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나 버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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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016

<안개 |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016> 농장을 물려받을 예정이나 몸은 허약하고 농사일엔 서툰 앤디. 공부에도 영 소질이 없고 잘 하는 건 공상 뿐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서 좀 모자란 몽상가로 통한다. 이런 앤디가 자기 혼자만 직감하고 확신하는 미지의 운명. 점점 다가오는 그 운명에 대한 공포와 동경이 이 작품 전반을 관통한다. 이 양가적 감정을 안개라는 장막이 감싸면서 아련하고 묘연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한 순수한 청년이 좇는 환상성과 그 아릿함이 인상적이다. <책 속에서> 그 친구는 깊은 바다로부터 1,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어. 그 친구의 가족들은 중서부 곡물 생산지의 소농이었고, 그는 농장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지. 그러나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가족은 그가 이상한 종자임을 알아챘어. 가족의 눈에 그는 대학 교수가 아니듯이 농부도 아니었거든. 그 친구는 애초부터 땅을 싫어했지. 땅의 생김새, 촉감, 냄새를 싫어했어. 그 친구가 나중에 내게 말하길, 쟁기로 밭을 갈 때마다 손톱으로 비단을 긁을 때처럼 이를 악물었다는군. 그 친구 이름이 앤디였어. 그 친구가 열세 살 무렵에 신문에서 배의 그림을 발견했지. 다른 세상을 슬쩍 본 것 같았던 거야. 그 그림을 오려서 자신의 다락방 침대 위쪽 벽에 붙여놓았어. 하루에 백번은 족히 그림을 쳐다보곤 했지. 한밤에 일어나서 성냥을 켜고 그림을 쳐다보기 일쑤였어. 상황이 이쯤 되자, 앤디의 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에 회반죽 통을 들고 와서는 벽 전체를 발라버렸지. 소년은 배가 사라질 때까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러더니 웃어댔다지.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린 거죠, 뭐.” 그 친구가 그러더군. “안개 속으로요. 그리고 다신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날 후로 그 친구는 아팠지. 열병 같았어. 내 생각에는 그 열병으로 그 친구가 약간 정신착란을 일으킨 듯 했어. 가족이 그를 그 그림처럼 지워 버릴까봐 무서웠다고, 그 친구가 내게 말했지. 숨이 막혀 죽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런 것들이 즐거웠다고. 이상했다고. 너무…….

비 | 아라한 호러 서클 109

<비 | 아라한 호러 서클 109> 데이나 버넷은 생소한 작가지만, 두 편의 단편은 주목할 만하다. 먼저 소개했던 「안개」처럼 「비」 또한 날씨와 심리가 효과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의 무력감 속에서 일주일째 내리 쏟아지는 폭우로 집안에 갇힌 부부. 무감각과 예민함이 충돌하면서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주는 간결하지만 서늘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안개」가 몽환적인 환상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비」는 심리적 균열과 공포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책 속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녀는 그 앞에 버티고 섰다. 그녀의 가슴이 들썩거렸고 눈에는 가련히도 겁에 질린 무력감이 있었다. 마치 운명에 맞서 싸우기에는 자신이 점점 무력해지는 것을 알고 있듯이. 짐 베어드는 약간 허세를 부리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비겁함을 가리는 불변의 망토, 그것이 허세다. 그러고는 식탁 앞에 앉더니 평소처럼 먹기 시작했다. 앨리는 묘한 공포심을 가지고 그를 지켜보았다. 켜켜이 쌓인 혐오감이 원래의 익숙함만큼이나 새로운 표현을 찾았다. 그는 짐승처럼 먹었다. 이번 주의 악천후가 그녀의 숨은 감정, 은밀한 의견, 오랫동안 은폐해온 증오심의 상당부분을 표면화한 것 같았다. 끝없이 내리는 비가 그녀의 무감각한 영혼을 서서히 지치게 하고, 신경을 갉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와 한 지붕 아래 그토록 오랫동안 갇혀지낸 적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가 살인적인 날씨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녀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