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
에밀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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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상)

<목로주점 (상)> 궁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고단하고 가파른 일상 그 속에서 건져 올린 프랑스 민중 소설의 효시 미화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민중 언어로 쓰인 최초의 민중 소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이 열린책들 세계문학으로 출간되었다. 『목로주점』은 에밀 졸라가 소설 속에서 사회 전체를 재현하고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려는 기획으로 집필한 스무 편의 연작 소설 『루공-마카르』 총서 가운데 일곱 번째 작품이다. 오랜 기간 동안의 연구와 그 자신의 경험을 녹여 낸 이 소설은 한 노동자 가정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일종의 〈전락의 연대기〉라 할 만하다. 적나라한 노동자의 언어와 외설성으로 출간과 동시에 엄청난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고, 당시로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판매고를 올리며 현대적인 대량 인쇄의 문을 연 최초의 소설이기도 하다. 에밀 졸라는 이 작품으로 치열한 논란의 한가운데 서며 유명세를 얻었다. 돈을 벌기 위해 파리로 온 젊은 세탁부 제르베즈. 함께 살던 애인 랑티에에게 버림받지만 새로운 남자 쿠포를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찾아오는 거대한 몰락의 전조. 게으름과 문란한 성생활 그리고 술이라는 빈자들의 구원은 그녀와 가족의 파멸을 재촉하고, 환경이라는 굴레는 모든 도약의 시도를 끝내 무너뜨리는데…….

돈

<돈> “아! 돈이여, 세상을 더럽히고 아귀아귀 삼키는 끔찍한 돈이여!” 거장 에밀 졸라가 파헤친 ‘황금의 왕’ 신화 증권 투기를 소재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다양한 각도에서 탐구한 에밀 졸라의 역작 『돈』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5번으로 출간되었다. 『돈』은 프랑스 은행가와 증권시장을 배경으로 금융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돈에 대한 욕망에 휩싸인 각계각층의 인간 군상을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다. 50세의 정력적인 은행가 사카르의 성공과 몰락을 통해 인간성 파괴와 부패의 원인이지만 희망과 선행의 밑거름이기도 한 돈의 양면적 속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번에 국내 초역으로 출간된 『돈』이 에밀 졸라의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황금과 환락의 도시 파리를 뒤흔든 사상 초유의 금융 스캔들 『돈』은 자연주의 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루공마카르총서’ 스무 권 중 열여덟번째 작품이다.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 『인간 짐승』 『돈』 등 그의 대표작 대부분을 포함한 이 총서를 통해 에밀 졸라는 자연유전론과 환경결정론에 기대어 프랑스 제2제정 사회의 풍속을 총체적으로 드러내 보이겠다는 포부를 펼쳤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인기 작가”, “19세기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미 명망이 높았던 졸라는 동시대의 거대은행 ‘위니옹 제네랄 Union générale’의 파산 사건에서 ‘돈’을 제목으로 삼은 이채롭기 그지없는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가톨릭 은행과 유대인 은행의 혈투에서 비롯된 이 사건으로 주식시장은 역대 최악의 붕괴에 직면했고, 증권가에는 일파만파로 혼돈이 몰아쳤다. 프랑스 전체의 여론이 들끓었던 이 사건으로 졸라는 금융이라는 경제활동에 새로운 차원의 돈이 등장했음을 직감했다. 바로 이 직감의 산물인 『돈』은 부패와 부정, 투기와 탐욕이 횡행하는 금융자본주의의 맨얼굴을 그려낸다. 1891년에 발표된 『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의성이 뚜렷한 작품으로, 작품이 지닌 현대적인 의미 덕분에 2000년대에 들어 금융경제학적 측면에서 적극적인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졸라는 여러 작품에서 제2제정의 프랑스 사회를 투기꾼, 벼락부자, 졸부들의 세계로 그렸다. 『돈』 역시 1867년 만국박람회 개막 장면이 보여주듯, 황금과 환락의 물결 속에 감춰진 빈익빈부익부 사회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증권 투기, 가짜 뉴스, 개미투자자들의 몰락 등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부패와 음모와 비극이 졸라가 창조해낸 세상 속에서 오롯이 펼쳐진다. “졸라의 『돈』은 출간된 지 백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매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돈은 여전히 돈이니까 말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_파스칼 마시오니 “돈이란 인생 그 자체요! 돈을 없애보시오. 이 세상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없을 거요, 아무것도!” 욕망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린 에밀 졸라의 역작 돈, 특히 금융계의 돈에 대한 혐오를 거리낌없이 드러냈던 동시대의 지식인들과 달리 졸라는 돈의 명암을 모두 그려내려고 했다. 졸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돈』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돈을 공격하지도 옹호하지도 않겠다. 나는 돈을 오늘날까지 필요한 힘으로서, 문명과 진보의 동력으로서 보여주고자 한다.” 돈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돈』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돈의 노예가 된다. 증권 투기의 광증에 빠져 외동딸의 경제적 곤궁마저 외면하는 모장드르 부부, 주식 투자 정보를 얻기 위해 성관계를 하는 산도르프 남작 부인, 나폴레옹 3세의 애인이며 거액의 화대를 받고 사카르와 동침하는 드 죄몽 부인, 서명인이 실종된 어음을 헐값에 사들인 후에 서명인을 찾아 엄청난 고리高利를 취하는 뷔슈 등…… 그러나 돈을 향한 광기에 관한 한, 만국 은행을 창설하여 ‘황금의 왕’이 되길 꿈꾸는 주인공 사카르를 능가할 이는 없다. 카롤린 부인은 사카르에게서 “돈밖에 모르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인간”, “사물과 사람을 녹여 돈을 주조하는 인간”을 보고는 절망하여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무한한 권력 속에서 덧없는 인간의 양심보다 더 높이 추앙받는 돈, 피와 눈물보다 더 높이 군림하는 돈, 돈이라는 제왕, 돈이라는 신! 아! 돈이여, 세상을 더럽히고 아귀아귀 삼키는 끔찍한 돈이여! 다른 한편 돈은 선행을 베풀게 하는 문명의 동인이자 진보의 밑거름이기도 하다. 돈의 이러한 면은 도르비에도 대공 부인이 펼치는 대규모 자선사업에서 드러난다. 사별한 남편이 증권 투기로 모은 3억 프랑의 재산을 빈자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그녀는 대리석을 아낌없이 사용한 호화롭고 웅장한 건물을 지어 유아원, 고아원, 양로원, 병원, 노동 학교를 열었다. 그녀의 목표는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겪는 어린아이부터 고통 없이 죽을 수 없는 노인까지,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것”이고, 이 꿈의 실현은 돈의 힘으로 가능해진다. 사카르와 아믈랭 남매(카롤린 부인과 그녀의 오빠 조르주 아믈랭)가 시도하는 동방개척 사업에서도 희망에 부풀게 하는 돈의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동방개척 사업을 통해 그들은 부를 획득하고 문명을 재건하고자 한다. 그들이 보기에 자본은 동방의 민중, 나아가 세계만방의 인류를 구할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돈은 파괴와 구원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독과 파괴를 초래하는 돈이야말로 사회적 생장의 효모였고, 인간들을 서로 가깝게 하고 대지를 평화롭게 할 대大역사에 필요한 부엽토였다. 돈을 저주하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돈에 대해 공포가 뒤섞인 경탄에 빠져들었다. (…) 일체의 선이 일체의 악을 만드는 돈에서 나왔다. 끝없이 번영할 것만 같았던 만국 은행은 사카르의 불법적 투기와 증자로 결국 파산하고 사카르는 구속된다. 그 결과 무일푼이 된 투자자들은 빈민가로 내몰리고,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심지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천문학적인 빚을 짊어지게 된 증권 중개인 마조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 파리 도처에서 자살의 총성이 울려퍼진다. 없는 재산을 모두 털어 만국 은행에 투자했던 익명의 빈자들 또한 이 재앙 때문에 추위에 떨고 굶주림으로 몸부림친다. 소설의 말미에서 역시 무일푼이 된 카롤린 부인은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도대체 왜 사카르가 불러일으킨 비행과 죄악의 책임을 모두 돈에 전가해야 할까?” 이 모든 불행의 책임은 돈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의미다. 돈은 탐욕과 악행의 씨앗인 동시에, 선행의 재료이자 문명을 작동하게 하는 힘인 것이다.

인간 짐승

<인간 짐승> “에밀 졸라의 소설 중 최고다.” _앙드레 지드 위대한 리얼리스트 에밀 졸라의 충격과 논란의 화제작 국내 초역! 문학동네에서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에밀 졸라의 충격적 문제작『인간 짐승』(1890년 작)은 자연주의 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루공마카르’ 총서 스무 권 중 열일곱번째 작품이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유전(‘자연적 역사’)과 환경(‘사회적 역사’)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제2제정기 프랑스 사회를 낱낱이 해부해 객관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겠다는 포부로 기획되었다. 1871년부터 1893년까지 거의 매년 한 권꼴로 출간된 루공마카르 총서의 동력은 바로 “분노하며 살 것, 한 줄이라도 쓰지 않으면 하루라도 살지 말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졸라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인기 작가” “19세기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미 명망을 얻은 졸라가 루공마카르 총서에 대한 열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저술한『인간 짐승』은『테레즈 라캥』『목로주점』에 이어 다시 한번 프랑스 문단에 충격을 가했다. 제목에서부터 인간과 짐승을 대립시킨 이 소설은 ‘인간다움’과 ‘짐승스러움’이라는 두 축의 패러다임 아래 배열할 수 있는 요소들을 복잡하고 교묘하게 얽어 견고한 서사를 이루어낸다. 당시의 삶 속에 켜켜이 틀어박힌 세기말의 징후들을 ‘범죄-욕망’과 ‘철도-기계’라는 두 절단면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 당대의 짐승스러움에 대한 분노와 경멸을 담아낸 이 소설은 나아가 그 짐승스러움의 연원을 관찰과 해부를 통해 들춰내고 그에 근거해 인간다움의 전망을 제시한다. 죽음이 난무하는 잔혹성과 외설적인 성 묘사,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수호하는 고위 관료들의 부패상, 그리고 먹잇감 앞에서 가차없이 육식 본능이 작동하는 야수와도 다름없는 인간 짐승들의 음험하고도 치밀한 범죄 심리를 정교한 서사를 통해 보여주어 출간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작이다.『인간 짐승』은〈인간 야수〉〈야수 인간〉등의 영화와 연극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장 르누아르 감독이 만든〈인간 야수〉(1938년 작)가 있다. 백 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우리에게 다가온『인간 짐승』은 지금도 유효한 문제의식으로 이 사회에 충격을 줄 것이다. 또한 적나라하게 묘사된 인간 본연의 비극성과 그에 대한 작가의 연민 어린 시선은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과연 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절대로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이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인간 짐승의 비극 『인간 짐승』에는 다양한 모습의 ‘인간 짐승’이 등장한다. 여기서 ‘인간 짐승’은 비단 ‘짐승의 거죽을 둘러쓴 인간’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탐욕과 시기, 증오에서 비롯된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의 폭력에서부터 기득권 수호와 조직 보위를 목적으로 ‘개인적으로’ 이용되는 국가기구의 횡포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광범위하다. 어찌 보면 인간이 짐승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기계, 기차, 철도를 포함한 문명 자체가 곧 짐승인 셈이다.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야수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바로 ‘죽음-죽임’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간 짐승’ 중에서도 특히 기관사 ‘자크 랑티에’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졸라의 작중인물들은 여러 작품에 걸쳐 서로 얽혀 등장하는데,『인간 짐승』의 자크는『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자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졸라가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 짐승’은 성욕이나 물욕, 질투나 원한 같은 뚜렷한 살인 동기를 가진 이들이 아니다. 자크는 이성이나 도덕관념으로 통제할 수 없는 “대물림된” 살해 욕망, “살인의 숙명성”을 떠안은 자이다.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쳐도 제 몸에 흐르는 ‘나쁜 피’에서 헤어날 수 없어 저도 모르게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선척적인 유전에 의해서든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서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의 생명을 무참히 끊어버리는, 수천 년 문명 밑에 웅크린 인간들의 비극을 통해 졸라는 인류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 ‘현대 문명이 인류를 해방으로 이끌 것인가, 묵시록적 종말을 재촉할 것인가’를 정면으로 던지면서 우리를 깊은 성찰의 공간으로 이끈다. 사랑, 살인, 철도…… 거침없이 질주하는 인간 군상 『인간 짐승』의 독창적인 서사 구조는 매우 정교해서, 에밀 졸라 스스로도 “매우 만족스러운 구조” “내가 한 것 중 가장 공들인 구조” “더할 나위 없이 논리적으로 짜맞춘 작품”이라고 자부했다. 이 소설은 여주인공 세브린의 운명을 중심으로, 남편 루보와 함께 그랑모랭을 살해하고 자크와 연인이 되는 과정을 다룬 전반부(1~6장), 그리고 라리종호의 폭설 조난 사건 이후 자크와 내밀한 관계를 이어오다가 충격적 반전의 비극을 겪는 과정을 그린 후반부(7~12장)로 정확히 나뉜다. 그 안에서 세 주인공(루보, 세브린, 자크)을 중심으로 플로르(자크를 흠모하는 건널목지기 처녀), 페쾨(술에 절어 사는 난봉꾼 화부), 필로멘(페쾨의 내연녀)이 끼어들어 각기 애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그랑모랭 살해 후 루보의 도박 중독(세브린과 자크의 관계가 급속도로 깊어지는 계기)과 페쾨의 알코올중독(자크와 페쾨 자신의 참극을 부르는 원인) 역시 같은 양상으로 반복된다. 이렇듯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대칭과 반복의 구조다. 한편 공간적 배경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폐쇄성이다. 소설은 파리의 생라자르 역과 서부철도회사의 직원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을 출발점으로 해서, 르아브르에서 병사들을 싣고 라인 강 전선으로 폭주하는 괴물 기관차의 모습을 마지막 장면으로 보여준다.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예심판사의 집무실, 법무부 고위 관료의 사저, 법정을 제외하고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서부철도 노선과 역사驛舍라는 폐쇄 공간이 주 무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 짐승』의 주요 화두는 ‘죽음’이다. 이 작품에는 타살과 자살, 직접적인 살인과 간접적인 살인을 포함해 모두 일곱 건의 죽음이 나온다. 이 일곱 건의 범죄로 열차 승객 15명을 포함해 모두 22명이 죽는다. 여기에다 줄거리 바깥의 정황이긴 하지만 소설 막바지에 등장해 대량 학살의 전장으로 실려 가는 군인들까지 포함시킨다면 죽음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게 된다. 『인간 짐승』은 말 그대로 죽음을 향해가는 소설이다.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본성을 해부하다 르아브르 역의 부역장 루보는 열다섯 살 어린 아내 세브린이 그녀의 후견인인 전직 법원장 그랑모랭의 성 노리개였음을 알고는 세브린과 함께 그랑모랭을 살해한다. 열차 창밖으로 그랑모랭의 시신이 내던져지는 장면을 목격한 기관사 자크 랑티에는 그로 인해 ‘병’이 재발하고 만다. 그 병은 바로 성욕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살해의 욕구, 피의 충동이다. 원시시대 수컷에게서부터 대물림된 살해 본능, ‘나쁜 피’가 자신의 몸속에 흐른다는 것을 알아챈 뒤로 자크는 오로지 자기가 모는 기관차 ‘라리종호’만을 여인인 양, 애인인 양 사랑해온 터다. 그랑모랭 사건의 피의자로 예심판사에게 불려갔던 일을 계기로 세브린과 자크는 연인 사이가 되고, 그랑모랭 사건의 진실은 당시의 정치 상황과 교묘하게 맞물려 법조계 고위 인사들의 공모 아래 조작 · 은폐된다. 한편 어릴 적부터 철로 건널목지기 일을 하면서 자크를 먼발치에서 흠모해온 야성녀 플로르는 연적 세브린을 죽이기 위해 대학살의 계획을 세우고, 세브린은 자기 인생의 걸림돌로 전락한 노름꾼 남편 루보를 죽일 계획에 집착하며, 기관사 자크의 짝 화부火夫 페쾨는 자신의 내연녀와 관계를 맺은 자크에게 분노와 원한을 품고, 자크는 연인 세브린을 욕망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내재된 짐승의 살해 본능에 끊임없이 압도당하며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추천평> 『인간 짐승』의 기관차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다. 하나의 명백한 서사적 상징이다. 그 기관차가 그려놓은 궤적은 민족과 문명의 차원으로 열린 공간이다. 에밀 졸라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도 서사시의 구축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_질 들뢰즈 『인간 짐승』은 오늘의 역사이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역사 이전의 서사시다. _쥘 르메트르(문예펑론가) 진정한 리얼리즘은 사람들이 흔히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포착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졸라라는 이 위대한 리얼리스트가 위대한 시인인 까닭이다. _장 콕토 에밀 졸라를 읽다보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정립한 이가 그가 아니라 프로이트라는 게 의아스러울 정도다. _장 보리(문학연구가) 불가사의한 어떤 끔찍한 드라마를 뚫고, 20세기를 향해 거침없이 진보하는 인간 짐승들의 이야기. _에밀 졸라

제르미날 1

<제르미날 1> “『제르미날』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저력을 지닌 작품이다. 오늘날에도 그 의의와 시의성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_에리히 아우어바흐(문학사가) 자연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122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로써 문학동네는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인 『테레즈 라캥』(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프)과 ‘루공마카르 총서’에 들어 있는 졸라의 4대 대표작 『목로주점』 『인간 짐승』 『나나』 『제르미날』을 모두 출간하게 되었다. 『목로주점』의 세탁부 제르베즈의 아들과 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졸라의 4대 대표작 중에서도 특히 『제르미날』은 에밀 졸라 문학의 최정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목로주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전진하는 진실』 등 에밀 졸라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온 전문번역가 박명숙이 번역했다. 거장 에밀 졸라가 빚어낸 자연주의 문학의 최고봉 졸라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제르미날! 제르미날!”을 연호했다 『제르미날』은 스무 권으로 이루어진 에밀 졸라의 연작소설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세번째 작품이다. 이 총서에는 나폴레옹 3세가 지배하던 제2제정기(1852~1870)를 배경으로 ‘루공’과 ‘마카르’ 가문의 5대에 걸친 역사가 담겨 있다. 졸라는 총서의 일곱번째 작품 『목로주점』(1877)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노동자의 정치적이고, 무엇보다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고찰을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주제의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그로부터 8년 후인 1885년 『제르미날』을 출간했다. ‘제르미날’은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공회가 그레고리력을 폐지하고 만든 달력인 ‘혁명력(공화력)’의 일곱번째 달(3월 21/22일~4월 19/20일)로, ‘싹트는 달’을 의미한다. 졸라는 “새로운 인간의 자라남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일하면서 발버둥치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담을 수 있는” 제목을 찾다가 우연히 ‘제르미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후 다른 제목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제르미날』은 프랑스 북부의 한 탄광촌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과 그들의 저항, 투쟁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자연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노동자계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소설이다. 이 작품의 출간 후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노동자들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목로주점』을 비난했던 좌파 언론들도 이 소설에는 찬사를 보냈다. 일부 부르주아 언론이 졸라가 현실을 과장했다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지만, 졸라는 “부디 통계를 확인하고 현장에 직접 가보길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아아! 안타깝게도 나는 현실을 완화해서 이야기했습니다”라고 응수했다. 대중적 인기도 높아서 오늘날까지 『목로주점』 『인간 짐승』 『나나』 등과 더불어 가장 높은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명실공히 졸라 최고의 대표작이며, 특히 졸라의 장례식에서 광부 대표단이 세 시간 넘게 묘혈 앞을 돌면서 “제르미날!”을 연호한 것은 노동자들이 이 위대한 리얼리스트에게 품고 있던 경의를 반증한다. 『제르미날』은 1989년 국내에서 최봉림 번역으로 처음 출간된 뒤 여러 출판사를 거치다가 1990년대 초 출간을 마지막으로 절판되었다. 따라서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박명숙 번역으로 새롭게 펴내는 『제르미날』은 무려 25년 만에 만나는 새로운 번역인 셈이다. 독자들은 광부들의 힘겨운 노동과 일상,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에티엔의 노력을 통해 인간의 사랑과 죽음, 저항과 정의, 그리고 자유와 행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번역으로 만나는 문학동네의 『제르미날』에는 한층 풍부해진 해설뿐 아니라 작품의 배경이 되는 ‘몽수와 그 주변 지도’, ‘루공마카르 총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혈연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루공마카르 가문의 계통수’가 수록되어 있다(제2권 말미 참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움트는 희망의 대서사시 땅속에서 움트는 혁명의 피, 싹트는 희망의 씨앗 『제르미날』의 주인공 에티엔 랑티에는 『목로주점』의 여주인공 제르베즈와 그녀의 애인 오귀스트 랑티에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이다. 제르베즈와 쿠포 사이에서 태어난 나나(『나나』의 주인공)의 동복(同腹) 오빠이기도 하다. 『목로주점』에서 열두 살에 볼트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에티엔은 철도 기술자가 되기 위해 프랑스 북부의 릴로 향한다. 에티엔이 릴로 떠나는 날, 아버지 랑티에는 아들에게 선언하듯 말한다. “생산을 하는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라. 하지만 생산을 하지 않는 자는 그 누구든 기생충 같은 사람이란 것도 잊지 말도록.” 『제르미날』은 그로부터 몇 년 후, 릴의 철도회사에서 상사의 따귀를 때렸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에티엔이 몽수(졸라가 만든 가상의 도시로, ‘돈으로 이루어진 산mont sou’이라는 의미다)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몽수 탄광회사의 르 보뢰(‘집어삼키다, 탐욕스럽게 먹다’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d?vorer’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탄광에서 일자리를 구한 에티엔은 하숙집 주인인 광부 마외의 딸 카트린을 사랑하지만, 카트린은 에티엔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난폭한 광부 샤발과 함께 살게 된다. 한편 동료들이 회사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빚에 시달리며 땅속 깊은 곳에서 짐승처럼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티엔은 탄광회사가 교묘한 방법으로 임금을 삭감하자 광부들을 설득하여 죽음 아니면 구원이 될 파업에 앞장서게 된다…… 노동자계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소설, 노동 문학의 백미 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예술적 감동 졸라는 『제르미날』의 구상안에서 “나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대두될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미래를 예견하는 작품을 쓰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자계급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무엇보다 “자본과 노동의 투쟁”을 다룬 이유가 거기에 있을 터, 역사는 졸라의 예언이 옳았음을 입증한다. 소설 속에서 광부와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자본과 노동, 고용주와 노동자, 착취자와 피착취자는 20세기를 지나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르미날』을 두고 “노동자 여러분, 부디 이 소설을 읽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연민과 정의를 부르짖게 될 때 나는 내 소임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던 졸라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소설을 준비하면서 졸라는 극심한 폐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675미터 아래 땅속까지 내려가 갱도 내의 상황을 세밀하게 살펴보았다고 한다(이러한 체험을 그는 “지옥으로의 하강”이라고 표현했다). 탄광촌을 방문해 그곳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그 모든 사실을 빠짐없이 적어나가기도 했다. 치밀한 현장 답사와 상세한 기록은 『제르미날』 집필의 가장 중요한 자료이자 상상력의 원천이 된 작가 노트를 탄생시켰다. 무려 962쪽에 달하는 이 노트에는 『제르미날』의 집필을 위해 다방면의 책을 읽으며 기록한 메모들, 탄광과 광부들의 현실에 관한 다양한 정보, 그리고 그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작품 속에 드러난 그 놀라운 사실성만으로 이 소설의 대중적 성공과 비평적 열의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제르미날』은 연애소설과 멜로드라마풍의 대중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각관계를 통해 소설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에티엔-카트린-샤발이 이루는 삼각관계는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한편 『제르미날』에서 탄광은 괴물, 미궁, 지옥에 비유되고 희망 없는 노동을 하는 광부들은 인간과 짐승의 중간쯤 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처럼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는 상징과 은유는 작품의 의미를 배가하며 독자에게 예술적 감동을 선사한다. 『제르미날』 출간 후 작가이자 비평가인 쥘 르메트르가 졸라에게 “새로운 호메로스”라는 찬사를 보내며 그를 ‘서사시인’으로 규정한 것도 긴 이야기 속에 서사시의 형식적인 특징들, 즉 사실을 신화적인 영역까지 끌어올리는 과장법, 다양한 메타포, 제유법 등이 구현되어 있고, 내용 면에서도 대의(大義)와 영웅, 공동체의 운명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르미날』은 ‘사회주의 소설’, ‘노동 문학’과 같은 말만으로는 규정지을 수 없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획득한 소설이다. <추천평> 『제르미날』을 보내줘서 정말 고마워. 네게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어. 정말 굉장한 소설이야! _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에밀 졸라는 검은색에 색채를 부여한 유일한 작가다. _위스망스(소설가) 에밀 졸라는 발자크와 『레미제라블』을 넘어서서 거대한 한 걸음을 내디뎠으며, 노동자계급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수많은 소설의 문을 열었다. _앙리에트 프시샤리(철학교수) 지금까지 그 어떤 소설도 노동자들의 열망을 이처럼 심오하고 진실하게 표현한 적이 없다. 『제르미날』은 곧 민중의 이야기다. 조금도 미화되거나 추하지 않은 탄광의 민중을 이야기하고 있다. _조르주 몽토르괴유(저널리스트) 『제르미날』의 각 장들은 그 폭넓은 서사성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에밀 졸라는 노동자의 삶이라는 보잘것없는 주제와 그의 거침없는 재능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낸 이 소설에 다른 어떤 소설에서보다 더 많은 진실과 치밀한 관찰 그리고 놀라운 묘사를 담아냈다. 언어적 기교를 최대한 배제한, 더없이 솔직하고 진실한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다. _귀스타브 랑송(문학사가) 『제르미날』에서 그가 시도한 것만으로도 졸라는 현대문학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충분하다. _폴 라파르그(사회주의운동가) <책 속으로> 다시 아래로 내려간 케이지는 사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위로 올라와 또다른 무리들을 실어날랐다. 삼십여 분간, 갱도는 그런 식으로 채탄부들이 내리는 적치장의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왕성한 식욕으로 인간 가축들을 집어삼켰다. 결코 달래지지 않는 허기를 드러내며, 세상 사람들 모두를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한 창자를 끊임없이 꿈틀대면서. 갱도는 인간 가축들로 채워지고 또 채워졌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서는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으며, 케이지는 여전히 탐욕스러운 침묵 속에서 허공을 뚫고 또다시 위로 솟구쳤다. 다시 아래로 내려간 케이지는 사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위로 올라와 또다른 무리들을 실어날랐다. 삼십여 분간, 갱도는 그런 식으로 채탄부들이 내리는 적치장의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왕성한 식욕으로 인간 가축들을 집어삼켰다. 결코 달래지지 않는 허기를 드러내며, 세상 사람들 모두를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한 창자를 끊임없이 꿈틀대면서. 갱도는 인간 가축들로 채워지고 또 채워졌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서는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으며, 케이지는 여전히 탐욕스러운 침묵 속에서 허공을 뚫고 또다시 위로 솟구쳤다. 그들이 보유한 주식은 그들에게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극진히 섬기는 신이자, 그들로 하여금 커다란 침대에서 빈둥거리고 먹음직스러운 식탁에서 살찌울 수 있게 해주는 그들 가정의 수호자였다. 그런 삶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대로 이어져내려왔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존재를 의심하며 운명을 거스르고자 애쓴단 말인가. (…) 그들은 그 돈을 안전하게 땅속에 넣어두었다. 굶주린 광부들이 대대로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매일 조금씩 돈을 캐내주는 그 땅에.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선언했을 뿐 그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랬다, 그들은 마음대로 굶어죽을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빈곤한 노동자들을 낡은 부츠만큼도 신경쓰지 않고 편안하게 자기 배나 채울 궁리만 하는 자들에게 투표를 한다고 해서 빵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버틸 것이었다. 무너진 바위 아래 누가 깔려 있을 때도 모두 함께 버텨냈던 것처럼.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갱은 체념을 배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학교였다. 열두 살 때부터 줄곧 불과 물을 삼켜왔던 그들에게 일주일 정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참는 것쯤은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은 군인 같은 자부심으로 한층 배가되었다. 매일같이 죽음과 맞서 싸우는 가운데 희생정신을 체득한 광부로서의 자부심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 하늘의 새들과 숲속의 동물들을 침묵하게 할 수 없듯이, 이제 그 누구도 더이상 우리를 침묵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남자의 마음속에 여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끝난 것이다. 그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암흑 속에서 먹을 것도 불도 없이, 스물네 시간씩 열두 번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그런 끔찍한 생각만으로도 구조 작업을 하는 이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인간도 더이상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전날부터는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도 점차 희미해져, 작업을 하던 광부들은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멈춰버릴까봐 몹시 불안해했다. 서로를 경멸했던 두 사람, 반항적인 노동자와 회의적인 우두머리는 그들에게 내재해 있던 인간애에서 비롯된 극심한 마음의 동요 속에 서로를 얼싸안고 큰 소리로 흐느끼며 굵은 눈물 줄기를 쏟아냈다. 그들은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삶의 곤궁함과,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크나큰 고통 앞에서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집구석들

<집구석들>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 부르주아 세계의 위선에 던진 통렬한 비판 외설적이라고 비판받는 그의 작품 속에서 나는 진정한 힘과 작가적 기질을 발견했다 ―귀스따브 플로베르 그는 진실을 향해 도발적으로 파고드는 작가다―기 드 모빠상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며 ‘소설의 시대’인 19세기에 장편소설의 대미를 장식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집구석들』이 창비세계문학 88번으로 출간됐다. 이 작품은 유전과 환경이 어떻게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려는 의도로 쓰인 졸라 문학의 요체 ‘루공 마까르’ 총서 중 제10권으로, 아델라이드 푸께라는 여인이 남편 루공과 정부 마까르를 통해 낳은 자손들의 이야기 중 하나이다. 부부의 맏아들인 야심만만한 청년 옥따브가 빠리로 상경해 사업과 여인을 수단으로 성공을 꿈꾸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집구석들』은, 그의 부모에 대한 언급이나 가정적 배경이 축소되어 있으므로 ‘루공 마까르’ 제10권이라는 부담감은 떨쳐도 좋을 것이다. 한편 『집구석들』은 졸라가 과학 실험을 하듯 소설을 써야 한다는 ‘실험소설론’을 주장하며 치밀한 관찰과 수많은 자료에 의거해 쓴 대표적 작품 중 하나다. 그때까지 문학작품의 소재로 금기시돼오던 빈민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침으로써 당시 문단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거센 비판의 표적이 됐다. 부르주아의 위선적 삶을 제2제정 시대의 가정들을 통해 신랄하게 드러낸 이 작품을 통해, 빠리의 한 모퉁이 슈아죌 거리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을 묘사한 자연주의 소설기법의 정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소개 출세를 꿈꾸며 빠리로 상경한 청년 옥따브는 건축가 깡빠르동과의 인연으로 그와 같은 아파트 5층의 세입자로 살게 된다. 옥따브는 끊임없이 여성들을 유혹하며 이를 발판으로 자신의 사업을 펼칠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부르주아 세계의 축소판이라 할 이 아파트를 휘젓고 다니며 여러 유형의 인물들과 접촉함으로써 가정의 풍속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주는 일종의 교차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내와 처형과 살며 부르주아 남성의 성적 위선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4층의 깡빠르동, 허례허식에 빠져 형편없는 식사를 할지언정 치마의 레이스 한 자락에 목매는 5층 조스랑 가족, 건물주 아버지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는 중2층의 큰아들 오귀스뜨 바브르와 2층의 떼오필 바브르, 건물주의 사위이자 고등법원 판사로 도덕성을 강조하며 살아가지만 내연녀를 따로 두고 있는 2층 뒤베리에, 그리고 옥탑방에 기거하며 이들을 조롱하는 하녀들까지. “다들 살 만큼 사는데다 도덕적으로도 지독히 까다롭다”라는 문지기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은밀히 중앙계단과 뒷계단을 넘나들며 인간의 추악한 면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인간의 영원한 이중구조인 겉과 안의 다름을 목격할 수 있다. 문학 속 외설보다 위험한 위장된 미덕에 대한 비판 졸라는 인간의 추악한 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정장 차림을 하고 파티에 나가듯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이런 졸라의 모습은 『집구석들』에 등장하는 3층 소설가의 형상 속에 담겨 있다. 슈아죌 거리의 아파트 주민들 중 유일하게 화자의 비판에서 제외되는 이 인물은 대신 다른 인물들로부터 비아냥거림을 받는다. 특히 문지기는 그를 두고 쓰레기 같은 글을 써서 돈더미에 올라앉았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주민 중 유일하게 가족과 단란한 행복을 누리며 조용히 살아가는 이 작가는 바로 『집구석들』을 쓰던 시기의 졸라의 모습이다. 그리고 졸라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정작 위험한 것은 문학 속의 외설이 아니라 가짜 미덕, 위장된 정숙함이라고 역설한다. 즉 『집구석들』의 공격 대상인 ‘합당한 부르주아 도덕’, 슈아죌 거리의 번듯한 아파트 건물로 표상되는 그 도덕이란 실은 온갖 수치와 비참을 가려주는 병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썩은 것들과 도덕의 타락, 집구석들 원어가 풍기는 미묘함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이 딱히 없어 ‘집구석들’이라고 번역하게 된 이 작품의 원제는 ‘뽀부이유(Pot-Bouille)’이다. ‘집에서 끓여 먹는 찌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 프랑스어에서는 좀처럼 쓰이지 않는 이 알쏭달쏭한 단어에 대해서 졸라의 측근이던 뽈 알렉시가 쓴 「에밀 졸라, 친구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뽀부이유는 부르주아 계층의 찌개, 가정의 일상사, 매일 먹는 음식, 번듯한 모양의 수상쩍고 거짓 같은 음식을 말한다. ‘우리야말로 명예요, 도덕이요, 바른 가정의 표상이다’라고 말하는 부르주아들에게 졸라는 ‘아니다, 당신들은 그 모든 허울 뒤에 숨은 거짓이다. 당신들의 찌개냄비에서 끓고 있는 것은 가정생활의 모든 썩은 것들과 도덕의 타락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자라난 불건강한 꽃들 졸라는 당대의 여성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루공 마까르’ 총서 제9권 『나나』가 ‘변두리의 거름더미 위에서 자라난 방탕한 꽃’의 이야기라면, 『집구석들』은 ‘아파트라는 구획된 공간의 창백하고 숨 막히는 공기와 어리석은 허영 속에서 자라난 불건강한 꽃들’의 이야기다. 작품 속에서 그것은 갑갑한 공간에서 신경질적으로 성장한 히스테리 환자 발레리, 모친으로부터 이어받은 허영심으로 인해 간통의 늪에 빠지는 베르뜨, 그리고 갇혀 자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우둔함으로 자신을 방기하는 마리로 형상화된다. 이는 부르주아 여성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이기에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은커녕 원하는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것조차 엄격하게 제한받고, 결혼이 아니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던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인간의 위선을 날카롭게 파헤친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 에밀 졸라는 여러 삶이 공존하는 중산층 아파트 속 인물들의 소동극 같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인간의 면모를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그려내며, 자신의 의도대로 ‘신랄하게 흥겨운’ 효과를 내는 데 성공한다. 인간의 위선을 낱낱이 파헤친 그의 노력 덕분에 이 작품은 비록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현재 사람들의 모습에서 허례허식과 비도덕성 등 여러 문제점을 짚어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결혼, 죽음

<결혼, 죽음> 인간의 결혼, 사랑, 죽음을 통해 계급의 심리를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표현했다 이 책에 실린 10편의 단편은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중고등학생이나 대학교 교양학부에서 읽도록 권하는 추천소설이다. 토론의 주제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계급이란 무엇이고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이다. 신문을 통해 발표된 단편 하나하나는 자연주의 소설의 거장 에밀 졸라의 르포식 글쓰기를 통해 19세기 계급의 심리를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어떤 사랑’은 『테레즈 라캥』의 모티브가 되었다.

Germinal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451)

<제르미날> 영문판. 1885년에 출간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제르미날(Germinal)’은 파종(播種) 후 싹이 트는 달(아월 芽月)이란 뜻이며, 사회주의적 정열에 불타는 광부 ‘에티엔(Etienne)’을 통해 19세기 탄광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파업(罷業) 등을 그린 작품이다.

The Ladies’ Paradise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450)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영문판. 1883년에 출간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BBC에서 제작한 드라마 <파라다이스 The Paradise>의 원작소설이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셰(Bon Marche)’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19세기 후반 파리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주변의 소상인들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골에서 두 남동생들과 함께 파리에 도착한 ‘드니스(Denise)’는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삼촌을 찾아가지만, 형편이 좋지 않은 그는 그녀를 채용할 여력이 없다. 드니스는 ’무레(Mouret)’가 운영하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하는데...

L’Assommoir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445)

<목로주점> 영문판. 1877년에 출간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단지 배불리 먹고, 편히 자고, 매 안 맞고 사는 게 소원인 ‘제르베즈(Gervaise)’는 늘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피해 모자 제조공 ‘랑티에(Lantier)’와 함께 파리로 나와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제르베즈는 아이를 둘 낳고 세탁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지만, 게으른 랑티에는 가정을 돌보지 않고 술만 퍼마신다. 제르베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폭언과 폭력을 일삼던 랑티에는 어느 날 이웃에 살던 여자와 눈이 맞아 달아나는데...

Nana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229)

<나나> 영문판. 1880년에 출간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미모의 고급 창녀 ‘나나(Nana)'의 삶을 통해 당시 상류층 사회의 타락상을 강하게 비판한 작품으로, 발간 즉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Therese Raquin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198)

<테레즈 라캥> 영문판. 1867년에 출간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고아인 ‘테레즈(Therese)’는 친척 ‘라캥’ 부인의 집에서 병약한 사촌 ‘까미유’와 함께 자란다. 거만하고 이기적인 라캥은 테레즈가 아들을 평생 돌보아주기를 바라며 둘을 결혼시킨다. 어느 날 까미유의 친구 ‘로랑’이 찾아오고, 테레즈와 로랑은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는데…

His Masterpiece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191)

<작품> 영문판. 1886년에 출간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해 성공과 멀어진 화가의 절망과 좌절을 그렸다. 작가의 친구인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을 모델로 하였으며, 이 책을 읽은 세잔은 에밀 졸라에게 절교를 선언하였다.

나나

<나나>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이면서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프랑스의 양심’으로 불리는 참여문학의 원조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로, 새로운 시각으로 엄선해 나가는 성(性) 문학 컬렉션 ‘밤의 문학’ 첫 책이다. 루이 필립의 쿠데타, 제2제정 시대를 배경으로 여배우이자 창녀 나나, 그녀를 둘러싼 귀족, 부르주아, 은행가 등 뭇 남성들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사회 풍속 소설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과 육체가 ‘영혼의 적’으로 간주되는 시대에 나나는 남성을 무차별로 ‘잡아먹는 존재’(une mangeuse d’hommes)로, 이른바 ‘팜므 파탈’의 원조.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과 관련된 담론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나》가 보여주는 남녀관계와 정사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사디즘과 마조히즘, 동성애의 자연주의적 묘사는 현대 소설을 능가한다. 1세대 불문학자 정봉구 선생의 정평 있는 번역본을 복간했다.

대지

<대지> 땅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애착과 잔혹한 욕망 모럴을 해체하는 노골적이고 야수적인 서사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에밀 졸라의 문제작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총서 제15작 『대지』(1887)가 국내 최초로 번역되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대지』는 발자크의 『농민』과 더불어 19세기 프랑스 농촌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땅을 부의 형태로 인식하기 시작한 농부들이 집요한 소유욕으로 난폭한 살인자로 변해가는 모습과 함께,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다시 돌아가는 양육자 땅, 관대하고 평화로운 위대한 어머니 땅에 대한 사랑을 그린” 대작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환경으로서의 땅, 그 피지배자 인간의 유기적인 삶을 반목가적 관점에서 그린 『대지』는 발표 직후 반도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 작가가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자연의 순환리듬에 따라 살아가는 자연적 존재인 농부들을 관찰하면서도 고유의 상상력으로 인간 삶의 조건을 진실하게 성찰한 작품으로 재평가되었고, 프랑스 북부 탄광촌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총서 제13작 『제르미날』과 쌍을 이루는 걸작으로 널리 사랑받게 되었다.

패주

<패주> 광기어린 전쟁과 혼돈의 패주 끝에 파멸한 한 시대와 인간들의 슬픔으로 그린 피의 벽화 에밀 졸라의 담대한 문학적 쇄신을 입증하는 걸작 자연주의 거장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총서 제19작 『패주』(1892)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보불전쟁)과 파리코뮌을 배경으로 파멸하는 한 시대와 인간들의 격동과 고통을 압도적 내러티브로 구현한 작품으로, 제2제정 시대의 총체적 벽화라 할 수 있는 루공마카르총서 최대의 장편이자 실질적 완결편이다. 전쟁에서의 잇따른 패배와 후퇴, 타락한 제정 사회의 붕괴, 굴욕적 강화와 수도 파리 포위, 코뮌 방화와 ‘피의 일주일’까지 역사적 사건들과 허구의 서사를 교직한 대작 ?패주?는 프랑스인의 집단의식 한복판에 존재하는 상처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도 같으며, “완전하고 위대하고 영웅적인 우정, 한 세계의 종말, 한 국가에 닥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재앙”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프랑스를 그린 “19세기 프랑스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상찬되었다.

쟁탈전

<쟁탈전> 에밀 졸라의 소설. 파리를 세계의 중심지로, 현대적 도시로 바꾸려는 오스망의 야심 찬 파리 개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의 투기 열풍에 대해 객관적으로 진술하는 동시에, 제2제정하의 파리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 배금주의와 육체적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대규모 파리 개발 계획과 이로 인해 태어난 벼락부자들의 사치스러운 행각들, 제정의 비윤리성과 수치스러운 행태들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