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올해로 등단 42년차를 맞는 오정희 작가의 첫번째 장편소설 『새』의 개정판이다. 1996년 6월에 초판을 발행한 『새』는 그간 16쇄를 증쇄하며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온 작품이다. 이 개정판을 통해 오정희 작가는 10여 년 만에 문장을 가다듬고 수차례의 퇴고를 거쳤으며, 외형도 현대적 감각에 맞도록 판형과 서체를 일신해 새롭게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한국 문체 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오정희 작품에 탄탄한 장편 서사를 더한 작품으로서 확고한 마니아층을 보유해온 이 작품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남매의 짙은 상실감과 방황을 정갈한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장편소설 『새』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열두 살 소녀의 눈을 통해, 세상의 황폐하고 구석진 삶의 현장을 서럽고도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저자는 주인공 우미를 통해 불우한 상처와 그 기억이 한 영혼을 어떻게 병들어가게 하는지를 담박한 문장 속에 잔잔히 녹여내고 있다. 작가는 새로이 덧붙인 ''작가의 말''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보호로부터, 존중으로부터 내쳐진 아이들은 문 없는, 단단히 봉인된 방과 같았고, 나는 있지도 않은 문을 찾아 안타깝게 더듬대는 형국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작가는 『새』를 집필하는 내내 철저하게 어린 소녀의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이 세상의 선과 악, 행과 불행의 뿌리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오정희의 기담> 읽을수록 빠져드는 옛이야기 재미 반전 감동의 서사 어머니와 아내라는 역할에 가려져 있는 한없는 자유에의 갈망을 그리며 여성/개인의 내면에 끓어오르는 고요한 충동에 천착해온 작가의 깊이 있는 손길은 이 책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와 만나 술술 읽히는 재미를 더했다. 기이하고 흥미로운 상황에 던져진 인물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잔잔한 감동의 여운이 가슴에 남는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단둘이 살아가던 윤호 윤옥 남매. 사랑하는 남동생을 잃은 뒤 삼 년 뒤에 돌아와 동생을 살리겠다는 다짐을 하고 집을 나선 윤옥은 남장을 한 채 대감 집에서 착실히 머슴살이를 하며 신임을 얻는다. 이윽고 여자의 몸으로 장가까지 들게 된 윤옥은 대감 집에서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는 신비한 꽃 세 송이를 발견한다. 훗날 윤옥이 맞이하게 된 쓸쓸한 봄날을 그리고 있는 「어느 봄날에」. 구렁이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우여곡절 끝에 부인을 맞이해 허물을 벗고 사람이 된 남자. 과거를 보러 집을 떠나 있는 동안 허물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부인의 실수로 그는 인간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산길 들길 가시밭길을 헤치며 남편을 찾아다니던 아내는 더는 길이 없는 곳에서 바다처럼 넓은 못을 마주하고 탄식을 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그 속으로 뛰어드는데…… 뱀이 사람이 되기까지, 한 부부가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절절한 여정을 담은 「그리운 내 낭군은 어디서 저 달을 보고 계신고」. 딸아이의 예쁘기가 꼭 맑은 물에 떨어진 새빨간 앵두 같아 붙은 이름 ‘앵두’. 아들만 아홉인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사랑받았지만 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떠나보내게 된다. 새어머니의 질투와 오해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막내딸의 이야기를 담은 「앵두야, 앵두같이 예쁜 내 딸아」. 앵두는 물에 뛰어들기 직전 아버지에게 당부한다. 돌아가시는 길에 배나무가 죽었으면, 앵두가 다 떨어졌으면, 으름덩굴이 시들었으면 자신이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알라고. 억울하게 죽은 혼은 접동새가 되어 새빨간 울음을 토해내며 노을 진 하늘을 날아간다. 글을 읽느라 손 하나 까딱 않는 백면서생 남편을 위해 가난을 견디며 온갖 고생을 한 아내 「고씨네」. 과거를 보러 떠난 남편은 몇 해가 지나도 소식이 없어 사냥꾼에게 시집을 갔으나 새로 얻은 남편마저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기구한 팔자다. 과거에 급제해 자신이 살던 마을로 금의환향하는 남편. 다시 자신을 받아달라는 아내에게 남편은 물동이를 하나 가져오라 말하고…… 달빛도 길잡이가 되지 못하는 어둔 밤 산중에서 까물대는 불빛을 좇아 밤길을 가는 「용화산」의 나그네. 나그네가 헤매는 어둡고 깜깜한 산길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을 은유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작가가 그리는 이야기에는 우리의 헤맴이 헛수고만은 아니리라는 믿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어두워져야만 보이는 작은 불빛이 있다. 별도 태양의 환한 빛 아래에서는 목격할 수 없는 법. 우리가 아득한 산속에 던져진 후에야 아주 작은 불빛이, 머리 위의 별빛이 보일 것이다. 이 외에도 일손 빠르기로 소문난 처녀의 신랑감을 구하는 유쾌한 이야기 「누가 제일 빠른가」. 배불리 저녁밥을 얻어먹은 대가로 산적들을 물리쳐준 호탕한 장사가 나라를 구한 장군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주인장, 걱정 마시오」. 짚으로 만든 북을 짚방망이로 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자를 찾는다는 중국 천자의 유언에 지혜로운 누이동생과 함께 먼 중국 땅까지 여행을 떠난 사내의 이야기, 「짚방망이로 짚북을 친 총각」. 황소 삼천 마리를 죽인 자여야만 북을 울릴 수 있다는 말에 발길을 되돌리려 하지만 누이동생은 포기하지 말라며 그를 만류한다. 드디어 짚북이 있는 누각에 도착한 사내는 짚방망이를 들어 깊은 잠에 든 북을 힘껏 내리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