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
로베르트 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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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쟈

<그리쟈>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명작을 발굴하여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숨어있는 명작 시리즈! 세계 유명작가들의 숨어있던 다양한 작품들을 숨어있는 명작시리즈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합본|특성 없는 남자 1-3권

<합본|특성 없는 남자 1-3권> 세계 문명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책이자 20세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선정된 바 있는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 3권과 1-3권 합본 양장판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이번에 나온 『특성 없는 남자』 3권은 지난 2013년 1, 2권이 출간된 지 8년 만에 나온 후속권이며, 합본 양장판은 3권이 나온 것을 기념하여 1-3권을 묶어 양장판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로써 전체 3부로 이뤄진 로베르트 무질의 미완성 대작 『특성 없는 남자』 중 작가 생전에 완결된 구조로 출간된 2부까지의 분량이 국내에서 처음 번역되었다. 사유 소설의 거장 로베르트 무질 한 세기가 마무리되던 지난 1999년 독일의 『차이트』(Die Zeit)지는 독일의 대표적 지성 99명에게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 결과 카프카의 『소송』(2위), 토마스 만의 『마의 산』(3위)을 제치고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1위를 차지했다. 『특성 없는 남자』는 같은 해 『르 몽드』(Le Monde)가 실시한 지난 세기 ‘가장 기억에 남는 책’ 100권, 2002년 노르웨이 북클럽이 전세계 100명의 작가에게 설문조사해 발표한 ‘세계 문명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책’ 100권에도 포함됐다. 『특성 없는 남자』는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함께 세계 3대 모더니즘 걸작으로 꼽히는 것일까? 밀란 쿤데라, 존 쿠체 등 이 소설의 영향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한목소리로 꼽는 이 작품의 특성은 바로 ‘사유 소설’이라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직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부의 문제적 인물들을 담은 이 소설은 유럽이 처한 정신적 위기 상황을 스토리가 아닌 ‘사유’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독특함을 인정받고 있다. 소설에서 카카니엔으로 명명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사상의 용광로가 된 것은 제국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한때 빈에 머물렀던 히틀러가 이렇게 많은 민족들과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투덜댔던 것처럼 제국은 독일인, 마자르인, 슬라브인 등이 뒤섞인 다민족국가였다. 자유주의 혁명의 세례를 받은 제국의 각 민족은 황제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고 결국 발칸의 청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황태자가 암살당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시작된다. 그러니까 1차 세계대전은 약소국 입장에선 민족해방전쟁이며 강대국 입장에선 영토전쟁의 성격을 띠었는데 유독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는 그런 목적이 없었다. 그건 전쟁이 아니라 정신적 공허에서 비롯된 불장난과도 같았다. 소설은 전쟁 직전 제국의 귀족, 지식인, 관료, 군인, 산업 부르주아 사이에서 펼쳐진 공허한 사유를 있는 그대로 포착해내고 있는 셈이다. 라인스도르프 백작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구체제, 즉 황제 치하의 ‘진실한 오스트리아’를 꿈꾸는 애국주의적 귀족이다. 그의 곁에 오스트리아 문화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자는 영혼의 이상주의자 디오티마가 있고, 그녀 곁엔 프로이센 출신의 독일인이자 세계적 자본가로서 디오티마의 영혼에 매혹되어 평행운동에 참여한 아른하임 박사가 있다. 한편 오스트리아 내의 독일민족주의자들은 반유대주의를 기반으로 평행운동에 극렬하게 반대한다. 가령 한스 제프와 게르다는 전형적인 범게르만주의 청년들로 유대인을 멸시하고 독일민족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불안정한 인물들이다. 반면 게르다의 아버지인 유대인 레오 피셀은 한스 제프의 독일민족주의에 맞서면서 평행운동에도 동의하지 않는 자유주의적 인물로 그려진다. 여기에 더해 예술적 천재의 탄생을 꿈꾸는 니체주의자 클라리세와 생명의 건강성을 흠모하는 자연주의자 발터가 있고, 새롭게 부상하는 민중계급의 아이콘으로 라헬과 졸리만 등이 가세하며 담론을 확장시킨다. 오스트리아 관료주의의 상징인 투치 국장, 위대한 지식의 지도를 그리려다 실망하고 군국주의로 치닫는 슈툼 장군, 어떤 학술적 담론으로도 포섭되지 않는 문제적 범죄자 모오스브루거, 그리고 이 범죄자를 옹호하는 한편 당대의 욕망을 상징하는 보나데아도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념의 장에서 현대를 바라보기 이렇듯 작품을 이끌어가는 힘은 각 인물들이 펼치는 이념의 장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이념의 정체성을 해체하는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의 시도는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울리히는 이론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신 현상에 숨겨진 본질을 좀더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 주력한다. 가령 역사적 진보의 내적 논리에서 울리히는 ‘평균’의 동력을 발견한다. 울리히는 현대적 세계의 ‘계산적 특성’이 평균값에 대한 추종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울리히가 보기에 현대의 실증주의적 정신은 삶의 모든 변수들을 평균에 위치시키는 특징을 가진다. 가령 ‘징병대상자가 신체의 일부를 잘라버리는 일정한 비율’이 계산될 수 있다면, 그 현상은 더이상 한 인간이 마주한 실존이 아니라 공동체의 평균적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시도는 현대가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밝혀내는 일종의 고현학(考現學)이다. 울리히가 보기에 현대는 생략과 과장을 통한 부정확성이란 특징을 가진다. 부정확성은 테니스 선수나 경주마를 ‘천재’로 부르는 시대적 현상으로 드러나며, 그런 현상은 고정된 하나의 적(敵)이 아니라 어디서나 유령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현대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 작품에서 현대성의 유령 같은 측면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은 아른하임일 것이다. 그는 특히 ‘돈’이 가진 반복의 특성을 현대적 규율사회의 권력, 폭력성과 연결하는 대담한 사유를 전개한다. 그는 이성과 도덕 같은 시민적 덕목이 경찰이나 정부, 군대와 같은 폭력의 형식에 의지해야 마땅하듯이, 돈 역시 자본주의의 위대한 질서이자 자유주의로 승화된 억압과 간계임을 강조한다. 산업 부르주아 아른하임을 내세워 무질은 현대의 자본주의적 삶 속에 숨겨진 파괴적 본질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담론의 해체 내지는 현대성의 해부라는 특징을 갖는 무질의 사유 소설은 프로이트나 후설, 부버 같은 동시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식인들의 사유와 연관된다. 이들이 하나같이 고민했던 것이 바로 유럽 정신의 위기였거니와 그것은 시효를 다한 유럽의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 정신을 벗어나 새로운 인간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절실한 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과 정확성의 딜레마 무질은 이런 과제를 소설로 표현한 또 하나의 오스트리아적 거장이었다. 그가 소설에서 표현한 실험적 사유는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벗어나 현상 속에서 선험적 본질을 밝혀내려 했던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 또한 현대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사회적 내면을 파악하고자 했던 짐멜의 사회학과 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관이나 현대성 같은 어느 하나의 학문적 용어로 그의 실험적 사유를 규정하려 할 때 무질이 가진 전체적 세계는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무질에겐 아주 작은 비유 하나에도 시적 정확성을 담아내려는 치열한 정신의 힘, 어떤 담론에도 본질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부정의 정신이 그 어떤 이론적 탐구보다 중요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너무 낡은 유럽의 영혼, 새롭게 떠오르고 있지만 뭔가 부족한 과학의 정확성. 영혼과 정확성이 처한 이런 현대적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질은 ‘다른 가능성’을 향한 끊임없는 정신적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생전의 로베르트 무질은 문학적 성취에 걸맞은 명성을 거의 누려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인생은 안타까울 정도의 궁핍과 불운으로 점철되었다. 예민한 성격의 어머니와 불화를 겪으며 일찍 집을 나와 기숙학교를 전전했고, 역경을 딛고 『특성 없는 남자』를 집필해 1, 2권을 발표했지만 때마침 정권을 잡은 나치에 의해 판매가 금지되었다. 무질은 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주하지만 질병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1942년 결국 미완성인 채로 제네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무질이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제3부는 울리히가 여동생 아가테를 만나 펼쳐지는 ‘다른 도덕’을 향한 모험으로 이뤄져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번역을 이어갈 수 있었다면서 후속권도 나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무질이 1906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 시절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다. 무질은 1902년 슈투트가르트 공과대학의 조교 시절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줄거리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퇴를레스가 이틀 동안 자신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부모를 친구들과 함께 역에서 배웅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퇴학을 당하고 어머니를 따라 학교를 떠나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군사학교에서 여러 차례 친구들의 돈을 훔쳐 왔던 바시니는 동료 생도 라이팅에게 덜미를 잡힌 후로, 몇몇 생도에게 심리적·성적 호기심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다.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는 학교 건물 다락 층에 있는 그들만의 비밀 공간에서 바시니를 상대로 인격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가혹 행위를 가하거나 성적 노리개로 삼기도 하고, 최면술 실험을 하기도 하는데 퇴를레스 역시 소극적으로나마 이 일에 가담한다. 바시니를 상대로 한동안 가혹 행위를 해 오던 바이네베르크와 라이팅이 바시니의 비행을 급기야 학급의 모든 학생 앞에서 폭로하고, 흥분한 전체 학생이 바시니에게 집단 구타를 가하면서. 이 사건은 결국 학교 당국에 알려진다. 곧이어 바시니가 격리 수용된 상태에서 교사들로 구성된 조사 위원회가 열리는데 이때 퇴를레스는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일차적으로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 등이 조사를 받게 된다. 조사 위원회에서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 등 생도들의 가혹 행위는 교사들로부터 면죄부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동료 학우 바시니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으로 미화된다. 학교 밖에서 지친 모습으로 발견된 퇴를레스가 위원회에 불려왔을 때 교사들의 뜻은 그를 벌하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의 심문은, 라이팅이나 바이네베르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퇴를레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그에게 정신적 안정을 되찾아 주기 위한 하나의 절차에 불과했다. 따라서 교사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생각을 퇴를레스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조사를 마무리 짓고자 하지만, 조사 위원들 앞에 선 퇴를레스는 교사들이 기대하는 답변 대신 뜻밖의 독백을 길게 펼친다. 바시니의 절도 행위를 고발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퇴를레스의 답변은 교사들의 기대를 빗나가기 시작한다. 교사들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하도록 다그치지만, 퇴를레스는, “그것은 달리 말할 수가 없어요”라고 맞서며, ‘일상적 사고’로 파악되지 않고 ‘일상적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 결국 교사들의 호의와 참을성을 끝내 극한으로 몰고 간다. 퇴를레스의 이야기에 더 이상 귀 기울이기를 거부하는 교사들은 퇴를레스의 정신적 상태를 책임지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퇴교시키기로 결정한다. 퇴를레스의 혼란의 뿌리 퇴를레스가 겪었던 정신적 혼란에서 바시니 사건이 큰 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혼란의 동기는, 조사 위원회에서 퇴를레스가 밝히고 있듯이, 수학의 “허수” 및 “무한” 개념과의 만남이었다. 수학 시간에 “허수”를 배우면서 퇴를레스는 가장 확실한 학문인 수학이 놀랍게도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수학 교사를 개인적으로 찾아간다. 그를 맞이한 수학 교사는 퇴를레스의 의문을 단순히 어린 나이 탓으로 돌리고, 그가 이해를 하게 될 때까지 그냥 “믿으라”고 충고한다. 면담 중 수학 교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그리고 그것이 퇴를레스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책인 듯 교사가 암시하기도 했던 칸트의 책을 그날 밤 읽어 보지만 개념으로 가득 찬 칸트의 책은 그의 실망을 배가시킬 뿐이다. 퇴를레스가 “허수”에서 겪는 혼란이 수학 교사가 생각하듯 단순히 어린 학생의 학습상의 어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수학에 대한 무질의 성찰은 무질의 문학론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학은 무질에게 이성 중심의 학문적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최고의 학문이자 문학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가장 이상적인 학문이다. 수학은 무질에게 바로 이성과 비이성의 세계를 아우름으로써 세계 구조의 정확한 파악을 가능케 하는, 다시 말해서 이성적 영역과 비이성적 영역의 총체성 속에서 세계의 구조를 정확히 측정·예견해 내는 가장 소중한 학문이다. 나아가서 무질은, 오늘날 인류의 문명이 수학의 유용성을 떠나 생각할 수 없지만 사실 수학은 ‘모든 목적으로부터 자유롭게 ‘진리’에 몸을 바치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작가가 가장 모범으로 삼아야 할 학문임을 강조한다. 수학에 대한 무질의 문학론적 성찰을 배경으로 볼 때,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에서 퇴를레스의 정신적 혼란은 바시니 사건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표면에 드러나 보이는 줄거리보다 더욱 깊은 곳에서 작가의 성찰이 전개되는 또 하나의 차원을 갖고 있다는 관점에서 무질이 16세의 소년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한 것은 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구실’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뜻이 좀 더 분명해진다. 무질이 군사학교 소년들의 문제를 소재로 한 것은 청소년 문제의 소설을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 과정에서 생성되는 소설 본연의 차원을 위한 하나의 ‘구실’이었던 것이다. “죽어 있는 사고”의 거부 조사 위원회에서 퇴를레스의 퇴학이 결정되지만, 퇴를레스가 학교를 떠나는 것이 교장의 결정 이전에 퇴를레스 자신의 결정이었다. 조사 위원회에서 퇴를레스는 바시니 사건을 통해서, 그리고 허수를 통해서 ‘사고로 헤아릴 수 없는 어두운 무엇’, ‘일상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을, 교사들이 강요하는 ‘죽어 있는 사고’의 세계에 내맡기기를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다. 일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예민한 10대 소년 퇴를레스가 이처럼 자신의 생각을 교사들의 생각에 맞추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이면에는, 사실 ‘이성과 개념으로 파악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좀 더 진지한 성찰을 위해 스스로 학교를 떠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사실상 스스로 “죽어 있는 사고”의 세계에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학교를 떠나는 퇴를레스의 모습을, 독자들이 후에 ≪특성 없는 남자≫의 “삶으로부터의 휴가(Urlaub vom Leben)”를 선언하는 주인공 울리히에게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교, 엔지니어, 수학자 등의 직업을 거친 후 낙향한 주인공 울리히가 언뜻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불식시키기 어렵지만, 작가는 주인공이 “올바른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삶으로부터의 휴가”를 선언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편 첫 소설의 주인공 퇴를레스가 오성적 개념과 언어의 한계를 자각하고 학교를 떠나는 모습 뒤에는, 그리고 현실로부터 벗어나 ‘삶으로부터의 휴가’를 선언하는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의 모습 뒤에는 다분히 학문의 길을 떠나 작가의 길을 결심한 작가 무질의 모습이 숨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세기의 전환기에 첨단 자연과학과 철학, 심리학을 심도 있게 공부한 무질은, 퇴를레스가 말하는 소위 ‘살아 있는 사고’의 가능성을, 그리고 울리히가 말하는 ‘올바른 삶’에 대한 성찰을 학문의 개념 체계에서가 아니라 문학의 언어에서 추구했던 것이다. 번역은 독일 로볼트(Rowohlt) 출판사에서 1978년 출간한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전집 제2권에 수록되어 있는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Die Verwirrungen des Zöglings Törless)≫을 원전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