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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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이피게네이아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 총사령관으로 유명한 아가멤논의 맏딸이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헬레네의 친언니가 아가멤논의 아내이자 이피게네이아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다. 10만여 명이 넘는 군사가 모인 아카이아 함대는 출항에 필요한 바람이 불지 않아 출발부터 위기에 처한다. 이는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사냥 중 여신 아르테미스의 황금 사슴을 쏘아 죽여 진노했기 때문임이 밝혀진다. 여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바람이 불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의 큰 딸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진다. 총사령관으로서 부득이 딸을 희생시켜야 할 입장이 된 아가멤논은 큰 고뇌에 처하지만, 마침내 딸을 제물로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차마 사실대로 밝힐 수 없어, 아카이아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인 텟살리아 프티아의 젊은 왕자 아킬레스에게 딸을 시집 보내기로 했으니 아울리스로 보내라는 편지를 보낸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카이아 최고의 신랑감에게 딸을 시집 보낸다는 기쁨에 넘쳐 딸과 시녀들을 데리고 아울리스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녀는 우연히 아킬레스를 만나 그로부터 그같은 혼담은 전혀 들은 바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당황한다. 하인을 통해 사태의 진상을 알게 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충격과 비탄에 빠지고, 아킬레스에게 딸을 살려달라고 엎드려 호소한다. 아킬레스는 자신의 이름을 멋대로 도용해 그같은 일을 저지른 사태에 대해 크게 분노하며 왕비를 돕기로 약속한다. 한편 당사자인 이피게네이아 역시 그같은 전모를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지는데...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 정복을 앞두고 그리스의 승리를 위해 숱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조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이피게네이아의 숭고한 결단을 다룬 비극이다. 조국의 명운을 건 전쟁을 앞두고 공적 목표를 위해 혈육의 정마저 외면하지 않을 수 없는 지도자의 고뇌,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모정, 하루아침에 인신제물로 전락 당한 힘없는 여성을 도우려는 정의감 넘치는 젊은 영웅, 숱한 조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전쟁을 앞두고 지도자의 리더쉽을 위해 가장 숭고한 결단을 내리는 공주 등, 서양 문명의 가장 중요한 미덕 중 하나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은 오늘날까지도 무수한 문학 작품과 영화, 연극, 드라마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와 함께 3대 비극 시인의 하나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가 쓴 이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안>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양 문학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의 배경 트로이 전쟁과 관련한 또 하나의 서사로,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필독서로 추천한다.

레소스

<레소스> ≪레소스≫의 줄거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기초하고 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 10년사 중 전쟁 막바지 50일간을 1만 5000여 행에 걸쳐 묘사했다. ≪레소스≫는 트로이 전쟁의 판세가 뒤집히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해안가에 주둔해 있던 그리스 군대의 철군 움직임이 트로이군에 포착된다. 헥토르는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스군에 첩자를 보낸다. 그때 마침 트라키아의 왕 레소스가 군대와 함께 트로이에 도착한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트로이가 트라키아에 청병하고 10년 만이다. 이미 트로이의 승리가 확실해진 이때, 레소스와 트라키아 군대의 뒤늦은 지원에 헥토르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레소스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출정하자마자 스키타이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스키타이와의 지난한 싸움을 끝내고 곧장 트로이로 향한 트라키아 군대의 지친 모습을 보고 헥토르는 비로소 오해를 푼다. 그날 밤 레소스와 트라키아 군대는 트로이 진영에서 오랜만에 다디단 잠에 빠진다. 이날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10년간 끌어오던 트로이 전쟁의 결말을 예고한다. ≪레소스≫는 기원전 440년 이전에 상연되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창작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트라키아 왕 레소스의 죽음을 둘러싼 갈등이 극을 끌어간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극적 완성도가 떨어져 에우리피데스 작품이 맞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필멸의 인간은 신의 뜻을 알 길 없으니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는 이 작품에서도 유효해 보인다. 자, 여러분! 왕자님께 복종합시다! 무기를 들고 우리 동맹군에게 왕자님 명을 전하러 갑시다! 어쩌면 우리를 보살피는 신께서 승리를 안겨 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126쪽, 코로스의 합창 전문 ≪레소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로이군 코로스의 합창은 여전히 트로이의 승리를 낙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 이 전쟁은 결국 그리스의 승리로 끝이 난다. 신의 뜻을 인간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오레스테스

<오레스테스> 그리스 비극 작가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는 에우리피데스는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에 이어지는 ≪오레스테스≫를 통해 아가멤논과 그 가문에 내려진 저주를 다룬다. 감히 신을 시험하려 한 탄탈로스의 오만이 화근이었다. 그로부터 5대에 걸쳐 그 자손들은 근친상간, 골육상쟁의 비극을 겪는다. 아가멤논은 바로 이 가문에 내려진 저주의 희생자였다. 아가멤논은 딸을 제단에 바치고 트로이 전쟁에 나서면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원한을 산다. 아가멤논이 승전하여 트로이의 공주이자 사제였던 카산드라를 대동해 그리스로 돌아오자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정부와 공모해 아가멤논을 살해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후환이 두려워 아들 오레스테스를 나라 밖으로 추방해 버린다. 오레스테스는 몰래 고국으로 돌아와 누이 엘렉트라와 함께 어머니를 살해한다. 천륜을 저버린 대가는 가혹했다.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환상과 광기에 사로잡힌다. 어미를 죽인 죄로 그리스 시민들에게도 신에게도 미움받는 오레스테스 곁엔 언제나 곁을 지켜 준 친구이자 사촌 필라데스와 누이 엘렉트라뿐이다. 세 사람은 모친 살해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이 끔찍한 복수를 지시한 것은 아폴론 신이었는데도 말이다. “포이보스 아폴론 신께서는 너무나 불결하고 잔인한 일을 우리 두 사람에게 시키시고는 결국 우리를 희생자로 삼으셨어요. 우리 손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의 피를 흘리게 하셨으니까요.” -엘렉트라의 대사 중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오레스테스≫에서 신의 뜻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자유 의지로 신의 뜻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정된 운명, 불합리하고 가혹한 운명 가운데서도 인간은 스스로 정의를 찾기 위해 고뇌하고, 고통을 감내한다. 이 작품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를 죽여 정의를 지키고자 한 오레스테스의 고뇌, 복수의 여신에게 쫓기는 한 인간의 고통을 통찰력 있게 그려 냈다. 또한 오레스테스의 죄를 아레오파고스 법정에서 묻기로 하는 결말을 통해 신들의 뜻이 정의로 통하던 구시대가 저물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