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영
박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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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임종 연구소

<주마등 임종 연구소> “사람은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 있어. 그래서 여기 왔잖아.” SF어워드 대상 수상 작가 박문영이 초대하는 세계 원하는 시공간에서 암호를 말하면 당신의 임종이 시작된다 2015년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대상, 2019년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작가 박문영의 신작 소설 『주마등 임종 연구소』가 소설Q 아홉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사회에서도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존엄사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여성 간의 연대를 그리는 이 소설은, 첫 장부터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밀도 높게 제시하며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된 직후의 미래 세계, 연계기관으로 설립된 ‘주마등 임종 연구소’는 지원자들에게 시공간을 넘어 원하는 장면에서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행복한 장면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연구소의 설명과 달리, 임종 과정 중 갑작스러운 발작을 겪고 의식불명에 빠진 지원자가 등장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독자가 자신의 죽음과 조우하게 하되, 결국 ‘살아감’에 대해 생각하도록”(해설, 김보영) 이끄는 이 소설은 존엄한 죽음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가져갈 건 이야기, 당신에게 가장 따스한 주마등을 제공해드립니다.” 주마등 임종 연구소는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일종의 임종 환경 설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원자들은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한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 그 시공간을 체험하며 마지막으로 머물 곳을 정한다. 멈추고 싶은 곳에서 암호를 말하면 임종이 시작된다. 지원자들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잃은 사람들이다. 질병이나 노화로 더이상 손쓰기 어려운 몸을 가졌거나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우울과 가난을 겪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가까운 이가 자신의 시체를 수습할 일, 장례 전후의 절차나 비용 문제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준 높은 숙식과 간병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도 지원자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간소하다. 그저 행복한 기억을 꺼내어 보여주는 일. 연구소에서는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다 천천히 마지막 순간을 맞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며 균열이 시작된다. 부작용은 크지 않다던 연구소의 설명이 무색하게, 지원자 중 한명이 임종 체험 과정 중 발작을 일으킨다. 의식불명인 채 병동으로 옮겨진 그는 깨어난 후에도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건을 더 파헤쳐야 한다는 직원 천미조와 조용히 덮어야 한다는 명소장이 대립하며 소설의 분위기는 점차 고조된다. 저자 박문영은 주요한 두 여성 인물을 지원자로 배치해 평온하게만 보이던 연구소의 실상을 드러낸다. 다른 지원자는 물론 직원과도 소통하지 않던 허이경과 연구소 내에서 각종 갈등을 일으키던 장에스더는 사소한 계기로 절친한 사이가 된다. 대부분이 고령인 지원자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청년인 이들은 연구소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엮이게 된다. 연구소 내 화젯거리이기도 한 둘은 의문의 사고와 암시되는 비리들에 점차 가까워지며 고요한 수면 아래의 문제들을 파헤쳐간다. “거기서 죽을 수 있으면 거기서 살 수도 있잖아.” 삶과 죽음에 대한 아름답고 서늘한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좋아하는 장소로 가는 따스한 임종 장면을 상상하며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덧 서늘해진다. 시뮬레이션에 등장한 적 없는 엉뚱한 곳으로 가거나 끔찍한 복수를 하며 혼란과 고통의 감정 속에서 죽음을 맞는 지원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오히려 현실과 더 가깝게 닿아 있어 섬뜩함을 자아낸다. 소설은 “이것은 화려한 꿈이나 아름다운 기억의 체험 따위가 아니라 ‘죽음’이고, 너는 지금 생을 끝낼 생각을 하고 있다며”(해설) 포장된 죽음의 맨얼굴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소설은 묻는다. 만약 가장 행복한 순간에 죽을 수 있고, 그 순간을 튼튼히 설계해볼 수도 있다면 그 순간에서 삶을 이어가는 일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기에 소설 『주마등 임종 연구소』는 환경, 여성권, 동물권 등 우리 사회의 민낯과 맞닿아 있는 문제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해온 저자 박문영의 새롭고 단단한 목소리로도 읽힐 것이다.

지상의 여자들

<지상의 여자들> 국내 SF 작품을 꾸준히 출간하는 그래비티북스가 내놓는 다섯 번째 GF 시리즈. 지구 밖 외계존재에 의한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새로운 젠더 감수성을 일깨우는 페미니즘 장편SF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하는 2018 과학스토리 기반 과학융합 콘텐츠 창작 프로젝트 사업의 지원을 받은 작품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제1회 큐빅 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파경>으로 수상을 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제2회 SF어워드 중편소설 분야에서 <사마귀의 나라>로 대상을 받은 박문영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실재하진 않지만 마치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만 같은 소도시 '구주'. 이곳의 남성들이 흔적 없이 실종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실종의 원인을 사이비 종교의 범행에 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집단 착란이라고도 한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외계 지성체의 존재는 구주 남성들의 실종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빠뜨린다. 사회의 순기능이라 여겨졌던 현상은 점점 여성들에게도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실종이 시작되자 남편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성연'. 그런 성연을 바라보며 성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희수'. 재난 속에서도 스스로를 응시하고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려는 이들의 위태로운 이야기가 담담히 펼쳐진다.

세 개의 밤

<세 개의 밤> 21세기 판 《멋진 신세계》, 한반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제2회 한국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사마귀의 나라〉의 긴 이야기 한국SF어워드 중단편 부문과 장편 부문에서 모두 본상을 수상한 박문영 작가가 그리는 비참하도록 아름답고, 눈물나도록 성스러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가장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벽 바깥’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 — 정보라, 소설가 “판타지로 한 겹 감싼 감상적인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프도록 현실적이다.” — 황모과, 소설가 《세 개의 밤》은 다양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 자본주의가 독식하는 세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미래 예측 보고서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 투쟁기이다. 또한 잔혹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 나가는 세 청소년의 성장기로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의 대답을 찾기 위해 독자가 자꾸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추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세 개의 밤》은 가장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벽 바깥’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보도록 해주는 작품이다. 국가 권력이 자본의 권력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자본이 광고하는 유토피아란 얼마나 연약하고 기만적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자본이 제공하는 화려한 눈속임과 헛된 말장난에 속지 않고 다른 존재를 짓밟거나 죽이지 않고 다 같이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