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
이주란
평균평점
한 사람을 위한 마음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담담한 듯하지만 위트가 반짝이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을 세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이주란 소설가, 그가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첫번째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이후 두번째 소설집을 내놓았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는 ‘공감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성립될 수 있다는 묘한 깨달음’을 느꼈다는 은희경 소설가의 심사평과 함께 2019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넌 쉽게 말했지만」,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된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현대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등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젊은작가상의 심사를 맡은 권희철 평론가는 이주란의 소설에 대해 ‘내게는 가장 곤란한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 대한 지지를 결코 철회할 수 없다고 느끼면서도 이것이 왜 수상작이 되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주란의 팬임을 자처하는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 또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그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주란의 소설이 지닌 매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울한 상황에서도 자조적인 유머를 놓지 않고, 비애로 가득한 순간에도 스스로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은 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담담한 어조? 주의를 두지 않으면 좀처럼 의식할 수 없지만 우리를 이루고 있는 삶의 소소한 순간들과 마음들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섬세함? 가까운 친구에게 내밀한 마음을 털어놓을 때처럼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실함? 그것이 무엇이든 이주란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특별한 사건 없이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그 이야기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의 나

<어느 날의 나>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마흔두 번째 책 출간!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마흔두 번째 소설선, 이주란의 『어느 날의 나』가 출간되었다. 주인공 ‘유리’가 3개월에 걸쳐 써내려가는 기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서로를 아끼고 살아가는 이들의 연대하는 삶을 덤덤하게 그린 소설이다. 2021년 『현대문학』 1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작품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묘하게 궁굴려지는 한결같은 작품세계” 2012년에 등단한, 11년차 소설가 이주란은 그동안 두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상자했다. <김준성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며 그 성과를 인정받은 이주란은 삶의 구석구석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뻔뻔스러운 농담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능청스러움이 믿음직스럽다는 극찬을 받은 첫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상실과 외로움 속에서도 회의에 빠지지 않고 어떤 희망을 발견해내는 인물들을 통해 위로받는” 두 번째 소설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시 없이 시로 가득하고, 청승 없이 슬픔의 끝점을 보여준다”(박연준)는 평을 받은 첫 장편소설 『수면 아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작품세계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소설들은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고, 결정적인 사건도 없으며, 심지어 연계된 줄기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란 소설이 보여주는 묘한 끌림의 배후에는 각각의 이야기들 안에 내재된 풍성한 서사와 그것들을 그러모으면 신기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 이루는 조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 소설 『어느 날의 나』에서도 그런 이주란 소설의 특징을 만나볼 수 있다. “오늘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다"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빚더미에 앉은 유리에게 선배 언니는 3등에 당첨된 복권을 내밀며 방을 얻으라고 했다. 출구 없어 보이던 유리의 삶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지금은 그 선배 언니와 함께 살며 가족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유리와 언니는 동거하지만 서로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는다. 영화관에 같이 가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영화를 보고, 같이 산책에 나서지만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런 그들의 삶에 유리가 일하는 카페의 단골인 싱글 대디 재한 씨가 등장한다. 재한 씨는 금세 그들 사이에 스며들어 함께 식사를 하고 캠핑도 같이 가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재한 씨는 퇴장한다. 생일도 아닌 유리에게 생일 선물을 마지막으로 건네며.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그게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거나 대단한 미래를 꿈꾸며 살지는 않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어차피 바꿀 수 없고 오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으니까. 가진 것을 생각하면.”(113-114쪽) 삶을 계속 살게 하는 힘은 완벽한 이해나 뜨거운 사랑이 아닌, 어떤 존재를 염려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작품이다. “불행은 동행을 좋아한다. 유리의 곁에도 자신의 불행을 고백하며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다른 누구도 아닌 유리 자신의 고백이라는 것, 괜찮을 게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어느 정도 괜찮”다는 이 무심한 고백이야말로 이주란이 그려내는 사소하지만 지속적인 연대라는 것. 아무도 유리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 무심하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유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아니지만 그런 기적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임현(소설가)

모두 다른 아버지

<모두 다른 아버지> “스물하나에 뭘 했더라? 남자에게 차여 식음을 전폐한 뒤 말라 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쁘지 않았군.” 능청스러운 입담 속 서늘한 통찰로 새로운 가족 서사를 쓰는 이주란의 첫 번째 소설집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이주란의 첫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주란은 도시의 외곽에서 살아가는 빈곤한 사람들의 삶을 낙담과 자학이 섞인 넉살로 재현해 왔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신세 한탄이 아닌 뻔뻔스러운 농담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능청스러움이 믿음직스럽다.”는 평가로 문단에 존재감을 드러낸 이주란의 첫 소설집은 웃음과 씁쓸함이 수시로 교차된다. 찰리 채플린에게 삶이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다면, 이주란에게 삶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포착된 희극과 비극의 뒤섞임이다. 쓴웃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주란만의 오묘한 비감이 소설집의 유머러스한 핍진성을 완성시킨다. 이주란식 업둥이의 탄생 <모두 다른 아버지>의 주요 모티프는 가족으로, 이주란의 가족 서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을 무너트린다. 그 무너짐의 시작에 “모두 다른 아버지”들이 있다. 이주란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나’와 이복형제들에게 모두 똑같은 이름을 지어 주거나, 편의점 직원에게 폭력을 휘둘러 한쪽 눈이나 멀게 한다. 이 문제 많은 아버지들은 징그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두려우면서도 한심하다. 이주란 특유의 입담으로 희화화되는 아버지라는 대상은 더 이상 어떤 권위도 지니지 못한다. 가부장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의 연결 고리는 아버지의 몰락을 통해 느슨해진다. 그 틈을 뚫고 이주란식의 ‘업둥이들’이 탄생한다. 이 업둥이들은 부모라는 성역을 무력화하며 자신의 근원을 부정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함께 고통받은 자매(형제)만은 가족으로 인정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주란의 소설 속 인물들을 가족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몸속에 흐르는 피가 아니다.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받은 고통에 대한 공통된 경험이다. 혈연이라는 질긴 믿음을 허상으로 만들면서 무너트린 가족의 자리에는 고통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가족이 있다. 나의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기 이주란의 소설은 농담과 거리 두기로 삶을 견디는 사람들을 보여 준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마치 타인의 인생에 촌평을 더하는 것처럼 “내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닌 것 같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들은 인생이 ‘나’의 소유가 아니니 이대로 가난하고 지질하게 살거나, 삶을 포기해도 된다는 듯이 무기력하게 군다. 이때 소설 속 인물들이 내비치는 무기력함은 희망에 속지 않고 불행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방어막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함께한 가난과 불행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는다. 한눈을 팔면서 자신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소소한 이유들을 찾는다. 「에듀케이션」에서 ‘나’는 “다음 선거를 기다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살아 있는 것 말고 무엇인지 생각했다.”고 말한다. 「참고인」에서의 ‘나’는 “앞으로는 절대 희망적인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다음 선거’와 ‘앞으로는’이라는 말 속에 든 미래는 여전히 밝지 않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주란의 소설이 미래를 기다리는 방식이란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말하면서도 지금보다는 나은 미래를 소심하게 기다리는 우리의 현재와 닮았다. 느슨하면서도 매력적인 ‘백치’들의 목소리 자학적인 농담들이 곳곳에 산재한 이주란의 문장은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어디로 튈지 예상불가능한 독특한 리듬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을 멍청하다 말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체념한다. 마치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백치처럼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내보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주란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고스란히 소설로 가져와 ‘백치의 언어’를 발명한다. 일말의 엄숙함도 들어설 자리를 만들지 않는 능청스러운 문장들로 삶의 지난함을 끄집어낸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할수록 삶의 균열은 더 선명해진다. 이주란의 백치들이 우리 주변에 실존하는 누군가로 느껴지는 순간, 문학과 현실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희극과 비극은 뒤섞인다.

수면 아래

<수면 아래> 한국문학의 독보적 감수성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수상 작가 이주란 첫 장편소설 극적인 장면 없이 고루 팽팽하고, 대단한 플롯 없이 완벽하며, 시 없이 시로 가득하고, 청승 없이 슬픔의 끝점을 보여준다. _박연준(시인) 일상적 풍경에서 강렬한 감정의 파동을 만들어내는 독보적인 감수성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주란 소설가가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첫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부터 젊은작가상 수상작(「넌 쉽게 말했지만」), 김유정문학상 후보작(「한 사람을 위한 마음」) 등이 수록된 두번째 소설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까지, 조용한 위트와 무심한 온기, 말과 말 사이의 여백으로 정서를 전달하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이주란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다. 2021년 <주간 문학동네> 연재를 통해 독자들에 먼저 선보인 뒤 세심한 퇴고 과정을 거쳐 출간된 『수면 아래』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함께해오다 결혼한 두 사람이 아이를 잃는 커다란 상실을 겪은 뒤 다시 삶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두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에 이혼을 택했지만, 완전히 이별하지는 못한 채 가까운 곳에서 일상을 나누며 살아간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을 공유한 두 사람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며 일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잔잔하지만 널리 퍼지는 수중의 파동처럼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깊은 상실을 공유하고 헤어짐을 택한 두 사람 삶의 파동에 흔들리며 조금씩 나아가는 그들의 이야기 나는 이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우경과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우리는 열일곱 살에 처음 만났다. 삶의 반 이상을 함께해왔고 중간에 한 번 결혼을 했다가 헤어진 적이 있다. 결혼식을 하던 날에는 평소 말수 적은 나의 어머니와 우경의 동생 우재까지, 넷이서 차례로 울었던 것 같다. _본문 중에서 해인은 매일 아침 마을버스를 타고 ‘해동중고’라는 이름의 한 중고물품점으로 출근한다. 그녀의 일상은 새로 들어온 중고 물품을 닦아서 진열하고, 종종 물건을 팔러 가게에 들르는 장미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게 근처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등의 작은 일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녀는 가끔 우경을 만난다. 우경은 해인과 같이 동네를 걷기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해인의 집에 와서 함께 카레를 먹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나누기도 한다. “한 번 결혼을 했다가 헤어진 적이 있”는 그들은 일상에서 때때로 즐거운 순간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즐거움은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기억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힌다. 우경이 더없이 좋다고 느낄 때마다 왜인지 그날의 우경이 천천히 떠오르곤 한다. 우리는 누구도 그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낸 적이 없다. _본문 중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지 않는 ‘그날 일’. 해인의 서술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에서는 (아마 차마 말할 수 없기에) 분명히 언급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일이 두 사람이 베트남에서 아이를 잃고 돌아온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해인과 우경이 말없이 공유하고 있던 커다란 상실의 아픔은 잔잔하게 이어지는 듯 보였던 풍경에 전혀 다른 색채를 덧입힌다. 그리고 어느 날 우경은 해인에게 상사로부터 베트남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아픔을 딛고 나아가고자 하는 우경, 괜찮느냐는 물음에 여전히 괜찮다고 대답할 수 없는 해인. 우경은 해인에게 그곳에 함께 가자고 말하고, 그로 인해 그동안 깊은 수면 아래 아픔을 묻어둔 채 지내온 두 사람의 관계에 고요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아이의 슬픔과 기쁨

<아이의 슬픔과 기쁨> 네 명의 소설가가 아이들이 겪는 감정을 하나씩 택해 소설로 풀어냈다. 어쩌면 아이들이 느끼는 고독은 수십 년을 더 산 사람이 겪는 고독과는 다를 수도, 비슷할 수도 있다. 혹은, 아이들이야말로 정말이지 고독할지도 모른다. 어른과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또 같은 감정을 느끼지만 아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세상에는 슬픔을, 기쁨을, 사랑을, 고독을 느낄 일이 셀 수 없이 많고, 그걸 전부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평생 동안 느낀 슬픔을, 기쁨을, 사랑을, 고독을 아주 커다랗고 벅찬 기억으로 갖고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아이들은 더 슬프고, 더 기쁘고, 더 사랑하고, 더 고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