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
로베르트 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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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산책자> “발저와 같은 작가가 지성을 주도한다면 이 세상에 전쟁이란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작가가 수십만의 독자를 가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_헤르만 헤세 “플롯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성 풍부한 문장이 자유롭게 흐르는 짧은 산문. 산문의 파울 클레라고 할 만큼 섬세하고, 능란하고, 홀린 듯이 써내려간 글이다. … 진정 뛰어난, 가슴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작가.” _수전 손태그 “나는 지금도 [툰의 클라이스트], [헬블링 이야기], [원숭이] 등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산책]의 문장들을 접할 때면 저도 모르게 감탄과 충격의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나는 매혹되었다. 나는 펄쩍 뛰어오를 만큼 매혹되었다.” _배수아, [옮긴이의 말] 중에서 로베르트 발저의 중단편 42편을 엄선한 대표 작품집 20세기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자 스위스의 국민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 동시대 작가 카프카와 헤세가 그의 열렬한 애독자였고 후대 W. G. 제발트, 페터 한트케, 마르틴 발저, J. M. 쿠체 등이 그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음을 공언했다. 발터 벤야민([로베르트 발저], 1929), 조르조 아감벤([로베르트 발저는 왜 그토록 중요한가?], 2005), 수전 손태그에 의해 독일어권 밖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1998년 헌정 희곡 《Er nicht als er》를 출간하여 그의 작가적 발자취를 잇기도 했다. ‘걷기’는 발저 작품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로서, 실제 그는 많은 시간을 걸으며 길 위의 작은 것들에 시선을 두고 그 관찰과 사색을 작품에 담아냈다. 《산책자-로베르트 발저 작품집》는 발저가 남긴 수백편의 작품 중 그를 대표하는 중단편 42편을 엄선하여 수록한 것이다. 작가 배수아의 유려한 번역이 함께한다. 작은 것들의 세밀화가, 내면을 걷는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 로베르트 발저는 27년의 정신병원 생활과 거의 그만큼의 절필 기간으로 인해 한동안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헤세와 같은 문인들의 계속적인 언급에 의해 작품들이 재출간되었고, 사후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젊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연구했다. 현재 발저는 20세기 독일문학사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인 작가이다. 1878년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 가정에서 자란 발저는 어려운 형편 탓에 14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사무원, 공장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종이조차 살 수 없는 궁핍한 생활 중에도 영수증, 전단지, 포장지, 달력 뒷면 등에 글을 썼고 그것을 끊임없이 신문과 잡지에 투고했다(수록작 [최후의 산문] 참조). 이러한 그의 삶은 그대로 글의 소재가 되었다.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했던 발저는 그러나 문단에서는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는데, 그중에서도 발저보다 5살 어린 카프카가 그의 찬미자였다. 로베르트 무질은 카프카의 초기 산문 [관찰]을 읽고 “발저 유형의 독특한 예”라고 언급하며 그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카프카의 《성》에 등장하는 두 명의 조수의 원형을 발저의 장편 《야콥 폰 군텐》(한국어판 제목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에서 찾기도 한다. 카프카뿐 아니라 헤세 역시 발저를 “동시대 가장 의미 있는 스위스 작가”라 칭하며 그의 작품이 더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글을 여러 차례 쓰기도 했다. 그러나 아웃사이더적인 면모와 정규교육을 마치지 못한 점, 스위스 방언 등의 이유로 발저는 독일이 지성인 사회에서 겉돌았고,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스위스로 돌아가기에 이른다. 발저는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늘 걷고 또 글을 쓴 듯하다. 바로 앞에 풍요로운 대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나는 가장 작고 가장 허름한 것만을 주시했다. 지극한 사랑의 몸짓으로 하늘이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하나의 내면이 되었으며,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모든 외부는 꿈이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이해했던 것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함으로 인식하는 환상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였으며,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진정으로 나 자신이었다. _[산책] 중에서 발저는 산책에 강박적으로 몰두했다. 그에게 산책은 자신의 내면을 거니는 행위였고 이는 곧 그의 글의 소재와 형식이 되었다. 심상, 스케치, 우화, 단편 같은 형식 속에서 발저의 인물들은 대부분 무기력한 보통의 소시민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권력과 지배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자 애쓴다. 발저는 작품 속에서 고립되고 무력하나 자유로운 자신의 작은 세계를 지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발저는 더욱 심한 경제적인 궁핍과 우울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마저 실패하고(“나는 심지어 올가미조차 제대로 맬 줄 몰랐기 때문이다.”) 1929년 베른의 발다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33년 헤리자우 병원으로 옮긴 다음부터는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지만(“나는 여기 글을 쓰러 들어온 것이 아니라 미치기 위해 들어온 것이니까요.”), 발저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작품의 재출간을 위해 1936년 병원을 찾은 출판인 카를 젤리히에 의해 재조명되고 늦은 성공을 거두었다. 1956년 크리스마스 산책길에서 그는 눈밭 위에 쓰러져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발저의 작품에서 주체의 세계는 항상 내면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주는, 그리고 절망은, 결코 유아론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연민으로 가득하며, 슬픔을 동반하는 생명이라는 존재를 한시도 의식의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_수전 손태그

산책

<산책>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로베르트 발저 20세기 현대 문학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수수께끼 같은 작가 로베르트 발저 불확실한 삶과 죽음의 그림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의 초상 현대 문학이 성취한 가장 심오한 작품 중 하나다.-발터 벤야민 나는 로베르트 발저를 존경한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헤르만 헤세 로베르트 발저는 카프카가 보여 준 문학에 먼저 도달했다.-수전 손택 제한적이지만 열광적인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로베르트 발저는 기이한 노벨레의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와 초현실적 사실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신비스러운 존재다. 일찍이 그는 헤르만 헤세, 쿠르트 투홀스키, 로베르트 무질, 프란츠 카프카, 발터 벤야민 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당대의 대중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선구적인, 20세기 초반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20세기 문학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수수께끼 같은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은 세계’가 열리다 독일어권 문학뿐 아니라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기이한 존재로 여겨지는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대표 산문과 독특한 소품을 엄선해 엮은 『산책: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로베르트 발저는 일찍이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로베르트 무질, 발터 벤야민 등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되었지만, 정작 당대 독자들에겐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는 기울어 가는 가정 형편 탓에 열네 살 무렵부터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정규 교육을 중단한 채 온갖 직장을 전전해야 했다. 하지만 연극을 사랑하고, 시를 짓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발저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문학적 열정을 단념하지 않았다. 이 불우한 천재에게도 몇 차례의 기회가 찾아오기는 했지만 끝내 대중적 성공을 이루지 못했고, 계속된 가족의 상실 속에 실낱같은 희망마저 전부 배신당하고 말았다. 결국 조현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발저는 정신 병원으로 보내졌고, 상태가 호전 뒤에도 오갈 데가 없었던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스스로 병실에 갇혀 여생을 보냈다. 하지만 발저는 끊임없이 이어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사랑했고, 돈이 들지 않는 장거리 도보 여행을 즐기면서 종이를 아끼기 위해 매우 작은 글씨로 집필 활동을 하며 엄청난 분량의 기록을 남겼다. 작가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을 테지만,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에는 20세기 산업 사회의 광기와 그늘, 대도시가 빚어내는 비인간적 환경과 인간 소외, 고독의 문제가 잔혹할 정도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카프카가 보여 준 문학에 먼저 가닿았던” 로베르트 발저는 찬란한 문명과 무한한 진보가 약속하는 미래의 환상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았던 ‘소수자’, ‘소외당한 개인’, ‘도구처럼 소모되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문학 속에 펼쳐 보였다. 게다가 그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거부하면서 완벽히 ‘새로운 문학의 영토’를 열어젖혔고, 단어를 선택하거나 시제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도 상식을 파괴했다. 가령 발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음에도 그 엄청난 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며, 다른 작가들에게선 매우 흔하게 다뤄지는 로맨스조차 한평생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또한 개인 형편상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매우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과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경험만을 되풀이했다. 한편 로베르트 발저는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돌연 중단하기도 했으며, 관료적 산업 사회에서 줄곧 강요받아 온 ‘하류 지향적 태도’,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서의 인간상’을 담담히 토로하면서 지난 시대의 거장들이 이룩한 ‘교양 소설’의 전통과 서구 지성사가 자랑스럽게 간직해 온 ‘인본주의적 가치’를 해체(전복)하기도 했다. 이렇듯 미증유의 작품 세계를 선보인 로베르트 발저는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서 다시 한 번 크게 상찬됐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엘프리데 옐리네크를 비롯해 페터 한트케와 같은 현대 문학의 거장들에게도 공공연히 존경을 받고 있다. 어쩌면 로베르트 발저는, 점점 비인간화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더 의미심장하게 읽힐지도 모른다. 로베르트 발저의 대표 산문 「산책」을 비롯해 작가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글들을 엮은 작품집 산책은 말입니다. 활기를 찾고, 살아 있는 세상과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대한 느낌이 없으면 나는 한 마디도 쓸 수가 없고, 아주 작은 시도, 운문이든 산문이든 창작할 수가 없습니다. 산책을 못 하면 나는 죽은 것이고, 무척 사랑하는 내 직업도 사라집니다. 산책하는 일과 글로 남길 만한 걸 수집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록할 수 없고, 긴 노벨레는 물론이고 아주 짧은 글마저도 쓸 수 없습니다. 산책이 없다면 나는 그 무엇을 인지할 수도, 스케치할 수도 없습니다. ―「산책」에서 『산책: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에는 발저의 산문 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며 나날이 더욱 중요해지는 「산책」을 필두로 작가 본인의 예술관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툰의 클라이스트」, 「시인」, 「작가」와 대표작 『벤야멘타 하인 학교』의 모티프와 주제 의식을 뚜렷하게 살펴볼 수 있는 「어느 학생의 일기」, 「그것이면 된다」 등 11편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두루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표제작 「산책」은 로베르트 발저의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어느 날, 아무런 계기도 없이 시작되고, 마치 모든 서사적 필연성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별다른 사건 없이, 개연성으로부터 멀리 물러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 「산책」의 주인공 ‘나’는 마을을 돌며 서점에 들러 잘 팔리는 책을 살피기도 하고, 양재사와 불필요한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한편 갑자기 찾아온 행운, 즉 후원금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기도 하고, 어느 관대한 귀부인이 마련한 점심 식사에 초대받았다며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반전된다. 주인공을 환대하던 귀부인이 돌연 협박을 가하는가 하면, 엄중한 관공서의 관리는 할 일 없이 편히 산책만 즐기는, 작가라면서 달리 ‘사람 구실’도 못 하는 ‘나’의 삶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제 관심사는 때 묻지 않은 자연으로, 그와 대조를 이루는 산업화의 현장으로 이어지다가, 뜬금없이 낯선 여인에게 자신의 환상을 들려주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야기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화자의 감정 또한 기쁨과 두려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다만 나아갈 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한 ‘나’의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우리는 (너무 만연한 나머지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던)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와 고독, 타자와 거대한 존재(국가 기관 등)에 대한 공포 등을 명확히 체감하게 된다. 현대의 병폐를 예언하듯 선취한 「산책」은,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이 시대의 가장 심오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주제 면에서 「산책」의 연장선상에 놓인 「그것이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죽음에 관한 두 개의 이상한 이야기」에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섬뜩하게 읽힐 만한 내용이 잔뜩 담겨 있다. 시민으로부터 발언권을 빼앗고 그들이 침묵하고 복종하기만을 바라는 권력자, 노동자가 기계처럼 일만 하고 어떠한 불만도 품지 않기를 원하는 자본가, 우중(愚衆)이 늘어나기를 노리는 사이비 언론의 뒤틀린 욕망을 그대로 되뇌는, 이를테면 욕심 가득한 권력의 세뇌를 받아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완전히 마비된 개인의 모습을 반(反)영웅적 표상으로 드러내 보이는 이 작품들을 읽다 보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과 묘하게 중첩되는 부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기능적 효율성을 맹신하는 산업화가 불러들인 비인간화와 자본주의가 배태한 황금만능주의, 언제라도 광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인간 사회의 연약한 일면을 누구보다 먼저 내다보았고, 또한 그것을 문학적으로 성취해 낸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들은 과거보다 오늘날, 또 지금보다 앞으로 더욱더 중요하게 읽힐 것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벤야멘타 하인학교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가장 미미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한 소년의 反영웅적 이야기 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발터 벤야민 등에게 격찬을 받았으나 생전에 작가로서 명성을 누리지 못하고 일생을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로베르트 발저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귀족 태생의 소년이 ‘가장 작은 존재, 가장 미미한 존재’가 되기 위해 하인 양성학교에 스스로 찾아간다는 ‘반反 영웅적’ 이야기로, 성장과 발전으로 대변되는 서양 근대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문제작이다. 주인공 야콥은 ‘폰 군텐’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귀족 가문 태생이지만 그의 인생 목표는 하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인을 양성하는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입학한다. 주인공 야콥의 이야기는 서구의 근대 담론에 대해 가장 극단적이고 근본적인 성찰을 제기하여 유럽 근대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교양소설의 해체적 패러디로 평가받는다.

타너가의 남매들

<타너가의 남매들> 지몬은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구직과 실직을 반복하는 젊은이다. 끊임없이 현재와 일상을 탈주하려는 지몬은 삶을 개선해 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책방 점원으로, 변호사 사무실의 업무 보조자로, 중산층 가정의 상주 하인으로, 실업자를 위해 운영되는 필사실의 필사자로, 그의 처지는 점점 더 궁색해진다. 형제자매들의 사정도 크게 나은 것은 아니다. 소설의 결말이 암시하는 바로 보건데 그의 삶은 서서히 몰락해 가고 있는 것이다. 지몬은 장황하면서도 유려한 만연체 글과 말로써 당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임금 노동에 매달리느라 꿈꿀 여가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은 부조리하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삶의 태도만이 마땅해 보이지만 정작 지몬의 삶은 서서히 몰락해 가는 중이다. 책의 배경이 되는 100년 전 청년의 삶에 오늘날 청년의 삶이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로베르트 발저는 초기의 성공과 명망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만년을 보냈다. ≪타너가의 남매들≫은 그가 청년기에 쓴 첫 장편소설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냉소적이면서도 비판적인 관점이 드러난다. 카프카와 헤세가 그의 열렬한 독자였고, 페터 한트케, 마르틴 발저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질은 카프카의 <관찰>이 로베르트 발저의 모방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