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폴 오스터
평균평점
뉴욕 3부작

<뉴욕 3부작> 현대인의 삶 속에 은폐되어 있는 병적인 징후들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촉수를 가진 폴 오스터는 문제에 대한 탐색의 열정에 비해 해답을 제시하는 것에는 인색해 보인다. 하지만 폴 오스터는 섣부른 해답보다는 문제의 제기 단계에서의 철저함이 문제의 근원을 인식케 할 것이며 그러한 인식이야말로 삶에 대한 해답의 단초가 될 것으로 믿는 작가다. 잘못 걸려 온 전화 한 통(실제로 폴 오스터는 이 소설을 그에게 며칠 동안 잘못 걸려 온 전화를 받은 경험에서 착상하였다)으로 시작되는 현대 도시인에 대한 이 오디세이는 탐정 소설의 외양을 띠고 진행된다. 묻는다는 것이 직업상의 주 활동인 탐정의 배치는 폴 오스터의 글쓰기나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적절한 세팅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실을 발견하려던 탐정들은 어느덧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되고 짓궂은 우연의 장난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게 된다. 그들이 분투 끝에 본 것은 자신(현대인)의 초상이라는 거대한 괴물이다. 카프카나 베케트의 주제 의식인 부조리의 현대적 변주이기도 하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처럼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로도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다.

달의 궁전

<달의 궁전> 현실과 비현실의 훌륭한 만남 『달의 궁전』은 자신의 삶을 극단으로 몰아감으로써 배우는 세 탐구자들의 초상화를 매혹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자신의 삶이 거의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소진시키며 살아 가는 젊은이 마르코 스탠리 포그, 이미 한 번의 삶을 말살하고 자신을 재창조한 노인 토머스 에핑, 그리고 비대(肥大)해지면 비대해질수록 점점 더 작아져 가는 슬픈 운명의 중년 남자 솔로먼 바버. 그들 모두는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는 달처럼 슬픈 운명에 이끌려 퇴락의 길을 걸은 뒤 다시금 성장할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이 3대의 이야기가,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초반에서부터 후반까지, 공간적으로는 혼잡한 도시에서부터 황량한 변경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을 가로질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적절하게 넘나들며 진행되고 있다. 그때그때에 맞는 시간적 배경들과 허구적 인물들의 있을 법하지 않은 운명이 잘 맞춰진 톱니바퀴처럼 어울려 돌아가고 있다. 『달의 궁전』은 마음을 사로잡는 빛을 던진다. 폴 오스터는 이 소설로 더 높고 넓은 경지에 이르렀다. 『달의 궁전』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을 의미 심장하고 풍부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능력에 힘입더 궁극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의 글은 밤 하늘을 채우는 달빛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독자들을 끄는 힘이있다. -볼티모어 선 폴 오스터는 우리에게 놀라우리 만치 지성적인 탐험 여행을 제공한다. -프로비던스 선데이 저널 폴 오스터의 고도로 문학적인 이 소설은 저술 과정 그 자체를 탐구하며 허구와 실제 사이의 가장자리를 넘나든다. -퍼블리셔즈 위클리

내면 보고서

<내면 보고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작가로…… 자신의 내면이 성장해 온 궤적을 탐사하는 폴 오스터의 어린 시절 회고록, 『내면 보고서』 도회적이고 세련된 감수성, [우연의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 놀라운 상상력을 갖춘 작품들을 발표하며 전 세계 지적인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 폴 오스터. 국내에서도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현대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신작 『내면 보고서』가 송은주 역자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내면 보고서』는 폴 오스터가 자신의 유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기억들을 탐사하며 그의 내면이 성장해 온 궤적들을 특유의 아름다운 산문으로 복원해 낸 회고록이다. 그의 세계관을 형성한 가장 원형적인 체험들부터 부인이 된 여자 친구와 주고받은 연애편지까지, 오스터 자신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기록들이 집약되어 있다. 일정한 연대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 작용에 따라 떠오르는 기억의 단상들을 하나씩 발굴해 나가는 이 독특한 형식의 회고록을 통해, 독자들은 어린 시절 오스터의 풋풋하고 섬세한 내면을 탐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둠 속의 남자

<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의 최신 소설 미국과 동시 출간! 칠흑 같은 밤, 새벽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 이 작품은 아마도 오스터가 쓴 가장 훌륭한 소설일 것이다. 이건 어쩌면 불공평한 평가일 수도 있다. 『어둠 속의 남자』는 오스터가 지금까지 써온 어떤 소설과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 오스터의 소설은 이렇게 작고 간단한 작업에서 기대되는 그 어떤 감정보다 크고 깊은 감동을 독자에게 남긴다. - 「샌프랜시스코 크로니클」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세련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아 온 폴 오스터의 최신 소설 『어둠 속의 남자』가 출간되었다. 『어둠 속의 남자』는 오스터 특유의 기법이 잘 살아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스터의 소설에서 자주 보기 힘든 주제 의식을 담아 낸 소설이다. 이번 소설은 특히 미국과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다. 애초 2008년 9월 초 출간 예정이었으나, 미국 측의 사정으로 미국판은 조금 당겨진 8월 말에, 한국판은 예정대로 9월 5일에 출간되었다. 폴 오스터의 팬들은 미국 작가의 책을 기다릴 필요 없이 한국어로 실시간으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브릴과 그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속 주인공 브릭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메타 소설의 형태를 띤다. 브릴은 72세의 은퇴한 도서 비평가로, 얼마 전 아내를 잃은 데 이어 교통사고까지 당함으로써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한꺼번에 겪고 있다. 이러한 고통으로 인한 불면의 밤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바로 브릭이다. 마술사로 생계를 이어 가며 평범하게 살던 브릭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전쟁의 복판에 떨어져 있다. 그 전쟁의 무대는 이라크도 아프가니스탄도 아닌 바로 미국이다. 아직 9.11이 일어나지 않은 미국, 독립파와 연방파 두 갈래로 갈려서 내전을 벌이는 미국의 모습에 그는 혼란스러워하지만, 곧 이 모든 것이 브릴이란 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상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야기의 창조자인 브릴을 죽이는 것이며, 바로 자신이 그를 죽여야 한다는 지령을 받는다. 이야기 속 인물이 이야기의 창조자를 죽인다는 설정은 상당히 독특하다. 이야기 속 인물이 이야기 밖 인물과 연결되어 이야기를 이루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브릭의 이야기와 브릴의 현실이 조응한다는 것을 독자는 눈치 채게 되는데, 특히 브릭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버지니아 블레인이 사실은 브릴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은 이야기와 실제의 상황이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첫사랑에게 끌리는 이야기 속 주인공은 어려서 사랑에 빠져 결혼한 아내 소니아를 두고 젊은 소설가에 마음을 빼앗겨 이혼에 이르는 브릴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며, 마지막에 자신의 인물을 잔혹하게 죽여 버리는 것은 브릴 가족이 현실에서 겪은 끔찍한 일에서 비롯된 결말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부시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오스터의 비판 의식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충격적 결말, 즉 브릴의 손녀 카티아의 남자 친구 타이터스가 이라크에서 살해당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볼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비극은 이라크 전쟁이라는 덫에 걸려 있는 미국의 한 단면이며, 이런 끔찍한 장면을 자신의 소설에 전례 없이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오스터는 부시 행정부에 일침을 가한다. 이 소설에서 스토리텔링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히 <이야기하기>에 관한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릴과 딸 미리엄, 손녀 카티아는 저마다 가슴에 상처를 안고 있다. 브릴은 평생의 동반자를 여의었고 미리엄은 남편에게서 버림받았으며, 카티아는 전쟁에서 남자 친구를 잃었다. 이들은 모두 상처와 괴로움으로 잠 못 이루며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데, 그 방편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이다. 브릴이 밤마다 생각해 내는 이야기, 미리엄이 너대니얼 호손의 딸 로즈 호손에 대해 쓰는 전기, 카티아가 영화를 보며 <감정 있는 사물>에 대해 펼치는 이론 등 저마다 다른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이들은 모두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이 이야기들은 모두 자기 치유의 기능을 한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나란히 누워 할아버지는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손녀는 그에 귀 기울이는 마지막 부분은 이야기가 어떤 힘을 지니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이야기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야기를 하는 행위 자체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둠 속의 남자』에서 우리는 개인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부분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구성을 볼 수 있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이 멋진 소설은 사뮈엘 베케트의 섬광 같은 예리함을 간직하면서도 관대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 「보스턴 글로브」 ■ 줄거리 일흔두 살의 은퇴한 도서 비평가 브릴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다. 몇 해 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그는 밤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외로움과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속 미국은 내전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미국이되 9.11이 일어나지 않은 미국, 이라크가 아닌 국내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또 하나의 미국이다. 브릭의 머릿속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자신과 이혼한 딸, 남자 친구가 죽은 손녀가 안고 있는 상처와 죄책감이 드러나는데……. ■ 미국이여 깨어나라 -「익스프레스」 인터뷰 (2008. 8. 21) 『브루클린 풍자극』 같은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에서 폴 오스터의 등장인물들은 개인적 사건들에 의하여 변신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의 최신작 『어둠 속의 남자』에서 오스터는 개인적인 문제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은퇴한 서평가이며 홀아비인 오거스트 브릴은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불편한 다리로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앨 고어가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9.11사태나 이라크전이 벌어지지 않은 가상현실을 상상한다. 이 대체 현실 속에서 미국은 내전을 겪고 있다. 브루클린에 살고 있는 저자 폴 오스터는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작사가 등으로도 활약하고 있는데 이번 목요일 <정치와 산문>에 나와 자신의 작품을 일부 낭독할 예정이다. 익스프레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어둠 속의 남자』가 당신이 과거에 쓴 그 어떤 소설과도 닮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동의하십니까? 오스터: 아니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앞서 나온 책들과 다릅니다. 각각의 책은 저마다 고유의 형태를 요구합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익스프레스: 9.11 사태가 이 이야기에 영감을 주었습니까? 오스터: 아니요. 영감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된 추진력은 2000년의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내가 볼 때 그건 웃기는 일이었어요. 앨 고어가 실제로 승리했고 대통령으로 뽑혔습니다. 공화당이 교묘한 정치 공작을 통하여 그에게서 대통령 자리를 빼앗아 간 겁니다. 나는 그때 이후 우리가 평행하게 달리는 두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기이한 느낌을 갖게 되었어요. 진짜 세상에서는 앨 고어가 두 번째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 걸로 말입니다. 익스프레스: 이 소설과 다른 소설에서 보면, 당신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질병을 앓거나 부상을 당한 것으로 나옵니다. <회복>이란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스터: 나는 어떤 위기를 견뎌 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뭐라고 할까, 우리는 그런 위기를 계기로 시험을 받는 거지요. 또 그런 때 우리의 존재를 정확하게 발견하게 되고요. 가령 인생이 거덜 났는데 어떻게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냐,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게 또 오거스트 브릴이 시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익스프레스: 당신은 예전에 썼던 인물을 다시 등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습니까? 오스터: 그건 본능적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난 예전 작품들을 곱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예전 책들의 인물들이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내게 정말로 살아 있는 인물들처럼 느껴져요. 종종 그들을 생각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래서 그들이 다른 책의 엉뚱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겁니다. 익스프레스: 당신이 전자 우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디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오로지 당신의 작품만을 다루는 사이트가 생겼다는 것을 아십니까? 거기에 들어가 보셨습니까? 오스터: 난 컴퓨터가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그 사이트를 보여 주었어요. 영국에 있는 어떤 사람이 나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정말 좋은 일이지요. 거기에 딱 한 번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후에는 들어간 적이 없어요. 익스프레스: 당신은 시나리오도 여러 편 썼습니다. 특히 1995년 영화 「스모크」의 시나리오가 잘 알려져 있지요. 시나리오 작업이 당신의 이야기하기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오스터: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죠. 난 늘 나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소설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내 소설은 영화에서처럼 일련의 장면들로 나누어지지가 않아요. 내 소설들은 물이 흐르듯 계속 흘러가는 그런 내러티브입니다. 내 책에서는 대화도 그리 많이 나오지 않고요. 그렇다 보니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장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 되었고 또 장르의 가능성들을 새롭게 탐구해야 되었습니다. 익스프레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것이 당신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오스터: 브루클린에 산 지가 28년 반이 되었어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곳이지요. 그래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가장 잘 아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얘기도 쓰게 되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브루클린 얘기만 쓰겠다는 건 아닙니다. ■ 오스터, 『어둠 속의 남자』에서 현실과 환상의 위기를 그려 내다 -「보스턴 글로브」2008. 8. 24 폴 오스터의 14번째 장편소설 『어둠 속의 남자』는 사뮈엘 베케트 풍의 초연함과 내면성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실제 세계를 묘사하기보다는 환상적이고 불합리한 우여곡절을 가진 마음의 세계에 더 집중하고 있다. 화자인 오거스트 브릴은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어둠 속에 혼자 있으면서 내 머리 속에서 세상을 굴리고 있다. 또다시 불면증이 엄습해 와 이 엄청난 미국의 황무지 속에서 또 다른 하얀 밤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3페이지에 이르면 독자는 화자 브릴이 어두운 밤을 물리치기 위해 창조해 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 남자가 지하의 깊은 구덩이 속에 잠들어 있다. <깊이는 3미터 정도이고, 완벽한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내벽은 너무 단단하여 구운 진흙 혹은 유리 같은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해서, 구덩이 속의 남자는 잠에서 깨어난 뒤 제 힘으로 그 구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구덩이 속의 남자는 뉴욕 퀸스 출신의 29세 된 오언 브릭이다. 그는 <위대한 자벨로>라는 예명으로 어린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찾아다니면서 마술을 공연하는 마술사인데 잠에서 깨어 보니 무자비한 내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암살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징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00년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에 내전이 발생하여 먼저 뉴욕 주가 연방에서 탈퇴하고 이어 15개 주가 그 뒤를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브릭은 이 전쟁이 오로지 저널리스트이며 문학 평론가인 오거스트 브릴의 상상력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브릭은 오거스트 브릴을 죽이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렇게 하면 내전은 끝난다는 것이다. 독자는 그리하여 소설의 메타 픽션 같은 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일종의 환상 소설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9.11 사태를 겪지도 않았고 이라크 전쟁도 없으며 그 대신 엄청난 분열과 파괴로 고통당하는 가상현실의 미국을 다룬 환상 소설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판단을 내릴 즈음, 소설은 브릴의 실제 생활과 개인적 고뇌로 되돌아 와 현실의 삶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삶은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남자가 창조해 낸 삶과 서로 조응한다. 브릴은 자신이 구덩이 속의 남자 브릭 못지않게 깊고 험한 구덩이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죽은 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72세의 노인은 1년 이상이나 이혼한 딸 미리엄의 버몬트 집 1층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그 집에는 미리엄의 딸인 23세의 카티아도 함께 살고 있다. 손녀인 카티아는 헤어진 남자 친구 타이터스의 죽음으로 심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소설의 끝부분에 가서야 타이터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었는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죽음에 대한 기억이 브릴의 다른 기억들 못지않게 소설 전편에 스며들어 있다. 브릴은 줄리아드에 다니던 소니아 베유와 결혼하여 17년 동안 행복하게 살다가 이혼을 한다. 아름다운 젊은 여류 소설가와 외도를 한 때문인데 그 여류 소설가는 다시 브릴을 차버린다. 그 때문에 브릴은 연일 술을 퍼마시며 절망에 빠져 지내다가, 손녀 카티아의 출생을 계기로 하여 소니아와 재결합하게 된다. 브릴은 한밤중 어둠 속의 침대에 누워서 브릭의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마찬가지로 소니아와의 복잡한 관계도 침대에 누워 말한다. 하지만 이때에는 손녀 카티아가 그의 옆에 누워서 그 얘기를 들어 준다. 그녀는 인생의 비극뿐만 아니라 매일 밤의 불면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카티아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질문을 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하여 알고 싶은 것, 혹은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하여 말한다. 이렇게 하여 독자는 마침내 오스터의 진정한 주제는 이야기의 엄청난 힘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말하고 듣는 행위가 가장 끔찍한 폭력, 혼란,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브릴은 카티아에게 얘기를 모두 다 해주고 손녀가 잠든 뒤 이런 말을 한다. <시간이 흘러가고 처음으로 눈을 감으면서 이제 좀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눈을 감으면서 피아노로 하이든의 곡을 연주하는 소니아를 보지만 정작 그 음악은 듣지 못한다. 이어 소니아가 의자에서 몸을 돌리자 미리엄이 엄마의 품안으로 달려드는 것을 본다. 브릴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과거로부터의 이미지. 그것은 실제일 수도 있고 상상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실제와 상상은 하나이다. (……) 어제는 아이, 오늘은 노인, 유년으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심장 박동, 얼마나 많은 호흡,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있어 왔는가. 누군가 나를 만져 다오. 내 얼굴에 네 손을 내려놓고 말을 걸어 다오…….> 『어둠 속의 남자』는 우리 생활의 여러 조각보들을 잘 기워서 실제와 상상이 하나임을 보여 주려고 시도한다. 아주 절망적인 시간에도 우리를 지탱해 주는 이야기의 놀라운 힘에 대해서 말한다. 이 멋진 중편은 사뮈엘 베케트의 섬광 같은 예리함을 간직하면서도 관대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때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존 그레고리 브라이어(버지니아 주의 스위트 브라이어 대학 교수)

스퀴즈 플레이

<스퀴즈 플레이> 현대 영미 문단의 대표 작가 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 '빵 굽는 타자기'와 탐정 스릴러 '스퀴즈 플레이'가 김석희 씨의 번역으로 출판되었다. '빵 굽는 타자기'와 '스퀴즈 플레이'는 원래 라는 하나의 원제로 묶여져 있는 작품이지만, 독자들이 읽기 편한 판형과 글씨 크기를 고려하여 두 권으로 나눠 출간하게 되었다. '빵 굽는 타자기'는 한 마디로 작가 폴 오스터의 정신 세계와 작품 활동의 비밀을 풀어주는 '엑스파일'이다. 청년 시절의 그는 어떤 일에 관심을 가졌고 무슨 생각에 골몰했는지, 어떤 경로를 거쳐 소설가로 입문하게 되었는지, 폴 오스터는 그의 독자들을 내밀한 자신의 세계로 초대한다. 거기에는 기쁨과 슬픔, 유머와 페이소스 같은 젊은 날의 편린이 그득하다, 함께 수록된 세 편의 희곡들과 그가 고안해 낸 카드 게임 까지를 느긋하게 음미하고 나면 우리는 그의 어투와 문체, 그리고 욕망과 체념 사이를 요동하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한편, 폴 오스터의 유일무이한 탐정 스릴러 '스퀴즈 플레이'는 청년 폴 오스터가 펼치는 패기 넘치는 문학적 실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독자들은 전혀 새로운 그의 모습에 다시 한번 매료될 것이며, 끈기 있게 후속 작품을 기다려 왔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빵 굽는 타자기

<빵 굽는 타자기> 현대 영미 문단의 대표 작가 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 '빵 굽는 타자기'와 탐정 스릴러 '스퀴즈 플레이'가 김석희 씨의 번역으로 출판되었다. '빵 굽는 타자기'와 '스퀴즈 플레이'는 원래 라는 하나의 원제로 묶여져 있는 작품이지만, 독자들이 읽기 편한 판형과 글씨 크기를 고려하여 두 권으로 나눠 출간하게 되었다. '빵 굽는 타자기'는 한 마디로 작가 폴 오스터의 정신 세계와 작품 활동의 비밀을 풀어주는 '엑스파일'이다. 청년 시절의 그는 어떤 일에 관심을 가졌고 무슨 생각에 골몰했는지, 어떤 경로를 거쳐 소설가로 입문하게 되었는지, 폴 오스터는 그의 독자들을 내밀한 자신의 세계로 초대한다. 거기에는 기쁨과 슬픔, 유머와 페이소스 같은 젊은 날의 편린이 그득하다, 함께 수록된 세 편의 희곡들과 그가 고안해 낸 카드 게임 까지를 느긋하게 음미하고 나면 우리는 그의 어투와 문체, 그리고 욕망과 체념 사이를 요동하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한편, 폴 오스터의 유일무이한 탐정 스릴러 '스퀴즈 플레이'는 청년 폴 오스터가 펼치는 패기 넘치는 문학적 실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독자들은 전혀 새로운 그의 모습에 다시 한번 매료될 것이며, 끈기 있게 후속 작품을 기다려 왔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당신은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질 것이다. (......) 만약 당신이 소설과 사랑에 빠지는 크나큰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독서를 한다면, [보이지 않는]을 읽어라. 이 소설은 폴 오스터가 쓴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 _ 뉴욕 타임스 도회적이고 감성적인 언어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독자의 상상력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우연의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탁월한 이야기꾼 폴 오스터.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꼽히면서도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독자와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폴 오스터의 새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보이지 않는]은 오스터가 그간의 작품들에서 천착해 온 주제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말 그대로 [스토리텔러]로서의 오스터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1967년 봄, 스무 살 청년 워커가 한 프랑스인 커플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하나의 우발적 사건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것을 즐기는 기이한 욕망을 지닌 루돌프 보른이라는 인물을 만난 약관의 순수한 청년이 겪는 사건과 심리의 변화는 우리를 순식간에 사로잡아 1967년의 뉴욕, 그리고 파리로 데려간다. 세 사람의 목소리와 세 가지 화자가 조합해 내는 하나의 이야기 소설 속의 소설,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구조는 소설의 형식을 끊임없이 탐구해 온 오스터가 즐겨 써온 기법으로, 이번 소설 역시 그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은 세 인물이 서술을 하는 큰 틀 속에서, 주인공 애덤 워커의 회고록이 세 가지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소설은 1967년과 2007년, 4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베트남전의 악령이 미국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1967년, 당시 청년들은 전쟁의 당위성 문제는 둘째 치고 당장 대학을 졸업하면 군대로 끌려가야 한다는 현실적 문제에 당면해 있었다. 2007년 예순 살이 된 워커는 당시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과 징병이라는 상충되는 문제 속에 고뇌하던 자신에게 벌어졌던 기묘한 사건들, 자신의 삶의 행로를 바꾼 1967년의 일을 기록한 다. 각각 [봄], [여름], [가을]이란 제목을 붙인 이 회고록을 쓰는 과정에서 그는 글쓰기의 난관에 부닥치고, 그 어려움을 40년 전 컬럼비아 시절 친구였던 작가 짐에게 상담한다. [봄]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쓴 워커에게, 짐은 1인칭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한 발짝 떨어진 시점으로 서술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한다. 그리하여 [여름]은 2인칭, [가을]은 3인칭의 세 가지 시점으로 쓰이게 되고, 독자는 각각의 장(章)에서 한 주인공을 놓고 다른 거리감을 느끼며 워커의 [회고록]을 읽게 된다. 정의를 갈구하는 순수한 젊은 날의 초상 [봄]은 스무 살의 문학청년 워커가 보른과 마고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커플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워커가 다니는 컬럼비아 대학의 정경학부에 방문 교수로 와 있는 보른은 [전쟁은 인간의 영혼을 가장 순수하고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라 말하는 사람으로, 무슨 영문에서인지 워커에게 함께 문학잡지를 창간할 것을 제안한다. 워커는 보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어둠과 냉소를 경계하면서도 그 유혹적 제안을 물리치지 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은 순간,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해 워커의 삶을 뿌리째 뒤흔든다. 보른과 함께 산책하던 워커는 한 소년 강도를 만나는데, 보른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소년을 칼로 찌른다. 그 소년을 살리려 하는 워커와 달리 보른은 냉혹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워커가 엉거주춤 망설이는 사이 보른은 프랑스로 귀국해 버리고, 그 과정에서 워커는 자기 자신에게 심하게 실망한다. 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기억이 지닌 힘 그해 여름 우울함 속에 방학을 맞은 워커는 누나 그윈과 함께 아파트를 나누어 쓰게 된다. 그리고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벌이는 뉴욕의 아파트에서 두 사람은 질풍노도와 같은 여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은밀한, 가장 금기시되는 터부를 범한 두 사람의 일은 그윈에 의해 부정된다. 그럼에도 짐은 워커의 원고를 심약한 병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꿈꾼 환상으로 치부하는 그윈의 주장을 쉽게 믿지 못한다. [봄]과 [가을]이 모두 진실이라면 워커가 굳이 [여름]만 꾸며내서 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에 반해 평온한 가정을 꾸려 가는 그윈이 그 이야기를 거짓으로 몰아붙일 이유는 많다. 여기에서 독자는 진실과 환상, 실제와 허구의 경계에서 길을 읽게 된다. 이후 나오는 보른의 이야기, 또 마지막에 나오는 원고에 대한 짐의 설명은 이 소설 전체의 진실성에 의심을 갖게 한다.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 [선데이 타임스]는 이번 작품에 관한 서평 기사에서 [만약 폴 오스터가 또 한 권의 실험적 창작 교재가 아닌 제대로 된 그냥 소설을 마음먹고 쓴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란 질문을 던졌다.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를 계속해 온 오스터에게 이제 독특한 구조, 애매한 현실과 허구의 경계 등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보이지 않는]은 최근 그가 보인 실험적 시도들에 비하면 자못 온건해 보인다. 즉,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형식을 띠고 있음에도, 이는 전통적 액자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라 할 수 있다. 독자는 40년 전의 과거를 회고하는 워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가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어떤 행동을 할지 다음의 진행을 궁금해한다. 젊은 날의 꿈과 욕망, 상처에 관한 워커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 이야기를 그려 나가는 문장은 담담하면서도 섬세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으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한 오스터는 그야말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인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그래서, 이러한 형식의 소설에서 오스터는 얼마나 재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항상 말해 온 것만큼 해낸 것 같다. 섬세한 문체, 심리적 깊이, 작품성, 우화적 함의 등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과연 거장답다.] 이 소설은 최고 수준의 현대 미국 작품이다. 날카롭고 우아하며 활기차다. 이 작품은 오직 지독한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힘들이지 않은 작품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우리가 거장의 손아귀에 들어 있을 때 흔히 그러하듯, 우리는 한 문장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다음 문장을 읽고 있다. 소설을 읽어 나가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기 때문에 이 소설은 쉽게 읽을 수 있다. _ 뉴욕 타임스 재미 면에서 봤을 때 [보이지 않는]은 더없이 성공적인 소설이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 오스터의 아름다운 이야기의 막이 내리면, 우리는 지금까지 굉장히 멋진 막다른 계곡을 탐험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_ 텔레그래프 [보이지 않는]은 매혹적이고도 매우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_ 가디언 오스터는 정말로 마법사의 지팡이를 지니고 있다. _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오스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지적이며 품격 있는 작가이다 _ 워싱턴 포스트 [줄거리]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한창인 1967년 봄,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문학도인 애덤 워커는 한 파티에서 기묘한 프랑스인 커플을 만난다. 지적이며 쾌활하지만 어딘지 위험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루돌프 보른과 말이 없지만 매혹적인 마고. 보른은 문학잡지 창간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워커에게 제안하고, 워커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산책 도중 만난 강도를 보른이 칼로 찌르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계획은 모두 없던 일로 돌아가 버린다. 워커는 이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비겁한 자신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자책하게 된다. 이후 누나와의 미묘한 관계 속에 폭풍과 같은 여름을 보낸 워커는 파리로의 유학을 결심한다. 그곳에서 그는 보른과 다시 조우하고, 워커는 어떤 식으로든 그를 응징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는 한 가지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동행

<동행> 『동행』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영화다. 낯선 이방인 윌리와 그의 애견 <미스터 본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로드무비>는 인간과 개의 우정을 모티브로 삼았고,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과 그 세상을 초월하는 영원성을 테마로 잡았다. 무엇보다도 긴박한 스토리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상황 묘사가 뛰어난, 책을 읽는 시간이 쏜살처럼 흐르는 수작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윌리 G. 크리스마스의 영리하고 충직한 애견 <미스터 본즈>의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믿음직한 콜리의 기질이 스며 있기도 하고 스파니엘의 피가 섞여 있기도 하고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생김새를 닮기도 한 잡종 개 <미스터 본즈>는 그의 주인 윌리와 함께 볼티모어와 메릴랜드에 이르는 광대한 <신세계>의 모험을 떠난다. 그들의 긴 여정에서 떠오르는 생각들, 꿈들, 그리고 기억들은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만큼이나 멀리 거슬러 올라가는 아득한 물음을 던진다. 선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슨 까닭에 인간은 다른 종의 동물들보다 우수하게 진화해 왔으며, 그들의 벗인 개들은 과연 영혼을 가지고 있는가? 무엇이 천국이며, 개는 거기에 이를 수 있는가? 이러저러한 의문들은 쉼이 없으며 어렴풋한 답들이 잇따라 꿰어 나온다. 『동행』을 읽은 후에 우리의 의식은 깨어나고 그로써 새롭게 변화된 몸뚱어리로 낯선 세계를 어슬렁거린다. 이것이 폴 오스터의 마법이다. [언론평] 단지 그와 재능이 비슷한 사람들 가운데서 오스터 혼자만이 단순하게 언어를 구사하고 재미있게 글을 쓴다. 천부적 이야기꾼 오스터의 업적은 대중에게 친숙한 도구들을 가지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미명 아래 고급하게 흥청거리는> 문학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다. 그의 작업은 조숙한 12세 아이들의 성년 입문서가 될 수도 있고, 학부 졸업 수준의 메타 픽션과 내러티브 이론에 관한 문학 세미나에서 읽혀질 수도 있다. …… 『동행』을 읽은 후에 우리는 다시 깨닫게 된 의식들과 새롭게 변화된 정신을 발견한다. ― 「보스톤 글러브Boston Globe」, Paul Kafka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뉴욕 3부작』으로부터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거대한 괴물』에 이르기까지 폴 오스터는 같은 주제들을 검증한다. 무작위성과 우연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역할, 진실의 불가해성과 정체성, 그리고 언어의 한계와 자유 의지가 바로 그것들이다. 그는 다시 한번 새로운 소설 『동행』을 발표했고, 그 안에서 완벽한 주제와 이 주제들을 다시 검증하기 위한 서술 전략을 실험하고 있다. 그는 개의 시각으로부터 개와 주인의 이야기를 했고 이것은 마법이다. ― 「뉴욕 타임스 북리뷰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거대한 괴물

<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가 일곱 번째 작품으로 발표한 『거대한 괴물』은 우정과 배신, 성적 욕망과 소외, 일상 생활의 규율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돌연한 폭력적 사건의 의미 등을 파헤친 수작이다. 과거 미국의 신화와 원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국의 운명에 관한 결연한 보고서이기도 한 이 작품은 유럽 등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으며 1993년 메디치 외국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공중 곡예사

<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의 [공중 곡예사]는 고아 소년 월트가 자라면서 삶에 대해 깨달아 가는 과정과 그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된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 준 예후디 사부의 이야기인데, 맨 처음부터 <나는 열두 살 때 물 위를 처음 걸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되는 매우 특이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월터 클레어본 로울리가 하늘을 나는 <원더보이> 월트로서 살아온 어린 시절부터 60여 년간의 인생 역정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월트의 스승인 예후디 사부는 1924년 세인트 루이스에서 아홉 살 난 부랑아를 발견하고 열세 번째 생일을 맞는 날까지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포악한 외삼촌 슬림에게서 빼내 캔자스의 어느 괴상한 농가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사부와 이솝이라는 불구의 흑인 아이와 예전에 그 유명한 <버펄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에서 묘기를 보였던 인디언 수 아주머니가 살고 있다. 거기에서 월트는 중력을 이기고 공중으로 뜨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33단계를 거치는데 그러는 동안 예후디 사부는 여러 인종으로 구성된 자신의 가족을 3K 단원의 테러에서 지키려고 애쓰지만 허사로 돌아간다. 결국 월트와 사부만 살아남게 되고 고된 수련 끝에 드디어 경이로울 정도로 하늘을 날게 된다. 그 묘기를 가지고 전국을 순회 공연하며 쇼비즈니스 경력을 쌓게 되는데 미국 내에서 가장 유명해지고 더불어 부도 얻는다. 그들이 순회 공연을 계속하던 중에 슬림 외삼촌에게 납치 감금도 당하나 이에 굴하지 않고 공연마다 대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어 성에 눈을 뜨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됨에 따라 심한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려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사부는 월트에게 <공중 곡예사>라는 별명을 붙여 준다(영문 VERTIGO에는 어지럼증, 현기증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던 때 다시 외삼촌 일당에게 습격을 받아 사부는 회복 불능의 총상을 입게 되자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거기에 대한 복수로 월트는 외삼촌을 죽이고 암흑가의 무리에 섞이게 되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도 하게 되나 행복의 여신은 끝내 그의 편이 되어 주지 않고 아내마저 빼앗아 가고 그는 일개 청소부로까지 전락하게 된다. 이때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를 돌봐 주었고 예후디 사부의 영원한 연인인 위더스푼 부인과 재회를 하면서 또 다른 비상(飛翔)을 꿈꾸는데...... 이 <원더보이> 월트의 이야기는 미국 그 자체의 역사와 별로 다르지 않다. 험난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빛나는 승리를 거둔 주인공이 몰락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이 소설의 페이지마다에서 독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의 영광과 좌절을 고스란히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 폴 오스터는 이 소설에서 음악과 영상이 따르지 않는 언어만으로도 영화가 아직 이루어 내지 못한 기적을 연출해 놓고 있다.

폴 오스터 대표작 세트(전5권)

<폴 오스터 대표작 세트(전5권)> 현실과 비현실의 훌륭한 만남 『달의 궁전』은 자신의 삶을 극단으로 몰아감으로써 배우는 세 탐구자들의 초상화를 매혹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자신의 삶이 거의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소진시키며 살아 가는 젊은이 마르코 스탠리 포그, 이미 한 번의 삶을 말살하고 자신을 재창조한 노인 토머스 에핑, 그리고 비대(肥大)해지면 비대해질수록 점점 더 작아져 가는 슬픈 운명의 중년 남자 솔로먼 바버. 그들 모두는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는 달처럼 슬픈 운명에 이끌려 퇴락의 길을 걸은 뒤 다시금 성장할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이 3대의 이야기가,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초반에서부터 후반까지, 공간적으로는 혼잡한 도시에서부터 황량한 변경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을 가로질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적절하게 넘나들며 진행되고 있다. 그때그때에 맞는 시간적 배경들과 허구적 인물들의 있을 법하지 않은 운명이 잘 맞춰진 톱니바퀴처럼 어울려 돌아가고 있다. 『달의 궁전』은 마음을 사로잡는 빛을 던진다. 폴 오스터는 이 소설로 더 높고 넓은 경지에 이르렀다. 『달의 궁전』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을 의미 심장하고 풍부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능력에 힘입더 궁극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의 글은 밤 하늘을 채우는 달빛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독자들을 끄는 힘이있다. -볼티모어 선 폴 오스터는 우리에게 놀라우리 만치 지성적인 탐험 여행을 제공한다. -프로비던스 선데이 저널 폴 오스터의 고도로 문학적인 이 소설은 저술 과정 그 자체를 탐구하며 허구와 실제 사이의 가장자리를 넘나든다. -퍼블리셔즈 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