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 “어두운 밤, 찾아오는 손님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 호러와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를 넘나드는 한국 장르문학의 섬찟한 반란! 10인의 작가, 10편의 여성 기담 당신을 사로잡을 압도적인 공포 소설 오늘날 한국 장르문학의 주목받는 작가 10인이 ‘한국형 호러’의 세계를 다시 쓰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그간 일명 장르물에서 요구되는 여성은 사건의 해결 혹은 분위기 조성을 위해 허무하게 희생되거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이나 ‘사연’ 때문에 귀신이 되었다거나, 사건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표현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여성, 소수자, 약자는 흔히 작품의 이질적 분위기와 군상을 대변하며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에 그치는 부수적 인물형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는 ‘여성 호러 단편선’이라는 부제와 함께 오직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공포 서사를 꾀하며 탄생했다. 장르문학 독자에게 김이삭, 서계수, 유기농볼셰비키, 장아미, 전혜진, 코코아드림, 한켠 등 SF,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작가들의 참여와 국내 호러 콘텐츠 창작 레이블인 ‘괴이학회’ 소속의 남유하, 배명은, 사마란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는 늘 살해당하고, 억울하게 귀신이 되어 원한을 호소하고, 사건의 실마리로 전락할 뿐인 여성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뒤엎는다. 여성이 사건의 시발점이 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악독한 귀신으로 나타나고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가 하면, 잔인한 면모를 가감 없이 내보이며 반전과 긴장을 단단하게 꿰찬다. 잔혹한 살인을 일삼는, 심지어 살해한 사람으로 곰탕을 끓여 직원들의 점심을 준비하는 계약직 여주인공이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최 과장은 지금 자기가 어떤 시험을 보고 있는지나 알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으스스한 공포는 물론 전복된 서사가 주는 장르적 쾌감까지 오롯하게 느껴진다. 최 과장의 등 뒤에서 들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큰 입을 벌리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서 빨리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입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입을 벌려본다. 개의 이빨이다. 흐르는 물에 손을 비벼가며 박박 씻었다. _〈너의 자리〉에서 “아무튼, 상관없어요. 제가 시어머니보다 오래 살아남을 테니까.” 억울하게 죽지 않고, 무고하게 희생되지 않으며 함부로 이용당하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인 남유하 작가의 〈시어머니와의 티타임〉은 “어떤 사람의 음식 씹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면, 그 사람을 증오하고 있는 거”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고부간의 극단적 심리 싸움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그러면서도 흔히 ‘착한 며느리’와 ‘못된 시어머니’로 표현되는 평면적 관계를 허물어, 결혼을 집을 매개한 수단으로 여기는 며느리와 잘못된 아들 사랑에 미쳐가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그려냈다. 이처럼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는 이 사회 안에서 여성에게 심리적, 육체적 공포로 다가오는 문제들을 밀도 있게 녹여낸다. 전혜진 작가의 〈창귀〉는 ‘범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혼령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범에게 붙잡혀 지낸다’라는 창귀 설화의 모티브를 강남역 살인사건, 남아선호사상과 연결하고, 한켠 작가의 〈너의 자리〉는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는 11개월 계약직 여직원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업무 지시, 사내 문화, 추행과 희롱 등의 문제를 ‘인수인계 살인’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풀어낸다. 김이삭 작가의 〈성주 단지〉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불안이 집이라는 공간의 안전성과 충돌했을 때 감각되는 공포를 담았다. 또한 사마란 작가의 〈뷰티풀 라이프〉와 유기농볼셰비키 작가의 〈그를 사로잡는 단 하나의 마법〉은 일명 ‘복수 스릴러’인데, 여성의 복수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자력으로 실행되고 완료된다는 점에서 섬뜩한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가 그만 기절할 뻔했다. 준상 어머니의 등 뒤쪽에는 마치 수십 개의 촉수가 돋아난 듯한 수많은 내장들이 매달려 있었다. 어떤 것들은 굵고 컸으며, 어떤 것들은 가늘고 짧았다. 크고 작은 사람의 팔다리가 매달려 있는 것도, 탁구공만 한 사람의 머리가 매달려 있는 것도 있었다.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은, 아기들이었다. 준상 어머니의 등 뒤에 매달린 것 중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벌거벗은 아기들도 있었다. 윤서는 입이 바싹 말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벌거벗은 아기들은 전부, 여자아이였다. _〈창귀〉에서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은 ‘속수무책’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착하지도,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지도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연’으로 마감되지 않고, 더욱 치밀하고 치열하게 무서워진다. 그 한밤의 무서움 앞에서 우리는 책에 나오는 “고작 노란색을 무서워한 남귀(男鬼)”를 떠올릴 수 있다. 나의 삶을 떨게 하는 무언가가 더는 두렵지 않아지는 아이러니를 마주하면서. “너희가 다른 귀신을 불러왔구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귀신’의 필요와 가능성 사춘기 시절의 연약한 감정이 불러온 피해의식과 그 파장을 섬세하게 조망한 〈산상수훈〉에서, 주인공이 평생을 이단으로 치부해온 ‘새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다른 귀신을 불러왔구나.” 장르문학을 다양하게 창작하고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짐에 따라, 책에 참여한 10인의 작가, 10편의 소설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귀신을 향해 힘있게 나아간다. 〈큰언니〉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차원의 공간을 설정하며 자매애와 모성애를 새롭게 보여주고, 〈매혹〉은 마을 여자들만 갈 수 있는 곳에 사는, 소원을 들어주는 ‘천녀’라는 존재가 숭배의 대상이 아닌 온전한 ‘빌런’으로 기능하게끔 하고, 〈무진도 탈출기 게임 환불 보고서〉는 게임 속 세계라는 SF 판타지 요소가 미스터리, 호러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점이 매력인 작품이다. 그간 공포 문학이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나 소름 끼치다 못해 거북해지는 묘사 등에 의존해왔다면, 여러 장르적 특색이 조화롭게 뭉친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는 앞으로의 공포 문학이 고심해야 할 방향성이 아닐까. 각자의 개성이 톡톡 튀는 10편의 작품이 우리를 더욱 다채로운 호러의 세계로 안내하리라 기대해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과 찝찝함이 끈적하게 감도는 것이 아니라, 사늘한 공포와 쾌감에 대한 기대를, 이 책과 함께할 여름밤에 대한 기대 역시도. “그래도 피할 수는 없을 거야. 손님은 그곳에 나타날 거거든. 너희가 그 집에 숨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 장담하건대 내 넋의 일부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게다. 내가 죽고 이곳에 남겨질 너희를 가련해하고 있거든. 너희를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너희와 함께 저승으로 떠나는 게 낫다고 믿고 있거든.” _〈큰언니〉에서
<한성부, 달 밝은 밤에> 시신이 남아 있는 한 끝까지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게 살아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 죽은 자들의 묻혀버린 목소리를 찾기 위해 달빛 내려 앉은 시린 밤 아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란의 직업은 시신을 검험하는 검험 산파다. 시신의 실인(實因)을 제대로 밝히고, 흉수를 찾아 법도에 따라 엄벌에 처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이 부여받은 책임이라고 아란은 생각한다 어느날 발생한 목멱산 화재사건, 그곳에서 여섯 구의 시신이 발견된다. 실인이 모두 다르다……. 마지막 시신에서 발견한 믿을 수 없는 흔적까지. 단순한 화재사건이 아님을 직감한 아란은 작은 실마리부터 쫓기 시작한다 망자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한 아란의 추적!하지만 사건을 파헤칠수록 아란의 과거의 아픔도 드러나는데…… 과연 아란은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사명감을 지켜낼 수 있을까?
조선 제일가는 사기꾼 무녀 신병이 걸린 척해 궁에서 탈출한 전직 감찰궁녀 무산. 판수 돌멩과 함께 벽사를 핑계로 탐관오리에게 사기를 치며 살던 그녀에게 비밀스레 교지가 전해졌다. 얼마 전, 도성과 경기를 뒤흔든 두박신 사건을 몰래 조사하라는 왕명이었다. 신기도 없는데 괴력난신을 무슨 수로 조사하지? 군왕 기만죄로 처벌을 받을까 봐 두려웠던 무산은 신병을 앓는 양반 서자인 설랑을 꼬드겨 함께 사건을 수사한다. 두박신 그리고 급살 사건 양성 지역의 마을 신이었던 두박신이 어떻게 도성과 경기 땅까지 널리 퍼졌을까? 설랑과 사건을 조사하던 무산은 두박신 소문이 활인원에서 일어난 급살 사건 때문에 빠르게 퍼졌다는 걸 알게 된다. 무산은 감찰궁녀 시절에 닦은 실력을 발휘해 사건을 조사하고, 급살 사건이 사실은 살인 사건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던 중 가장 의심스러웠던 구료 무녀가 활인원 한증막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그들이 뒤쫓던 건 신이 아닌 종이였다 무산은 조사 끝에 죽은 구료 무녀와 손을 잡은 매골승이 있다는걸, 그리고 배후에 장의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모든 건 다 종이 때문이었다. 조선은 주기적으로 명나라에 종이 공물을 보냈을 뿐 아니라 두 해 전 『자치통감』을 30만 권이나 제작해 종이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박신에게 종이를 바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종이를 파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종이를 파는 사람이 있다면, 그 종이를 만드는 사람도 있을 터. 장의사는 종이를 만들 수 있었다. 마지막 굿판 사건의 전말을 파헤쳤지만, 이제껏 자신이 위에서 짜놓은 판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무산. 어째서 왕은 일개 무녀인 자신에게 두박신 사건을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을까? 무산은 자기가 감찰궁녀였기에 그런 줄 알았다. 하나 아니었다. 자신이 무녀이기 때문이었다. 억불숭유라고는 해도 불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위에서는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이제이를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무녀 무산을 내세웠다. 이대로 바둑판 위에 놓인 바둑알이 되지는 않겠어! 두박신 사건을 해결한 공으로 국무가 되게 생긴 무산은 바둑알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사기 굿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