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수줍게 고개 내민 능소화 꽃향기를 타고 4백 년 시공을 뛰어넘은 슬픈 사랑이 펼쳐진다! 햇살 따사로운 여름날,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듯 붉고 큰 꽃송이를 피우다 활짝 핀 모습 그대로 지는 능소화. 시들지 않고 송이째 떨어지는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핏발 선 저항으로 보이기도 하는 능소화에는 어여쁜 여인이 꽃이 되어 님을 기다리며 담 너머를 굽어본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소설 『능소화』는 능소화 곱게 피던 날 만나 능소화 만발한 여름날 이별한 응태와 여늬의 서럽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통해 잊을 수도 없고, 이기지도 못할 이별의 슬픔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하늘이 정한 운명을 거스르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이들의 사랑은 4백 년 시공을 뛰어넘어 애잔한 울림을 전해준다. ▶ 4백 년 만에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 그들의 끝나지 않은 사랑이 소설 『능소화』로 피어난다! 1998년 4월 경북 안동에서 택지조성을 위해 분묘이장을 하던 중 남자의 미라와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다. 유물 조사 작업에 참여해 ‘원이 엄마의 편지’ 해독을 맡은 국문과 교수인 나는 마침 한국에 교환교수로 와 있는 기타노 노부시에게서 일본 간사이 외국어대학교의 민속박물관에 원이 엄마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일기가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나는 그 일기가 임진왜란 당시 안동에 침입한 왜군이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편지와 일기를 바탕으로 400년 전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을 부부의 이야기를 소설화했다. 이응태는 안동의 무장 이요신의 둘째 아들로, 기골이 장대하고 머리가 좋아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이요신은 친구인 하운 스님에게서 아들 응태가 소화꽃을 들고 올 사주, 곧 죽을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천하의 박색 여인과 결혼해야 응태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날로 집에 심어져 있던 소화나무를 모두 베어내는데……. ▶ 하늘을 능히 이기는 꽃이 되어 다시 만나리! 과거의 어느 순간을 살았을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른 작가 조두진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묘사한 『도모유키』에 이어 『능소화』에서도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감정을 절제하며 4백 년 전 조선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견고하게 풀어놓았다. 운명 앞에 사람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운명을 피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뿐이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솔직하고 겸손한 모습이기도 하다. 여늬는 하늘이 정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여덟 살 이후로 바깥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이끌려 슬픔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결국 남편과 이별하게 된다. 그러나 저세상에서 남편과의 재회를 믿은 여늬는 남편이 처음 소화꽃을 보고 자신을 찾아왔듯이 자신이 죽은 후에도 소화꽃을 보고 찾아올 것이라고 믿으며 무덤에 소화꽃을 심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소화를 능소화로 바꾸어 부른다. 하늘의 뜻을 능히 이기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응태와 여늬는 하늘이 정한 운명을 어쩌지 못해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했으나, 운명에 맞서고 그 맞섬을 통해 영원불멸의 사랑을 이루어냄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부재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가슴 서늘한 감동을 안겨준다. ▶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재탄생하는 ‘원이 엄마의 편지’ ‘원이 엄마의 편지’ 는 1998년 4월 경북 안동의 무덤에서 발견된 이래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1998년 12월에는 무덤 발굴과 응태 부부의 사랑을 주제로 KBS TV <역사스페셜>에서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어 화제가 되었으며, 8년이 지난 지금도 이 편지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편지에 대한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안동에서는 2005년 4월, 무덤이 발굴된 곳에서 약 400미터 떨어진 곳(안동 법원 앞)에 원이 엄마 동상과 편지글을 새긴 비석을 건립했고, 2005년 11월에 열린 안동국악제에서는 중국 옌볜대 박위철 교수가 중모리의 구슬픈 곡조로 작곡한 국악가요를 전미경 안동국악단장이 국악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불렀다. 2006년 9월에는 안동대학교 정숙희 교수 무용단이 ‘원이 엄마의 편지’를 무용작품으로 만든 ‘450년 만의 외출’을 발표했으며, 현재 안동대학교 박창근 교수가 주축이 되어 ‘원이 엄마의 편지’를 창작오페라로 만들고 있다. 또한 2006년 9월, 디자이너 이상봉이 파리에서 열린 패션박람회 ‘후즈 넥스트Who’s Next’에서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는 한글 패션 전시회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과 함께 ‘원이 엄마의 편지’를 원단에 새긴 한글 의상을 전시하기도 했다.
<도모유키> <냉혹하리만큼 간결한 문체, 분방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역사 소설> 김연의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1997), 한창훈의 『홍합』(1998), 김곰치의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1999), 박정애의 『물의 말』(2001),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2002),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 권리의 『싸이코가 뜬다』(2004)로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켜온 <한겨레문학상>이 올해 제10회를 맞이했다. 지금까지 신인과 기성작가를 불문하고 좋은 작품으로 독자와 만났던 한겨레문학상은, 올해 신인답지 않은 내공으로 역사소설을 내놓은 조두진의 『도모유키』를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도모유키』는 정유재란 당시 11개월 동안 순천 인근 산성에 주둔한 일본 하급 지휘관 다나카 도모유키를 중심으로 일본군의 주둔과 퇴각(전쟁), 조선 여인 명외와의 사랑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 『도모유키』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매일매일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 가는 전쟁 속의 사랑, 그것도 적과의 사랑을 정유재란이라는 한 시기를 빌려 신선하게 보여주고 있다. 둘째, 대개 역사소설에서 적(敵)과 아(我)는 독자의 편에서도 적(敵)과 아(我)로 나뉘지만, 이 소설은 도모유키의 편, 즉 일본군이 아(我)가 되고, 조선군과 명나라군이 적(敵)이 되는 특이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한다. 도모유키의 시선으로 전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조금 당황하게도 하지만, 또 다른 읽는 재미도 준다. 셋째,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리얼한 묘사와 함께 정유재란을 탄탄한 구조로 재구성하고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도모유키가 주둔했던 순천 인근 산성의 성안과 성 밖의 상황, 조선인과 일본군의 삶과 죽음, 생활 등을 영화처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넷째,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짧은 문장으로 긴장감과 속도감을 유지하면서 스케치하듯 그리고 있다. 형용사와 부사 배격하기, 동작만을 부각시키기, 과감한 생략법 등으로 문체의 특이성을 확보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선말을 열심히 배우려는 도모유키와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자고 용기를 낸 명외의 모습은 국경과 나이, 전쟁과 시대를 뛰어넘고 있다.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명외만은 구해내겠다는 도모유키의 강한 의지와 사랑, 명외를 떠나보내고는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낙오병으로 조선에 남아 명외의 집을 찾아 헤매는 도모유키의 처절한 마지막 모습은 읽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결혼면허> 결혼 숙려 프로젝트 결혼면허, 이혼 조장 프로젝트 행복세 이 책 《결혼면허》 늘어나는 이혼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운전면허가 있어야 운전할 수 있듯이 결혼면허를 따야 결혼할 수 있다는 발상이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2016년 가상의 한국, 결혼생활이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높아진 시대다. 늘어나는 이혼율과 그로 인해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 등의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결혼하려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자격시험을 통과하도록 했다. 바로 ‘결혼면허시험’인데, 이는 결혼생활이 무엇인지 사전에 알게 하고, 향후에 있을 파국을 줄여나가기 위해 도입한 사회적 안전장치다. 또한, 결혼 10년마다 행복지수를 정확하게 판단해 이혼 또는 행복세를 징수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여자 주인공인 서인선이 결혼면허증을 따기 위해 1년 과정의 ML결혼생활학교에 입학하면서 겪고 보고 느끼는 것들을 중심으로 결혼생활의 민낯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결혼생활학교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결혼에 골인’ 하는 게 아니라 ‘무난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며, 어떤 조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또한 결혼이나 출산문제를 관성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로 부각시킨다
<진실한 고백> 우리의 기억 저편, 그 어두운 이면을 서늘하게 그려내다 “누구나 자신은 착한 사람이라 여기고, 내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합리화하지.” 「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능소화』『유이화』『아버지의 오토바이』『몽혼』『북성로의 밤』등의 장편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며 주목 받아온 작가 조두진. 그가 우리의 기억 저편, 그 어두운 이면을 서늘하게 그린 소설집 『진실한 고백』을 펴냈다. 『진실한 고백』에는 총 여섯 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데, 그 여섯 편은 모두 ‘기억’에 관한 슬프고, 섬뜩하고, 기막히고, 황당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내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리화하기 쉽다. 그래서 모든 사건을 자신이 유리한 대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의 기억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실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것 역시 거짓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일을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미화하거나 왜곡해서 믿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한 일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내 속에서 잘못을 합리화하려는 약은 생각이 싹트고, 그 싹이 자라서 나무가 되고, 숲이 되자, 그 잘못은 그늘에 덮여 쉽게 눈에 띄지 않게 되었으리라. 이 소설집은 그렇게 조작된 과거, 왜곡된 기억,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작가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고 묻어두고 싶어 하는 기억 저편의 치부를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진실이 진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우리는 ‘훅’ 하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다. 작가 조두진은 『진실한 고백』으로 우리의 뒤통수를 ‘훅’ 하고 내리친다.
<유이화> ▶ 사람 중심의 역사와 안타까운 가족애를 절절하게 그려낸 소설 『유이화』 국가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역사를 담아내고 싶어 하는 작가 조두진. 그가 신작 소설『유이화』에서 임진왜란 말기 전쟁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비참한 생활을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당시의 봉건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선 선비 안철영, 대의명분이나 의무감보다는 남편과 자식을 더 소중히 여기며 현재의 삶에 충실한 유이화, 하루하루 배곯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평범한 백성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임금과 대신들을 통해 당시 조선의 상황,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의 모습을 냉철하게 그려냈다. ▶ 살아 있기에 서글픈, 긴 세월을 한숨과 눈물로 보낸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 조선 역사에서 크나큰 아픔으로 기억되는 두 차례의 전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근대 이후 끊임없이 문학작품과 역사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이순신을 비롯해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과 역사물이 대중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늘 국가가 있고 임금이 있고 조선의 사대부들과 고위 장수들이 있을 뿐 백성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조선의 사대부는 백성들에게 충성심을 무기와 방패 삼아 싸우도록 전장으로 내몰았고, 힘없는 백성들은 돌멩이와 곡괭이를 들고 총을 든 적군과 맞서 싸웠다. 그중에는 운 좋게 살아남아 가족과 함께 남은 생을 보낸 이들도 있지만 전장에서 허망하게 죽어간 이들이 수없이 많으며 일본으로 끌려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한 사람도 수만 명에 이른다. (임진왜란 당시 1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중 조선으로 돌아온 사람은 8천여 명에 불과하다.) 소설 『유이화』는 이러한 역사의 단면을 날카로운 칼로 베어내듯 냉철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그 안에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를 두고 진주성으로 들어간 안철영이 있고, 아비에게 죽은 아들의 무덤자리라도 알려주기 위해 죽지 않는 몸뚱이를 원망하며 목숨을 이어가는 유이화가 있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끔찍한 수모를 견디며 짐승처럼 살아가는 조선인 포로들이 있다. 이처럼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나라를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임금과 사대부의 나라를 위한 것인 조선의 선비 사상 때문에 수많은 억압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국가만이 절대선인가’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더불어 임진왜란 말기 전쟁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서글픈 삶을 통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낯선 땅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 돌아오고 싶었지만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들, 여전히 타향을 떠도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해준다. ▶ 바람을 따라 흩어지는 배꽃처럼 살다간 사람들 임진왜란 당시 진주에 살던 안철영은 왜군이 진주성을 압박하자 조만간 벌어질 왜군과의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 성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열이 펄펄 끓는 네 살배기 아들 편윤이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던 안철영은 의원을 찾아 나섰다가 왜군과 맞닥뜨리기 일보 직전에 진주성으로 향하는 일행에 끼어 성으로 들어간다. 한편 의원을 부르러 간 남편을 기다리던 유이화는 사흘 만에 아들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이레 만에 아들을 장사지낸 후 언제든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찾을 수 있도록 아이의 무덤 앞에 커다란 돌을 놓는다. 그 무렵 조선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에 패하고, 성에 있던 조선인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부역에 시달리며 비참하게 살아간다. 안철영은 우연히 진주성 내 다른 군막에서 지내는 아내 유이화를 보게 되지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를 보지 못하는데 그 무렵 조선 여성들이 기생이나 노비로 일본에 팔려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얼마 후 안철영은 진주성에서 한시(漢詩)에 관심이 많은 왜장 아사노 유키나가의 눈에 들어 일본에 있는 그의 아들들에게 학문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고, 일본으로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아내를 찾을 생각으로 일본행 배에 오른다. 한편 일본 농가에 농노로 배정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유이화는 자신을 겁탈하려는 주인을 피해 달아나던 중 일본으로 오는 배에서 자신을 돌봐준 일본 병사 히로시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게 되는데……. ▶ 고향을 잊지 못하는 사람, 새로운 고향을 받아들이는 사람 일본으로 건너온 지 어느덧 6년이 흐르자 안철영은 누가 봐도 사무라이의 인상이 풍긴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조선의 신하임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임금의 제삿날이면 조선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하고, 조선 신하의 사모관대를 입은 쇄환사들을 보며 눈물을 철철 흘린다. 그러나 조선 사대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철영과 달리 유이화는 일본인 남편 히로시가 지어준 ‘아시타(내일)’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조선으로 돌아가자는 안철영에게 “나는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닙니다. 이 아이들의 어미입니다”라고 말하며 ‘새 가족’을 선택한다. 안철영에게 아내 유이화는 조선으로 돌아가 벌과 나비가 노니는 수를 놓고, 아이가 읽는 『논어』와 『맹자』를 들으며 온화한 미소를 짓고, 희고 가느다란 손으로 들꽃을 꺾어 계절에 맞는 술을 담그고, 자신과 더불어 밤늦도록 고전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유이화는 조선에서의 안락한 삶 대신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온종일 농사일과 집안일을 해야 하는 일본에서의 삶을 택한다. 그런 그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어린아이들이 오지 않을 어미를 기다리며 살도록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안철영은 “나는 임금의 나라가 위태로움을 생각했을 뿐, 내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움을 알지 못했다. 불타는 나라를 보며 눈물 흘리는 임금의 근심을 헤아렸을 뿐, 아픈 자식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 흘리던 내 아내의 슬픔을 몰랐다. 나는 임금과 나라를 아주 많이 생각했고, 처자를 조금 생각했다”라며 뒤늦은 후회를 하고, 죽은 아들을 가슴속에 묻은 유이화는 일본에서 낳은 두 아이와 떨어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결연히 말한다. 소설『유이화』는 안철영과 유이화의 가족애가 역사라는 이름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지만, 한편 그 가족애야말로 이들의 신산한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 일본 유학의 시조(始祖) 이진영 소설 속 안철영은 조선 선비 이진영(1571~1633년)이 모델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오사카로 끌려간 이진영은 고금의 책을 폭넓게 읽어 학식이 풍부했다. 고된 농노생활을 하다 풀려나 글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었는데, 새 통치자 요리노부에게 정중하게 번정 건의문을 올렸다가 존경받는 시강(侍講)이 된다. 끝내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책과 원고는 장남 이매계를 유신(儒臣)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매계는 일본인의 교육헌장이나 다름없는 ‘부모장’을 만들어 이름을 날렸다. 1998년 합천 이씨 종친회와 일본 와카야마 시가 공동으로 이진영·이매계 부자를 기리는 현창비를 오사카 공원에 세웠으며, 해선사(와카야마 소재) 입구에는 이진영 부자의 묘가 있다.
<북성로의 밤> <추천평> 내륙의 분지 대구의 읍성은 외침으로 두 번 허물어졌다. 처음의 토성은 무력에 의해 무너졌으나 이후 석성을 허문 것은 금력, 즉 돈이었다. 돈을 둘러싼 싸움은 권력 다툼 못지않았다. 어쩌면 더 집요하고 맹렬했다. 돈, 돈의 힘, 돈의 싸움만큼 인간의 욕망, 인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는 없다. 그리하여 대구 읍성의 북쪽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 일본인 나카에가 세운 미나카이 백화점은 식민 지배의 광기와 탐욕과 복마전의 ‘랜드마크’가 된다. 소설은 노태영, 노치영 형제의 갈등과 사촌 노정주의 사랑을 숨 가쁘게 좇으며 근대의 속살을 파고든 또 하나의 ‘전쟁’을 생생히 묘파한다. ‘이식된 근대’의 풍경은 화려한 비극이자 고통스러운 소극이다. 그럼에도 쉬이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각자 다른 ‘살길’을 찾아 발버둥질하는 그들의 모습이 오늘날의 우리와 고스란히 겹쳐지기 때문이다. - 김별아 / 소설가 근대의 속살을 파고든 또 하나의 ‘전쟁’을 생생히 묘파하다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도모유키]로 이름을 알린 작가 조두진. [능소화],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몽혼夢魂] 등의 장편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던 그가 2012년 신작 장편소설 [북성로의 밤]을 출간했다. [북성로의 밤]에서 작가는 1940년대 대구 북성로에 있는 ‘미나카이 백화점’을 배경으로, 배달부 노정주와 백화점 사장의 딸 나카에 아나코의 사랑, 노정주의 사촌형인 순사일을 하는 노태영과 독립운동을 하는 노치영 형제의 갈등을 두 축으로 근대의 속살을 파고든 ‘전쟁’을 생생히 그려낸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대구 북성로 거리를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지난했던 삶과 그들을 통해 세월의 흐름과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정주, 아나코, 노태영, 노치영, 나카에 도미주로 등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구 북성로의 나그네였고, 세상의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다른 누구를 위해, 어떤 목표나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아왔고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전쟁을 겪어야만 했고, 전쟁 중에 살아남기 위해, 어느 쪽이든 선택해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식민 지배의 광기와 탐욕의 ‘랜드마크’, 대구 북성로 ‘미나카이 백화점’ [북성로의 밤]은, 우선 노정주와 아나코의 잔잔한 사랑을 보여준다. 백화점 배달부 노정주에게 ‘미나카이 백화점’ 사장(나카에 도미주로)의 딸 아나코는 쳐다볼 수 없는 존재였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 한두 마디 얘기를 나누고, 배달하느라고 고생했다며 땀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건네주는 아나코. 노정주는 밤에 북성로에서 아나코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다. 정주는 밤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낮이라면 아나코가 그처럼 용감하게 허리를 껴안을 수 있었을까. 낮이라면 이렇게 아나코를 태우고 보란 듯이 자전거를 타고 대구를 달릴 수 있었을까. 어둠은 청년의 상기된 얼굴과 대구 사람 누구나 아는 처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가려주었다. 어둠 덕분에 두 사람은 질투를 받지 않았다. 힘차게 페달을 밟던 정주가 불렀다. “아나코상.”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게 살아서 공부를 잘해도 일등이 될 수 없었던, 항상 지주의 아들에게 일등을 내주고 이등을 해야만 했던, 그렇기에 일본 선생의 양자가 되고 이름을 바꿔 일본 순사가 된 노태영(야마모토 쇼시).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혈육인 형마저 죽여야 하는 동생 노치영. ‘전쟁’이라는 괴물이 사람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두게 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인물들의 밑바닥 모습까지 담아낸다. 쓸모가 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밥숟가락 하나까지 모조리 전장으로 쓸어가는 세월이다. 사람은 오죽하겠느냐? 있는 듯 없는 듯 살아라. 지금은 살아남는 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 그것은 조선 민족의 배신자 야마모토 쇼시를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희망이자 삶을 짓밟아버리는 행위였다. 얼마든지 형을 욕하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일 수는 없다. 어머니가 형을 버리면서까지 조선 독립을 염원할 것인가. 조선이 독립하지 못하더라도 어머니는 형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구의 북쪽 성벽을 허물고 일본인 나카에 도미주로가 세운 ‘미나카이 백화점’은 근대화의 물결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전쟁에 승리하는 일본 군대를 따라 철도를 따라 움직이던 상인들은 상품을 소비하는 군인들 덕분에 성장하게 되는데, ‘미나카이 백화점‘은 1945년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까지 조선 전국과 만주, 중국에 18개 지점, 4천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한 백화점 그룹이었다. 그 당시 대구의 근대화 모습을 소설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작가는, 1940년대의 대구 북성로와 서성로의 모습을 그려내며, 현재 대구의 북성로 거리는 어떻게 변했나 궁금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미나카이 백화점은 가장 놀랍고 화려한 곳이었다. 백화점은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실내인데도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놀라운 것은 수많은 인파가 신발을 신고 들어와도 안이 늘 깨끗하다는 사실이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은 잔치에 가는 사람들보다 더 멋을 부리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그들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 ……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 규모의 미나카이 백화점은 경이였다. 백화점 북쪽 벽면에는 30개의 장방형 유리창이 붙어 있었다. 마치 얇은 유리가 그 거대한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보일러실과 정화조, 옥상의 물탱크와 피뢰침은 그 쓰임을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건물뿐이 아니었다. 백화점 점원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종일 방긋방긋 웃었다. 북성로의 밤은 아름다웠다. 길 양옆에 조경 회사인 스기하라 합자회사, 구로가와 재목점, 목욕탕인 조일탕, 대구 곡물 회사, 마쓰노 석유 회사를 비롯해 철물점과 채소 가게와 생선 가게, 식료품 가게, 약국, 도기점 등 크고 작은 점포가 즐비했다. 북성로의 점포들을 한 바퀴 순례하는 것만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밤 10시가 가까웠지만 아직 불을 밝히고 영업 중인 점포도 많았다. 점원들이 점포 입구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줄거리 1940년 대구 미나카이 백화점에서 배달부로 일하던 노정주는 우연히 백화점 사장 나카에 도미주로의 딸 아나코를 길에서 만난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했더니 아나코는 직접 자전거를 가르쳐주겠다며 밤에 북성로에서 만나자고 한다. 자전거가 없는 노정주는 밤에 북성로에서 아나코와 만나, 아나코에게 자전거를 배우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열게 된다. 노정주를 백화점에 취직시켜준 노정주의 사촌형인 야마모토 쇼시(노태영) 순사는 어릴 적부터 수재였다. 소작농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후 어머니는 힘겹게 소작을 하면서 노태영과 동생 노치영을 키웠고, 노태영은 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었다. 담임이던 일본인 선생을 따라 공부를 하러 떠났다가 그의 양자가 되고, 순사학교를 졸업해서 순사가 된다. 노태영은 어머니의 땅을 되찾아주고, 동생 노치영을 대구의 양화점에 취직시키지만, 노치영은 곧 일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을 한다. 일본인들을 돕는 조선 상인들을 협박하며 독립운동을 하던 노치영은, 순사 일을 하는 형 노태영을 죽이라는 지시를 받고는 고민하다가 사촌동생 노정주를 통해서 선물로 위장한 폭탄을 형에게 전달한다. 직감적으로 폭탄임을 알게 된 노태영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밤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노정주와 아나코를 본 구로카와 소좌는, 나카에 사장에게 얘기해서 아나코를 만나고, 아나코에게 노정주와 헤어지라고 협박한다. 갑작스레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백화점을 빼앗기게 될 지경에 이른, 나카에 도미주로 사장은 노정주와 아나코를 급히 결혼시키는데…….
<몽혼> 님을 향한 사랑과 시문의 매혹,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었던 조선 제일의 천재 여성시인 이옥봉, 그녀의 슬픈 삶 조선시대 3대 여성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이옥봉. 당대 일류 선비들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조선 제일의 여사(女士)로 평 받았던 천재 여성시인이다. 시대가 미처 용납할 수 없었던 재주를 가진 탓에,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시문에 몸을 의탁해 생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여성 이옥봉의 서글픈 삶을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낸 소설 『몽혼』이 출간되었다. 『도모유키』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능소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등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호평을 받아온 조두진 작가가, 천재적 재주를 가지고도 비운에 살다 간 이옥봉의 삶을 엄밀한 사료 조사와 개성 넘치는 문장으로 담아냈다. 시를 버리면 함께 살 수 있다는 님(조기원)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사랑도 시문도 포기할 수 없어, 끝내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옥봉의 서글픈 삶과 그 애틋한 시들이, 조두진 작가의 문장을 입고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몽혼』은 조강포구에 떠오른 이옥봉의 주검을 두고, 한때 그녀의 시우(詩友)이자 연모의 정을 품었던 조강포구감관 송정주의 회상과 포교 김득신의 보고조사를 통해 이옥봉과 조기원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시도 님도 포기할 수 없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그려나간다. 소재가 된 이옥봉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한 감동을 자아내는 데다, 조두진 작가의 뛰어난 구성과 탁월한 문장 덕분에 가슴 울컥한 감동과 깊은 공감을 맛볼 수 있다. 제목인 ‘몽혼’은 이옥봉이 조기원에게 내쳐진 다음, 님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읊은 가슴절절한 시문의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 곳곳에 이옥봉의 시들이 잘 녹아내려 작품의 울림을 더욱 깊고 폭넓게 만들어주었다. 시는 어떻게 일상의 발목을 잡고, 일상은 어떻게 시의 목을 옥죄는가 - 시와 일상의 충돌, 시대와 재주의 불화에 관한 소설 님을 향한 사랑과 시문의 매혹, 어느 쪽도 버릴 수 없었던 이옥봉의 삶은, 이 작품에서 작가의 고뇌를 거쳐 일상과 시의 충돌, 시대와 재주의 불화라는 주제로 재해석되었다. 시를 가지고도 결국 일상에 얽매여 꿈이나 사랑을 포기해야 했던 남자들(송정주, 조기원)과 시문의 재주와 열정 때문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누릴 수 없었던 한 여인(이옥봉)의 비애를 대비해, 시가 일상의 발목을 잡고 일상이 시의 목을 옥죄는 충돌의 과정을, 시인과 일상인의 삶이 빚어내는 서글픈 비애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시인이지만 충분한 일상인이 되지 못했던 이옥봉의 삶이나, 일상에 얽매여 시인으로서의 삶을 충족하지 못했던 남자들의 삶이나 서글프기는 매한가지. 저자는 어느 삶이 더 우월한가 하는 차원이 아니라, 두 종류의 삶이 필연적으로 빚어낼 수밖에 없는 갈등의 과정에 더 집중해 인간 조건을 탐구한다. 가슴 절절한 이옥봉의 삶은 소설 『몽혼』을 통해 인간 존재가 지닌 필연적 갈등의 조건을 드러내는 주제로 잘 형상화되었다. 이옥봉의 드라마틱한 삶과 아름다운 시문들을 앞에 두고, 역시 일상인과 소설가로서의 삶 사이의 갭에 대해 고민했을 작가의 진지한 성찰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시인으로 대표되는 이상의 삶과 일상의 현실적 조건들 사이에서 마찰을 경험해본, 또는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소설이다. 특별히 이번 소설 『몽혼』은, 휴먼앤북스 하응백 대표(문학평론가)가 최초로 이옥봉의 시들을 모두 모아 편저한 이옥봉 시집『이옥봉의 몽혼』과 동시에 출간돼, 이옥봉의 주옥같은 시들과, 이옥봉의 삶을 다룬 소설을 함께 읽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