 의문을 던지는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자폐증에 걸린 소년이 보는 미래를 보려다가 현실 붕괴를 경험하게 하는 『화성의 타임슬립』 등 많은 작품에서 필립 K. 딕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현실을 경계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해왔다. 『발리스』 또한 이런 점에서는 필립 K. 딕의 전작을 잇는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PKD는 『발리스』를 기점으로 SF에서 신비주의로 전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에게 SF란 결국 ‘『주해서』의 주해서’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또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해서』의 압도적인 영향하에 작성된 ‘발리스 3부작’의 주제도 (로렌스 서틴의 지적처럼) PKD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두 가지 질문(“현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결국 『주해서』는 PKD의 이전 작품에 나타난 세계관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_ 박중서 ■ 줄거리 호스러버 팻은 1974년 2월에 분홍색 광선을 맞고 막대한 양의 정보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신비 체험을 하고선,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주해서』라는 방대한 저술을 집필하고 있다. 이 세상은 비합리적이고 사악한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 신비 체험은 진정한 신이자 합리적인 정신과 접촉한 사건이라고 믿는 팻을 두고 친구들은 매번 끝이 나지 않는 토론을 벌인다. 친구의 자살, 자신의 이혼, 자살 시도, 정신병원 감금, 연인의 암 재발과 사망 등 팻은 차마 한 인간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연이어 겪으면서 더욱 『주해서』에 집착하게 된다. 급기야 그는 비합리적인 세계에 다시 태어나있을 구세주를 찾아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구세주의 단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다. ■ 본문 중에서 호스러버 팻의 신경쇠약은 혹시 넴뷰탈을 갖고 있느냐는 글로리아의 전화를 받던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그걸 왜 찾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자살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돌리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쉰 알을 모았는데, 아무래도 삼사십 알은 더 있어야만 효과가 확실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즉시 호스러버 팻은 이것이 나 좀 도와달라고 말하는 그녀 특유의 방식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는 벌써 몇 년째 자기가 남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망상을 품고 살았다. 그를 담당한 정신과 의사는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다음 두 가지만 준수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나는 마약을 끊는 것(사실 그는 애초부터 마약을 하지는 않았다), 또 하나는 남들을 도와주는 버릇을 끊으려 노력하는 것(여전히 그는 남들을 도와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느님은 분홍색 빛으로 이루어진 광선을 그에게, 그의 머리에, 두 눈에 발사했다. 팻은 일시적으로 눈이 멀었고 이후 며칠 동안이나 머리가 아팠다. 그 빛을 정확히 표현하진 못하지만 분홍색 빛으로 이루어진 광선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쉽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이 코앞에서 바라보던 전구 불이 꺼진 후 눈앞에 나타나는 안내眼內 섬광의 잔상과 매우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팻의 눈앞에는 종종 그 색깔이 유령처럼 출몰했다. 때로는 텔레비전 화면상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는 그 색깔, 바로 그 특정한 색깔을 삶의 보람으로 삼았다. 『일기』라는 것은 내가 붙인 이름일 뿐, 팻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붙인 이름은 『주해서』였다. 이것은 성서의 일부분을 설명, 또는 해석하는 글을 의미하는 신학 용어다. 팻은 자기를 향해 발사된 그 정보, 연이은 파도처럼 밀려와서 점차 그의 머릿속을 꽉꽉 채우는 그 정보가 거룩한 기원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일종의 성서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팻은 자기가 썼던 말을 인용했다. 그의 주해서에서는 이 한 문장이 거듭 등장했다. 이 문장은 그의 표어나 다름없었다. 원래 이 문장은 상당히 거창한 꿈속에서 그에게 계시된 것이었다. 그 꿈에서 그는 또다시 아이가 되었고, 먼지 쌓인 헌책방에서 희귀본인 옛날 과학소설 잡지들을, 특히 《어스타운딩》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 꿈에서 그는 수북이 쌓인, 낡아빠진 과월호를 수도 없이 뒤적이면서,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귀중한 연재물을 찾고 있었다. 그 연재물을 찾아서 읽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 꿈의 요지였다. 팻이 말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 타르수스의 바울, 시몬 마구스, 파라켈수스, 뵈메와 브루노가 모두 알고 있던 대단한 비밀이었습니다. 우주는 결국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단일한 실체로 수축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부패와 무질서를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즉 증가하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제가 쓴 주해서의 항목 #18은 이렇습니다. ‘진정한 시간은 C.E.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함께 중지되어버렸다. 진정한 시간은 C.E.1974년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이의 기간은 큰정신의 창조를 흉내 낸 완벽한 위조 개작품이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캘리포니아 대학 풀러턴 캠퍼스에서 강의를 할 때, 어떤 학생이 현실을 짧고도 간단하게 정의해달라고 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고 이렇게 말했다. "현실이란 당신이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해서 금세 사라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왜 팻이 더 이상은 환상과 신적 계시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지를 이제는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실제로는 한 번도 정립된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는 제브러가 시리우스 성계의 어느 행성에서 온다고, 그것이 1974년 8월에 닉슨의 독재 정권을 전복시켰고, 장차 이 지구상에 정의로고도 평화로운 왕국을 건설하리라고 상상했다. 또한 그곳에서는 질병도 없고, 고통도 없고, 외로움도 없고, 모든 동물이 기뻐 춤을 출 수 있으리라고 상상했다. 꿈이라는 것은 사실 '제어된 정신 질환'이라고들 말한다. 또는 달리 말하자면 정신 질환이야말로 사람이 깨어있는 시간 동안 스며 나온 꿈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편안하고도 진정한 사랑을 느꼈던 여성이 등장하는 호수 꿈에 대입해보자면 무슨 의미일까? 팻의 머릿속에 두 명의 인격이 있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도 두 명의 인격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내 경우에는 둘 사이에 칸막이가 놓여있으며, 탈억제적인 상징의 촉발이 없었기 때문에 '또 다른 인격'이 그 칸막이를 뚫고 나의 인격과 나의 세계로 진입하지는 못한 것뿐일까? 우리 모두는 호스러버 팻과 똑같지만, 단지 그걸 모르는 것뿐일까? 우리가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세계는 과연 몇 개까지일까? 나는 마치 내가 평생 동안 몸을 떨어온 것만 같았다. 무슨 만성적인 공포의 저류가 있는 듯이 말이다. 몸을 떨고, 죽어라 뛰고, 말썽에 휘말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마치 만화 속 등장인물과도 비슷했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그것도 1930년대 초에 나온 촌스러운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일마다 두려움이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진흙발의 오르페우스> 20세기 가장 특별한 SF 작가 필립 K. 딕 단편작가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의 걸작 단편 17 현대 SF를 대표하는 미국의 천재 작가 필립 K. 딕. 현대문학 폴라북스에서는 작가의 대표 장편소설 열두 편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과 더불어 시대를 초월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단편집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현실과 꿈,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과감히 무너뜨리는 완숙기의 단편집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영화와 드라마 등 유독 영상화와 인연이 많았던 작가의 원작 단편을 모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소개하는 단편집 『진흙발의 오르페우스』에서는 그의 초창기 단편들을 엮었다. 1950년대는 미국의 잡지 시장이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한 시기이자 SF 또한 1930~1940년대의 황금기를 거쳐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의 필립 K. 딕은 누구보다 열심히 잡지에 단편들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의 초기 단편은 내면의 갈등이 초월자를 통한 구원 또는 절망을 향해 침잠하는 후기 작품과는 달리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절망을 사회에 투영하는데, 이는 1960년대에 등장한 사회파 SF의 효시이기도 하다. 필립 K. 딕은 작가로 활동한 30년 동안 약 150편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그중 1952년부터 1954년에만 90여 편(약 60퍼센트)을 써냈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진흙발의 오르페우스』는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제작된 작품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재미와 완성도가 뛰어나 필립 K. 딕의 매력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단편을 엄선했다. 이 책에 실린 열일곱 편의 단편에서는 평행우주, 대체역사, 타임 패러독스 등 작가가 평생 단골로 등장시킨 소재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뿐 아니라, 우주 활극(스페이스 오페라), 우주의 근원적 공포(코스믹 호러), 카프카를 떠올리게 하는 부조리극 등 작가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가볍고 거칠지만 결코 조악하지 않은, 대중적인 글 속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는 필립 K. 딕의 단편이 지금까지도 장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영국의 채널4는 필립 K. 딕의 단편을 드라마로 제작한
<스캐너 다클리> ■ 책 소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oA)’ 판 필립 K. 딕 걸작선 완간! ★1977년 영국SF협회상 수상 ★키아누 리브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 영화 <스캐너 다클리> 원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높은 성의 사내』로 SF 팬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작가, 필립 K. 딕의 장편소설 『스캐너 다클리』가 폴라북스에서 출간되었다. 폴라북스는 기존 PKD 걸작선에서 빠졌던 『스캐너 다클리』를 번역 출간함으로써, SF 작가이자 필립 K. 딕 연구가인 조너선 레섬이 편집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oA) 필립 K. 딕 컬렉션’ 열세 작품 모두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출간 이후 약 6년 만이다. ■ 작품 소개 개인의 소외와 파편화 현상을 날카롭게 예견한 걸작 낙관과 희망이 없기에 더 현실적인 PKD식式 우울과 몽상 필립 K. 딕은 「고린도전서」의 13장 12절 ‘우리는 거울을 통해 어둑하게 보나니(For now we see through a glass, darkly)’라는 구절에서 착안한 ‘거울과 거울상’에 대한 사유를 발전시켜 『스캐너 다클리』 집필을 시작한다. 1972년 밴쿠버 컨벤션 강연에서 작가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처럼 우리가 서로를 혹은 자기 자신을 주시하게 될 날이 올 것”이며, 그때엔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스캐너 다클리』의 주인공 밥 아크터가 스캐너를 통해 자기 자신을 집요하게 감시하다가 두 개의 인격으로 분리되고 파괴되는 모습, 관계 맺기를 갈망하면서도 서로의 실체가 두려워 경계하는 주변 인물들의 행동은 오늘날 현대인의 파편화된 삶을 예언한 듯하다. 50년 전의 작가가 바라본 냉혹한 세계가 현대사회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은 감탄을 넘어 섬뜩함마저 선사한다. 『스캐너 다클리』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비밀 요원 밥 아크터가 겪은 처절한 패배와 파멸을 그렸다. 유능한 경찰인 밥 아크터는 목표를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는 조직의 논리에 점차 환멸을 느끼고, 오히려 잠입한 마약 중독자 집단에 강한 애착을 품는다.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에 뇌를 손상시키는 ‘D물질’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그의 인격은 수사관인 프레드와 마약중독자 밥 두 사람으로 분리된다. 그리고 두 자아의 분열은 ‘홀로스캐너’를 매개로 가속화한다. 홀로스캐너에 녹화된 정보를 토대로 자기 자신을 감시하던 그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마약 공급책으로 지목하기 직전까지 간다. 본인이 삭제하고 편집한 기억에 의지하던 그는 결국 자아와 타아를 구분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린다. 『스캐너 다클리』는 필립 딕의 작품 중 지금도 인기를 누리는 1960년~1970년대의 대중적인 작품과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한 1980년대의 작품을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마약 중개상이자 비밀경찰로 이중 신분을 사는 주인공, 정체를 완전히 가릴 수 있는 스크램블 슈트, 모든 삶이 타인에 의해 기록되는 감시 사회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런 소재들을 통해 독자의 장르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철학적 담론을 이끌어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평생 신경쇠약과 우울증,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간 그가 사회문제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극도의 예민함과 두려움으로 사회의 변화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불안하며 위태로운 모습의 등장인물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슬픔과 함께 불편함을 느끼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SF가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데 그치는 ‘공상과학소설’을 넘어, 치열한 사유와 철학을 담은 사회소설 즉 ‘고발의 문학’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증명해냈다. ■ 영화 <스캐너 다클리>(2006) 1977년 영국SF협회상을 수상한 『스캐너 다클리』는 팬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그리고 2006년 스티븐 소더버그와 조지 클루니가 기획을 맡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당시 키아누 리브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위노나 라이더 등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주목받았고, 이들이 실제 약물 의존이나 도벽 등 여러 문제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배우들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실사 영화 위에 애니메이션을 덧입히는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완성한 영화는 독특한 영상미를 자랑했고, 배우들의 열연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동안 스크린으로 옮겨진 수많은 필립 딕 원작 영화들이 혹평을 받았던 것과 달리, 영화 <스캐너 다클리>는 컬트 SF 영화 명작 대열에 성공적으로 합류했다. ■ 줄거리 “나는 불행한 아틀라스, 온 세상을 비탄으로 이루어진 끔찍한 세상을 어깨로 받쳐야 하노니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며 나는 느끼네 부스러지는 내 몸, 그 속의 심장을” _하인리히 하이네의 연작시 「귀향」에서 비밀 요원 프레드는 밥 아크터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기고 신종 마약 ‘D물질’의 공급원을 뒤쫓는다. 친구, 애인, 동료 수사관에게조차 진짜 정체를 숨긴 그는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서 수사를 이어간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D물질에 중독되고 만다.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한 상부에서는 중독자들의 거주지에 홀로스캐너를 설치하고, 프레드에게 감시 명령을 내린다. 감시 대상은 다름 아닌 밥 아크터, 프레드 본인이었다. 자신의 모든 행동을 관찰해 보고하면서 D물질의 진짜 공급책을 밝혀내야 하는 밥 아크터=프레드. 그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두 개의 인격으로 분열을 일으키는데……. ■ 추천사 악마적 강렬함으로 가득한 걸작. _로버트 실버버그, 작가 올해(1977년) 최고의 책이다. _브라이언 올디스, 작가 필립 K. 딕은 찬란한 1970년대 캘리포니아의 그늘 속에 숨은 심리학적 공포를 탐구한다. 밤에도 불이 꺼지는 법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어둠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다. _가디언 1977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은 절판되었다가 1991년에 다시 출간되었다. 마약 중독으로 인한 위기와 관계 맺기에 대한 두려움을 그린 이 책은 지금을 사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두 개의 정신으로 분열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자기 자신을 감시해야 하는 비밀 임무, 카프카적(Kafkaesque)인 설정이 담긴 위장술,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 등이 기괴하게 다가오지만 이는 한편으로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_커커스 리뷰 약물로 인한 문제를 겪고, 치료소와 재활 센터를 전전했던 필립 딕의 자전적 소설이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마약 남용’에 대한 경고이지만, 세상을 향한 거대한 질문 또한 담겨 있다. 정말로 나쁜 것은 무엇인가? 마약인가? 그것을 사고파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것들을 내버리는 사회인가? _뉴욕타임스 ■ 옮긴이의 말 딕은 자신이 기록자일 뿐이라고, 그 시절을 경험했던 자로서 기록을 남길 의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즐겨 다루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초월자, 절대자, 타자에 대한 강박, 경찰과 감시에 대한 피해망상 등의 주제는, 그 무대를 1960년대의 캘리포니아로 옮겨오는 것만으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층 내밀하고, 고독하고, 끔찍하게 슬픈 이야기로 변한다. 그는 과연 스캐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었을까. 그의 스캐너는 과연 마지막까지, 어둑하게라도, 제대로 기능했을까. _조호근
<유빅> 나는 유빅이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내 이름이 아니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 사이에서 한 사람씩 사라진다 뉴욕타임스 선정 20세기 문학 100선에 빛나는 필립 K. 딕 문학의 금자탑!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콘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의 열한 번째 주자로 『유빅』이 출간되었다. 『유빅』은 필립 K. 딕의 장편소설 가운데에서도 ≪뉴욕타임스≫ 선정 20세기 문학 100선에 빛나는 걸작으로, 필립 K. 딕만이 선사할 수 있는 몽환적인 느낌과 철학적, 개념적 돌파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박진감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필립 K. 딕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유빅』은 사람이 죽고 나서도 냉동보존 상태로 산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반 생명 상태가 보편적이며, 초능력자와 초능력자의 범죄, 그리고 거기에 맞서 반 초능력자가 해충구제회사나 보안경비업체처럼 초능력자를 막는 사업이 일반화된 미래 세계가 배경이다. 반 초능력자 집단이자 범죄예방 회사의 대표인 런시터는 큰 의뢰를 받아 초능력 지수 측정 전문가와 반 초능력자 11명을 이끌고 달로 간다. 그러나 그 의뢰는 런시터의 라이벌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폭발이 일어나고 런시터는 빈사상태가 된 채로 나머지 부하들은 달에서 서둘러 도망친다. 살아남은 자들도 기괴한 현상에 휘말리면서 하나씩 사라져 나가고, 죽은 런시터가 경계 너머에서 ‘유빅’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유빅은 어느 곳에나 있다, 편재한다는 뜻의 라틴어 우비퀘 ubique, 영어 ubiquity에서 따온 신조어로, 작품 후반에 가서야 실제로 등장한다. 유빅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은 주인공 조 칩과 반 초능력자 11명이 겪는 ‘쇠퇴 현상’과, 죽은 런시터가 세계에 간섭하는 현상과 큰 연관이 있다. 이 부분부터는 필립 K. 딕 특유의 주제가 살아난다. 지금 우리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지금 이곳은 현실인가, 가상인가? 이 세계 뒤에 숨어 우리를 살펴보고 조종하고 때로 무심히 가지고 노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유빅』은 이 외에도 수많은 상징과 복선이 포함되어 있어,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작품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훗날 작가 본인이 인터뷰에서 토로한 바에 의하면 『유빅』은 인간 두뇌에서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면을 담당하는 『우뇌를 써서』 집필한, 일종의 자동기술自動記述에 가까운 소설이다. 그런 탓인지 본서는 마치 읽는 이를 자각몽自覺夢으로 이끄는 듯한 희귀한 독서 감각을 선사하며, 딕이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고 지젝과 보드리야르를 위시한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김상훈(SF 평론가) 『유빅』에는 외형적으로 다른 작품과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각 장마다 앞에 나오는 광고구다. 옛날 라디오광고를 연상시키는 이 광고구는 장마다 있으므로 총 17개이며, 저마다 유빅을 광고하지만, 유빅이 무엇인지는 다 다르다. 유빅은 자동차, 냄새제거제, 속옷일 때도 있고 대출금융서비스이기도 하며, 심지어 마지막에는 ‘말씀’이라고까지 일컬어진다. 아무 곳에서나 쓸 수 있고 아무것으로나 변할 수 있어 보이는 이 유빅은 무엇인가? 유빅은 어느 곳에나 있다, 편재한다는 뜻의 라틴어 우비퀘 ubique에서 따온 신조어로, 작품 후반에 가서야 『최대 출력 25킬로볼트의 헬륨 전지로 작동하는 자기 충족형 고전압 저증폭 유닛을 갖춘 휴대용 음이온화 장치』라는 묘사와 함께 실제로 등장한다. ‘유빅’은 그 정체의 모호함과 다양성 때문에 초반에는 아무 실용이 없이 작품 내에서 소비되는 맥거핀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하지만, 점점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 나아가 필립 K. 딕이 천착하는 주제의식에 확실히 맞닿은 문학적이고 실제적인 물건임이 밝혀진다. 유빅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은 주인공 조 칩과 반 초능력자 11명이 겪는 ‘쇠퇴 현상’과 관련이 있다. 크림과 커피 등이 상하고, 로켓선이 가솔린 자동차로 바뀌고, 전자식 엘리베이터가 구형 엘리베이터로 바뀌는 등, 달에서 돌아온 이후 이들의 세계는 빠르게 뒷걸음질친다. 여기에 더해 동전에 새겨진 얼굴이 런시터로 변하고, 온갖 곳에서 런시터의 메시지가 보이는 등, 죽은 런시터가 세계에 간섭하는 현상마저 나타난다. 이 부분부터는 필립 K. 딕 특유의 주제가 살아난다. 지금 우리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지금 이곳은 현실인가, 가상인가? 이 세계 뒤에 숨어 우리를 살펴보고 조종하고 때로 무심히 가지고 노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유빅』은 이 외에도 수많은 상징과 복선이 포함되어 있어,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작품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냉동보존을 통해 산 사람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신학이 가설이 아니라 실질적인 진리가 된 세상은 후반기 종교적 색채가 더욱 짙어진 필립 K. 딕 주제의 싹을 엿볼 수 있는 배경이다. 물건을 쓸 때마다 돈을 지급해야 하는 신랄한 자본주의 세상은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 히피 운동을 이끈 사이키델릭 세대의 퇴장과 오일달러에 의한 대량소비 사회의 도래를 상징하는 듯하다. ■ 줄거리 냉동보존된 죽은 사람들의 의식을 주기적으로 되살려 대화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텔레파스와 예지능력자를 위시한 각종 초능력자들이 출현해서 인류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미래. 글렌 런시터는 초능력자들의 범죄로부터 프라이버시와 비밀을 지키는 반反 초능력자 파견회사의 대표이다. 거물급 초능력자들의 잇달은 실종으로 인해 경영난에 봉착한 런시터는 이름을 숨긴 거부로부터 거액이 걸린 의뢰를 받고, 휘하의 반 초능력자 11명과 초능력 측정 기사 조 칩을 이끌고 달로 간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일행은 적의 함정에 빠지고 런시터는 치명상을 입는다.. 조 칩을 위시한 나머지 부하들은 전용 우주선을 타고 달을 탈출해서 가까스로 지구로 귀환하지만, 이내 시간과 물질이 퇴화하는 듯한 기괴한 현상에 휘말린다. 그것을 막을 유일한 해결책은 ‘유빅’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그들은 탐색의 길에 나서지만……. ■ 본문 중에서 여러분, 재고정리 세일 기간이 돌아왔습니다. 무소음 전기식 유빅을 할인 판매합니다. 물론 표준 중고차 시세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게다가 전시 중인 유빅들은 설명서에 명기된 방법으로만 사용된 것들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손님은 흰 김을 뿜고 있는 냉동 보존용 관 건너편에 앉았다. 귓가에 이어폰을 갖다 대더니 마이크에 대고 뚜렷한 어조로 말한다. “플로라 할머니,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지금 말하고 계신 것 맞죠, 할머니?” 내가 사망하면, 하고 헤르베르트 쉔하이트 폰 포겔장은 생각했다. 자손들한테는 1세기에 한 번만 부활시키라는 유언을 남길 거야. 그렇게 해서 전 인류의 운명을 목도하는 거지. 그러나 그럴 경우 상속인들은 막대한 유지비를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헤르베르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늦든 빠르든 그들은 그의 의사에 반해 그를 냉동 보존 장치에서 꺼낸 다음―맙소사―매장할 것이 뻔하다. “매장은 야만적이야.” 헤르베르트는 중얼거렸다. “인류 문화의 원시성의 잔재야.” 인스턴트 유빅은 갓 끓인 드립커피의 신선한 풍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남편 분들이 이걸 마시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세상에 샐리, 솔직히 지금까지는 당신이 끓여주는 커피가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끝내주는군! 주의사항을 지켜 드시면 안전합니다. 약속한 15분은 이미 지났다는 사실을 알고, 아파트 현관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손잡이를 돌리고 자물쇠를 열었다. 문은 열리려고 하지 않았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5센트 넣어주십시오.” 조는 호주머니를 뒤졌다. 더 이상 동전이 없다. 단 한닢도. “내일 낼게.” 그는 문에게 말했다. 다시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여전히 굳게 잠겨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문을 열 때 내는 건 일종의 팁이잖아. 꼭 내야 하는 게 아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이 말했다. “이 조합아파트를 구입하셨을 때 서명한 계약서를 다시 읽어보시죠.” 조는 말했다. “이 크림을 좀 보게.” 그는 크림 용기를 들어 올렸다. 안의 액체는 걸죽하게 덩어리진 채로 용기 안쪽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기술적으로 발전했다는 도시에서 1포스크레드를 내고 산 물건이 이 따위야. 난 이 가게가 돈을 돌려주든가, 아니면 내가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신선한 크림을 새로 제공할 때까지는 절대로 여기서 못 나가.” 앨 해먼드는 조의 어깨에 손을 얹고 동료의 얼굴을 유심히 훑어보았다. “왜 이러는 거야, 조?” “처음에는 그 담배였어. 다음은 배 안에 있던 2년 전의 오래된 전화번호부였고. 그리고 지금 여기서는 일주일 전의 썩은 크림이 나왔어. 영문을 할 수가 없어, 앨.” “50센트 동전에는 월트 디즈니 얼굴이 새겨져 있는 거 아니었어?” 새미가 말했다. “디즈니였지. 그보다 오래된 동전의 경우는 피델 카스트로였고. 이리 줘봐.” “또 못 쓰는 옛 동전이 나온 거군요.” 새미가 50센트 동전을 앨에게 건네주려고 다가오자 팻 콘리가 말했다. “아냐.” 앨은 동전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건 작년에 나온 거야. 그러니까 날짜는 정상이고, 쓰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어. 전 세계의 어떤 기계에도 통용될 거야. 저 TV세트도 마찬가지고.” “그럼 뭐가 문젠 거죠?” 이디 돈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샘이 말한 바로 그 문제야.” 앨은 대답했다. “엉뚱한 얼굴이 찍혀 있어.” 그는 일어서서 이디가 앉은 곳으로 가서 그녀의 축축한 손바닥 위에 동전을 올려놓았다. “그게 누구 얼굴로 보여?” 잠시 후 이디는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아니, 알고 있을 걸.” 앨은 말했다. “그래요.” 이디는 대답을 강요받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날카로운 어조로 대꾸했다. 그녀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며 앨에게 동전을 돌려주었다. “런시터 얼굴이야.” 앨은 커다란 탁자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 모두를 향해 말했다. “이걸 좀 보게.” 앨은 조를 남자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반대편 벽을 가리켰다. “낙서야. 자네도 알잖아. 휘갈겨 쓴 글. 남자 화장실에서 언제나 보는 그런 거. 읽어보게.” 벽에는 크레용이나 보라색 볼펜 잉크 같은 것으로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소변기로 뛰어들어 물구나무를 서. 난 살아 있네. 자네들은 모두 죽었어.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 남자가 우는 것은 뭔가를 상실했기 때문이야. 살아있는 뭔가를.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오로지 현재를 놓고 우는 거야. 인기 가수에서 한순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전락하다 존 W. 캠벨 기념상을 수상한 필립 K. 딕의 대표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콘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의 열 번째 주자인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가 출간되었다.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는 필립 K. 딕의 작가 인생에서 전환점을 마련한 대표작으로, 특유의 실존적 고뇌와 편집증적인 상상력, 구원의 미학이 한 자리에 모인 작품이다. 1974년 휴고 상과 네뷸러 상 후보에 올랐고, 존 W. 캠벨 기념상을 수상했다.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는 슈퍼스타였다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다. 경찰과 중앙 정부가 모든 사람의 정보를 관리하며 사상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독재사회에서 신분증은 물론 태어난 기록조차 없어지고 주변인물들이 자신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 빠진 주인공 제이슨 태버너는 살아남기 위해 신분증을 위조하지만, 오히려 경찰에게 주목을 받고 점점 더 헤어나올 수 없는 궁지로 몰린다. 이 작품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아무렇지 않게 억압하는 정보 통제 사회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을 그리는 동시에, 사람 사이에서만 나눌 수 있는 온기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필립 K. 딕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필립 K. 딕(이하 PKD로 통칭)에게 1970년은 아마 그때까지의 삶 중에서도 최악의 해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 소설가로서의 경력 면에서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 『유빅』(1969) 같은 대표작을 연이어 간행해서 비평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SF 작가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혀가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무척이나 불행하고 복잡했다. (중략) 결국 그는 1971년 봄에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고, 1년 여의 공백기가 지난 뒤에야 이전에 써두었던 신작 원고를 마무리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만약에 대비해 입원 직전에 변호사에게 맡겨두었던 그 원고가 바로 PKD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1974)였다. - 박중서 필립 K. 딕 작가 인생의 전환점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은 여러 면에서 필립 K. 딕의 작품 세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며 그의 작가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외적인 면에서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는 발상이 떠오르면 무서운 속도로 써내려가는 필립 K. 딕의 버릇과 달리 오랫동안 쓰고, 굉장히 여러 번 고쳤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생활 면에서는 파탄을 향해 걷고 있던 때였지만,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라 완성되기도 전에 출판사와 계약이 성사되어서 필립 K. 딕이 더욱 작품의 퇴고와 수정에 의욕적으로 임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휴고 상과 네뷸러 상 후보에 오르고 존 W. 캠벨 기념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연극으로도 개작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작품 내에서는 처음으로 ‘구원’의 이미지가 뚜렷이 나타났다.『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가 발표된 때는 1974년으로, 필립 K. 딕이 “2-3-74”라고 이름 붙인 신비체험을 했던 해이다. 작품 자체는 1970년도에 대부분의 내용을 완성한 상태였지만, 신비체험의 전조였는지, 아니면 출간 전에 그 영향을 받았는지 ‘구원’의 이미지가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이 작품부터이다. 이러한 면에서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는 필립 K. 딕의 후기를 여는 첫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권위주의와 통제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와 거부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모두 통제하며 인종, 사상, 이동 등 많은 부분이 통제되고 경직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필립 K. 딕 특유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이 현실이 정말 현실인가?”와 같은 실존적 의문이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 개인이 아니라 사회로 인해 의문이 촉발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이슨 태버너가 하루아침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국민이 중앙정부의 기록에 기재되어야 하고, 기록에 없는 자는 국가에 저항하고 체제를 거부하는 자뿐이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잃은 제이슨이 공포에 떠는 이유도 국가의 허가 없이는 존재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립 K. 딕은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의 세계가 미래가 아니라, 당시 미국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평행 세계라고 밝히고 있다. 냉전과 매카시즘 등 사상을 검열하고 탄압하는 사태, 국가가 국민들을 도청하고 감시하는 모습에서 딕은 미국도 전체주의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모습의 미국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가 권력화하고 민주주의 국가가 전체주의 제국의 모습을 드러내는 최근의 양상을 보면, 딕은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을 무서울 정도로 잘 그려낸 작가라 하겠다.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사이의 온기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에서는 이전보다 더 뚜렷이 구원을 추구하고 얻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 말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찰은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과 포옹을 하고 이야기를 함으로써 죽을 것만 같은 슬픔과 외로움에서 헤어나온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한 작품이 낯선 사람과 온기를 나누는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다. 필립 K. 딕의 작품은 불안과 망상, 두려움 속에서 버티거나 무너지는 이유를 자신 안에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에서는 시선이 타인을 향해서 옮겨간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순수한 타인과 교류함으로써 평화와 구원, 안식을 얻을 수 있다 ■ 줄거리 제이슨 태버너는 인기 가수이자 TV 쇼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우생학 실험의 결과물인 ‘식스’이다. 어느 날 방송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제이슨은 만나주지 않으면 죽겠다는 전 애인의 전화를 받는다. 원한을 품고 있던 여자는 만난 자리에서 제이슨에게 외계 기생 생물을 던지고, 제이슨은 그 생물의 일부가 몸속에 파고드는 바람에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자신이 있는 곳이 허름한 호텔방인 데다 신분증이 모조리 사라진 것을 알아챈 제이슨은 겁에 질려 주변 인물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공공기관과 병원에도 제이슨의 기록은 없었다. 졸지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제이슨은 신분증을 위조해 상황을 타개하려 하지만, 오히려 거대한 음모의 가담자로 몰리는데…… ■ 본문 중에서 그는 지갑을 꺼낸 다음, 그 안에서 모리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던 쪽지를 찾아보았다. 그의 지갑은 아주 얇았다. 신분증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계속 남아있게 해주었던 신분증이. 그가 총에 맞거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지 않은 채로 군경의 바리케이드 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게 해주었던 신분증이. 내 ID 카드 없이는 두 시간도 채 살아남지 못할 텐데. 그는 생각했다. 심지어 이 낡아빠진 호텔 로비에서 저 바깥의 보도 위로 걸어나가지도 못할 거야. 사람들은 십중팔구 나를 캠퍼스 가운데 한 곳에서 도망친 학생이나 선생으로 간주할 테지. 어쩌면 남은 평생 동안 노예가 되어서 중노동을 하고 살아야 할지도 몰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비존재자’가 되는 거지. “사실은 남편이 아직 살아있어요. 알래스카에 있는 강제수용소에 들어가있죠. 남편을 풀려나오게 하려다보니, 맥널티 씨한테 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어요. 이제 1년만 더 있으면― ”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의 표정은 이제 우울하고 의기소침해 보였다. “그 사람 ‘말’로는 잭이 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요.” 결국 당신은 남편을 꺼내기 위해서 대신 다른 사람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것이군. 그는 생각했다. 듣고 보니 전형적인 경찰과의 거래인 것도 같았다. 아마도 사실일 터였다. 일단 그들이 나를 주목하게 된 이상 ‘한 번 열었던 파일은 완전히 도로 덮어버리는 일은 없군.’ 제이슨은 문득 깨달았다. 일단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하면, 두 번 다시는 무명의 존재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애초에 주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주목을 받고 말았지. “그 애가 한 짓 중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들통 나지 않은 게 뭔지 알아요?” 루스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애는 자기가 훔친 식료품으로 도망친 학생들을 먹여 살렸어요.” “그런데 경찰에서는 한 번도 그 문제로 그녀를 체포하지 않았나요?” 도망친 학생들에게 음식이나 은신처를 제공하는 사람은 FLC에서 최소한 2년을 썩어야 했다. 그것도 초범일 때의 이야기였다. 재범일 때에는 형기가 무려 5년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당신도 슬퍼할 수는 있잖아요.” 루스가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제이슨! 슬픔이라는 건 어른이든 아이든 동물이든 간에, 모든 생물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에요! 그건 ‘좋은’ 느낌이라고요.” “어떤 빌어먹을 놈의 측면에서 그렇다는 거죠?” 그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슬픔은 당신이 자기 자신을 떠날 수 있게 해주죠. 슬픔으로 인해 당신은 자기만의 좁고 얇은 피부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뭔가 슬픔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보다 먼저 사랑을 해야만 하죠. 슬픔이라는 것은 사랑의 최종 결과이니까요. 슬픔은 잃어버린 사랑이니까. 당신도 이해하겠죠. 난 당신이 이해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건 이미 완료된 사랑의 주기예요. 사랑하고, 잃어버리고, 슬픔을 느끼고, 떠나고, 그리고 또다시 사랑하게 되는 거죠. 제이슨, 슬픔은 당신이 반드시 혼자 있어야만 한다는 자각이에요. 그리고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지요. 왜냐하면 혼자 있다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생물 각자의 궁극적인 최종 운명이니까요. 죽음이란 바로 그거예요. 거대한 고독인 거죠.” “앨리스, 당신은 나에 대해서 알고 있죠. 내가 누군지 당신은 안다고요. 그런데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전혀 모르는 거죠?”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거기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거기’라뇨?”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작년을 기다리며> 그 시간 여행약을 먹고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한 건가? 혹시 작년이 다시 되돌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거야? 결혼이라는 이름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광기와 초월의 작가 필립 K. 딕 문학의 이정표!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콘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의 아홉 번째 주자로 『작년을 기다리며』가 출간되었다. 『작년을 기다리며』는 “필립 K. 딕 작품 세계로 들어가는 현란한 입문서”, “최상의 원형”이라고 평가 받는 작품으로, 필립 K. 딕 특유의 복잡하고 다원적인 세계와 편집증적인 망상에 누아르와 스릴러의 긴박감, 부부 사이를 다룬 멜로적 면모가 공존하는 작품이다. 『작년을 기다리며』는 태양계로 진출한 지구가 인류의 먼 조상으로 판명된 릴리스타 제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곤충을 닮은 외계인 리그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래가 배경이다. 지구에 가혹한 요구를 해오는 동맹 때문에 악전고투하는 지구 대표 지노 몰리나리와,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탈출하고자 몰리나리의 주치의를 자원하는 의사 에릭 스위트센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에릭의 아내가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며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마약 JJ-180에 중독되고, 그것이 릴리스타인들의 음모임이 밝혀지면서 에릭의 부부관계는 지구의 운명을 건 사건으로 비화된다. 인간의 본성과 미래에 심각한 회의를 품은 듯하면서도 인간성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는 필립 K. 딕의 통찰력을 만날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딕이 본서 『작년을 기다리며』를 집필한 것은 히피 운동이 전 세계 청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미국의 베트남 개입이 노골화되던 1963년의 일이었다. 사생활 면에서는 세 번째 아내인 앤과의 결혼 생활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약물 과용에서 비롯된 극심한 울증(鬱症)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최악의 시기이기도 했다. 딕은 각성제인 암페타민을 '연료 삼아' 하루에 A4용지로 6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썼지만 워낙 박한 고료 탓에 생계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먹고 살기 위해 또다시 암페타민에 의존하며 글을 쓰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누가 보아도 극단적(혹은 병적)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걸작으로 간주되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는 딕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딕 작품들이 내포한 절실한 계시(啓示)의 감각과, 인간 현실에 밀착한 용어-여기에는 SF의 클리셰도 포함된다-로 그 감각을 표현하는 경탄할 만한 작가적 역량은 딕이 왜 'SF작가 중의 SF작가'로 불리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_김상훈(SF 평론가) 『작년을 기다리며』는 1940년과 50년대의 관객을 매료한 최상의 누아르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스릴과 수수께끼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영화와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면, 점점 복잡해지고 불길함을 더해가는 우주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악전고투하는 사람은 하드보일드 탐정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자들도 같은 상황에 빠진다. _《가디언Guardian》 『작년을 기다리며』는 SF의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작가였던 필립 K. 딕 특유의 강박적인 작품세계에 대한 현란한 입문서이며, 그를 모르던 독자들에게도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설 것이다. _《인피니티 플러스 Infinity Plus》 다중적인 현실과 편집증적인 반전으로 점철된 『작년을 기다리며』는 거장 필립 K. 딕의 작품세계의 최상의 전형(典型)을 제공해준다. 딕은 끊임없이 독자의 허를 찌르며, 등장인물들의 절절한 고뇌와 편집증적인 망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특히 시간여행약이 그들에게 어떤 효과를 끼치는지 묘사한 대목은 압권이다. _《SF 사이트 SF Site》 ■ 줄거리 서기 2055년. 태양계로 진출한 지구는 인류의 먼 조상으로 판명된 릴리스타 제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곤충을 닮은 외계인 리그인들과 총력전을 벌이고 있었다. UN 사무총장이자 통일 지구 정부의 실질적인 독재자 지노 몰리나리는 패색이 짙은 이 전쟁에서 가혹한 요구를 해오는 릴리스타인들과 동맹 반대파들 사이에서 악전고투한다. 인공장기 이식 전문의인 에릭 스위트센트는 아내 캐시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탈출하고픈 일념에 몰리나리의 주치의를 자원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환락을 좇던 캐시는 새로운 환각제인 JJ-180을 복용한다. 그러나 JJ-180은 현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금단의 마약이었고, 그 배후에는 지구를 장악하기 위해 암약하는 릴리스타 제국 정보부가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우리는 매일 환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 최초의 음유시인이 먼 옛날에 일어났던 전쟁에 관한 서사시를 처음으로 읊었을 때, 환상이 우리 세계로 파고들어왔다. [일리아드]는 건물 포치에서 우표를 교환하는 로번트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과거를 잊지 않고 그것에 현실성을 부여하려고 애써왔다. 그런 행위 자체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과거 없이는 연속성 또한 없고, 지금 이 순간밖에는 남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가 없으면 순간-현재-은 거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애당초 인간의 삶 자체가 은총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개중에는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다. 지노 몰리나리에게 삶은 악몽이었다. 이 사내는 병들었고,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고 있으며, 전혀 성공할 가망이 없는 엄청난 노역을 짊어지고 있다. 동포인 지구인들의 신뢰를 전혀 못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릴리스타인들의 존경이나 신뢰나 예찬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에 더하여 아내의 돌연하고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시작해서 최근 그를 엄습한 복통에 이르기까지 개인사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게다가 - 에릭은 갑자기 직감했다 - 그 이상의 고민거리가 있다. 몰리나리밖에는 모르지만, 남에게 밝힐 의사가 없는 모종의 결정적인 요소가. 캐시는 윗몸을 일으켰다. "에릭, 나를 버리고 간 대가는 꼭 치르게 할 거야." 그녀는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무슨 뜻인지 알지?" "응." 그는 대꾸하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일생을 바쳐서라도 그러고야 말겠어." 캐시가 침실에서 말했다. 이젠 살아갈 이유가 생겼으니까 말이야. 마침내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가슴이 다 두근거리네. 몇 년이나 그토록 무의미하고 추악한 삶을 살아오다가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느님, 정말이지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행운을 빌게." "행운? 난 행운 따위는 필요 없어. 내게 필요한 건 노련함이고, 난 그걸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 그 약이 효과를 발휘했을 때 난 많은 걸 배웠어. 그게 어떤 경험이었는지 알려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에릭, 그건 성말 상상을 초월하는 약이야 - 우주를 받아들이는 감각 전체를 바꾸고,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바꿔버리지. 다시는 같은 눈으로 볼 수가 없게 돼. 당신도 그걸 써보면 좋을 텐데. 도움이 될 거야." "그 무엇도 내게 도움이 될 수는 없어." 이 말은 그의 귀에 묘비명처럼 들렸다. "또 뭔가?" 몰리나리는 고함을 질렀다. "그놈의 시간여행 약을 먹고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자네 앞에서 작고 하찮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어? 옆이나 뒤가 아니라? 혹시 작년이 다시 되돌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거야?" 에릭은 손을 뻗어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작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시 와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티모시 아처의 환생> 캘리포니아에서는 크기와 무게 단위로 깨달음을 살 수 있다. 깨달음 2킬로그램 주세요. 아니, 5킬로그램어치가 좋겠어요. 저는 깨달음이 아주 많이 부족하거든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필립 K. 딕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 '발리스 3부작'의 마지막을 만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컨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의 여덟 번째 주자로 『티모시 아처의 환생』이 폴라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필립 K. 딕이 실제로 한 신비 체험을 토대로 말기에 집필한 ‘발리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필립 K. 딕의 유작이기도 하다. 작가 자신의 체험담을 토대로 하지만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발리스』, 종교적 SF인 『성스러운 침입』에 비해 『티모시 아처의 환생』은 일반소설에 가까운 구원의 이야기이다. 티모시 아처는 성공회 주교이자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케네디 가의 일원과 어깨를 나란히 한 시대의 명사다. 연설 청탁을 하러 온 키어스틴과 내연의 관계를 맺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그 이후 티모시 아처는 자신의 신앙을 위협하는 고문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아들 제프와 키어스틴을 잃고, 자신 또한 사막으로 떠나 사라진다. 며느리이자 티모시 아처를 친구로 여긴 앤젤 아처는 혼자 남아 상처 입은 심장으로 그들을 회고하다가, 불가사의한 현상과 마주친다. 『티모시 아처의 환생』은 종교계에 종사하는 티모시 아처가 중심인물이고 신앙의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이 중심에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틴 루서 킹, 존 레논 등 시대의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둘 암살되고 세상은 달라지는 게 없는 듯한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절망적인 상황이 유례없는 불황과 정신적 공허에 시달리는 21세기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일으키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라 하겠다.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던 필립 K. 딕의 도전 『티모시 아처의 환생』은 일견 전작 『발리스』 『성스러운 침입』과는 매우 다른 작품으로 보인다. 일단 장르소설이 아니다. 『발리스』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이야기처럼 시작을 했지만 사실 세계를 만든 이들이 외계인이며 인공위성과 같은 형태로 ‘발리스’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 사실로 등장하는 대체 역사 소설이 아니다. 미래를 배경으로 했으며 아예 ‘신’과 ‘악마’가 등장해서 대결을 펼치기까지 하는 우화적 SF 『성스러운 침입』과 다른 건 말할 것도 없다. 『티모시 아처의 환생』에는 영혼이 돌아온다는 이야기, 영혼과 이야기를 나누는 강령술과 교령회가 등장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회자되는 현상과 속설에 머물며, 영혼과 신의 존재가 ‘실재’라고 단정 짓지도 않는다. 초현실적인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착각, 또는 신앙의 영역에서 다루어진다. 또한 여성화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조차 흔치 않으며, 남성의 정서가 지배적인 필립 K. 딕의 작품 중에서는 『티모시 아처의 환생』이 거의 유일하게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립 K. 딕은 사실 일반 주류소설과 SF 소설을 모두 집필하길 원했으나, 1963년에 초기에 집필한 소설들이 에이전시에서 되돌아온 이후로는 일반소설에 손을 대질 않았다. 그러나 1981년에 사이먼 & 슈스터 출판사의 편집장이었고 이후에 SF 전문 편집자로 이름을 날리는 데이비드 하트웰에게서 일반소설과 SF 소설을 한 권씩 써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여 쓴 것이 바로 이 작품, 『티모시 아처의 환생』이다. 딕은 이 소설을 쓰는 시간이면 SF를 다섯 권은 썼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어했지만, 생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절망하고 좌절한 현대인을 위하여 뚜렷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발리스』와 『성스러운 침입』에 이은 발리스 3부작으로『티모시 아처의 환생』이 들어간 이유는 ‘영생을 실제로 제공하는 성찬’과 ‘우리가 아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진실’이란 설정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세 작품에는 현대인의 고독과 절망, 좌절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구원의 단초를 던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래나 외계를 배경으로 했거나, 인공인간인 안드로이드, 또는 신적인 존재가 등장해서 삭막하고 감옥 같은 현실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전작들에 비해 『티모시 아처의 환생』에는 이질적인 요소가 비교적 적게 등장한다. 배경은 우리가 아는 역사 그대로 흘러가서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존 F. 케네디 대통령, 그리고 존 레논도 암살당한 미국의 서부이다. 티모시 아처 주교 또한 딕의 친구였던 실존인물 제임스 파이크에게서 많은 부분을 따온 인물이다. 자폐증에 걸린 초능력 소년이나 모든 사람의 꿈을 감염시키는 마약 같은 것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연이어 셋이나 잃는 것만으로도 삶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에는 충분하다. 시대의 지도자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족족 암살당하는 것만으로도, 악의 축을 몰아내고 새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했던 믿음과 희망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에서 딕은, 아는 것도 많고 떠드는 것은 더 많지만 정말로 가진 것은 얼마 되지 않고, 얼마 되지 않는 소유물마저 모두가 무로 돌아가버릴 거라는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여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렸다. 이러한 인물들은 물질적 가치의 확산과 정신적 가치의 추락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오히려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상이다. 역사적인 사건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독자들은 『티모시 아처의 환생』의 인물들에서 병든 우리의 현재를 만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줄거리 티모시 아처 주교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케네디 가의 일원과 어깨를 나란히 한 시대의 명사다. 성공회 주교이면서도 변호사 출신에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단으로 고발당하는 등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 언제나 상황에 맞는 인용문을 책에서 찾아내 상대를 설득시킬 줄 아는 언변의 달인, 나이는 들었어도 실로 젊고 변화무쌍한 인물이다. 티모시 아처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연설 청탁을 하러 온 키어스틴과 내연의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그 이후 티모시 아처는 이스라엘에서 새로 발견된 고문서를 해석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가 신앙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아들 제프와 키어스틴의 자살로 뼈 아픈 이별을 겪는다. 티모시 아처는 운명과 맞서 싸워 생존하기로 결심하지만, 자신 또한 신앙과 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에 사막으로 떠나 죽는다. 며느리이자 티모시 아처를 친구로 여긴 앤젤 아처는 혼자 남아 상처 입은 심장으로 그들을 회고하다가, 자신이 티모시 아처라고, 되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난다. ■ 본문 중에서 존 레논이 방금 전에 살해됐고, 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어떤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 위에서 어떤 착오가 벌어지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였다. 나는 100달러를 입금하고 베어풋에게 받은 카드를 핸드백에서 꺼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슈퍼마켓에서 완두콩을 사는 것처럼 크기와 무게 단위로 깨달음을 살 수 있다. 깨달음 2킬로그램 주세요. 아니, 5킬로그램어치가 좋겠어요. 저는 깨달음이 아주 많이 부족하거든요. 그 무렵을 돌이킬 때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서 씁쓸해진다. 우리는 아처 주교를 사랑하고 믿었기 때문에 그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 휩쓸려갔다. 이 얼마나 끔찍한 깨달음인가. 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두려워해야 할 현상인가. 지금은 두렵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다. 두려워졌을 때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뒤늦은 깨달음이 언제나 그렇듯. 이것이 당신에겐 지루한 종알거림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다. 절망한 내 심장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 상실감은 어디에도 비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을 일깨우는 죽음의 힘이란 놀랍기 그지없다. 그 어떤 말이나 주장보다도 무게가 실린다. 궁극의 힘이다. 마음과 시간을 빼앗고 사람을 바꾸어놓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불을 훔쳤죠. 불의 비밀을. 그리스도는 실 잣는 이들의 책을 입수해 읽은 다음 그 안에 든 내용을 알려줌으로써 인간을 구하는 건가요?" "그렇단다." 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신화와 비슷한 내용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이건 신화가 아니야. 그리스도는 실존하고 있으니까. 영혼의 형태로 와디를 지키고 있으니까." 베어풋이 물었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 있습니까? 개나 고양이나 아니면 다른 동물이라도." "고양이가 두 마리 있어요." "그 아이들 털도 깎아주고 먹이도 주고 보살펴줍니까? 온전히 책임지고 있습니까? 아프면 동물병원에도 데리고 가고요?" "그럼요." "당신한테 그렇게 해주는 사람은 누군가요?" "나한테 그렇게 해주는 사람요? 없는데요." "그럼 자기 자신을 감당할 여력이 되나요?" "네, 돼요." "그럼 앤젤 아처, 당신은 살아 있는 겁니다." "의식적으로 살아 있는 건 아니죠." "그래도 살아 있는 겁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살아 있어요. 말에 짓눌려, 말이라는 병을 앓으며 살아 있어요. 말을 쓰지 않고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네요. 우리가 가진 게 말밖에 없으니까요." "해탈할 수도 있었지만 거부했어요. 돌아오려고." "미안하지만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세상으로 돌아왔어요. 저승에서. 연민 때문에. 내가 그 사막에서, 사해 사막에서 배운 게 그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표정도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발견한 게 그거예요." 정신병은 작은 물고기처럼 숙주의 몸속을 돌아다니고 그 사례가 다양하다. 절대 고독을 즐기지 않는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도 않는다. 벌판을 가로질러 혹은 바다를 가로질러 사방으로 흩어진다. 맞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지금 물속에 있는 거야. 베어풋이 말한 것처럼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수조 속에서 관찰을 당하고 있는 거야. 나는 비유 중독자다. 빌 룬드보그는 만족할 줄 모르는 정신병 중독자다. 정신병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병에 걸리려고 한다. 정신병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 같은 바로 이때, 존 레논이 죽더니 이제는 이런 난리라니. 그것도 같은 날에.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성스러운 침입> 이곳은 금속의 세계야. 톱니바퀴에 의해 돌아가는, 갈아버리며 나아가는 기계, 위의 고통과 죽음을 처리하는…… 그들은 죽음에 워낙 익숙해져버렸지. 마치 죽음 역시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선악의 대립과 경계가 해체된 시대의 절망과 구원을 말하다 필립 K. 딕의 실제 신비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세기의 문제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컨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의 일곱 번째 주자로 『성스러운 침입』이 폴라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필립 K. 딕이 실제로 한 신비 체험을 토대로 말기에 집필한 ‘발리스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체험담을 토대로 하지만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발리스』에 비해 『성스러운 침입』은 종교적 SF의 이야기구조를 확실히 갖춘 새로운 이야기이다. 하느님은 기원 후 70년에 패배하여 지구 밖으로 쫓겨났으며, 지구는 벨리알이 지배하는 악의 지대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벨리알과 최후의 대결을 하여 지구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은 소행성에 살던 허브 애셔와 리비스 로미를 부모로 택하고, 예언자 일라이어스 테이트를 길잡이 삼아 지구로 돌아온다. 그러나 벨리알의 지배를 받는 지구의 지배자들은 그들의 귀환을 막으려고 온갖 일을 꾸미고, 그들이 꾸민 사고 때문에 하느님의 화신 이매뉴얼은 열 살이 될 때까지 기억을 상실한 채 기억이 되살아날 계기를 기다린다. 『성스러운 침입』은 필립 K. 딕의 장편 중 드물게 가볍고 유쾌하며 풍자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방대한 신학적, 철학적 지식과 독자적인 세계관을 근간으로 한 깊이 있는 작품이며 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신의 개념,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이 선택해야 할 길을 보여주는 우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독자들은 익숙한 이야기의 새로운 판본을 만들어내고, 수십 년 전에도 현재까지 의미를 가질 만한 인간형을 묘사한 대가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사변적인 『발리스』에 비하자면 『성스러운 침입』은 그 설정에서 정통 SF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역시 그 배경이 되는 세계관에 대한 장황하고 사변적인 설명이 종종 끼어든다는 점은 마치 옥에 티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중략) 이런 불완전한 설명이 PKD의 의도인지 실수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점은 이 책에서 잠시 언급된 일부 내용 중에는 빙산의 일각처럼 더 깊고 방대한 내용을 밑에 숨기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 작품의]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의미는 『주해서』의 (중략) 여러 대목을 참고해야만 비로소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발리스 3부작’의 세계관을 이루는 PKD의 신비 체험에 대한 해명이 바로 거기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 박중서 고독하고 절실한 인간의 이야기 - 종교적 테마를 통해 나타난 필립 K. 딕의 인간애 『성스러운 침입』은 전작 『발리스』와 마찬가지로, 선악의 대립, 이념 사이의 경계가 해체되고 힘을 잃은 현대 자본사회에 새로운 신화라고 할 만한 세기의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종교적인 테마와 우화적 교훈이 뚜렷하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소행성에 이민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지만, 지구를 다스리는 두 주체는 기독이슬람 교회와 과학 공산당이라는 두 거대 기구이며, 악마의 대리인 슈퍼컴퓨터가 지구를 관리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하느님은 기원 후 73년의 전투에서 벨리알에게 패해 먼 소행성으로 쫓겨났다. 즉 이 작품에서는 과학 기술과 신과 악마가 모두 실재하며, 신의 권능과 악마의 권능 또한 과학기술과 공존한다. 지구를 악의 손에서 구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매뉴얼이라는 아이로 태어난 하느님의 권능은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고, 지구를 감싸고 있는 악의 주체인 벨리알의 권능은 무언가를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매뉴얼과 벨리알은 마지막으로 지구를 놓고 전쟁을 벌이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사실 그 전쟁은 인간 각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선과 악, 존재와 비존재, 멸망과 생명 또한 인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우주적인 규모의 종교적 다툼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허브 애셔라는 인물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소행성에 있을 때에도 종일 누워서 린다 폭스라는 가수의 음악만 들었고,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해 만나는 사람마다 한소리를 듣는다. 원하는 것은 있지만 너무 멀다고 느끼고 내 손이 닿는 범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 전 작품 속의 인물이지만 놀랍도록 현대인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인물이다. 무력하고, 소심하고, 남들이 보기엔 정말 이상한 삶을 살며 자기가 선택한 한 가지만 보고 듣고 파고드는 허브 애셔는 최근에야 사회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인간형으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필립 K. 딕의 통찰력을 나타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되풀이되는 필립 K. 딕 평생의 주제 - 현실이란 무엇인가? 『성스러운 침입』은 인류가 우주로 활발하게 진출했으며 지금과 완전히 다른 통치기구를 가지고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발리스』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잇고 있으며, 필립 K. 딕이 평생 추구해온 주제와도 길을 같이 하는 작품이다. 시뮬라크르, 즉 외형을 모방하였으나 실재가 아닌 것에 대한 경계와 인식은 필립 K. 딕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성이란 것에 의문을 던지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마약을 통해 무한히 증식하는 환각 세계를 체험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현실의 기반에 의문을 던지는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자폐증에 걸린 소년이 보는 미래를 보려다가 현실 붕괴를 경험하게 하는 『화성의 타임슬립』 등 많은 작품에서 필립 K. 딕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현실을 경계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해왔다. 『성스러운 침입』 에서는 신적인 권능을 통해 가짜 세계에서 살게 되는 인물들과, 그들이 ‘진짜 세계는 따로 있고 지금 나는 누가 보여주는 가짜를 진짜라고 믿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의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 또한 필립 K. 딕의 전작을 잇는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증거이다. 이러한 ‘현세에 대한 의심’은 인도 신화의 마야, 장자의 호접몽, 그리스 철학의 도코스 등 고대 철학으로부터 시작된 오래된 화두이지만, 이것을 과학과 미래와 결부시켜 새로운 충격을 선사하고 오늘날 가상현실과 가상세계를 다룬 많은 SF 영화의 효시가 된 것은 필립 K. 딕 고유의 특징이자 업적이 아닐 수 없다. ■ 줄거리 소행성에서 여가수 린다 폭스의 음악을 듣는 것만을 낙으로 여기며 살던 허브 애셔는 갑작스럽게 이웃 돔의 환자 리비스 로미를 돌봐주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게다가 예언자 일라이어스까지 찾아와 리비스가 처녀임에도 임신한 상태이며 리비스의 태에 든 것이 하느님이라고 밝히고, 허브를 졸지에 하느님의 아버지로 만든다. 세 사람의 임무는 지구에서 패배해 쫓겨난 하느님을 태아로 품고, 벨리알이 지배하는 악의 지대인 지구로 돌아가는 것. 온갖 난관과 장애물을 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기고 지구에 도착한 직후 허브와 리비스는 공중 충돌 사고를 당하고 만다. 리비스는 죽었지만 아이는 살고, 허브는 10년 동안이나 냉동 대기 상태로 이전의 기억을 꿈꾸다 일어나 기억과 권능이 돌아오지 않은 아들 이매뉴얼과 처음으로 만난다. 이매뉴얼은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자기의 본질을 기억해내고자 하고, 특수학교에서 만난 지나는 이매뉴얼의 기억을 되살려내길 돕겠다고 하지만, 자신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는다. 벨리알을 물리치기 위해 지구에 크고 두려운 날을 불러오려는 이매뉴얼에게 지나는 내기를 제안하고, 자신의 세계로 초대한다. ■ 본문 중에서 언젠가는 아이의 기억이 돌아올 것이었다. 뭔가가, 그러니까 이 아이 스스로 예정한 대로 이 아이에게 가해질 어떤 탈억제적 자극이 기왕증 - 건망증의 상실 - 의 방아쇠 노릇을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아이의 모든 기억이 물밀듯이 돌아올 것이다. CY30-CY30B에서 일어난 수태에 관한, 리비스가 끔찍한 질병과 싸우는 동안 그녀의 자궁 속에 들어있었던 시기에 관한, 지구로의 여행에 관한, 어쩌면 심지어 심문에 관한 기억까지도 말이다. 리비스의 자궁 속에서 매니는 그들 세 사람에게 조언해주었다. 그들이란 바로 허브 애셔, 일라이어스 테이트, 그리고 매니의 어머니인 리비스 자신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 사고가 터졌다. 물론 그게 정말로 사고였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바로 그 사고 때문에 손상이 생겼다. 그리고, 손상 때문에 매니는 기억을 잃었다. 그는 제임스 조이스가 글 속에서 '말 테이프'에 관해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거기에 대해 논문이라도 써서 간행해야지. 『피네간의 경야』라는 작품이야말로 제임스 조이스의 시대에서 거의 한 세기가 지날 때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던 컴퓨터 메모리 시스템에 근거한 정보 풀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인지는 몰라도 조이스는 우주 의식과 접촉했고, 바로 거기에서부터 자기 작품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이야. 불길이 워낙 밝아서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애셔는 눈을 꾹 감고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도대체 누구요?" 그가 물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에흐예(Ehyeh)다." "이런." 허브 애셔는 깜짝 놀라 말했다. 이 산의 신이 전기적 간섭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그에게 공개적으로 말을 건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왜소함이 느껴지면서 허브 애셔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물었다. "저한테 뭘 원하시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좀 늦은 시간이라는 겁니다. 지금은 제가 잘 시간이거든요." 바로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나온 것이 (일라이어스의 말에 따르면) 토라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관념이었다.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차 올 메시야의 시대에는 우리 눈에 보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다음 번 '셰미타'이며, 첫 번째와 매우 비슷할 것이었다. 토라는 다시 한 번 뒤죽박죽된 행렬[매트릭스]에서 스스로를 재정렬할 것이었다. 허브 애셔는 생각했다. 컴퓨터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우주는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거군. 그리고 나중에 가서 더욱 정확하게 다시 프로그램이 되는 거고. 환상적인데. 의식을 잃어가는 중에 허브 애셔는 속으로 말했다. 야의 계획이 완전히 망쳐진 것까지는 아니로군. 야는 아직 완전히 패배하지는 않았어. 여전히 희망이 있는 거야. 하지만 희망이 아주 많은 것까지는 아니었다. "벨리알." 그가 속삭였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포프 선생이 상체를 굽히며 그의 쪽으로 얼굴을 갖다 댔다. "벨리알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면 저희가 그분과 대신 연락을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분께 사고 사실을 알려드리면 되겠습니까?" 허브 애셔가 말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금속의 경우처럼 중독되었어. 그는 생각했다. 금속이 그들을 속박하고, 금속이 그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지. 이곳은 금속의 세계야. 톱니바퀴에 의해 돌아가는, 갈아버리며 나아가는 기계, 위의 고통과 죽음을 처리하는…… 그들은 죽음에 워낙 익숙해져 버렸지. 그는 깨달았다. 마치 죽음 역시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그들이 동산을 알고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던가. 동물과 식물이 쉬고 있는 그 장소를.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내가 그들을 위해 그 장소를 다시 찾아줄 수 있을까? "전쟁이 다가오고 있어." 이매뉴얼이 말했다. "우리는 그 장소를 선택할 거야. 우리 둘, 벨리알과 내게는 그곳이 게임을 벌일 일종의 테이블이 되는 거지. 그 위에서 우리는 우주를, 존재 중의 존재를 내기에 걸 거야. 전쟁의 시대에서도 이 마지막 편은 내가 시작을 하지. 벨리알의 영토, 그의 본거지로 내가 직접 찾아온 거니까.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전진한 거야. 다른 우회적인 방법을 택한 게 아니라. 이게 과연 현명한 생각이었는지는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밝혀지겠지." 허브 애셔는 매니 팔라스라는 그 소년을 자기가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치 다른 언젠가, 어쩌면 또 다른 생애에 그를 알았던 것 같았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생애를 사는 걸까? 그는 속으로 물어보았다. 우리는 일종의 테이프상에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일종의 반복 재생이 가능한 것일까?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신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제공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약을 통해 인간을 시험하는 희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파머 엘드리치는 신인가, 악마인가, 아니면 그저 괴물일 뿐인가? <매트릭스> <인셉션>의 원형이 된 필립 K. 딕의 최고 걸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콘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의 다섯 번째 주자로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이 출간되었다.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더불어 필립 K. 딕의 최고작으로 꼽힌다. 그동안 열렬한 필립 K. 딕 애호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다가 영화 <매트릭스>(1999)의 실질적인 원작으로 지목받으면서 재조명받았다.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은 환경오염과 인구과잉 때문에 사람들이 태양계 식민지로 강제 추방당하는 21세기 초의 지구와 화성에서, 이주민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이자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대체 세계 속을 떠돌도록 작용하는 환각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가상현실을 예견하고 무한한 자본주의의 병폐를 섬뜩하게 그려낸 필립 K. 딕 작품 세계의 금자탑, 위대한 SF 영화들의 근간이 된 위대한 원형을 이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현실을 소재로 한 수많은 SF 영화들의 원형 유난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제작된 작품이 많아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라는 별칭도 있는 필립 K. 딕이지만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은 그중에서도 각별히 영상과 인연이 깊다. 이 작품을 직접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는 없지만,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나 대체 세계를 다룬 위대한 SF 영화는 대부분 이 작품에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가상/대체 현실과 구세주 전설을 접합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매트릭스> 3부작을 들 수 있다. 인간들이 가상인 줄도 모르고 매트릭스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부유하고 안락한 꿈과 비참하고 허름한 현실 사이의 대비, 요원 스미스와 파머 엘드리치 사이의 유사점 등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 설정과 소재, 주제의식은 물론이고, 소설의 11장에 등장하는 엘리베이터 장면이 <매트릭스> 영화 내에서 여러 형태로 변주되며 등장하는 등, <매트릭스>는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에 대한 오마주에 가까운 작품이었고, 그로 인해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이 새로이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오픈 유어 아이즈>(1997), <엑시스턴즈>(1999)를 거쳐 최근에 많은 마니아를 양산하며 화제에 올랐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2010) 또한 이 작품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인셉션>에서 등장하는 설계자의 개념, 같은 꿈에 들어가기 위해서 한 자리에 모여서 수면제를 투입하는 장면, 아내와 있었던 비극적인 사연에 집착하는 남자주인공 등, 하나하나 밝히는 것이 두 작품에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될 정도로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과 <인셉션> 사이의 유사성은 두드러진다. 이토록 거듭 옷을 갈아입으며 회자될 정도로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충격적이고 선구적이다. 필립 K. 딕의 위대한 상상력과 예지에 가까운 통찰력을 잘 나타내주는 일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반영과 종교적 상징의 결합 - 인간성을 향한 희망의 찬가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은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지만 희망의 끈 또한 놓지 않는, 인간성을 향한 필립 K. 딕의 찬가이다. 필립 K. 딕은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 들불처럼 유행하던 바비 인형에서 영감을 얻어 캔-D라는 환각제를 창조했다고 한다.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은 태양계에 식민지를 확장했고 인간의 진화를 인공적으로 앞당길 수 있는 미래의 지구와 화성이 주요 무대이고, 외계의 존재가 등장하지만,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병폐와 절대적 가치가 의심받기 시작한 당시 서구 사회의 철학적, 종교적 위기를 사상적으로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내에서 딕은 자본주의적 가치 때문에 아내를 저버린 남자,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는 환각 체험,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드는 다중 현실 등을 통해,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는 인간을 병들게 하는 섬뜩한 미래를 그린다. 인간이 만들어낸 약이 종교적인 승천 체험을 제공하고, 그 약을 제공하는 사업가가 가짜 구세주의 자리까지 오르는 아이러니는 창조주가 거짓 신이라는 영지주의를 SF적으로 변환한 문학적 장치로, 필립 K. 딕이 천착하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아이러니와 예지적 미래를 그려내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인간성이 위기를 맞고 체념의 분위기가 팽배한 미래에서도 일상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인간을 그림으로써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필립 K. 딕은 평생 불안정한 정신으로 약물에 의지한 채 불행한 삶을 이어갔으며, 무서울 만큼 기시감을 주는 혼란하고 혼미한 세상을 그려내는, 기괴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예지를 가진 선구자적 몽상가였다. 그러나 항상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라는 실존적 주제에 집착하며 인간과 미래에 놓인 희망을 찾아나간 작가이기도 했다.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은 그러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 줄거리 환경오염과 인구과잉으로 신음하는 21세기 초의 지구. UN의 선별적 징용법에 의해 외부 행성으로 강제 추방당한 이민자들에게는 환각제 캔-D와 바비인형을 닮은 퍼키 팻 모형 세트를 써서 과거 세계로 도피하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명한 기업가인 파머 엘드리치가 프록시마 항성계로의 긴 여행을 마치고 태양계로 생환한다. 명왕성에 불시착한 엘드리치의 우주선에는 초월적인 체험을 유발하는 정체불명의 환각제가 실려 있었다. 캔-D를 생산하는 기업의 총수 레오 뷸레로는 이 환각제에 의해 자신의 시장 독점 체제가 무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극비리에 방해 공작에 착수하는데…… ■ 본문 중에서 그러니까, 결국 인간은 흙으로 빚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해. 애당초 근본부터가 그 모양이었으니 크게 기대할 게 없다는 뜻이야.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면, 바꿔 말해서 시작이 그렇게 미천했던 것치고는 그럭저럭 잘해왔다고 봐야 해. 따라서 우리가 지금 직면한 이 중대한 위기조차도 결국은 타개할 수 있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신념일세. 무슨 뜻인지 알겠지? - 레오 뷸레로가 화성에서 돌아온 직후 구술해서 P.P.레이아웃사의 유행 예측 컨설턴트들에게 배포한 녹음 메모의 일부 P.P.레이아웃사는 푸르스름한 합성 시멘트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회사 이름의 유래가 된 퍼키 팻 인형과 그 세계를 이루는 축소 모형들의 제작사이다. 인류가 태양계의 행성들을 정복하면서 그 인형들도 인류를 정복했지. 퍼키 팻, 외계 이민자들의 집착의 대상. 식민 행성에서의 생활에 관해서 이토록 비참한 주석이 어디 있을까……. 운 나쁘게도 UN의 선별적 징용법 대상이 된 불운한 사람들은 지구에서 쫓겨나 화성, 금성, 가니메데 같은 곳으로 보내져 새롭고 이질적인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UN 관료들이 인간을 보낼 수 있으며…… 그럭저럭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 장소에서. 그런데도 지구에 있는 우리는 살기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있지. "캔-D란 정말 멋진 물건이지." 레오는 저건스에게 말했다. "금지된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어. 그건 종교거든. 외계 이민자들의 종교." 그는 껄껄 웃었다. "쌈지 하나 분량으로 15분 동안은 도원경에 가 있을 수 있어. 그러면 - " 그는 팔을 휘둘러 보였다. "지하의 토굴 따위는 사라져버려. 얼어붙은 메탄도 사라지고. 살아갈 의욕이 생기는 거지.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아?" 그러나 지구에 있는 우리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이렇게 자문하니 우울함이 몰려왔다. 퍼키 팻 모형 세트를 제조하고 캔-D 포장 완제품의 원료가 되는 지의류를 재배 공급함으로써, 레오는 100만 명이 넘는 강제적 외계 이민자들이 그나마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는 무엇을 받았단 말인가? 레오는 입을 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려 했다. 이들에게 사실을 이해시키는 것은 중요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두 진화한 지구인들의 모습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사라졌다. 풀로 덮인 초원, 기념비, 떠나가던 개- 이것들을 포함한 파노라마 전체가 증발해버렸던 것이다. 마치 그것을 투사하고, 안정시키고, 유지해오던 것의 스위치를 찰칵 끈 것처럼. 이제 레오의 눈앞에는 희고 광활한, 영사기에서 3-D 슬라이드를 뽑아낸 뒤에 남는 강렬한 백열광을 연상케 하는 허공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깜박거림 아래에 존재하는 빛이로군, 하고 레오는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네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말없이 서 있었다. 모두가 파머 엘드리치였다. 남자도, 여자도. 인공 팔, 스테인레스강 의치…… 홀쭉하고 공허한 잿빛 얼굴과 젠슨식 의안.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닥터 블러드머니> 여기저기 불꽃이 있었다. 연기와 화염이 보였다.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죽음이야. 죽음이 빛나며 지구의 생명을 불태워버리는 거야. 과학소설계의 셰익스피어, 필립 K. 딕 그가 그려가는 핵폭발, 그 후의 이야기 1965년 네뷸러상 후보작이었던 『닥터 블러드머니』가 폴라북스의 ‘필립 K. 딕 걸작선’으로 출간되었다. 출간 당시 책의 제목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혹은 나는 어떻게 걱정하기를 그만두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에서 패러디하여 화제가 되었던 이 작품은 핵폭발로 인한 대재앙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SF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핵폭발 이후,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재난을 대처해나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초능력자와 돌연변이 생물, 그리고 방사능으로 불구가 된 사람들. 필립 K. 딕이 창조해낸 디스토피아는 기괴하기 짝이 없지만 그 중심에는 폐허가 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삶을 꿈꾸는 인간이 있고, 이들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다. 핵전쟁 후,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핵전쟁이나 대규모의 전염병과 같은 대재앙 뒤의 이야기는 SF에서 즐겨 다루는 주제로, 영화와 소설 그리고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되어 왔다. 그것은 대재앙 후의 황폐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휴먼드라마이기도 했고, 영화
<죽음의 미로> 우리는 죽음의 미로에 갇힌 실험용 쥐. 궁극의 적과 함께 미로에 갇힌 채, 한 마리씩 죽어간다.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을 때까지. 진정한 몽상가이자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한 작가, 필립 K. 딕. 종교적 모티프, 심리학과 철학, 신화가 교차하는 숨겨진 걸작을 만난다! 필립 K. 딕의 창작 영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0년대 말미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죽음의 미로』가 폴라북스의 ‘필립 K. 딕 걸작선’의 두 번째로 출간되었다.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형적 우주 모험SF의 외형을 갖춘 이 작품은 미스터리와 스릴러적 요소가 합쳐져 있어, 딕의 소설 중에서도 읽기 쉽고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죽음의 미로』에는 딕 특유의 종교적 모티프가 명확하게 부각되어 있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와 티베트 불교 등 기존 종교를 조화시켜 자신만의 신학적 세계관을 완성시켰다. 각종 망상증에 시달리고, 평생 약물에 중독된 채 살면서도 언제나 구원을 꿈꾸었던, 그런 삶을 살았던 작가가 들려주는 자기완성을 향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범우주적 미스터리 스릴러, 그 속에서 구원의 서사를 만나다 외딴 행성에 고립된 채 차례차례 살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시각각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시키는 작품, 필립 K. 딕의 문제작 『죽음의 미로』이다. 딕은 이 작품 속에서 기존 종교를 버무려 독특하고 새로운 신학관을 창조하면서, 신과 직접 교감하는, 유토피아와도 같은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조유신造有神’ ‘중재신仲裁神’ ‘지상을 걷는 자’의 3신위와 ‘형상파괴자’로 이루어진 그 새로운 신학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등장인물의 행동의 이유가 되기도, 또는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죽음의 미로』는 초기의 사회상 짙은 소설에서 말년의 계시적인 작품으로 이행하는 작가의 이력에서, 가교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딕의 작품답지 않게 속도감 있고 명쾌하게 읽히는” 『죽음의 미로』가 딕의 작품세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갖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그가 말년에 초현실적인 체험을 하고 쓰게 된 대작 『발리스』 역시 이 작품이 모태가 되었다. 어쩌면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구원을 꿈꿨던 작가가 창조해낸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미래의 환영 속에서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던 SF의 거장의 작품이, 쳇바퀴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함께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 줄거리 인류가 은하계 곳곳으로 진출해서 수많은 외계 행성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래. 사람들은 모두 신과 직접 소통하며 살아간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송신기를 이용해 신에게 기도를 보내면 신이 그것을 들어주는 식이다. 우주선에서 재고 관리 업무를 하던 벤 톨치프는 판에 박힌 자신의 일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신에게 기도를 보내고, 결국 그에게 델멕-O라는 이름의 행성으로 떠나라는 전근 명령이 떨어진다. 델맥-O에 도착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슷한 명령을 받고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자신들이 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 행성으로 온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공위성을 통해 상부의 지시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원인불명의 기계 고장으로 인해 그곳에 고립되고 만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낯선 행성에서 고립된 사람들은 서로 각축을 세우기 시작하고, 곧 일행 중 한 명이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연이어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 과연 이들을 외딴 행성에 고립시킨 사람은 누구이며,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은 누구인가? 기괴한 인공 생명체가 배회하는 낯선 행성, 그곳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안에 시달리며 미로와도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하지만 거짓과도 같은 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생이라는 쳇바퀴에서 자기완성을 꿈꾸는 인간들이 그려나가는 구원의 서사는 그렇게 시작된다. ■ 본문 중에서 주위의 공기에서는 희미하긴 하지만 악취가 풍겼다. 마치 가까운 곳에 폐기물 처리 공장이라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벤은 며칠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라고 자위했다. 이 작자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다들 너무…… 그는 적당한 표현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너무 똑똑해. 맞아, 그거야. 다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속내를 내보이고 싶어서 안달하는 듯한 느낌. 그러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다들 불안해하고 있어. 맞아. 나처럼 이유도 모르고 여기 와 있는 거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완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열에너지의 장막이 세계 위를 균일하게 뒤덮고 있다. 그가 애착을 갖고 있지도, 관심을 느끼지도 않는 이 기묘하고 조그만 세계 위를. 죽어가고 있어. 이 우주는. 열에 의해 발생한 아지랑이가 점점 확산하더니 마침내 우주의 유일한 교란물이 되어버렸다. 하늘은 그 빛으로 약하게 빛나다가 이내 점멸하기 시작했다. 균일한 열 분포조차도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로 기이하고 섬뜩한 장면이다. 벤은 일어서서 문을 향해 한 걸음 대디뎠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선 채로 죽었다. 이 기계는 지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외계 종족이 발명한 것이, 델맥-O의 토착 생명체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 가능성은 이제 부인되었다. 트리튼 장군. 몰리는 암울한 어조로 되뇌었다. 우리를 죽이려는 자는 결국 당신이었군. 송수신기를 부수고, 우리에게 반드시 노우저를 타고 와야 한다는 명령을 내린 것도 당신이었어. 벤 톨치프를 죽이라고 명령한 것도 당신이 맞지? 틀림없다. 여자는 포치에 쓰러져 있었다. 방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여자 위로 몸을 수그리고 목덜미에 손을 갖다 댔다. 싸늘하게 식어 있다. 생명 활동의 징후는 전무했다. “직접 확인해봤어?” 벨스너는 배블에게 물었다. “정말로 죽은 거야?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자네 손을 보라고.” 프레이저가 말했다. 벨스너는 여자의 목덜미에서 손을 뗐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정수리 가까운 곳의 머리카락 속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머리가 박살난 상태였다. 그러자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하고 생생한 가능성 하나가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들 모두가 수용소에서 온 환자들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른다면? ‘행성간서방연합’은 우리의 얼어 죽을 뇌 안에 있는 기억 도선導線을 하나 절단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집단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도 그걸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대화조차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화성의 타임슬립> 혹시 오늘밤 나는 이미 이곳에 왔다 간 것일까? 지금 몇 시지? 맙소사, 시간감각이 사라져버렸어! 악몽은 일상을 좀먹고, 광기는 삶을 무너뜨린다. 필립 K. 딕 특유의 현실 붕괴 감각이 돋보이는 최고의 걸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페이첵> <콘트롤러> 등의 원작자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로 평가받는 필립 K. 딕. 그의 걸작 장편만을 모은 ‘필립 K. 딕 걸작선’이 폴라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걸작선집의 시발점인 『화성의 타임슬립』은 그가 20세기 고도로 발달된 기계 문명사회에서 제기될 수 있는 광기의 문제를 소설의 형태로 체화시킨 걸작이다. 특히 작가 특유의 현실 붕괴 감각이 일품이라 평가받는데, 작가 스스로도 “실험적인 주류 소설과 SF 사이의 간극을 줄인 작품으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일생을 거쳐 천착해온 필립 K. 딕의 작품을 통해 그의 시대를 초월한 감성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필립 K. 딕 최고의 걸작, 『화성의 타임슬립』 필립 K. 딕은 “초능력과 로봇, 그리고 외계인 등 과학소설의 보편적 소재를 이용해 진지한 메시지를 담는 작가”라는 평과 함께 20세기 SF문학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그가 작품 활동 최전성기인 1964년에 발표한 『화성의 타임슬립』은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과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유빅』과 함께, 정체성과 다중 현실, 그리고 불안감과 편집증 등 작가 특유의 키워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최고 걸작이다. 딕은 이 작품에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초능력을 가진 소년 등 통속적인 SF의 소재를 이용해 담담한 어조로 앞으로 맞이하게 될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그려간다. 그러나 그가 그린 미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바로 그것이 혼란 속에서 21세기의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1994년 식민지 화성,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화성이라고 해서 특별히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과 다르지 않다. 작가에게는 가까운 미래였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는 이중의 허구에 해당될 1994년의 화성은 외계 행성이라기보다는 20세기 캘리포니아 교외 주택가를 연상시킨다. 나른한 일상 속의 권태와 절망이 지배하는 이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은 정신분열과 함께 서서히 광기에 물들어간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등장인물의 내적 심리 독백을 통해 전개해나가는데, 작품 속 현실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화자의 망상인지가 모호하게 표현된다. 결정적으로 등장인물의 망상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 후반부는 악몽이 일상을 잠식해 들어가는 작가 특유의 ‘현실 붕괴 감각’을 최대한 발현시킨 딕 SF의 백미로 꼽힌다. 정신적으로 유약한 영혼을 힘겹게 지탱해가면서도 항상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라는 실존적 주제에 집착했던 그는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 몽상가였다. 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결국 진실이란 상대적인 것이며 어쩌면 환영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안겨준다. ■ 줄거리 1994년 식민지 화성, 이곳에서는 인구 증가와 환경오염으로 한계에 다다른 지구를 떠난 사람들이 물자 부족에 시달리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던 과거의 아픈 경험을 잊기 위해 수리공으로 일하면서 살아가는 잭 볼렌은 화성의 수자원노동조합장인 어니 코트와 만나 일하게 되면서 어니의 생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편, 제대로 된 정부가 없는 화성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하고 있던 어니 코트는 UN이 화성의 황무지를 구입해서 거대한 복합 거주지를 세울 작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UN의 거주지가 들어서면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거라 생각한 어니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자폐아 만프레드의 특수한 예지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발 딛은 사회와 단절된 채 생지옥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던 만프레드는 상상 외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20세기 문명사회 특유의 일그러짐을 SF 작가의 입장에서 예리하게 직시했던 필립 K. 딕의 부조리한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초상이 그려진다. ■ 본문 중에서 그러자 환각이—정말로 환각이었다면 말이지만—출현했다. 인사부장이 다른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는 죽어 있었다. 피부를 통해 골격이 보였다. 뼈들은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내장은 인공 신장이나 심장, 폐 따위로 대체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강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서로 연계해서 매끄럽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진짜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사내의 목소리는 테이프에 녹음된 소리였고, 앰프와 스피커 시스템을 통해서 들려왔다.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이 사내가 실제로 존재하고 살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상태는 이미 끝났고, 아무도 모르는 새에 다른 것으로 교체되었던 것이다. 흐음,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군. 잭은 생각했다. 소년은 앞으로 이곳에 존재할 건물들을 그리고 있었다. 현재 그들의 눈에 비치는 풍경이 아니라 미래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소년이 묘사한 것은 단지 건물만이 아니었다. 지금 소년이 그리고 있는 조합 주택의 거대한 아파트 건물들은 그들이 바라보는 동안에도 점점 불길한 느낌을 더해가고 있었다. 낡은 건물들. 오래되어서 다 무너져가는 느낌이다. 황폐하고 절망적인 풍경이었다. 생기와 활력이 결여된, 시간을 초월한 둔중함의 표상과도 같은 광경. “만프레드는 단지 미래를 예지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어.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제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나 할까. 여러 가능성 중에서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만프레드에게는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고, 현실이니까. 마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 아이의 현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만프레드의 현실이 우리를 침식하고, 우리의 인식을 대체해버리는 거야. 그 결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익숙해진 사건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 완전히 미친 이 소년에게 내가 한 걸음씩 착실하게 다가간다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정신병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것은 외부 세계의 사물을 지각하지 못하는 상태이며, 특히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세계로부터 완전히 격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몰려왔다가 후퇴하는 자기自己 속으로의 소름끼치는 몰입이다. 내부에 기인한 변화는 오로지 내부 세계에만 영향을 끼칠 뿐이다. 세계는 안과 밖으로 분열되고, 쌍방이 서로를 지각하는 일은 결코 없다. 양쪽 모두 계속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길이 교차하는 일은 없다. 그것은 시간의 정지를 의미한다. 경험의, 새로운 것의 종말이다. ※ ‘필립 K. 딕 걸작선’ 출간의 의의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필립 K. 딕은 여전히 그 문학적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작가이다. 생전에 그는 주류 문학계에서는 ‘싸구려 장르 소설 작가’로 폄하되고, SF 문학계에서는 인간성을 탐구하는 특유의 주제의식 때문에 팬들에게 외면당한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 출판사인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문학 총서(마크 트웨인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수록한 방대한 작가 선집으로 미국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가만이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에 필립 K. 딕을 올려놓으며 재조명했다. 그 자체로, 그의 작가적 입지가 미국문학에서 얼마나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장르라는 이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필립 K. 딕 전문가인 조나단 레섬이 편집한 이 장편소설 선집에는 휴고상 수상작인 『높은 성의 사나이』와 존 켐벨 기념상 수상작인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 그리고 말년의 걸작인 『발리스』 3부작 등 총 12편의 장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폴라북스에서 2013년 완간될 예정이다. 해외 거장의 경우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걸작선은 국내에서 SF 거장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기념비적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협잡꾼들에게 둘러싸인 [진정한] 몽상가.” _ 스타니스와프 렘 일부 SF 애독자들은 과학보다 소설을 우선시했다고 필립 K. 딕을 탓했고, 그가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딕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점점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가며 매스미디어의 지배가 강화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와 영적인 생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고전 선집에든 포함될 가치가 있는 작가이다. _ 데이비드 헬먼 딕은 시대를 앞선 작가가 아니라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와 동조同調된 작가였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코미디, 멜랑콜리, 파라노이아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은 소름끼치는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우리들이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_ 《샌프란시스코 게이트》 딕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사실에 관해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절한 작품들을 썼고, 그 사실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_ 조나단 레섬
<핸디맨> 우주 전쟁, 최종 병기, 과거에서 온 남자, 천재 발명가, 손재주, 타임 머신 등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티브들을 절묘하게 배합한 소설. 외부 우주까지의 비행이 가능해진 먼 미래. 인류는 외계 문명과의 전쟁에 총동원되어 있다. 전쟁의 향배를 결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초광속 폭탄의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지만, 기술적 문제가 발생한다. 동시에 과거 시대를 기록하던 타임 머신의 조작 실수로 '무엇이든 고칠 수 있는' 수리공 하나가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진다. 문제는, 미례를 예측하는 수퍼 컴퓨터에서 그 남자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변수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지구를 옥죄고 있는 외계 문명과의 전쟁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자는? <추천평> "짧지만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즐거운 소설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 Rick, Goodreads 독자 "이 작품은 내가 읽은 필립 K. 딕 중 첫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더 읽을 생각이다. 신이여 이 작가를 축복시기를." - Anonymous, Amazon 독자 "즐겁고 빠르게 읽은 소설. 과거의 지식이 미래에 어떤 쓸모를 지닐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흥미롭다. 최근에야 읽기 시작한 필립 K. 딕에게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 Joe Dillenburg, Goodreads 독자 "굉장히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아주 잘 흘러가는 줄거리 전개와 고전의 매력을 지닌 소설." - Dylan Carter, Amazon 독자 "필립 K. 딕의 작품은 고전이면서도, 우주 전쟁 소재를 넘어선다. SF 황금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 - Another owner, Amazon 독자 <저자 소개> 필립 킨드레드 딕 (Philip Kindred Dick, 1928 - 1982)은 미국 출신의 SF 소설가이다. 딕은 권위주의적 정부, 독점적인 거대 기업 등이 지배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사회적, 철학적, 존재론적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초현실주의적이고 미래주의적인 경향 때문에 그의 소설은 영화의 원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블레이드 런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 첵", "스캐너 다클리" 등이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말년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경험, 약물 중독, 심신 쇠약, 신경증 등의 경험을 반영한 주인공들을 통해서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테마를 다루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초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설정 속에서, 자아 정체성의 혼란, 선과 악의 혼동, 도덕의 붕괴, 기술과 인간의 융합 등을 다루는 전위적인 성격을 가진다. 또한 작가 자신의 의식을 따르는 듯한 불명확한 플롯, 환각과 현실의 모호한 구분, 죽음과 삶의 의도적 혼선과 병치하여 진행시키는 특징을 가진다. 기승전결의 명쾌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는 다른 SF 작가들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견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구조와 요소들을 몰입감 있게 엮어내는 데서 그의 천재성을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성의 사나이"의 경우에는, SF와 대체 역사 소설 쟝르의 연계로, 1963년 휴고상을 수상하였고,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의 경우, 자신이 유명하지 않은 평행 우주 속에 던져진 유명 인사의 이야기로, 1975년 캠벨상을 수상하였다. 딕은 1928년, 시카고에서, 농무부 소속 공무원인 아버지와 어미니 사이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러나 6주 정도 미숙아였던 쌍둥이 중, 여동생은 생후 6주만에 사망하게 되고, 이 여동생의 기억은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유령 쌍둥이"의 모티브로 재현된다.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딕은, 그곳에서 부모의 파경을 맞고, 어머니를 따라서, 워싱턴 DC로 잠시 이주한 후, 10살 때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돌아 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UC 버클리로 진학한 딕은 철학, 역사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강의를 들으면서, 훗날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하는 사상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플라톤 등의 저서를 통해, 현실 세계의 확실성을 의심하게 되고, 세계의 존재는 인간의 내적 지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관념론적 관점은 그의 소설 속에서, 혼란된 자아 정체성, 기억의 왜곡과 경험의 불확실성, 죽음과 삶의 병존성, 현실과 환상의 혼재라는 모티브로 재현된다. 대학 중퇴 후, 딕은 1952년까지 지역 레코드 가게에서 일을 계속하지만, 그 사이 발표한 단편 "태양계 복권" 이후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딕은 평생에 걸쳐서 재정적인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중반, 그는 자신의 수입이, 도서관 연체료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이라는 언급을 한 바 있다. 또한 작가로서의 명망을 쌓은 1980년대 출판된 책에서도, 자신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준 로버트 하인라인 (영미권 3대 SF 작가, 스타쉽 트루퍼스의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등, 재정적으로는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1970년대부터 딕은 마취제에 의한 부작용과 환각, 환청 등에 시달리고, 그러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약물에 중독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그는 환각 속에서 자신에게 지혜를 주는 핑크 색 빛이라든가 유대 예언자인 엘리야와의 대화, 신약 성서 중 사도 행전의 줄거리와 자신의 삶을 혼동하는 등 여러 가지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발리스",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 등에 반영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높은 성의 사나이" (1962),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1968), "유빅" (1969),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 (1974), "스캐너 다클리" (1977), "발리스" (1980) 등이 있다. 1982년, 캘리포니아주 산타 애나에서 거주하던 딕은 시야 상실 증상 이후 하루 만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직후 뇌사 상태에 빠졌다. 5일 후 생명 유지 장치가 제거되고 바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아버지에 의해서 콜로라도로 옮겨져, 태어난 직후 죽은 쌍둥이 여동생 바로 옆에 묻혔다. 그의 여동생이 묻힐 당시, 이미 그녀의 묘비에 "필립 킨드레드 딕"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번역자 소개> 2014년, 활동을 시작한 TR 클럽의 구성원은 인문학과 공학 등을 전공한 전문 직업인들로, 모두 5년 이상의 유학 또는 현지 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삶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관심을 가진 도서와 컨텐츠가 국내에서도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 IT 벤처기업가, 출판 및 서점 편집자, 대학 교원, 음악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바탕으로, 본인들의 외국어 능력과 직업적 특기를 기반으로, 모던한 컨텐츠 번역을 추구하고 있다.
<말하는 돼지, 웝> SF의 거장, 필립 K. 딕의 데뷰 소설. 인간 중심 사고에 대해서 통렬한 비판이 담긴 거장의 시작 지점을 엿볼 수 있다. 화성 근처에서 우주 무역을 하던 우주선에 웝이라고 불리는 돼지 한 마리가 실려온다. 선장은 그것을 잡아서 식량으로 쓰려고 한다. 그때 그 돼지, 웝이 말을 시작한다. 웝은 우주의 질서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고, 자신의 종족의 신화와 인간의 신화를 비교 분석할 수도 있는 지적 생명체이다. 그러나 선장은 웝은 단순한 돼지일 뿐이라고 여기고 그를 요리하려고 한다. <추천평> "상당히 평범한 설정으로 시작되는 소설이지만 전개는 예상을 뛰어 넘는다. 2가지 측면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우선, 웃음기가 가득하지만 일종의 슬픔을 가진 웝이라는 외계인의 설정.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인 결말이 뛰어난 소설이다. 거장의 시작 작품으로서 아주 적당한 소설이다." - Bill Kerwin, Goodreads 독자 "진실로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이다. 당신의 저녁 식사 거리가 말을 걸면서 먹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면? 여기 작가의 답변이 있다." - Brian Yahn, Goodreads 독자 "웝은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돼지이다. 문명화된 그는 철학과 신화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즐겨한다. SF 문학론에서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뛰어난 단편 소설이다." - Lyn, Goodreads 독자 "훌륭한 이야기. 계속되는 반전과 이야기의 전환점들이 돋보인다. 웝이 누구일까? 그것은 당신의 해석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두뇌를 자극하는 소설이다." Steve Bradley, Amazon 독자 "필립 K. 딕의 팬이라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 Patrick Tilley, Amazon 독자 <저자 소개> 필립 킨드레드 딕 (Philip Kindred Dick, 1928 - 1982)은 미국 출신의 SF 소설가이다. 딕은 권위주의적 정부, 독점적인 거대 기업 등이 지배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사회적, 철학적, 존재론적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초현실주의적이고 미래주의적인 경향 때문에 그의 소설은 영화의 원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블레이드 런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 첵", "스캐너 다클리" 등이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말년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경험, 약물 중독, 심신 쇠약, 신경증 등의 경험을 반영한 주인공들을 통해서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테마를 다루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초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설정 속에서, 자아 정체성의 혼란, 선과 악의 혼동, 도덕의 붕괴, 기술과 인간의 융합 등을 다루는 전위적인 성격을 가진다. 또한 작가 자신의 의식을 따르는 듯한 불명확한 플롯, 환각과 현실의 모호한 구분, 죽음과 삶의 의도적 혼선과 병치하여 진행시키는 특징을 가진다. 기승전결의 명쾌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는 다른 SF 작가들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견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구조와 요소들을 몰입감 있게 엮어내는 데서 그의 천재성을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성의 사나이"의 경우에는, SF와 대체 역사 소설 쟝르의 연계로, 1963년 휴고상을 수상하였고,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의 경우, 자신이 유명하지 않은 평행 우주 속에 던져진 유명 인사의 이야기로, 1975년 캠벨상을 수상하였다. 딕은 1928년, 시카고에서, 농무부 소속 공무원인 아버지와 어미니 사이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러나 6주 정도 미숙아였던 쌍둥이 중, 여동생은 생후 6주만에 사망하게 되고, 이 여동생의 기억은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유령 쌍둥이"의 모티브로 재현된다.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딕은, 그곳에서 부모의 파경을 맞고, 어머니를 따라서, 워싱턴 DC로 잠시 이주한 후, 10살 때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돌아 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UC 버클리로 진학한 딕은 철학, 역사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강의를 들으면서, 훗날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하는 사상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플라톤 등의 저서를 통해, 현실 세계의 확실성을 의심하게 되고, 세계의 존재는 인간의 내적 지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관념론적 관점은 그의 소설 속에서, 혼란된 자아 정체성, 기억의 왜곡과 경험의 불확실성, 죽음과 삶의 병존성, 현실과 환상의 혼재라는 모티브로 재현된다. 대학 중퇴 후, 딕은 1952년까지 지역 레코드 가게에서 일을 계속하지만, 그 사이 발표한 단편 "태양계 복권" 이후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딕은 평생에 걸쳐서 재정적인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중반, 그는 자신의 수입이, 도서관 연체료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이라는 언급을 한 바 있다. 또한 작가로서의 명망을 쌓은 1980년대 출판된 책에서도, 자신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준 로버트 하인라인 (영미권 3대 SF 작가, 스타쉽 트루퍼스의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등, 재정적으로는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1970년대부터 딕은 마취제에 의한 부작용과 환각, 환청 등에 시달리고, 그러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약물에 중독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그는 환각 속에서 자신에게 지혜를 주는 핑크 색 빛이라든가 유대 예언자인 엘리야와의 대화, 신약 성서 중 사도 행전의 줄거리와 자신의 삶을 혼동하는 등 여러 가지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발리스",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 등에 반영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높은 성의 사나이" (1962),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1968), "유빅" (1969),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 (1974), "스캐너 다클리" (1977), "발리스" (1980) 등이 있다. 1982년, 캘리포니아주 산타 애나에서 거주하던 딕은 시야 상실 증상 이후 하루 만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직후 뇌사 상태에 빠졌다. 5일 후 생명 유지 장치가 제거되고 바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아버지에 의해서 콜로라도로 옮겨져, 태어난 직후 죽은 쌍둥이 여동생 바로 옆에 묻혔다. 그의 여동생이 묻힐 당시, 이미 그녀의 묘비에 "필립 킨드레드 딕"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번역자 소개> 2014년, 활동을 시작한 TR 클럽의 구성원은 인문학과 공학 등을 전공한 전문 직업인들로, 모두 5년 이상의 유학 또는 현지 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삶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관심을 가진 도서와 컨텐츠가 국내에서도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 IT 벤처기업가, 출판 및 서점 편집자, 대학 교원, 음악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바탕으로, 본인들의 외국어 능력과 직업적 특기를 기반으로, 모던한 컨텐츠 번역을 추구하고 있다.
<전선의 발톱들> 최후의 핵전쟁이 일어나고 몇 년 후. 지상의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고, 전투를 지속하는 군인들은 지하 벙커에서 살고 있다. 인간들을 대신해서 전쟁을 수행하는 기계, '발톱'이 지상을 누빈다. 그 기계들은 인간을 찾아 내는 즉시 벌떼처럼 달려 들어 죽이는 공격 패턴으로 설계되어 있다. 어느 날, 러시아 전선 사령부로부터 전쟁 협상을 제의하는 메시지가 날아 들고, 미군 측에서는 고위 장교인 헨드릭스를 파견한다. 헨드릭스가 지상에서 발견하는 것은 발톱들의 예기치 못한 진화와 발전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잘 판별할 수 있는가? 평화와 전쟁의 의미는? 필립 K. 딕 특유의 형이상학적 질문들이 책을 읽은 후에도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참고로, 이 소설은, 피터 웰러 주연의 "스크리머스 Screamers" (1995)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합본 | SF 럭키팩 7 - Action (전7권)>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SciFan 시리즈에서 액션성이 강한 소설들 7권을 골라서 만든 특별판 패키지이다. - 헌터 패트롤 (존 맥과이어) : 세계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자의 선택. - 모든 고양이는 회색이다 (안드레이 노튼) : 한 여자와 남자, 고양이가 찾아 떠나는 우주 유령선 속의 보이지 않는 존재. - 과거를 죽이는 사나이 (필립 K. 딕) : 과거의 한 남자를 죽이시오. 그럼 당신은 자유요. - 사냥꾼, 쫓기다 (랄프 윌리엄즈) : 외계 생명체 '하른'의 갑작스러운 증식에 놀란 '월드 관리자'가 세계 사이의 문을 열다 - 상황 코드 3 (릭 라파엘) : 시속 500킬로미터를 넘나 드는 고속도로 순찰대에 상황 발생! - 브레인 체이서 (알렉산더 베리야프) : 아무도 모르게 이뤄지는 생체실험. 몸을 차지하려는 자와 되찾으려는 자 사이의 추격전. <저자 소개> 헨리 빔 파이퍼 (1904 - 1964)는 미국의 SF 소설가이다. 그는 '파라타임'이라는 대체 역사 소설 시리즈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시리즈는 광대한 영역을 무대로 한 미래 역사 소설이다. 안드레이 앨리스 노튼 (1912 - 2005) 은 미국의 여성 SF/판타지 작가이다. 필명으로 주로 '안드레이 노튼', '앤드류 노스', '앨런 웨슨' 등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러한 남자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당시 SF와 판타지의 주요 독자층이 남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그녀는 미국 SF 판타지 작가협회 (SFWA)에서 수여하는 그랜드 간달프상을 받았고, 미국 SF 판타지 작가 협회의 그랜드 마스터로 임명되었고, S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필립 킨드레드 딕 (Philip Kindred Dick, 1928 - 1982)은 미국 출신의 SF 소설가이다. 딕은 권위주의적 정부, 독점적인 거대 기업 등이 지배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사회적, 철학적, 존재론적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초현실주의적이고 미래주의적인 경향 때문에 그의 소설은 영화의 원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블레이드 런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 첵", "스캐너 다클리" 등이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랄프 윌리엄스 (본명 랄프 윌리엄 슬론, 1914 - 1959)는 SF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적은 수의 작품만을 발표했다. 알래스카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거주한 윌리엄스는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1940년 첫 작품인 비상 착륙 Emergency Landing을 시작으로 약 12 개정도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빠른 진행과 간명한 스토리라인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본업은 캐나다 자동차 협회의 사무원이었으며, 죽을 때까지 토박이 알래스카 사람으로서 사냥과 낚시 등 야외 활동을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취향은, 사냥과 낚시 등의 야외 활동에 대한 정교한 묘사, 미지의 세계에서 온 외계 생명체를 상정하지만 그 설정이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점 등에서 잘 드러난다. 릭 라파엘 (Rick Raphael, 1919 ~ 1994)는 미국의 SF 소설가이다. 동시에 그는 신문 기자, 사진 기자, 신문 칼럼 및 TV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도 했다. 1959년 "개암 열매는 땅콩이다"라는 단편을 Astounding에 발표하면서, SF 작가로 데뷔한 라파엘은 단행본 몇 권 분량의 SF 소설만을 발표했기 때문에, SF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적은 수의 작품만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양에 비해서 명성은 높은 편이었다. 그의 높은 명성은 기술적으로 탄탄한 지식과 명료한 문체, 그리고 극적인 스토리 구성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알렉산더 베리야프 (Alexander Belyaev, 1884 - 1942)는 러시아의 SF 소설가이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친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서, "러시아의 줄 베른"이라는 명성을 획득했다. 대표작으로는, "다우웰 교수의 머리", "양서 인간", "아리엘", "공기 판매자" 등이 있다. <번역자 소개> 2014년, 활동을 시작한 TR 클럽의 구성원은 인문학과 공학 등을 전공한 전문 직업인들로, 모두 5년 이상의 유학 또는 현지 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삶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관심을 가진 도서와 컨텐츠가 국내에서도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 IT 벤처기업가, 출판 및 서점 편집자, 대학 교원, 음악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바탕으로, 본인들의 외국어 능력과 직업적 특기를 기반으로, 모던한 컨텐츠 번역을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