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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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우화 컬렉션 : 기호품 편 (총3권)

<천년의 우화 컬렉션 : 기호품 편 (총3권)> # 픽사, 디즈니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우리 옛 우화 소설 속에서 만난다 # 서울대학교 등 전국 주요 대학 필독서와 접하기 어려운 희귀 작품이 한가득! # 그동안 어려웠던 우리 옛 우화 소설을 더 쉽게 풀어내 읽는다 우화 소설은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당대의 사회제도, 이념, 풍습 등을 풍자해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가전체 소설, 의인 소설 등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동물을 의인화한 민담이나 설화 등은 오래 전부터 전해 왔다. 기록 문학으로서는 신라의 설총이 지은 「화왕계」부터 1천여 년 동안 다양한 작품이 태어났다. 양반 사회의 가치관, 윤리, 권위 등이 무너지는 조선 후기에는 한글 작품까지 나오며 우화 소설이 가장 활발히 창작되었다. 그러다 일본에게 국권을 강제로 뺏기는 1910년 전후로 점점 쇠퇴한다. 힘든 현실 속에서 세태를 풍자하는 소설이 살아남기에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소설을 자유롭게 짓기에는 우화라는 틀이 너무 좁았다. 그러나 이후 100년을 넘겨 어느 때보다 창작이 중요해진 오늘날, 우리 옛 우화 소설은 그 발상과 소재 면에서 되짚어 봐야 할 소중한 자산이 되어 있다. 임제의 「수정지」 등 사람의 감정을 소재로 한다는 발상은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아웃」보다 400년 이상 앞섰다. 또 송세림의 「주장군전」처럼 사람의 성기를 의인화해 주인공으로 삼은 점은 성도덕이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천년의 우화 컬렉션’은 우리 옛 우화 소설의 창작 세계를 가늠하고 살핀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기존 책들보다 훨씬 쉬운 우리말로 풀어냈고, 접하기 어려운 희귀 작품도 많이 발굴해 포함시켰다. 이 기획으로 우리 옛 우화 소설이 새롭게 인식되고 평가받기 바란다. 더불어 현재의 수많은 창작자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국순전 국선생전 국수재전 국청전 (천년의 우화 컬렉션 23)

<국순전 국선생전 국수재전 국청전 (천년의 우화 컬렉션 23)> - 픽사, 디즈니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우리 옛 우화 소설 속에서 만난다 - 서울대학교 등 전국 주요 대학 필독서와 접하기 어려운 희귀 작품이 한가득! - 그동안 어려웠던 우리 옛 우화 소설을 더 쉽게 풀어내 읽는다 우화 소설은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당대의 사회제도, 이념, 풍습 등을 풍자해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가전체 소설, 의인 소설 등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동물을 의인화한 민담이나 설화 등은 오래 전부터 전해 왔다. 기록 문학으로서는 신라의 설총이 지은 「화왕계」부터 1천여 년 동안 다양한 작품이 태어났다. 양반 사회의 가치관, 윤리, 권위 등이 무너지는 조선 후기에는 한글 작품까지 나오며 우화 소설이 가장 활발히 창작되었다. 그러다 일본에게 국권을 강제로 뺏기는 1910년 전후로 점점 쇠퇴한다. 힘든 현실 속에서 세태를 풍자하는 소설이 살아남기에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소설을 자유롭게 짓기에는 우화라는 틀이 너무 좁았다. 그러나 이후 100년을 넘겨 어느 때보다 창작이 중요해진 오늘날, 우리 옛 우화 소설은 그 발상과 소재 면에서 되짚어 봐야 할 소중한 자산이 되어 있다. 임제의 「수정지」 등 사람의 감정을 소재로 한다는 발상은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아웃」보다 400년 이상 앞섰다. 또 송세림의 「주장군전」처럼 사람의 성기를 의인화해 주인공으로 삼은 점은 성도덕이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천년의 우화 컬렉션’은 우리 옛 우화 소설의 창작 세계를 가늠하고 살핀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기존 책들보다 훨씬 쉬운 우리말로 풀어냈고, 접하기 어려운 희귀 작품도 많이 발굴해 포함시켰다. 이 기획으로 우리 옛 우화 소설이 새롭게 인식되고 평가받기 바란다. 더불어 현재의 수많은 창작자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공방전 전신전 (천년의 우화 컬렉션 22)

<공방전 전신전 (천년의 우화 컬렉션 22)> - 픽사, 디즈니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우리 옛 우화 소설 속에서 만난다 - 서울대학교 등 전국 주요 대학 필독서와 접하기 어려운 희귀 작품이 한가득! - 그동안 어려웠던 우리 옛 우화 소설을 더 쉽게 풀어내 읽는다 우화 소설은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당대의 사회제도, 이념, 풍습 등을 풍자해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가전체 소설, 의인 소설 등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동물을 의인화한 민담이나 설화 등은 오래 전부터 전해 왔다. 기록 문학으로서는 신라의 설총이 지은 「화왕계」부터 1천여 년 동안 다양한 작품이 태어났다. 양반 사회의 가치관, 윤리, 권위 등이 무너지는 조선 후기에는 한글 작품까지 나오며 우화 소설이 가장 활발히 창작되었다. 그러다 일본에게 국권을 강제로 뺏기는 1910년 전후로 점점 쇠퇴한다. 힘든 현실 속에서 세태를 풍자하는 소설이 살아남기에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소설을 자유롭게 짓기에는 우화라는 틀이 너무 좁았다. 그러나 이후 100년을 넘겨 어느 때보다 창작이 중요해진 오늘날, 우리 옛 우화 소설은 그 발상과 소재 면에서 되짚어 봐야 할 소중한 자산이 되어 있다. 임제의 「수정지」 등 사람의 감정을 소재로 한다는 발상은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아웃」보다 400년 이상 앞섰다. 또 송세림의 「주장군전」처럼 사람의 성기를 의인화해 주인공으로 삼은 점은 성도덕이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천년의 우화 컬렉션’은 우리 옛 우화 소설의 창작 세계를 가늠하고 살핀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기존 책들보다 훨씬 쉬운 우리말로 풀어냈고, 접하기 어려운 희귀 작품도 많이 발굴해 포함시켰다. 이 기획으로 우리 옛 우화 소설이 새롭게 인식되고 평가받기 바란다. 더불어 현재의 수많은 창작자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서하집

<서하집> 죽림고회의 한 사람으로 무신정권 아래 벼슬 한 자리 하지 못한 채 평생 불우하게 살다 간 서하 임춘. 그러나 그의 문장은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 시를 읊으면서 마음으로 흠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고려 중기 문학을 대표하는 그의 문집을 모두 옮겼다. 가전체 소설의 효시(嚆矢)로 알려진 <국순전>·<공방전>도 만날 수 있다. 임춘의 학문 세계는 백부 종비(宗庇)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7세에 육갑(六甲)을 외고 경서를 통달했다는 자신의 기록을 보아 재능이 풍부한 신동이었던 듯하다. 이런 재질 덕분에 백부 종비의 총애를 받아서 그의 학문 세계를 전수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어려운 고사(故事)를 많이 써서 자신의 의사를 진정(陳情)하거나 또는 하사(賀謝)하는 글인 “계(啓)”는 임종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규보는 말하고 있다. 고사로 대구(對句)를 구성해 만든 사륙문은 그대로 임춘에게도 전달되어, ≪서하집≫에 수록된 계(啓)는 임종비의 문장과 같이 기본 구조가 사륙문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문체는 백부 종비의 영향이라 하겠다. 또한 당시 문단을 뒤흔든 풍조는 소동파(蘇東坡)·황정견(黃庭堅) 문체를 배우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파집(東坡集)≫ 등을 읽지 않고서는 문인 행세를 할 수 없었다. 임춘은 ≪동파집≫을 읽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말하듯 문체는 동파와 같다고 자랑함을 봐도 당시의 동파 존경이 어떠한가를 짐작하겠다. 망년우(忘年友)의 핵심인 이인로도 동파와 정견의 문집을 읽고서 시를 짓는 핵심을 얻었다고 했다. ≪서하집≫을 일별하면 당장에 느끼는 감정은 우선 고사투성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문 한 구절을 읽기 위해서는 고사를 모르곤 거의 불가능하다. 온통 고사로 얽어 놓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는 탁월한 재예(才藝)로 그 고사를 잘도 주물러 놓았다. 최자는 ≪보한집≫에서 그의 문장을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고인(古人)의 문체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모두 옛사람들의 말을 빼앗아 썼다. 심지어는 수십 자를 따다가 자기의 말로 삼았으니 이것은 그 문체를 얻은 것이 아니고 그 말을 빼앗은 것이다.” 이러한 준엄한 비평은 그의 문장이 고사를 많이 인용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체가 당시의 흐름이었다. 준엄한 비평을 한 최자의 ≪보한집≫도 고사를 많이 인용하기는 피장파장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비평한 것은 난삽(難澁)한 고사 때문이다. 이렇게 어려운 글을 쓴 이면(裏面)에는 그의 인생역정(人生歷程)이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정중부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발랄한 젊은 날을 보내며 장래가 훤히 보이는 그런 꿈을 꾸다가, 하루아침에 사회 체제가 바뀌면서 암담한 나날을 보낸 그의 비극적 운명은 이러한 고사를 인용해 심금을 달래고 때로는 집권자를 비난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문단의 조류가 고사를 인용한 문체가 풍미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 과정도 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임춘의 문장에 대한 이인로의 비평은 최자와는 사뭇 다르다. “선생의 문장은 고문을 배웠고 시는 소아(騷雅)의 풍골이 있어서 해동에서 벼슬하지 않은 사람으로 뛰어난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그가 죽은 지 20년,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 시를 읊으면서 마음으로 흠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장차 굴(屈)·송(宋)의 반열(班列)에 두려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상반된 비평은 두 사람이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문단에는 탁자(琢字: 글자를 조탁함)와 연대(鍊對: 대구를 다듬음)에 몰두하면서 사어(辭語)와 성률(聲律)을 앞세운 이인로와 임춘 계열, 그리고 기골(氣骨)과 의격(意格)을 앞세운 이규보의 계열이 맞서고 있었다. 최자는 단연 이규보 계열을 편든 것 같다. 임춘은 문장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갖고 있었으니 “문장은 기(氣)가 주(主)가 되니 심중에 감동해 말로 표현한 것이므로 아름다운 문구로써 자랑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문장의 묘미를 음미한 후에 묘(妙)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임춘의 작문에서 주요한 것은 기질이나 개성으로, ‘기(氣)’를 강조하고 있다. 즉, 주기사상(主氣思想)을 문장론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임춘의 견해가 이러할진대 최자의 비평은 무색하리라 본다. 최자의 말처럼 남의 글이나 빼앗아 옮겨 적었다면 당시 문단을 뒤흔들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