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판)>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 레프 톨스토이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 단편선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로 일컬어지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이다. 대표작인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해 명성을 얻은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현실과 고통받는 러시아 민중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해 생동감 있게 그려내 러시아 리얼리즘의 절정을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민중에 대한 사랑과 깊은 휴머니즘, 도덕에 대한 성찰을 민화 형식의 짧은 소설로 만들었다. 1870년대 말부터 러시아의 옛이야기, 전설, 우화, 복음서의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형식과 내용으로 다시 풀어 써 ‘민화’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노인」 「바보 이반 이야기」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등은 톨스토이의 손끝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삶의 교훈과 지혜를 안겨준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성찰해보도록 하는 톨스토이 대표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더디퍼런스 출판사에서 〈더디 세계문학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더디 세계문학 시리즈〉는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불멸의 고전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마트한 사이즈에 모든 연령의 독자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작지 않은 본문 글자 크기로 디자인하여, 세계적인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와 행복을 찾아가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세르기우스 신부> "세르기우스 신부를 통해 본 톨스토이의 인생관과 종교관"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문호이며 세계적인 거장 톨스토이의 숨어있는 작품이다. 야망과 신분상승을 꿈꾸던 장교 카사츠키는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고 그녀가 황제의 애인이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속세를 저버리고 신부가 되는데…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 꿈의 의미가 이것이었구나! 파센카는 내가 해야 했건만 결국 하지 못한 그런 일을 했어. 난 신을 위해 산다는 핑계로 사람들을 위해 살았어. 반면에 그녀는 사람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면서 신을 위해 살고 있었어. 그래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베푼 물 한잔처럼 정말 선한 행동은 내가 사람들에게 베풀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은혜보다도 훨씬 더 가치를 지니고 있지. 하지만 거기에는 결국 신을 섬기려는 진실된 욕망은 조금도 없지 않은가?" 그가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했다. - 본문 중에서
<예멜리얀과 북> 예멜리얀은 머슴으로서 주인집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예멜리얀이 일하러 가는 도중에 개구리 한 마리가 갑자기 뛰어나와 위태롭게도 밟힐 뻔했다. 예멜리얀이 개구리를 피해 갈려고 할 때 아름다운 처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예멜리얀은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도중에 임금이 그 아름다운 부인을 탐하고 싶어 갖은 시련을 예멜리얀에게 준다. 하지만 예멜리얀은 부인의 지혜로 이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자신의 것이 아닌데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세계문학산책9] 전쟁과 평화> 세계문학산책 9 전쟁과 평화 인간의 가슴속 사랑을 일깨우는 톨스토이의 대표작 1805년 러시아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할 무렵부터 1820년 모든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15여 년 동안 수많은 사건과 인물을 등장시켜 방대한 줄거리를 엮어 나간 고전 중의 고전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닌 사랑이라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성보다는 감성, 감성 중에서도 사랑과 연민이 삶의 원동력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일깨워 준다. 지난한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삶의 대서사시 볼콘스키가의 안드레이는 권태로운 현실을 피해 전쟁을 코앞에 두고 군대에 들어간다. 첫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안드레이는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가 아들을 낳다 죽어 홀아비가 된다. 파리 유학에서 돌아온 베주호프가의 피에르는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결혼도 하지만, 사치스럽고 방종한 아내 때문에 불행하다. 시골 지주인 로스토프가의 니콜라이는 대학을 그만두고 전쟁에 뛰어들어 부상을 입으면서도 용감하게 활약한다. 안드레이는 나타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안드레이와 나타샤의 결혼은 집안의 반대로 1년 뒤로 미뤄진다. 안드레이가 여행을 떠난 사이에 나타샤는 다른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고, 이에 실망한 안드레이는 전쟁터로 떠나 버린다.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안드레이는 큰 부상을 입는다. 나타샤는 피난길에 부상당한 안드레이를 만나고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켜 준다. 피에르는 나폴레옹 암살을 기도하다가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지만 다행히 구출된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프랑스군이 퇴각함으로써 전쟁은 끝난다. 나타샤는 아내를 잃은 피에르와 결혼하고, 니콜라이는 안드레이의 여동생 마리아와 결혼한다. 끔찍한 전쟁을 겪은 그들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깨닫는다.
<톨스토이 단편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중단편 모음집. `악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을 포함해, 총 21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러시아 인들의 사고와 정서, 문화뿐 아니라, 작가인 동시에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했던 대작가의 사유를 접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수록된 21편의 작품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러시아 정교회에 파문을 당할 무렵부터 작가가 파고들었던 초기 기독교 사상의 영향이 드러난 소설들이다. `바보 이반`, `두 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우화적인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귀족의 지위를 포기한 채 스스로 노동과 채식생활을 하던 톨스토이는, 당시 짜르가 지배한 제정 러시아의 잘못된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일련의 소설들을 발표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 땅이 필요한가`, `죄인은 없다` 등이 바로 그러한 성향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크로이처 소나타> <크로이처 소나타>는 검열에 걸려 출판 금지 처분을 받기 이전에 이미 필사본으로 시중에 유통되어, 세상의 커다란 관심을 야기한 작품이다. 두 편으로 나뉜 독자는 톨스토이를 호평하거나 악평하며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황제 알렉산드르 3세도 이 작품이 비윤리적인 작품이 아니라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지만, 황후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블룸(Harold Bloom)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톨스토이는 적어도 반쯤 미쳐 있고,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일반적인 성행위를 일절 금지하는 금욕을 통해 구원과 치유를 기대한다. 그런 가정에서 쓴 이야기가 보통 이상으로 읽을 가치가 있고 뛰어나다는 사실은 톨스토이의 천재성이 다른 사람과 비길 데 없다는 당혹스러운 증거다.”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기차는 주인공의 운명에서 죽음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는 기차가 새로운 문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톨스토이는 자연을 선으로 보고, 이와 대립되는 문명을 악으로 본다. 그는 철도나 공장 건설 등을 반대한 가부장적 농민 사회 건설의 투철한 지지자였다.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를 기차 안에서 만난 주인공과 화자의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다. 즉, 그는 주인공이자 광기 어린 화자인 포즈드니셰프가 기차 안에서 만난 일인칭 화자인 ‘나’를 비롯한 승객들과 토론을 하며, 화자에게 자신의 과거, 즉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작별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크로이처 소나타>의 제2장의 처음에서 주인공의 섹스관, 사랑관, 결혼관, 여성관 등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나이 든 부인과 진정한 결혼과 사랑에 관한 테마로 격론을 벌인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성도착증자 포즈드니셰프는 여성, 특히 상류층의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상류사회의 삶을 창녀촌의 삶과 비교하기도 한다. 성도착증자인 그는 “여자는 쾌락의 도구다”라는 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면서도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여성을 쾌락의 도구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 노예 상태에 빠진 여성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결혼은 일종의 계약이며, 매매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결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허니문 후 사나흘 만에 시작한 부부 싸움을 육체적 사랑 때문이라고 보며, 결혼은 행복과 거리가 먼 힘든 그 무엇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욕정, 특히 성욕을 절제와 순결을 통해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욕은 아주 무서운 악이자 투쟁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톨스토이는 육체의 쾌락을 위해 피임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포즈드니셰프도 자신의 아내가 건강이 나빠 “파렴치한” 의사의 권유로 출산을 중단하고 피임하자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고집을 피워 주장을 관철시킨 점을 강하게 비판한다. 포즈드니셰프는 자신의 아내가 바이올리니스트와의 불륜에 빠진 모습을 목격하고 강한 질투에 불탄 상태에서 살인을 자극하는 베토벤의 소나타 9번 곡, 즉 크로이처 소나타 곡 때문에 그녀를 죽인다. 그는 음악과 미술 등의 예술을 인간을 부도덕하게 만드는 더럽고 무서운 대상으로 보았다. 그는 베토벤의 소나타 곡 때문에 아내를 살해했다고 말한다. 그녀가 트루하쳅스키란 바이올리니스트와 불륜에 빠졌고, 그의 관점에서 음악이 두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는 데 매개체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당시 ‘자유 부인’처럼 행동하는 여주인공과 같은 여성의 행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포즈드니셰프도 비판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많은 작품에서 ‘가정’에 관한 테마를 통해 가정, 특히 부부 관계의 중요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가정의 행복과 불행은 부부 간의 갈등이 어떻게 해소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개정판 | 위조 쿠폰> 만년의 톨스토이가 도덕적 탐색과 진리 추구를 계속해 나가는 과정에서 탄생시킨 걸작이다. 작은 위조 쿠폰 한 장에서 시작된 ‘악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국내 처음으로 러시아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했기 때문에 톨스토이의 숨결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악의 연쇄 고리 이 책은 제1부와 제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제1부는 일련의 사건들이 계속 인과관계로 연결되면서 축적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중학생이 만든 위조 쿠폰으로 인한 작은 거짓의 시작 → 위조 쿠폰이 통용되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자꾸 ‘위조 쿠폰 사건’(악)에 연루됨 → 이반 미로노프라는 한 농부의 인생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일어남 → ‘악의 연쇄 고리’가 만들어지고 ‘악의 순환’이 반복됨]. 이러한 구조는 세상사에서 그 어떤 것도 흔적 없이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과 연관된다. 나아가서는 인간이 행한 모든 악은 장차 이런저런 방법으로 소환되고, 다른 이들을 해치면 결국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악의 고리에 대처하는 방법 제1부가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악의 구(球)가 ‘어떻게 퍼져 나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면, 제2부는 선의 힘이 그것을 ‘어떻게 차단하고 끊어 내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다. 악의 고리를 끊어 내고, 악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선의 힘’은 ‘악에 대한 무저항주의’ 혹은 ‘악을 삼켜 버리는 행위’에서 나온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신념이자 확신이다. 1898년 6월 12일 그의 일기 한 대목이 그의 신념을 대변한다. “악에 대한 무저항주의는 인간 자신을 위해서도, 사랑의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오직 이 한 가지 무저항주의를 통해서 악을 중지시키고, 악 그 자체를 삼켜 버리고, 악을 무력화하고, 악이 더 이상 확산되는 걸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만약 악을 삼켜 버리는 그 힘이 없다면 탄력성이 좋은 구(球)의 움직임처럼 악이 필연적으로 퍼져 나간다. 살아 움직이며 활동하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교리)를 만들고 창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삼켜 버리기 위해서 존재한다. ‘쿠폰’에 관한 이야기를 완성하길 간절히 원한다.”
<홀스토메르/무엇 때문에?> 작가의 자아와 독자의 자아가 서로 뒤엉키며 울림과 반향을 낳는 중편소설 <홀스토메르>는, 탄생(삶)에서 소멸(죽음)로 향하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다. 이 작품은 1861년에서 1863년 사이에 이미 주된 내용이 집필되었다. 하지만 20년가량이 지난 1885년에 다시 쓰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듬해인 1886년에 모스크바에서 출간된 ≪톨스토이 작품집≫(5판)에 수록되었다. ‘어느 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홀스토메르>의 창작은 1860년대의 초반 작업과 1880년대의 후반 작업으로 대별된다. 1860년대의 초반 작업에서는 담백하고 확신에 찬 강한 어조로 세르푸홉스코이와 홀스토메르의 전성기, 그들의 화려하고 행복한 시절을 강조해서 묘사한다. 1880년대의 후반 작업에서는 사실적 어조로 세르푸홉스코이와 홀스토메르의 쇠퇴기, 그들의 늙고 추레한 시절을 강조해서 묘사한다. 톨스토이는 자동화된 우리의 의식에 일격을 가하는 ‘낯설게 하기 기법’으로(홀스토메르의 의식의 프리즘으로) 인간 사회의 부조리, 사회적 위법, 소유권의 문제, 사회적 강압, 심리적 강제와 폭행, 전횡, 박해 등을 표현하는 한편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 미와 추, 젊음과 늙음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드러낸다. 종국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해독하지도 못한 채 허둥대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편하더라도 삶의 진실을 직시하도록 이끈다. 톨스토이의 예술 세계에서는 다른 시공간에 배치되고 정돈된 사물들과 주체들을, 젊음과 늙음, 미와 추, 선과 악, 삶과 죽음이라는 장(場)에 나란히 배열시킨다. 그리고 합(合)을 선명하게 도출해 내기 위해서 젊음과 늙음, 미와 추, 선과 악, 삶과 죽음을 대조시킨다. <홀스토메르>는 톨스토이의 여느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조의 기법’ 위에 구축된다. ‘젊은 홀스토메르’와 ‘늙은 홀스토메르’의 대조와 더불어, ‘늙은 홀스토메르’와 ‘젊고 생기발랄하고 건강한 말 떼’의 대조도 나타난다. 이러한 대조는 도덕성의 문제, 선악의 문제, 기생충 같은 삶과 노동하는 삶의 문제를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면서 후기 톨스토이의 관념(идеа)과 이상(идеал), 나아가서는 그의 사상(идеология)까지도 표현한다. 온몸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내며, ‘붉은 분노’를 품은 채 역사를 밀고 나간 ‘한 인간의 실존적 아픔과 고통’을 형상화한 중편소설 <무엇 때문에?>의 집필은 1906년 1월부터 4월에 걸쳐서 이루어졌고, 1906년 모스크바에서 발간된 저서 ≪독서회≫에 처음으로 수록되었다. 이 작품의 주제와 대부분의 줄거리는 막시모프(С. В. Максимов)의 ≪시베리아와 강제 노동≫에서 취했다. 막시모프의 이 작품은 톨스토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1906년 2월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랴나를 방문한 스타호비치(С. А. Стахович)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막시모프의 유명한 작품 ≪시베리아와 강제 노동≫을 읽어보았소? 강제 노동과 유형(流刑)의 역사적 묘사가 눈에 띄오. 한번 읽어보시오.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행동하는지, 짐승들도 정부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잔인하게 할 수는 없을 거요.” 유형을 당해 강제 노동에 처해진 폴란드인 미구르스키와 그의 아내 알비나는 실재했던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들 생애의 모든 비극적 이야기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톨스토이는 이들의 이야기에다 인간이 처한 상황과 결부된 심리적 묘사를 도입한다. 그래서 이들은 민감한 영혼과 성정의 소유자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톨스토이는 국가(기구)의 억압과 강압의 희생양인 주인공들에 대한 아픔과 고통을 그려낼 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민족 해방운동에 대한 공감을 표출하고 있다. 저자는 ‘폴란드(인)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사료를 정밀하게 탐독했다. 특히 그는 1830∼1831년에 일어났던 폴란드 봉기와 관련된 문헌을 빌려서 연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품 곳곳에 산재해 있는 폴란드 봉기와 관련된 다섯 문장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책을 정독해야만 했다.” 주체와 사회 사이, 개인과 국가 사이의 틈새를 여행하게 하는 <무엇 때문에?>에 나타난 19세기 폴란드인의 아픔과 고통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한 21세기의 현실에서 자아를 웅크린 채로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의 아픔과 고통으로 치환되면서 ‘새로운 확장된 의미’를 창출한다. 우리는 이러한 아픔과 고통을 통해 ‘자아의 방기’로 나아가고 있는지, ‘자아의 단련’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자문해 볼 일이다. 지금 이 시대의 사회적 직업이나 노동은 단순한 돈벌이나 물질적 재화 획득 차원을 넘어서 자아를 표출하고 자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기에, 사회적 직업이나 노동이 곧 ‘바로 그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인간의 자기 창출(human self-creation) 행위를 원하는 대로, 안정적으로 할 수 없는 실존적 상황에 처한 미구르스키를 보면서 그의 아픔과 고통, 불안과 절망을 실로 절감하게 된다. 아울러 ‘위험을 관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픔과 고통, 불안과 절망도 ‘겹쳐서’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