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트, 안녕하십니까> ‘천재는 단명’이라는, 진부하지만 설득력 있는 말! 작가로서의 삶은 짧아도 작품은 영원하다. 가지이 모토지로의 작가생활은 실질적으로 7년 정도에 불과하고 본격적인 평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죽고 나서다. 서른 한 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이름과 작품은 일본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로 빛나고 있다. 세상을 뜰 때까지 죽음을 의식하면서도 향락과 쾌락을 추구하고 신변잡기적인 소재를 솔직 담백하게 써내려간 작품들은 불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사후에도 다듬어지지 않은 원고가 여러 편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저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집필에 대한 욕망과 열정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소개하는 다섯 편의 소설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저자의 순수하고 솔직한 감성을 선사함과 동시에 얼어붙은 가슴을 두드릴 것이다. 독자는 마음의 문을 열어 따스한 볕을 받을 준비만 하면 된다. 책속 한 구절 나는 내 이런 성격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저주스럽다. 떠올리기도 싫은 나의 치부에 동생의 잔꾀가 강한 타격을 입힌다. 더욱 혐오스러운 흉물로 확대한 풍자만화 같은 내 모습을 코앞으로 들이미는 것 같아 모욕적이다. ― ≪아이러니한 진실≫ 중에서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아무렇지 않게, 게다가 잽싸게 옆을 보며 걸었다. 서두르지 않는 척 서둘러 다시 어두운 길로 들어섰다. 세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가까이 갈 용기도 없다. 저들 중 둘이 그놈들과 닮았다.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던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격렬하게 요동친다. 겁쟁이, 소심한 놈, 하는 소리가 다시 가슴을 죄어온다. ― ≪하찮은 양심≫ 중에서 요시다는 잡화점 딸 이야기를 들은 후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요시다가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아직 몇 개월도 흐르지 않았건만 그동안 저쪽 동네 주민들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두 번 그 동네에 다녀올 때마다 반드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사람들은 대부분 폐병으로 죽었다. 듣다보면 그들이 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의 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 ≪태평스런 환자≫ 중에서 푸르고 드높은 하늘에는 구름이 하나 둘씩 아름답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채워지지 않은 다카시의 마음에도 이윽고 그 불길은 번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어째서 이토록 짧은 걸까.’ 다카시는 그 때만큼 허무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타오른 구름은 다시 하나 둘씩 식은 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걷기를 멈추었다. ― ≪겨울날≫ 중에서 손님 탕에 있을 때는 또 어떤가. 당연히 공동탕이 신경 쓰인다. 이번엔 남녀의 말소리는 아니다. 신경 쓰이는 곳은 계곡으로 통하는 출구다. 그곳에서 괴상한 놈이 들어올 것만 같아 신경이 곤두선다. 괴상한 놈이라니 대체 어떤 인간이냐고 남들은 물으리라. 그런데 그게 정말 끔찍하고 괴상한 놈이다. 음울한 얼굴에, 피부는 개구리처럼 거칠거칠하다. 그놈이 매일 밤 같은 시간에 계곡에서 탕으로 반신욕을 하러 오는 것이다. 후훗! 정말 어이없는 공상이 아닌가. ― ≪온천≫ 중에서
<세야마 이야기> 가지이 모토지로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일본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하권에는 정식으로 발표되었던 작품 외에 습작과 유고를 모았다. 대표작인 「레몬」의 모티프와 독특한 작품 세계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이 세상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각각의 사물에 대해, 다른 사물과 비교하여 우열이나 양부의 판단이 무의미한 사물 고유의 ‘미’를 발견하고, 다양한 위상으로 존재하는 대립물이나 혼합물, 불순물과 공존?융합?병치시킴으로써, ‘미’에 새로운 가치와 해석을 만들어냈다. 각각의 사물이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을 적확하게 찾아내 작품화하기 위해 가지이가 취한 자세는 작품화의 대상이 되는 사물과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이었다. 단지 그 자체만으로는 단순한 사실주의 작품으로 끝나 버릴 위험성이 있지만, 가지이 모토지로의 경우에는 본다는 행위를 철저하게 추구한다. ‘본다는 것, 그것은 이미 그 무언가인 것이다. 내 영혼의 일부분 혹은 전부가 그것에 옮겨가는 것이다’(「어떤 마음의 풍경」)라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나타내며, 압도적인 감각을 실마리로 전력을 다해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해 상상력을 토대로 다양한 조작을 가하여 작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독자적인 작품 세계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고스게 겐이치 〈 ‘가지이 모토지로’의 방식 ― ‘미(美)’를 둘러싼 의식과 표현〉중에서
<레몬> 혼란스런 근대사회, 31세라는 짧은 생애 속에서 가지이 모토지로가 구축한 독특한 ‘미(美)’의 세계. 이상하게 근질근질한 기분이 거리에 서 있는 나를 미소 짓게 했다. 나는 마루젠의 책장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무시무시한 폭탄을 설치한 괴상한 악당이고, 이제 십 분 뒤 저 마루젠에서 미술 코너의 책장을 중심으로 대폭발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레몬」중에서 가지이 모토지로는 이 세상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각각의 사물에 대해, 다른 사물과 비교하여 우열이나 양부의 판단이 무의미한 사물 고유의 ‘미’를 발견하고, 다양한 위상으로 존재하는 대립물이나 혼합물, 불순물과 공존·융합·병치시킴으로써, ‘미’에 새로운 가치와 해석을 만들어냈다. 각각의 사물이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을 적확하게 찾아내 작품화하기 위해 가지이가 취한 자세는 작품화의 대상이 되는 사물과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이었다. 단지 그 자체만으로는 단순한 사실주의 작품으로 끝나 버릴 위험성이 있지만, 가지이 모토지로의 경우에는 본다는 행위를 철저하게 추구한다. ‘본다는 것, 그것은 이미 그 무언가인 것이다. 내 영혼의 일부분 혹은 전부가 그것에 옮겨가는 것이다’(「어떤 마음의 풍경」)라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나타내며, 압도적인 감각을 실마리로 전력을 다해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해 상상력을 토대로 다양한 조작을 가하여 작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독자적인 작품 세계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지이 모토지로우 단편선> 어둠속에 켜진 불은, 그의 텅 빈 머릿속에 켜진 불이기도 했다. 그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한 개비의 성냥불이, 불길이 꺼져 잿불이 되고 나서도 어둠에서도 얼마만큼의 밝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불이 완전히 꺼졌지만 얼마동안은 잔상이 그를 이끌었다― 돌연 커다란 음향이 들판 가장자리에서 일었다. 휘황한 빛이 열을 지어 그의 눈앞을 가로질렀다. 빛의 물결은 땅으로 퍼지며 그의 발치까지 밀려왔다. 기관차의 연기는 불빛이 되어있었다. 빛의 반사로 인해 빨갛게 보이는 화부가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