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픽션> 대산문학상 수상 작가 박형서 신작 소설집 이렇듯 박형서는, 21세기판 하이브리드 소설을 창조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사실이나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이라지. 이 뻔하고 빤한 상식적 정의를 앞서 꺼내든 것은 그런데 우리가 왜 소설을 읽는가, 라는 질문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저마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이것’ 없이 책을 집어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 바로 재미다. 재미라는 흥미 없이 사람들은 쉽게 읽기의 무아에 빠지지 않는다. 독자를 붙드는 소설의 힘, 독자를 주저앉히는 소설의 힘, 그 완력 뒤에 소설가 박형서가 있다. 알고 계셨는가, 박형서 소설의 힘은, 본디 세다. 박형서는 2000년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지금껏 세 권의 책을 펴냈다.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2003)과 『자정의 픽션』(2006),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2010)가 그것이다. 앞서 두 권의 소설집으로 기괴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에 처연한 멜랑콜리와 유쾌한 유머를 갖췄다는 평을 받으면서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우뚝 섰던 그는 2010년 첫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로 2010년 제18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로지, 박형서의, 박형서에 의한, 여덟 편의 박형서 소설 프로젝트! 그리고 2011년 12월, 박형서의 세번째 소설집을 펴낸다. 『핸드메이드 픽션』이라는 제목 아래 2006년 겨울부터 2010년 겨울까지 그가 쓴 8편의 소설을 묶었다. 동명의 소설은 없다. “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부 나다. 내 손으로 썼다”라는 작가의 말을 참고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 소설집을 위해 그가 손수 문패 삼아 건 것이 ‘핸드메이드 픽션’이니까. 누군들 제 손으로 소설 안 쓰는 작가도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글쎄,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 듯하다. 뒤쫓게 하는 거, 저기 삽을 하나 들고 밭으로 가는 한 남자가 안 보이느냐고, 삽을 들고 기웃기웃 가장 맘에 드는 땅을 고른 뒤 그 삽으로 쉴 새 없이 땅을 파고 땅을 덮는 한 남자가 안 보이느냐고, 그가 바로 박형서이며, 그 ‘삽질’이 바로 소설 쓰기임과 동시에 그렇게 일군 땅이 ‘소설’일 것이라고. 『핸드메이드 픽션』에 실린 단편들은 하나같이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일단 재밌다. 다시 봐도 재밌다. 되새김질해도 재밌다. 그러나 묘하게 어려운 데가 있다. 내 앞에서 깔깔 수다를 떨며 제 속내를 다 까발려서 쉽게 알 것만 같았는데 돌아서면 알다가도 모를 사람처럼, 그렇게 찜찜하게 어렵다는 얘기다. 스토리의 구조가 배배 꼬였거나 긴 호흡을 자랑해야 따라 읽을 수 있을 만큼 복잡다단한 문장가도 아닌데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묘하게 그의 말법을 흉내 내는 내가 있다는 거다. 이건 뭘까…… 말하자면 여운 같은 거, 일침 같은 거, 그 감동이라는 코드가 박형서의 경우에 조금 다르다는 얘기다. 이때의 중독은 그가 지은 이야기의 틀이 참으로 견고하여 내가 갇히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했다는 말이 된다. 이 사태를 일컬어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권혁웅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유머, 순정, SF, 철학, 문학사, 신화, 정신분석, 과학, 패러디, 에세이 등의 모든 담론들을 섞고 분류하고 재배치하여 새로운 세기의 하이브리드 소설을 창조했다. 하이브리드는 본래 힘이 세다”라고. 근 4년에 걸쳐 쓴 소설들이 묶여 있는 탓에 주제별로 다양성을 자랑하기도 하는 이번 작품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변신’을 모티프로 한 소설들이다. 2011년 문인 100명이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 뽑히기도 한 작품 「자정의 픽션」을 비롯해 「갈라파고스」 또한 이 소설집에서 단연 의미 있게 읽히는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성범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성범수’라는 이름의 멸치로 분해가며 쏟아내는 그들과 우리들의 진심 어린 토로는 일단 실소로 시작해서 진지하게 이어지는바, 그 속에서 우리가 함께 행해보게 되는 삶이라는 이야기 꼬리잡기야 말로 박형서 특유의 장기가 발휘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래, 한때 나는 고양이였다. 불우한 거리의 고양이였다. 그리고 그는 나를 거둬들여 성범수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이고, 오랫동안 보살펴주었다. 내게서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인가? 맞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나는 당신의 외로움이었다고, 그리고 이제 많이 진화했다고. 내 말 알겠는가? 시간은 저 혼자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늘 우리의 선택과 함께 흐른다.(「갈라파고스」) 성범수 :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들 죽방멸치는 다른 멸치들과 요리법에서 차이가 난다. 인간들은 다른 멸치의 경우 볶거나 튀기거나 졸여서 한 점도 남김없이 먹는 데 반해, 우리들 죽방멸치는 오로지 국물만 우려낸 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 이게 모욕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모욕이겠는가. 그뿐 아니다. 국물을 내기 전에 저들은 우리의 머리와 내장을 떼어낸다. 머리와 내장이 무엇인가? 지성과 영혼이 담긴 그릇이다. 그 신성한 부위가 살점과 척추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고 있다.(「자정의 픽션」) 그만의 군더더기 없는 시적 단문, 이를 가능케 하는 예리하면서도 힘 있는 시선은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능수능란하게 제 사위를 펼친 것 같다. 컬러보다는 흑백에 가까운 이야기들, 때론 잔인하고 때론 너무나 그로테스크해 고개를 돌려버리려 하는 찰나 우리를 붙드는 그만의 유머, 그만의 천진함. 그가 유머의 달인인 까닭은 이렇게 하나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웃는 법이 없다. 우리가 너무 웃어 지쳤을 때 그렇게 나자빠졌을 때 씨익, 그제야 이빨을 살짝 내보이며 웃는 그 웃음의 조절 능력, 그 타이밍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박형서는 힘이 세다. 아니, 박형서의 소설은 이렇게나 무섭다. 작가의 말 죽어 신(神) 앞에 섰을 때 작가는 그간 탈고한 모든 글을 소명해야 한다. 그 노역에 이 책이 더해졌다. 2006년 겨울부터 2010년 겨울까지의 단편들을 묶었다. 오래 버틸 질문도 있을 거고, 훨훨 증발할 농담도 있을 거다. 업둥이 같은 공상도 있을 테고, 너덜거리는 훈수도 있을 거다. 돌아볼 마음 따위는 없다. 부끄럽지 않다. 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부 나다. 내 손으로 썼다. 2011년 가을, 박형서
<새벽의 나나>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익숙한 세계 박형서 작가의 첫 장편소설 등단 후 두 권의 소설집을 통해 기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처연한 멜랑콜리의 자리에 유머를 실은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은 작가 박형서가 첫 장편소설을 펴냈다. 이 작품은 최종 목적지를 아프리카로 정하고 여행길에 오른 레오가 태국을 경유하던 중 그곳에서 만난 플로이에게 끌려 결국 아프리카가 땅을 밟지 못한 채 그 거리의 이방인으로 지내는 이야기다. 작가는 흔해 빠진 단선적인 사랑이야기를 기승전결의 단선적인 서사를 보여주기보다 더욱 깊이 우리네 삶을 들여다본다. 레오와 플로이의 관계를 넘어서서 온갖 여담, 구체화된 모든 주변 사건들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해 준다. 인물이 지닌 관계를 추적하고 인물들이 서로 섬세하게 읽힘으로써 타인을 납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여행지에서 생겨난 사건을 다루지만 그 사건 속에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보다 본질적인 인간의 삶과 관계를 이야기한다.
<자정의 픽션> 주목 받는 젊은 작가 박형서의 새 소설집. 2003년 첫번째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문학과지성사)이후 3년 만의 두번째 소설집이다. 72년생인 작가 박형서는 동세대 작가인 김중혁, 이기호, 편혜영 등과 함께 한국 문단에 젊은 숨결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신세대 작가로서의 몫을 정확히 해내고 있다. 한국 문단에서 박형서는‘독특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을 가진 작가로 평가되는데, 이번 소설집에서는 첫번째 소설집에서 보여주었던 그 새로운 상상력에다 재미를 추가하여 한바탕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단편소설들을 선보인다.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에서 박형서는 기괴하고 극단적이면서 멜랑콜리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당시 한 일간지에는 박형서의 첫번째 소설집에 대해 ‘‘엽기’의 행간에 흐르는 처연한 슬픔의 감성’이 돋보인다는 서평이 실리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세계의 저간을 이루는 기괴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변함없으나 그 처연한 멜랑콜리는 유쾌한 유머에게 자리를 내준 듯하다. 해설을 쓴 김형중(문학평론가)은 박형서의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대해 소설의 ‘진정한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개연성’이란 손톱만큼도 없으며 오로지 유쾌할 뿐이라고 증언한다. 덧붙여 박형서는 요즘 일군의 젊은 작가, 읽히는 작가들이 즐겨 쓰는 편집증적 서사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편집증은 그들처럼 위장된 편집증이 아니며, 현실을 끝없이 참조하는 편집증도 아닌 ‘진짜’ 편집증 그 자체라고 설명하며 작가 박형서의 한국 문단에서의 자리를 분명히 구별 짓는다.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외롭고 작고 쓸쓸한 오늘날 우리의 안팎을 독특한 상황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그려낸 신예 작가 박형서의 첫 소설집 이 소설집에는 지은이의 등단작이자 이 책의 표제작인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비롯하여, 「사막에서」 「하얀 발목」 「작별」 「K」 「하나, 둘, 셋」 「물 한 모금」 「이쪽과 저쪽」 「불 끄는 자들의 도시」 등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품마다 독특한 상황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채롭다. 인간과 다른 생물 및 자연 현상과의 병치, 생물/무생물을 가리지 않는 의인화 수법, 현실/비현실/초현실을 넘나드는 시공간 설정 들은 “대통령의 인기는 계란을 넣은 라면보다 높았다”와 같은 재치 있는 문장과 어우러져 읽는 맛을 더한다. * 줄거리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주인공와 ‘나’와 그의 아내는 3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이다. 아내는 기르던 토끼가 죽자, 그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다 못해 토끼를 흉내 내기까지 한다. 그러던 아내는 자신이 기르던 토끼처럼 죽어버린다. ‘나’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아내의 ‘외로움’에 눈뜨게 된다. 「사막에서」: 사막과 같은 현실, 또는 이미 사막보다 더한 불모지로 변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악몽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불모지가 되어버린 현실 세계를 ‘사막’에 비유한 기괴하고 환상적인 단편이다. 「하얀 발목」: 남편은 전처와 이혼했고, 아내는 전남편과 사별했다. 아내는 표가 나도록 잠이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둘은 그럭저럭 결혼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들려주곤 하는데, 어느 날 남편은 아내가 꿈속에서 본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별」: 춤, 빵, 열차, 화장실 등이 의인화되어 환상과 현실, 현실과 알레고리, 알레고리와 상징이 기묘하게 뒤섞인 단편이다. 「K」: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용모도 뛰어나고 공부도 잘했던 K와 그를 따라다니던 보잘것없는 시골뜨기의 삶이 병렬하고, 교차한다. 「하나, 둘, 셋」: 죽은 자의 진술을 통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물 한 모금」: 발명가 양파는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인 몇 초의 차이 때문에 발명품의 특허권이 걸린 소송에서 고구마에게 패하고 만다. 이상하게도 양파와 고구마가 발명에서 특허 등록까지의 심리적, 현실적 경험은 일치한다. 「이쪽과 저쪽」: 평범한 농부 양씨는 사소한 우연 때문에 살인자가 되고 만다. 논밭에 나갈 때, 늘 다니던 이쪽 길로 가지 않고 그날따라 저쪽 길로 갔던 것이 그 사소한 우연의 전부이다. 「불 끄는 자들의 도시」: 변기자는 Y시에 화재 상황에서 수많은 인명을 구한 시의 소방대원들을 취재하러 왔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변기자는 영웅적인 인명 구조 활동의 이면에 식인의 카니발리즘의 흔적을 발견한다. 변기자 또한 화재 사고를 당하며 카니발리즘의 희생양이 될 것임이 암시되고 있다.
<당신의 노후>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두 번째 책 출간! ■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두 번째 소설선, 박형서의 『당신의 노후』가 출간되었다. 2017년 12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책은 과작寡作의 소설가 박형서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당대 문학의 조망과 조명이 달라지는 시대, 박형서의 이번 작품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14년 뒤의 현실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 간의 갈등의 심화로 '노인 혐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아래 새롭게 목도되는, 죽음이 유보된 장수 사회의 혼돈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여 리얼리티를 구현한 300매 긴 중편 속에 주인공의 분투와 좌절을 아이러니하게 또 냉담하게 리얼리티를 완성시켰다. 청년 세 명이 노인 일곱 명을 부양하는, 우리에게 실제로 곧 도래할지도 모를 공포스런 시대를 무대로 그려지는 이 소설은 박형서 특유의 기지를 발휘한 과장법의 유머로 그려진 우리 문학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노인 혐오' 관련 첫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시간이 노인의 편이 아닌 것처럼 젊은이의 편도 아니지. 시간은 결국 살아 있는 모두를 배신할 걸세. 싸우다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덧 자네들도 맥없이 늙어 있을 테니까.” 국가인권위의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의하면 청년층의 56%가 고령화 사회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겼다고 생각하고, 77%가 복지가 늘면 청년층의 부담이 증가될 것이라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노인들에 대한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자료는 더불어 고령화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요구하기도 한다. 박형서의 소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장길도는 젊은 시절 온 힘을 다해 국가와 조직을 위해 봉사하며 살았지만 결국 말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지켜주는 가장 큰 테두리라고 여겼던 그 국가와 조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모든 불행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자에게 돌리는, 이 자기모순의 분위기는 박형서의 이번 소설 속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을 사회는 노인들에게 돌린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그가 노인이라는 것, 이 사회의 모든 불행이 노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황당하되 무계하지 않은 박형서만의 소설 세계 박형서의 문학은 현실과 괴리된 듯한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하게 될 상황들을 소설의 주 무대로 끌어들여 소설적 대입을 통해 노인의 삶과 죽음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새로운 주제로 작가의 영토를 새롭게 만들어나간다. 담담한 문체와 무심한 듯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적절한 곳에 배치되는 소설적 소도구들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설의 주제를 서정적으로 응축시켜내며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현실의 정중앙을 시원하게, 전복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것이라 여겨지던 이야기들은 소설 전면으로 부각되고 작가는 그 혼돈 상황 속에 질서를 부여하며 서사의 구조적 완결성과 리얼리티를 높인다. 마치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 아닌 그저 엉망인 이 현실을 정리해 보여주는 것이란 듯. 현실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다는 듯. ■ 줄거리는 장길도는 국민연금공단의 노령연금TF팀 팀장으로 재직하다 퇴직을 했다. 사명감과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 누구보다 자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던 장길도는 그러나 퇴직 후 몸담던 조직과 맞서는 신세가 된다. 지병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 있는 장길도의 아홉 살 연상 아내 한수련이 오래전부터 노령연금을 부어왔고, 연금의 수급자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노령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연금이 고갈될 처지에 놓인 연금공단은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수급자들을 제거해왔고, 이제 그의 아내 한수련도 그 대상이 된다. 나라와 조직이 무엇보다 우선이던 장길도는 자신의 아내가 공단의 제거 대상이 되자 모든 사고에 혼란을 느끼고, 아내의 죽음을 막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동료, 후배 들의 계속되는 살해 시도에 결국 아내는 목숨을 잃고 장길도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아르판> 신선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작가 단편작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