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서른> 어느 비 오는 날 밤 나는 너를 소환했다. 그러고는 당신의 삶 너의 여정을 나의 이야기로 소설화 했다. 바람이 불었다. 비가 내렸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밖으로 나가 추모비가 있는 등대 쪽으로 바라보곤 했다. 매미 태풍에 그들이 죽고 없는 줄 알면서도 살아 돌아오리라는 어리석은 희망을 갖고 말이다. 20여 년 전 그들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날이었다. 중년의 여인이 하얀 덧니를 드러내며 태풍에 침수된 상가가 바라다 보이는 경남대학교 정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인혜였다. 나는 헛것을 보고 있었고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쳐 있었고 무기력해져 있었다. 쉬고 싶었다. 그날을 떠올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긴 여정을 왔다는 생각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겨울 하늘은 맑았다. 하늘에 비친 내 모습은 늙어 있었다.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고독한 긴 겨울이었다. 겨울은 춥기만 했다. 돌아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편함에는 독거노인을 알리는 고지서가 꽂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 구름이 뭉쳐 서쪽 등대가 있는 곳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 구름 낀 날이나 마음이 힘든 날이면 나는 S의 추모비가 있는 바닷가 등대를 바라보곤 한다. 그러다가 고양의 하늘로 고개를 돌린다. 나의 연인 그녀를 떠올리면서…….
<바람재 사냥꾼> 작가의 말 오랜 옛날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와의 애틋한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지는 무학산 기슭 만날재 고개가 있다. 그곳을 지나 산길을 따라 감천골로 향하는 고갯길을 오르다 보면 수려한 쌀재 언덕과 바람재 능선을 만나게 된다. 약 250년 전 이곳에는 사냥꾼이 살고 있었고 아름드리 노송이 빽빽이 서 있었다. 가끔 바람재를 찾던 나는 노송이 사라지고 없는 언덕에 앉아 마산만 바다의 풍광을 바라다보며 그 옛날 바람재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날은 겨울이었다. 저 멀리 숲속에서 까마귀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리고 바람재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합포 바다 파도는 바람을 일으키며 바람재로 날아왔다. 저 바닷바람은 그 옛날 그날도 만날재와 쌀재를 넘어 바람재 사냥꾼의 초막을 스치고 갔을까. 나는 오래전 그날 있을 법했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바람재가 있는 언덕에서 찾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직도 천민의 슬픈 사연과 분노의 흔적이 있었다. 나는 애련한 마음으로 오랜 옛날 댓거리 시전 천민들의 남루한 모습과 곡물을 나르던 서면 조창의 평민들 모습을 떠올리며 소설 ????바람재 사냥꾼????을 쓰게 되었다.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그 옛날 그날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 봤다. 소설 바람재 사냥꾼이 탄생하는 과정도 그날의 역사 속에 매료된 글이라 하겠다. 이 소설은 조선 정조 시대와 순조 시대에 이르는 시공간 속에 한 사냥꾼이 남긴 나눔과 봉사 정신 그리고 이타적 삶을 살았던 사냥꾼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옛날부터 구전되는 애련한 이야기는 비록 지어낸 이야기일지라도 사실인 듯 빠져들며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가슴 아파했던 이야기이다. 바람재 사냥꾼은 소설 ????가인마을의 비화????에 이어 두 번째 쓰는 소설이다. 가인마을의 비화가 조선 숙종 때 이야기라면 바람재 사냥꾼은 정조와 순조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 이 소설 속에는 천민들의 애환과 비애, 진눈깨비 내리던 그날의 바람재 흔적이 담겨 있다.
이데아! 주인공 : 기러기 엄마 : 민들레 형 : 두꺼비 이들 가족은 부산 해운대에 살고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러기 어릴 때부터 정신세계의 이상이라 느낄 정도로 존재하지 않은 세계에 매몰되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어린 기러기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너무도 형이상학적 세계를 좇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기러기의 가족은 병원 진료마저 포기했다. 그러다가 주변 환경에 의해 가족도 기러기도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가러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현대의학으로 대단히 실험적이고 대단히 위험한 실현 불가능한 수술을 했고 전문의 성공적 수술을 계기로 기러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러기 자신의 과거가 허황되고 그릇된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하나 증명시키며 기러기, 기러기의 이데아를 실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