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수엄마> 이 책은 슬픔이 어떻게 성공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다음은 작중인물의 말이다. "늬는 너무 착해. 너무 진실되구. 원래 생겨먹은 거이 기래. 늬는 눈물이 많은 놈이거든. 늬는 이 사회의 허점을 찌른 게야. 이 사회를 살아가기에 가장 부적절한 늬가 가장 적절하게 처신한 거디. 늬는 요즘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것들을 개디구 묘한 걸 만들어냈어. 일테면 착함, 진실, 연민, 의리 같은 구질구질한 퇴물을 한 솥에 끓여서 묘한 걸 과낸 거라메. 기거이 뭔디 아네? 바로 슬픔이었어. 슬픔이 너를 미치게 한 거라메. 기러니께니 슬픔처럼 오묘한 게 없잖갔어? 슬픔은 못하는 게 없디. 슬픔은 무소불위야." 춘천옥 이야기는 7, 8년 전 두 일간지에서 책으로 내자고 하던 소재다. 그 쓰지 않을 수 없는 내 체험담을 이제야 정리해서 책으로 엮었다. 출간 후에는 2011년 11월 1일부터 KBS 라디오 일일연속극 원작소설로 극화되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 김용만, 작가의 말(책머리글) <태어나서 미안한 존재> 중에서
<괴물을 사랑한 여자들> “인간적인 삶의 진실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아포리즘” -소설 “늰 내 각시더”의 작가 김용만 소설의 결정판! 김용만 장편소설 [괴물을 사랑한 여자들]은 2년 반 동안 문예지에 연재해 온 장편으로 핍진성과 더불어 읽히는 재미에도 무게를 두었다. 강도를 사랑한 두 여자의 이야기, 과연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왜 이런 작품을 썼는가? 그 비현실성이 작품의 리얼리티에 흠이 되고 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고 작가 스스로 말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소설작법을 강의해 온 사람이 정작 자신의 작품에서는 허점을 보인 그 파격성은 여주인공의 말을 통해 변명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인간이 아닌 괴물을 잉태하고 싶었어.” 인간적인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세상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진실이 무엇인지, 그 진실을 캐는데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 이 작품은 그 캄캄한 화두에 매달린, 일종의 아포리즘인 셈이다. 2년 반 동안 문예지에 연재해 온 이 소설은 핍진성과 더불어 읽히는 재미에도 무게를 두었다. 강도를 사랑한 두 여자의 이야기, 과연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왜 이런 작품을 썼는가? 그 비현실성이 작품의 리얼리티에 흠이 되고 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소설작법을 강의해 온 사람이 정작 자신의 작품에서는 허점을 보인 그 파격성은 여주인공의 말을 통해 변명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인간이 아닌 괴물을 잉태하고 싶었어.” 인간적인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지금 같은 세상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진실이 무엇인지, 그 진실을 캐는데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 이 작품은 그 캄캄한 화두에 매달린, 일종의 아포리즘인 셈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부여 찾아 90000리> 백제 패망이라는 슬픈 역사에서 캐낸 부여의 아름다움의 극치 부여 사람, 잔아(殘兒) 김용만의 『부여 찾아 90000리』는 백제 패망의 슬픈 역사를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백제의 미학적 탐구라는 주제의식을 멀리 백제 시대로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대신 6ㆍ25전쟁과 그 이후라는 ‘동시대적’ 이야기를 통해 실현, 체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새뜸’이라는 작은 마을에 대립하는 두 집안과, 이 반목을 운명처럼 짊어진 주인공 찬혁과 세영의 슬픈 성장사와 사랑으로 응축된 이야기를 통해 부여의 진정한 ‘비극미’를 선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반목을 운명처럼 짊어진 두 남녀의 사랑 『부여 찾아 90000리』의 주무대는 부여에 속하는 ‘새뜸’(행정구역상 오덕리)이라는 고장으로, 단순히 궁벽한 산골이 아닌 “선조왕의 태실비가 서 있”(26쪽)는 역사적 유물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며 윗마을(위뜸)과 아랫마을(아래뜸) 사이에 해묵은 대립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이 원수 사이가 된 것은 위뜸 김씨와 아래뜸 전씨가 씨족 부락을 이루어 서로 앙숙으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네가 잘되기보다는 상대방이 못되기를 더 바랐다. 그처럼 적대관계로 살아온 두 뜸 사이에 주막이 있는데 짓궂은 사람들은 그 주막을 판문점이라고 부르고, 위뜸과 아래뜸이 합친 새뜸을 통일조국이라고 불렀다. (26쪽) 주인공 찬혁과 세영은 이처럼 대를 이어 대립하는 집안의 자식으로, 서로를 사랑하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 숙명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6ㆍ25전쟁이 끝나고 세영의 집안이 좌익분자였다는 오명을 벗기 위해 찬혁의 집안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멸문지화를 당하게 한 ‘원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뜻을 둔 아버지 전덕술의 욕망 때문에 재벌 자제인 배태욱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세영은, 이 곤란에서 벗어나고자 선거를 핑계로 아버지에게 찬혁의 집안인 ‘위뜸’과의 화해를 제안한다. 전덕술이 소유한 유원지에 위락시설을 만들고, 위뜸과 아래뜸이 공동운영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개업식 전날 위락시설에 원인 모를 화재 사건이 일어나고, 찬혁을 방화범이라고 여긴 세영의 오해로 인해 두 사람은 오랜 이별을 하게 된다.
<칼날과 햇살> 전후 반세기만에 만나는 이념 탈색의 분단소설/ 『칼날과 햇살』은 제목이 암시하듯 남북 이념 대립의 예리한 칼날에서 남북 화해라는 휴머니즘적 햇살로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김신조등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습격과 이에 맞서 영화 '실미도'등으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김일성 등 북한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남한의 북파 공작, 그리고 울진, 삼척의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가 벌어지던 1960년대. 그 당시 체포된 무장 공비와 그를 취조했던 형사의 40년간의 대결과 신의를 통해 이 작품은 우리는, 남북은 이념 대립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가를 구체적 실감으로 제시하고 있다. 1989년 월간 「현대문학」에 발표한 등단작 단편'은장도'에서 모티프를 따와 장편으로 펴낸 것이다. 북파공작과 무장공비 침투가 일어났던 60년대를 배경으로, 남파 무장 공작원 배승태와 체포된 배승태를 취조했던 담당 형사 강동호 간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노년으로까지 이어지는 40년 간의 인연의 드라마를 그린 작품이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의 분단 상황을 이념대립(칼날)에서 남북화해(햇살)라는 소설적 화해로 풀어가고 있다. 꼼꼼히 읽고 작품집에 해설을 붙인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저 지랄 같은 20세기 중심에 놓인 이른바 분단 상황을 21세기에 접어든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소화해 갈 수 있을 것인가. 소설적 화해란 어떠해야 할까? 김용만씨에 의해 그 유려한 소설적 방식이 창출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