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집집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식탁에 왜 빈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을까? 장편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제 3회 1억 고료 국민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소설가 김다은 씨가 그동안 보여줬던 실험적 서간체 소설과 한국형 팩션 소설의 전범을 뛰어넘는 지극히 감동적인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작가는 안식년을 맞이해서 폴란드에 3개월간 머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어떤 소설을 써야할 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폴란드 집집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식탁에 빈자리가 하나씩 놓여 있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소설 세계를 찾게 되었다. 어떤 끔찍한 고통과 운명을 맞닥뜨려도 영혼의 등경에 빛을 밝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처럼 펼쳐놓고 있다.
<금지된 정원> “조선을 영원히 일본의 발아래 둘 것이다.” 조선 총독, 조선의 마지막 왕을 꿈꾸다! 청와대 수궁터에 숨겨진 일본의 음모는 과연 무엇일까? 『금지된 정원』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같은 인상적인 전작을 통해 한국형 팩션 소설과 서간체 소설의 전범을 선보인 소설가 김다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김다은은 치열한 역사 인식과 섬려한 추리적 통찰이 돋보이는 이 소설을 통해, 기존 팩션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통속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팩션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청와대 수궁터에 감춰졌던 비밀을 풍수로써 밝힌다. 풍수사상은 음양오행을 기초로 전래된 민간 토지 사상으로서 자연현상과 그 변화가 인간 생활의 행복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다. 그리하여 선조들은 주거를 짓거나 묘를 쓰는 데 있어서 풍수를 절대적으로 따랐다. 풍수사상은 신라 말기부터 활발해져 고려 시대에 전성을 이루어 조정과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백제, 고구려의 도읍을 삼은 근거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것도 그 태반의 이유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이다. 실로 조선 시대에는 풍수지리설이 국가와 민간에게 끼친 영향이 크다. 바로 이 풍수사상이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주요한 소재이다. 종로구 세종로 1번지. 현직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가 위치한 그곳은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시대 총독관저가 들어선 장소다. 외세침탈의 상징이었던 총독관저는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1993년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를 수궁터라 부르게 되었다. 『금지된 정원』은 총독관저가 왜 수궁터에 지어졌는지 그 비밀의 해답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조선에 부임한 첫날 폭탄테러에 의해 생명의 위기를 느낀 조선 총독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선의 영원한 지배를 위해 경복궁 내에 총독관저를 지으려고 하고 조선의 유명 지관들을 한데 불러 모아 최고의 복지(伏地)를 찾으라고 명한다. 조선의 유명한 풍수사들이 경복궁 내에서 최고의 명당자리를 고르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기 위한 계략과 만행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이를 막기 위한 조선 지관들의 풍수적 대립과 방어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또한 소설 곳곳에 배치된 삽화를 통해 사실감을 증폭시키며 배산임수, 천지인, 사신, 명당 등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민간 풍수설을 넘어 한 나라의 운을 걸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나라의 풍수사상이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소설적 장치로서 작용한다. 소설과 현실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미스터리 팩션 이 작품은 픽션인 역사소설이다. 흔히 역사소설은 역사가 소설의 바탕이 되지만, 이 글을 통해 소설이 역사적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랐다. 담론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 우리 사회에서 불행의 언어를 걷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청와대 구 본관을 허물고 새 본관을 짓듯 우리의 의식도 새로운 집을 짓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나라를 빼앗고 우리 혼의 심장부를 함부로 강탈해서 총독관저를 지은 일본의 진짜 속셈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 불행한 담론을 미래의 대통령들에게 계속해서 이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섣불리 우리나라의 미래를 과거의 흔적 속에서 재단한다면 그야말로 그들의 치밀한 계획을 완성시켜 주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 작가의 말 중에서 『금지된 정원』은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팩션이다. 소설의 인물과 배경 그리고 사건들은 실제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역사소설이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소설적 가미를 하였다면, 『금지된 정원』은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소설 속 거의 모든 인물과 사건이 실제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복원을 통해 엔터테인먼트로서 소설의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적 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역사소설이 취하고 있는 조선인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구성에서 벗어나 마치 일본인 소설가와 한국인 소설가가 주고받는 것처럼 자신들의 첨예한 입장을 이야기하듯 긴장을 심어둔다. 그 때문에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과거의 사실과 소설적 허구의 혼동지점이 찾아들게 되는데 그 점이 바로 『금지된 정원』의 묘미이자, 화두이다. 소설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중 한 가지는 ‘문화말살정책’을 통해 조선의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는 일본과 그에 대응하는 조선인들의 방식이다. 이들은 일본의 잔혹하고 야비하며 무지한 수탈에 격정적인 반일 투쟁자나 무력(武力) 투사가 아닌 예인(藝人)으로서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며 ‘문화독립투사’의 면모를 보인다. 『금지된 정원』은 풍수라는 동양철학에 연극, 음식 등과 협연하여 무형의 존귀한 투쟁을 보여줌으로써 조선 민족의 얼과 맥을 고취시키며 끝나지 않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멈추지 않는 만행 속에서 보다 객관적이게, 허나 뜨겁게 우리 민족의 기억을 되살리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고군분투 『금지된 정원』의 인물들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다.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려는 총독, 지관과 백성의 본분 모두를 지키고픈 갈등에 휩싸인 김 지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고 싶은 세린, ‘미프헬’을 만나겠다는 일념의 하루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바 형사와 카케노 형사. 모두 서로 다른 갈망 속에서 운명을 상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든다. 이들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가 결국 하나의 귀결에 이른다. 이 독특한 구성은 이야기에 긴박함과 미스터리를 부여하며 사건을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데 이러한 점층적 추리 구성은 이야기의 흥미를 더해간다. 독자들은 이제까지 정형화 되어 있던 역사소설 인물들의 틀을 깨고 눈앞에 있는 듯 생동감 있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풍수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한 편의 재미있는 웰메이드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의 혼동 속에서 어느 순간 경계를 풀고 소설 속 인물들에 흠뻑 젖어들게 될 것이다. 줄거리 조선에 부임한 첫날 폭탄테러에 의해 생명의 위기를 느낀 조선 총독은 조선의 영원한 지배를 위해 경복궁 내에 총독관저를 지으려고 하고 조선의 유명한 풍수사들을 한데 불러 모아 최고의 복지(伏地)를 찾으라고 명한다. 김 지관 역시 총독의 명을 받게 되어 경복궁 내의 명당을 찾던 중 유명한 풍수예언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숨겨둔 오래된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는 총독이 경복궁에 총독관저를 지으려는 목적과 그에 따르는 조선의 미래에 대해 예언한 것으로 조선이 영원히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과 그것을 막을 방법이 적혀 있었다. 총독은 조선과 일본의 풍수학을 이용하여 온갖 계략을 짜내며 만행을 저지르고 김 지관은 풍수적 비밀이 감춰진 수궁터로 총독의 욕심을 역이용해 조선의 미래를 구할 방도를 세우며 자신을 신임하는 총독에게 최고의 명당인 경복궁 밖 후원 수궁터에 총독관저를 지을 것을 권하는데...... 추천의 글 김다은의 『금지된 정원』은 일제가 ‘문화통치’라는 기만정책을 펼치던 1926년을 배경으로 한 팩션(faction)이다. 풍수까지 동원한 간교한 지배정책이 자행되던 그 시기에 경성에 머물렀던 자들의 모습이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된다. 조선의 맥을 끊으려는 총독부의 음모를 둘러싸고 지관(地官), 선교사, 연극배우, 총독과 형사가 복잡하게 뒤얽힌다. 소설의 배경은 과거지만 소설의 질문은 현재적이다.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배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제에 의해 폭력적으로 이식된 근대는 뒤틀린 괴물의 형상으로 진화했으며 고통스러운 과거사는 외교의 문제를 넘어 아직도 깊은 앙금으로 남아 있다. 과거를 단지 풍경으로 박제시키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상력을 통해서 과거에 존재했던 ‘인간’을 복원하는 일이다. 이것은 앙상한 역사적 사실(fact)에 살을 붙여서 과거를 현재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효과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여기, 1920년대 경성의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추가되었다. - 이정현(문학평론가, yes24 웹진 북리뷰어) 관록의 작가답게 팩트(역사적 史實)와 픽션(추리기법)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 하면서 독자를 혼동 속으로 때론 서스펜스하게 유혹하는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 독자들은 이런 유혹들에 이끌려 내러티브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유희를 느낀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소설에 각종 삽화가 맛깔나게 더해져 사실감을 증폭시키면서 팩션의 진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석진(인터파크 파워북피니언) 조선의 맥을 영구히 끊기 위해 치밀한 계략을 꾸미는 조선총독과 이를 막기 위한 조선 지관들의 지혜와 용기가 숨 막힐 듯 웅대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역사추리소설의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문학적인 향기를 놓치지 않고 있는 웰메이드 팩션이다. 드라마와 영화로 재구성되어도 손색이 없는 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놓치지 마시길. - 서유경(네이버 북리뷰 파워블로거)
<영감의 글쓰기> 『영감의 글쓰기』를 쓰게 된 계기는? 소설가 김다은(추계예술대 교수)이 『영감의 글쓰기』(무블 출판사)라는 새 책으로 영감의 전도사가 되어서 돌아왔다. 김다은 씨는 『이상한 연애편지』로 우리나라 서간체 소설의 장을 활발하게 열었고, 섬세한 필치로 『손의 왕관』 『훈민정음의 비밀』 『금지된 정원』 등 통 큰 역사소설을 써왔으며,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엮거나 외국에 소설을 발표하는 등 20여 권의 책을 활발하게 발표해 온 작가이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교수로 20년간 소설창작을 가르치면서도 글쓰기 이론서를 한 권도 쓰지 않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를 서문에 밝혀 놓았다. 국내외 많은 글쓰기 서적들이 창작의 기본 개념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진작 글쓰기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영감의 문제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작품의 숨결이나 다름없는 영감을 다루지 않은 이론서는 세상에 나와 있는 책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영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글쓰기 이론서를 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20년 만에, 드디어 김다은 교수가 상식을 파괴하는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영감의 글쓰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영감은 외부에서 오는가? 작가의 내부에서 나오는가? 20년간의 글쓰기 창작 교수로 그리고 소설가로 얻은 교훈은, 자극은 외부에서 오지만 그 자극을 영감으로 바꾸는 과정이 내부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영감이 한 줄기 바람처럼 나를 휘감으면 걸작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영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어릴 때 숟가락질도, 오줌을 가리는 것도 훈련을 통해 가능했듯이 영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감의 글쓰기』는 자신 안에 영감의 기계가 작동하도록 훈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흔히 창작은 10%의 영감과 90%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지만, 영감의 기계가 몸 안에 장착되면 영감과 노력은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글을 쓰는 매 순간 새로운 감각의 작동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로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듯이, 영감도 매일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감의 훈련 방법은 무엇인가 『영감의 글쓰기』는 기존의 글쓰기 도서들과 괘도를 달리한다. 우선 가로로 쭉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독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읽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책의 이정표가 들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빨간 ‘사유’ 표지판 앞에서는 멈춰서 자기 생각의 짬을 짧게 혹은 길게 가져야 한다. 때로 페이지를 뛰어넘어서 읽는 세로 읽기 지점이 있는가 하면, 되돌아가서 확인하며 연결해서 읽어야 하는 지점도 있다. 질문에 대답하도록 책-공책의 특이한 구성을 가진 책이기도 하다. 더 특이한 것은 자신의 책을 꼭 사보라고 주장하는 책들과 달리, 영감에 대한 일방통행적인 지식이나 이론서를 원한다면 이 책을 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이 책은 책에 대한 모든 상식을 무너뜨렸다. 책 자체가 새로운 영감 덩어리다. 영감의 훈련 내용은 무엇인가? 창의적인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자기 확인이 필요하다. 대부분 이 단계를 생략하고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을 쓸 때마다 흔들리고 괴롭게 버터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확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 사유하는 힘이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만의 새로운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사유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흥미의 연속이다. 처음 난센스 퀴즈처럼 가볍게 시작된 훈련은 설렘을 주었던 사물들의 정체나 가치를 다르게 보는 방법이나 단어 세 개로 글 자화상 그리기, 내가 나의 몇 %인가를 알아가는 등 자기 확신의 훈련으로 진행된다. 글쓰기 훈련이지만, 신기한 그림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과정이다. 둘째, 창작을 위해 꼭 필요한 언어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방법을 알려준다. 언어가 영감의 원천임을 알지 못하면 창의적인 글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재료들을 잘 구비하고 신선하게 보관해야 하듯이, 글쓰기 창작을 위해서도 어휘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잘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말잇기, 단어 스펙트럼 찾기, 뜻을 모르는 미끼 단어로 상상력 키우기, 나만의 상상력 사전 만들기 등 다양한 언어의 축제가 벌어진다. 셋째, 창작의 기본 개념들을 이론처럼 접근하지 않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접근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론서를 읽으면 도리어 영감이 쭈그러드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래서 성급하게 정의(定意)하지 않고 정의(正意)라고 말하는 것들도 의심할 수 있도록 뇌를 훈련한다. 자신의 몸과 정신에 집중하며 생각을 뒤집어 보는 방법에서부터 병과 증상을 문학적인 키워드로 사용하거나, 구두점을 무시하면 영감에게 무시당한다며 문학적인 구두점 활용을 알려주고, 소설 속의 리듬을 넣어 독자를 즐겁게 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넷째, 영감의 길잡이가 되는 여러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깊은 통찰을 이끌어내는데, 특이한 것은 영감 측면에서는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세계적인 명작에 뒤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신춘문예 작품들처럼 막 작가가 되려고 하던 순간의 영감이 마치 차갑고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강하다는 것이다. 작가가 추천한 책 외에 독자가 영감을 받은 책들을 채워 나가도록 한 것도 특이한 영감 훈련 방법으로 소개했다. 다섯째, 영감의 글쓰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글 쓰는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글을 쓸 때 누리는 기쁨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아마추어로서 제 맘대로 쓰면서 느끼는 기쁨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로서 힘들더라도 단련하면서 느끼는 기쁨이라고 한다. 후자를 즐길 생각이 없으면 전자로 남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사유에 대한 단련의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누릴 줄 아는 글쓰기의 프로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화, 번지점프를 하다 > 이화 출신 대표 작가들의 단편 12편을 모은 테마소설집이다. 2009년 이화여대출판부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도서로, ‘이화’와 ‘청춘’을 주제로 하고 있다. 우애령, 이청해, 한정희, 김향숙, 정미경, 권지예, 김다은, 함정임, 배수아, 고은주, 오현종, 권리 등 6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다양한 세대의 작가 12명이 참여했으며, 해설과 기획은 김미현 교수가 맡았다. 세대나, 전공, 작품 경향을 망라한 이 책의 작가들은 “느슨한 공감대, 자유로운 발상, 거침없는 시선으로” 이화와 청춘과 문학을 연계시킨다. 그리하여 작가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화의 모습, 다채로운 청춘의 빛깔을 선보이고 있다. 우선 이화 안에서 이화를 보는 작품들, 즉 청춘의 절정과 맞물려 있는 이화에서의 시간, 이화라는 공간을 다룬 작품들이 있다. 대학시절 산골마을에서 만난 젊은 목사와의 인연을 그린 「선유실리」(우애령), 대학 때 함께 봉사활동을 갔던 친구와 경험했던 어느 평화로운 밤에 대한 기억을 잔잔하게 그린 「그 맑고 환한 밤」(한정희), 이화 캠퍼스 산책을 하며 착잡함과 위안을 동시에 얻는 전업주부를 어린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곳에 가면」(고은주), 이화학당을 세운 스크랜튼 여사의 영혼이 이화학당을 그대로 복원한 이화역사관을 방문한다는 설정의 「가장 전망이 좋은 집」(김다은)이 여기 해당한다. 반면에, 이화 안에 있는 소수자와 타자에 주목한 작품들도 있는데, 화려하고 부유한 이화대학의 이미지로 인해 상처받은 기억이 작품의 주조를 이루는 「밤을 건너는 사람들」(이청해)과 「정박」(권리), 또는 가진 것 없는 청춘의 불확정성과 불안감을 잘 나타낸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오현종)와 「그곳은 어떤가요?」(김향숙)와 같은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이화 자체보다는 보편적 주제로서의 이화가 지니는 확대된 의미를 다루는 작품들도 있다. 시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통해 이화의 존재 양상을 문제 삼는 「빠리 거리의 점잖은 입맞춤」(배수아), 바다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의 실존적 고독을 다룬 「딥 블루 블랙」(권지예), 삶의 어두운 부분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상쾌한 밤」(함정임), 연약하지만 그걸 알기에 연약하지 않은 청춘 군상들을 그린 「번지점프를 하다」(정미경) 등이 바로 그러한 작품들이다. 해설을 쓴 김미현 교수는, 이화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시대나 사회별로 ‘뜨거운 상징’ 혹은 ‘왜곡된 은유’로서, 즉 어떤 아이콘으로서 기능해온 측면이 있는데, 이번 소설집을 통해 “소문이나 풍문으로 전해지던 이화가 아니라 실체나 실재로서의 이화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화’라는 키워드로 이루어진 소설집이지만 그 배면에 깔린 청춘의 향기 또한 그윽하다. 70년대 말 농촌봉사 활동을 다니던 선배들에서부터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여대생까지 다채로운 청춘 군상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이 제공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